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도의 날 제정을 위한 기도】 (6)이승만 『독립정신(獨立精神)』

작성자김수경|작성시간20.10.11|조회수713 목록 댓글 0





【국가 기도의 날 제정을 위한 기도】 (6)이승만 『독립정신(獨立精神)』 (The Spirit of Independence)


🔹핵심 내용: 기독교·독립·자유민주주의

한성감옥에 있는 동안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국제 정세에 민감한 이승만은 1904년에 『독립정신(獨立精神)』(The spirit of independence)을 집필했다.

그 내용을 보면 주변 나라들의 움직임과 대한제국의 문제점을 밝히며 이러한 시기에 대한제국의 백성들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들, 그리고 세계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주독립국가가 되어야 하며 그 토대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기독교·독립·자유민주주의' 이 3가지가 핵심내용이다.

이승만은 예수께서 "씨 뿌리는 비유"의 말씀을 하신 것처럼 대한민국을 자유독립국으로 만들기 위해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당장 시급한 것은 모든 사람이 "우리는 할 수 없다"는 마음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이처럼 백성들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백성들이 변한다면 이는 나라를 위해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씨만 잘 뿌려 놓으면 반드시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러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전국 동포들에게 호소하여 모든 동포들이 힘을 합하여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있는 대한제국의 독립과 권리를 보전하여 영원무궁하게 만들고자 함이다.…

어리석은 아내와 아이들이라도 그들의 마음속에 독립이라는 정신만 깊이 박혀 있다면, 2천만 동포가 다 죽어 없어지고 한 사람이라도 살아 있어 대한 독립을 지키겠다는 정신만 살아있다면, 독립이라는 말이 없어진들 무엇이 걱정이며 세계 만국이 능멸하기로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러므로 인민들의 정신 속에 독립의 의지를 심어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황급히 쓰고 있는 것이다."

🔸잠언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예수교를 나라의 기본으로

그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이 야소(耶蘇: 예수)교를 국가의 근본으로 삼아서 나를 부인하고 타인과 나라를 위해 사는 삶을 살 때에 영국이나 미국 등 선진국가들과 동등한 나라가 될 수 있음을 밝히며, 예수교를 나라의 기본으로 삼지 않으면 세계와 상통할지라도 아무 유익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모든 인류의 근본이신 예수님의 말씀 즉 반석 위에 건국되기를 애타게 소망했다. 그 소원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기에 결국 주께서 그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셨고,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근본으로 하여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시편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편 107:30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러일전쟁

1904년 이승만이 29세가 되던 해 2월에 러일전쟁이 터졌다. 조선은 1637년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의 속국이 되었다가 1895년 4월 17일 청일전쟁이 끝나면서 청나라와 일본은 일본의 시모노세키에서 조약을 체결하면서 시모노세키 평화조약 제1조에서 청나라는 조선을 완전 무결한 자주 독립국으로 확인하였다. 그리고 2년 후인 1897년 10월 12일에 국호를 "대한제국"이라고 칭하고 고종은 청나라와 같이 자신을 황제라 명명하였다.

[시모노세키 평화조약 제1조] "청은 조선이 완결 무결한 자주 독립국임을 확인하며 무릇 조선의 독립 자주 체제를 훼손하는 일체의 것, 예를 들면 조선이 청에 납부하는 공헌, 전례 등은 이 이후에 모두 폐지하는 것으로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은 조선을 자주 독립국으로 확인하지 않고, 청나라 쪽에서만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한제국은 청에서는 해방되었으나 일본의 간섭과 야욕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주 독립국가가 된 대한제국에 경계경보가 울린 것은 1904년에 발발한 러일전쟁이었다. 감옥에 있던 이승만은 러일전쟁 소식을 듣자 대한제국의 독립에 경고등이 켜진 것을 직감하고 1904년 2월 19일부터 '독립'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여 4개월 뒤인 6월 29일에 『독립요지』 라는 제목으로 탈고했다.

그러나 제목에 "독립"이라는 단어가 들어갔기에 일본이 대한제국을 먹으려고 하는 터라 결코 출판할 수가 없었고 "금서"가 되었다. 이 책은 1910년 미국에서 출판되었으며 출판될 때에는 『독립정신』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일본과 러시아는 1896년 5월 14일 한성에서 양국의 입장을 조율하는 베베르-고무라 각서를 체결하고, 6월 9일에는 모스크바에서 로바노프-야마카타 협정을 맺고 의정서를 체결했다.

이 의정서는 본 조약 4개와 비밀 조관 2개가 있는데, 그 내용은 러시아와 일본 양국이 조선의 영토 내에 양국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조선정부의 대신들의 임명과 해임에 관여하며 재정문제를 조언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양국이 서로 견제하기 위하여 체결한 것이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는 정치 군사면에서 독립국이 아니라 두 나라의 지배를 받는 꼴이 되었다. 이에 대하여 『독립신문』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근일 일본 신문들에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을 같이 보호한다는 말이 많이 있으되 우리 생각에는 이 말이 실상이 없는 것 같거니와 우리가 이런 일은 원치도 않노라.... 만일 두 나라에 보호국이 되면 그것은 상전 둘을 얻는 것이니...
일본과 청국이 싸운 후에는 조선이 독립이 되었다고 말로는 했으돼 실상인즉 일본 속국이 됨 같은지라. 조선 내정과 외교하는 정치를 모두 진고개 일본공사관에서 조처했으니 독립국에도 남의 나라 사신이 그 나라 정부 일을 결정하는 나라도 또 있는지 우리는 듣고 보지 못했노라.”(『독립신문』, 1896. 5. 16)

독립신문(獨立新聞)은 서재필을 중심으로 1896년 4월 7일 한글과 영문으로 발간된 독립협회의 기관지이다.

러일전쟁이 일어날 당시의 상황을 보면,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일본의 만주 진출을 저지한 뒤, 의화단 사건을 계기로 1900년에 만주를 점령하고 조선의 서북지방을 침략했다.

이러한 러시아의 침략행위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열방들이 분노하던 터에 일본은 러시아와 가까운 청나라와 조선을 러시아가 점령하면 일본도 위험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쟁을 준비한다.

1902년 1월 30일 일본은 영국과 동맹을 체결한다. 그후 1903년 6월 23일 일본 어전 회의에서 대한제국을 일본의 지배하에 두어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우선권 인정을 하기 위한 협상을 하려고 했으나 러시아는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이에 1904년 2월 4일 일본이 러시아를 선제 공격하였고 1년 7개월 후에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중재에 의하여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맺고 휴전한다.

러일전쟁의 명분이 다름아닌 대한제국의 지배권 때문이었으므로, 이승만과 같이 자주독립을 외치는 애국자들은 그가 <독립정신>에 서술한 것처럼 "분노가 치밀어 눈물을 금치 못하여" 독립을 더욱 소망하게 되었고, 이승만은 감옥 안에서 "독립"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계속)

🔺대한민국에도 미국처럼 <국가 기도의 날>이 제정될 때까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리더를 양육하는 리더
김수경 목사 Pastor Esther Soo-Gyung Kim

뉴 욕 퀸 즈 교 회
†he 2nd Life Foundation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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