<기독저널>에 연재중인 행함있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구원론(임태수 교수의 제2종교개혁 구원론)과
그에 대한 김수경 목사(뉴욕퀸즈교회 담임, The 2nd Life Foundation 대표)의 댓글을 소개한다.
미래목회연구소(소장 양태윤 목사) 신학강좌가 3월22일 전주 홍산교회 (주찬규 목사)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신학강좌는 제2종교개혁연구소 소장이며 호서대 명예교수인 임태수 박사가 “제2종교개혁의 구원론 : 행함 있는 믿음으로 구원” 이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하였다. 임태수 박사는 한신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Bonn대학에서 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호서대학교 신학과 교수, 인문대학 학장, 한국구약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서울지사장, 최장일 jangilc@gmail.com>
제2 종교개혁의 구원론
행함 있는 믿음(fide cum opera)으로 구원
임태수 박사 (제2종교개혁연구소 소장 ‧호서대 명예교수)
머리말
한민족은 세계적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세계선교 의 사명이요 제2종교개혁의 사명이다. 서구교회는 지금 텅텅 비어가고 있고 죽어가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의 교회들도 서구교회가 앓고 있는 죽음의 병을 앓고 있 다. 이런 서구교회와 세계교회를 개혁하고 살릴 사명이 한민족에게 있고 한국교회에 있다. 그런데 이 세계적 사명을 다해야 할 한국교회는 지금 병들어 있고 위기에 처해 있다. 한국교회도 서구교회와 세계교회가 앓고 있는 병을 앓고 있다.
세계적 사명, 제2종교개혁의 사명을 받은 한국교회가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다.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죽음의 병을 이기고 자리를 털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한민족에게 맡기신 세계적 사명, 세계선교의 사명, 제2종교개혁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교회를 죽이는 병을 이기는 방법을 찾아내서 먼저 한국교회부터 치유하고 다시 살아나서, 그 치유방법으로 죽어가고 비어가는 서구교회와 세계교회를 살려내야 한다. 그 사명이 한국교회에 있다. 한국교회는 그 사명을 완수하게 될 것을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약속하신 사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21세기에 한민족에게 맡기신 이 중차대한 사명을 한국교회가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에서부터 제2종 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제2종교개혁이란 무엇인가? 마르틴 루터가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 의롭게 되고 구원 얻는다” 는 구호를 내걸고 성공한 16세기의 종교개혁을 “제1종 교개혁”이라고 부른다면, “제1종교개혁”을 넘어서고 보완하는 21세기의 개혁을 나는 1997년부터 “제2종교개혁”이라고 불러오고 있다.
“제1종교개혁”과는 달리 “제2종교개혁”은 “믿음과 행함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는다”는 신학을 구호로 내걸고 주장한다. 이 “행함 있는 믿음으로(fide cum opera) 구원”이 제2종교개혁의 핵심사상이요, 이 구원론은 마태복음 7:21; 야고보 2:24 등 철저히 성경에 기초한 구원론이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야고보 2:17,26). “행함 없는 죽은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만”을 내세우는 서구교회가 비어가고 죽어가고 있고, 한국교회도 병들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 “행함 있는 믿음”을 한국교회가 가지고 철저히 실천하면 제2종교개혁이 일어나고 한국교회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하나님께서 한민족에게 맡기신 세계적 사명, 세계교회를 제2종교개혁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 사명을 반드시 완수해야 하고 완수할 수 있을 것을 믿는다. 한국교회가 한민족에게 맡기신 세계적 사명, 세계교회를 제2종교개혁 사명을 완수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교회를 살리고 개혁하는 일에 모두 기도해주시고 동참해주시기를 간절 히 소원한다.
제1장 두 종류의 믿음
믿음에는 한 종류의 믿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두 종류의 믿음이 있으며, 기독교인이 갖춰야 할 의( 義)에도 한 종류의 의(義)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종류의 의(義)가 있으며, 기독교인이 행해야 할 행 함도 한 종류의 행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종류의 행함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믿음이라고 하면, 한 종류의 믿음만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두 종류의 믿음에 대하여 말한다. 하나는 ‘행함 있는 믿음’(faith with works)이고, 다른 하나는 ‘행함 없는 믿음’(faith without works)이다.
1) 마태복음 7:21
마태복음 7:21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에 두 종류의 믿음이 나타나 있다. 하나는 행함 없는 믿음이요 다른 하나는 행함 있는 믿음이 다. 주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를 항하여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루터의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고 구원얻는다”는 구원론에 의하면 예수를 향하여 ‘주여 주여’ 하고 부르는 사람, 즉 예수를 믿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야 마땅하다.
그런데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신다. 주 님을 ‘주여 주여’ 하고 부르며 믿는 사람이라도 모두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여 기에서 우리는 예수를 항하여 ‘주여 주여’ 라고 부르지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이 있고, 반면에 구원을 얻지 못하는 믿음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믿음은 구원의 필수 조건이다. 믿음 없이는 구원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마태복음 7:21에서 믿음이 구원의 필수 조건이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음에 더하여 또 하나의 조건이 필요함을 마태복음 7:21에서 알 수 있 다. 그것이 무엇인가? 어떤 믿음이 구원을 얻고 어떤 믿음이 구원을 얻지 못하는가? 구원을 위한 또 하나의 조건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행함 있는 믿음: 믿음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행함 없는 믿음: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행함은 구원의 또 하나의 조건으로 등장 한다. 다시 말하면 마 7:21에서 구원의 조건은 ‘믿 음과 행함’ 두 가지다. 루터는 구원의 조건을 ‘믿음’ 한 가지 뿐이라고 말한다. 이에 반하여 예수님은 마태복음 7:21에서 구원의 조건을 “믿음과 행함” 두 가지로 제시하신다.
그렇다면 누가 틀렸는가?
루터의 “믿음으로만 구원얻는다”는 구원론과 달리, 구원의 조건을 ‘믿음과 행함’ 두 가지로 제시하신 예수님이 틀렸는가? 그럴 수 없다. 예수님이 틀릴 리 없다. 틀린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루터다. 구원 의 조건은 ‘믿음’ 한 가지만이 아니라, “믿음과 행함” 두 가지라고 마 7:21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 믿음에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행함 있는 믿음’과 구원을 얻을 수 없는 “행함 없는 믿음 ”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은 다른 성경구절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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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행함은 믿음의 조건"
김 에스더 목사(The 2nd Life Foundation 대표)
임태수 교수님의 글을 보면, "행함 없는 믿음"과 "행함 있는 믿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둘은 모두 "~한 믿음"이라며 "믿음"을 꾸미고 있습니다.
따라서 "행함"이라는 것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믿음의 조건"입니다. "믿음"을 정의할 때, 행함이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는 것이지,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의 조명하심에 의하여 깨달아야 하는 것도 있지만. 국어도 생각해야 합니다. 형용사나 부사는 명사나 동사를 꾸며주는 말이지 그것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행함있는"이나 "행함없는"은 모두 "믿음"을 꾸며주는 말이므로 그것이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이라 는 단어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일 뿐입니다.
"믿음"이라는 헬라어 "피스티스(πίστις, faith)"는 한국말로 "충성"으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충성 (πίστις, faith)과..."(갈 5:2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
(πιστὸς, faithful)이니라"(고전 4:2)
"네가 죽도록 충성(πιστὸς, faithful)하라"(계 2:10).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πίστις, faith)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πίστις, faith)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 17:19)
충성이라는 것은 행위가 동반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행위라는 것은 충성 안에 즉 믿음 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지, 믿음과 행위가 따로 정의될 수 없는 것입니다.
김수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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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수 박사 (제2종교개혁연구소 소장 ‧ 호서대 명예교수)
믿음과 함께 행함이 구원의 조건임을 분명히 제시해주는 말씀이 마태 7:21의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로 하는 지라야 들어가리라"입니다. 이 말씀에서 "주여주여" 하는 믿음과 함께 " 행함"도 구원의 또한 조건으로 분명히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부인하시겠습니까?
둘째의 예는 마태 25:34-36에서 양과 같은 사람들은 소자에게 물주고 밥주고 옷을 준 선행의 "행함" 때문에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그들은 심판주이신 그리스도를 " 주"(kyrios)라고 고백하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고요!
이 비유에서 믿음과 함께 행함은 구원의 조건으로 분명히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행함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고 부인하시겠습니까?
임태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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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ἀγάπη)이 전제된 행위를 동반한 믿음
김 에스더 목사(The 2nd Life Foundation 대표)
기독교인들의 너무나 행위없는 신앙생활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임태수 교수님께서 이렇게 글을 쓰셨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교수님의 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올립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피스티스(πίστις, faith)"라는 말은 '믿음' 또는 '충성'이라는 말입니다. '충성'의 뜻은 '나라와 임금 등(等)에게 몸과 마음을 다하여 헌신(獻身)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몸으로 즉 행위로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몸으로 하는 행동 즉 '헌신'이 없다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거짓된 헌신이건 진실된 헌신이건 모두 행위가 따릅니다. 다시말해서 가짜 충성이건 진짜 충성이건 반드시 헌신이라는 행위가 있어야만 충성이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이는, 충성과 믿음이 같은 말이므로 가짜 행위이건 진짜 행위이건 행위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행위는, 그들이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 즉 아가페 사랑의 마음이 없는 행위를 책망한 것입니다.
임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의 말씀들... 마태복음 7:22절과 25:44절을 보겠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 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 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 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 7:22)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마 25:44)
이 두 구절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선지자 노릇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자들입니다. 즉 행위가 있었던 자들입니다. 그것도 매우 열심히 행했던 이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5장에서 그들은, 그들이 언제 행위없는 믿음생활을 했느냐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믿음만이 아니라 그들이 열심히 행했던 행위를 갖고 주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가 가짜 믿음을 갖고 행한 것이므로 그들이 최선을 다해서 했을지라도 그것은 불법을 행한 것이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즉 믿음(자기 확신)을 갖고 그렇게 열심으로 행했으나 천국에 갈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믿음과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가페 사랑을 갖고 행해야 하는 것이지, 소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사랑(ἀγάπη)이 없이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그것은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할 뿐입니다. 즉 그들의 믿음과 행위는 구원과 관계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이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은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소자를 불쌍히 여기는 사랑(ἀγάπη)이 전제된 행위를 동반한 믿음을 말하며, 가짜 믿음은 바리 새인들처럼 주님께서 인정하지 않지만, 자기들 스스로 최선을 다해 겉으로 보여지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행위는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김수경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