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순결한 삶

작성자김수경|작성시간16.05.27|조회수709 목록 댓글 0

성도의 순결한 삶


혼전 순결', '순결 서약식' 등 한국 교계에서는 자라나는 새싹들이 올바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순결'에 대한 세미나와 행사들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요즘들어 이런 캠페인을 벌이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 사회가 성적으로 너무나 타락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한 젊은 배우가 순결서약을 한 뒤에 TV에 나와서 한 이야기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한국의 청소년들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에 포르노를 접해볼 뿐만 아니라 너무나 많이 보아서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쯤에는 왠만한 것을 보아도 자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우리의 자녀를 보호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위의 포스터는 부산 고신대 총여학생회의 혼전순결 캠페인 포스터로 9일 페이스북에 올려진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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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에 있는 수많은 캠페인 중의 하나인 '혼전 순결' 캠페인은 교회 내에서도 학생회나 청년부에서 많이들 하고 있다. 부산 고신대 여학생회가 해왔던 이 행사도 그러한 행사 중의 하나이다.

 고신대 총여학생회는 전통을 따라  혼전순결 캠페인을 계획했으나 올해에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유달랐다.

 이들은 10일에 혼전순결에 동의하는 학생이라면 남녀 누구나 참여하도록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알렸다가 "혼전 순결 안하면 불결하냐?" 는 등의 여러 악플들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댓글을 올렸다. 


혼전순결 @ http://hashgurus.com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이 있어서 많은 이들이 5월에 결혼을 한다. 특히 5월이 가정의 달이면서 계절적으로도 모든 만물이 봄을 지나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시기이기에 더욱 5월을 선호하는 것 같다. 그래서 5월만 되면 가정에 대한 행사도 많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이들 뿐만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많은 이들이 결혼을 생각하고 아름다운 결혼을 꿈꾸며 준비한다. 그런데 그들의 결혼 준비는 결혼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결혼식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그것이 결혼 준비라고 착각한다. 멋진 웨딩드레스나 잘 새팅된 반지, 아름다운 웨딩홀과 부케 등을 보면서 어떤 것을 할지 결혼할 때까지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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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아이니웨딩의 [결혼계획을 위한 일정별 결혼 준비 체크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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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은 하루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예식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하는 것이지만, 결혼은 하루가 아니라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함께 걸어가야 하는 시간들이다.

 물론 결혼식 준비를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그 날을 특히 신부가 될 사람은 일생에 한 번 있는 그녀만의 날이라는 생각에 얼마나 고대하고 있는가! 

 그 날 하루만은 여왕처럼 섬김을 받고 축하를 받고 싶은 것이 모든 여성들의 마음일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식이 끝나면 그때부터는 남편과 가정을 위해 헌신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의 결혼식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만큼 수십년 간의 결혼을 위해서는 얼마나 준비를 한 뒤에 결혼하느냐를 묻고싶은 것이다.


'결혼'의 정의 The definition of marriage


“결혼이란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셔서 부모를 떠난 남녀가 한 몸(one body)이 된 상태이며, 그것은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것"이라고 예수께서 정의하셨다 (마 19:4-5, 막 10:6-9).


 결혼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것은 결혼에 대한 정의부터 확실히 해야한다. 결혼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결혼 준비의 순서도 모른 채, 결혼식을 위한 준비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가정의 문제가 셀 수 없이 많아지는 것이며 결혼 준비를 하면서부터 서로 원하는 것을 충족해주지 못하여 깨지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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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서 깨지는 것보다 차라리 결혼 전에 깨지는 것이 나은 것일까? 

결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라 사람이 깰 수 없는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보면, 결혼이란 두 남녀가 한 몸이 되는 것이며, 한 몸을  쪼개는 순간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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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기를 서로 자기의 아기라고 우기는 두 여인의 심리 재판을 했던 솔로몬은 그 아기를 반으로 쪼개서 반쪽식 두 여인에게 나누어주라고 했다. 


 그때 진짜 엄마는 아기를 죽일 수 없어서 아기를 반으로 자르지 말고 차라리 다른 여인에게 자기 아기를 주라고 했고, 가짜 엄마는 자기 아기가 아니므로 살아있는 아기를 반으로 쪼개서 죽이라고 했다. 그것을 본 솔로몬은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었던 것이다.


사람의 몸을 반으로 쪼개면 당연히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느 반쪽만 운이 좋아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남녀가 결혼하면 '하나 (one)'가 아니라 '한 몸(one body)'이라고 말씀한다. 이와같이 결혼하여 한 몸이 된 부부가 갈라지는 순간 양쪽 다 죽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결혼의 정의'이다. 


 그래서 결혼을 생각할 때에 제일 먼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결혼의 정의'를 알아야 한다. 성경적 결혼에 대한 정의를 모르고 세상적 가치관(맞지 않으면 이혼하라)에 물들어 있는 상태에서 결혼하기 때문에 조금만 맞지 않아도, '이혼'이라는 말을 쉽게 하며, 각방 생활이나 별거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것이다.


'결혼'의 목적 The purpose of marriage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7, 21)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말 2:15)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어서 결혼을 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경건한 자손)을 만들기 위함이며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제일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각 사람이 몸의 지체가 되어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는 것이지,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이 머리가 될 경우,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을 보면, 결혼의 목적도 아주 간단하다. '결혼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몸이 되는 것이 결혼의 목적이다. 서로 생각과 목적이 달라도 어떤 것에서는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 아닌 다른 것에서 하나가 될 수 없다면 그들은 함께 할 수 없다. 따라서 결혼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 몸 안에서는 어딘가 아프면 온 몸이 그 아픈 곳이 아프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온 힘을 기울인다. 그것이 바로 한 몸이다. 한 몸은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한 몸이라서 자동적으로 신경을 쓰게 되지만, 다른 몸이 아프면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못한다. 얼마나 아픈지 알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결혼을 만드신 이유는, 결혼을 통하여 신랑되신 주님과 신부인 교회의 관계를 이 땅에서 연습하고 훈련하여 진짜 신랑되신 주님을 만나서 영원히 사랑하며 살게 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

 그런데 이세상에는 가짜 신랑들과 신부들이 참 많다. 마귀는 자기가 진짜 남편인 것처럼 멋지게 포장해서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와 배우자를 통하여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법 즉 영적 분별력을 배워야 한다. 따라서 믿지않는 자와의 결혼을 성경이 금하는 것이다.

 결혼은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되신 주님과 교회의 관계를 훈련받기 위하여 하는 것이다. 주님과 교회가 한 몸이라는 것을 배워서 교회가 예수님 안에 완전히 거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이 결혼이다. 그래서 결혼생활이 힘든 것이며 결코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해야만 결혼생활이 평탄할 수 있기에 자기를 부인하고 죽지 못한 사람 즉 자기가 가정의 머리 역할을 하려는 사람은 결혼을 통한 가정생활이 지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머리에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은, 마귀가 머리라는 뜻이므로 마귀가 거하는 지옥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죽이시고(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의 옆구리를 찢어서 피를 쏟아 아내를 만드신 뒤에 잠에서 깬 아담이 하와를 보고 기뻐했던 것은, 앞으로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옆구리를 창에 찔려 물과 피를 다 쏟아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신부인 교회를 세우는 것을 이미 창조시에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첫번째 사역을 가나의 결혼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유도 진짜 신랑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다. 


  진짜 신랑이라면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심판날에 당신의 신부인 교회를 맞이할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첫번째 사역을 결혼한 잔치집에서 진짜 신랑의 역할을 하셨던 것이다. 

 또한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첫번째 사역은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포도주를 만드셔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신 것이며 마지막 제자들과의 만찬에서도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순결한 신부가 되는 방법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살전 4:3-5)


 신부하면 떠오르는 것은 하얀 웨딩드레스와 흰 꽃으로 만든 부케이다. 왜 하얀색일까? 그 이유는 '순결'을 뜻하기 때문이다. 두번째부터는 결혼식 때 흰 색이 아닌 색깔있는 드레스를 입고, 색깔이 있는 부케를 드는데, 그 이유는 이미 처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인 오늘날에는 이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결혼식때 신부의 부케를 보면 여러 색깔의 꽃으로 장식한 것들도 보게 되며, 두번 세번 결혼을 해도 흰 드레스를 입는 것을 보게 된다. 왜 여러 번 결혼을 해도 흰 드레스를 입고 싶어할까?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법이 양심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비록 죄의 오염으로 더러워졌을지라도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깨끗함을 받고 새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악하면 악할수록 착한 배우자를 만나고 싶어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자기 후손만큼은 자기처럼 죄인이 아니길 바라는 그러한 마음과 착한 배우자를 통하여 자신의 더러움이 조금이라도 씻어지기를 바라는 그러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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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의 경건한 백성을 만들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그분의 거룩하고 흠이 없는 백성이기 보다 마귀가 넣어주는 정욕을 따라가기를 원했다. 그 결과 선악과를 따먹고 모든 잘못을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경건한 백성들을 만들기 위하여 홍수와 불과 유황 등으로 고기를 익히지 않고 피채로 먹고 동성애를 하는 악한 자들을 심판하셨다. 


 거룩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래서 죄인들은 거룩해질 수도 없고 거룩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래서 예수님의 보혈로 모든 죄문제를 해결해주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거룩하게 살라고 말씀하신다. 

      

 죄의 결과로 남편은 아내를 지배하게 되었고, 아내는 과거에 남편을 컨트롤하던 그 상태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래서 죄 안에서의 결혼은 아내를 지배하려는 남편과 남편을 어떻게 해서든 자기 뜻대로 하도록 만들려는 아내와의 미묘한 전쟁터가 된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결혼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주셨다. 남편되신 예수께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아내인 교회를 세우신 것처럼, 모든 남편들은 아내와 가정을 세우기 위하여 먼저 죽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신부인 교회가 신랑되신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처럼 모든 아내들은 남편의 말에 복종하라고 하셨다.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러한 인간들을 위하여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남편 아담이 죽은 뒤에 하와가 탄생했듯이 남편되신 예수께서 먼저 죽으셨기 때문에 그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여 교회가 세워지고 세워진 교회가 그분께 복종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아내를 지배하려는 남편과 남편을 컨트롤하고 싶은 것을 사모하는 아내는 저주아래 있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지배하는 것과 남편을 컨트롤했던 것을 사모하는 마음은 선악과를 따먹은 뒤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저주였다. 그 저주를 끊는 길을 예수께서 오셔서 보여주셨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죽는 것만큼 아름답고 거룩한 것이 없으며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아름답고 순결한 것이 없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죽는 것을 우리는 왜 거룩해 보인다고 할까? 아무나 죽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세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순결은 강요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의지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혼전 순결 캠페인에 서명을 할지라도 그것이 지켜진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것들이 나쁘다거나 잘못된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러한 캠페인을 통해 순결이나 거룩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한 번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도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키라고 하셨고, 지키지 않을 경우 환난이 온다고 말씀하셨기에 함부로 사람들에게 서원하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그가 지키지 못했을 때에 죄책감을 비롯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쉬우므로 매우 조심해야 한다.


"서원(vow)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the angel)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an error)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 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destroy) 하랴?"(전 4:5-6)


 서원(vow)이나 서약(oath)은 나쁜 것이 아니다. 서원을 하고 그것을 지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이다.  

 결혼서약을 수많은 커플들이 하지만, 정말로 결혼식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약속한 그 서약(oath)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결혼식을 할 때에 반드시 서약을 한다. 서약마저 없다면 무질서한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하며 사는 법을 가르쳐주시기 위하여 율법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도 약속을 주셨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을 것이라고... 그후에도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율법과 규례 등을 주시며 언약을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주신 언약을 완벽하게 지킨 인간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맹세했다가도 금방 마음이 변하는 존재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맹세를 한다거나 서원을 하는 것을 매우 조심해야 하며 그것을 했을 경우에는 반드시 지키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창세기서부터 계시록까지 주신 언약의 말씀이 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자녀와 군사로 살아가려면, 그리고 그분의 신부가 되려면 그분과 한 몸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에 그 사람의 팔다리를 빼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 사람 전체를 보고 평가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우리의 머리로 섬기며 우리가 그분의 팔다리라면 우리는 그분과 같아야 한다. 머리가 지시하는대로 팔다리가 움직여야 하며 머리가 생각하는대로 손과 발이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므로 우리도 거룩해야만 한다. 크리스천이라면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혼전 순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동안 전인을 통해 이루어야 하는 과제이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아무리 서명할지라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이다. 그분이 우리의 머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분 안에 들어갔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더러운 교만의 옷을 벗고 순결한 신부의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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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수 경 목사 

†he 2nd Life Foundation

뉴   욕   퀸   즈   교   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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