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기도의 날 제정을 위한 기도】 (7)이승만 『독립정신(獨立精神)』
🔹<독립정신> 집필 동기와 목적
이승만은 『독립정신』 머리말에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와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옥중에 지리한 세월이 어연 7년이 된지라. 세상 형편이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면 울분이 치솟아 몇 권의 책을 번역하며 잊으려 하기도 했으나 어느 것도 발간되지 못하여 울적함을 참을 길이 없었다.
또한 몇 년 동안 논설을 써서 신문에 게재하기도 했으나 그것도 사정이 생겨 중단하고 있던 중, 때마침 러일전쟁이 벌어지고 있어 남아로서 세상에 나서 유익한 일을 할 만한 경륜은 없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분노가 치밀어 눈물을 금치 못하여… 내용이 부족한 점도 있고 일관성도 적지만 내용의 핵심은 ‘독립’이란 두 글자이다....
한글로만 기록한 것은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보기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특별히 백성에 대해 많이 쓴 것은 대한제국의 장래가 백성에게 달려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중간층 이상의 사람이나 한문을 안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썩고 잘못된 관습에 물들어 기대할 것이 없고, 그들의 주변 사람들도 비슷하다. 이 말이 너무 심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현실을 보면 잘못된 말이 아닌 줄 알 것이다.
진심으로 바라는 바는 우리나라의 무식하고 천하며 어리고 약한 형제자매들이 스스로 각성하여 올바로 행하며,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여 날로 국민정신이 바뀌고 풍속이 고쳐져서 아래로부터 변하여 썩은 데서 싹이 나며, 죽은 데서 살아나기를 원하고 또 원하는 바이다.
- 건국 4237(1904)년 6월 29일 한성감옥에서 죄수 리승만 기록"
이승만은 『독립정신』 을 쓰게 된 상황을 [청년 이승만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유성준이 나더러 책을 쓰라고 권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모든 개혁운동이 실패한 원인은 독립협회를 제하고는 그 모든 운동의 지도자들이 사람들을 교육 계몽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또 그때 일본에 망명가 있던 형[유길준]이 돌아오게 되면 독립운동에 관한 여론을 일으키기 위해서 나의 책을 발간하기 위해 정부예산을 책정하도록 권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비밀리에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썼다.
책 원고도 끝났고 유길준도 돌아왔으나 일본은 그들에게 아무 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의 원고는 감옥에서 비밀리에 밖으로 나왔다.
그 후에 박용만이 그것을 해외로 가져왔는데 그때 그는 트렁크의 밑바닥에 그 원고를 숨겨서 내와야 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권력을 잡은] 일본은 독립운동을 제압하겠다는 것을 공표했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문양목과 그의 사람들이 [돈을 내어] 1906년에 그곳에서 그 책을 발간하였고 1920년 하와이에서 제2판이 나왔는데 국내에 있는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많은 돈을 내서라도 사보려고 했다.
1904년 2월에 일본은 제물포와 여순에 있는 러시아 군함들을 폭파하여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우리 황제는 [러시아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1904년 x월 x일에 나는 석방되었다. 내가 복당(감옥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감옥 안의 죄수들은 그곳을 감옥이 아닌 "복당"(복의 집)이라고 명명했다) 감옥에 있은지 약 7년만이었다. 나의 선친은 또 한 번 기뻐하였다."
오늘날 이 글을 읽는 이들은 대부분이 감옥에 있지 않고 여름엔 비와 태풍을 피하고 겨울엔 눈과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이승만처럼 감옥에 붙잡혀있지도 않고, 종이와 펜이 없어서 쩔쩔매지도 않는다. 오히려 종이와 펜이 넘쳐 난다. 쓰레기통에는 한두줄 끄적이다가 버린 종이들이 수북하다. 왠만한 종이들이나 잘 써지지 않는 볼펜은 전혀 아까와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리기 일쑤다.
그렇게 풍요롭게 살면서 이 글을 읽고있는 독자는 과연 얼마나 그 풍요로움에 감사하며 그것을 잘 누리며 살고있는가? 성경을 하나라도 더 읽고 쓰고 전파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해왔고 하고 있는가?
혹시 타인이 묵상하고 연구하여 죽을 힘을 다해 전하는 것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 일상은 아닌가? 읽을 시간이 없으니 보내느라 헛수고 그만 하라고 하지는 않는가?
필자의 경험으로 수많은 목사들 중에 정말 설교도 제대로 못하고 성경 상식도 부족하지만 스스로 교만에 빠진 자들은 성경구절을 보내는 것조차 거부했다. 그들의 말은 "아니 어떻게 목사에게 말씀을 보낼 생각을 하냐? 너희 교회 교인들에게나 보내라"라는 것이었다.
목사니까 더욱 말씀을 받아먹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이들을 먹여 살리려는 사람은 본인부터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살아있어야 한다. 그리고 먹고 살 수 있는 음식인지 죽이는 음식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이들에게도 독약이나 마약과 같은 것을 주지 않을 수 있다.
찬양집회나 치유집회, 은사집회 등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흥분시켜 성령의 감동인 것처럼 만들지만, 그들이 말하는 성령이라는 마약 기운이 다해갈 때에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죽음의 골짜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미 죽음의 낭떠러지 앞에 줄을 서서 점프해야만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시편 58:4-5
4.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 곧 술사가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행할찌라도 그 소리를 듣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목사니까 말씀을 들을 필요가 없고 말만 하겠다고 하는 자들을 향하여 성경은 "귀머거리 독사"라고 말씀한다. 듣지도 보지도 않고 자기 말만 하겠다고 하는 자들은 목사라는 명칭을 버려야 한다. 그런 자는 거듭난 성도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섬김의 리더십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수많은 고난을 다양하게 겪은 다윗 왕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고백한 말씀이 떠오른다. 그는 그 고난을 통하여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됐다고 고백한다. 즉 주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주님의 율례를 가르쳐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은 컴퓨터 시대이므로 종이와 펜을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직 펜에 잉크가 많이 남았는데도 새것을 사면 쓰던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린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지구의 청지기 역할을 하는 이들을 눈뜨고 찾아봐도 정말 찾기 힘들다.
그러나 종이를 구하기 힘든 감옥 안에서는 신문지만 있어도 붉은 물감을 구해서 잉크를 만들어 신문지 위에 글을 쓰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승만이다.
그는 그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속해있는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일념으로 힘쓰고 애써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선각자의 길을 갔던 것이다. 그래서 진짜 리더는 반드시 고난이 동반된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별다른 고난이 없이 순탄하게 살아왔다면 리더십이 결여됐을 확률이 높다. 세상에서 말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는 리더십 말이다.
주님의 제자의 길은 반드시 고난이 동반되며 고난이 없는 자는 사생자이며 주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남들처럼 고난이 없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일수록 고난의 강도가 깊고도 넓다.
🔸욥기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크게 쓰는 리더일수록 죽음의 문턱을 들락거린다. 가는 곳마다 시기와 질투로 인하여 어떻게 해서든 (거짓말을 지어내어 이간질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를 짓밟고 죽이려고 달려드는 자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통과했을 때, 마음을 연단하시는 주님께서는 정금 같이 만드셔서 왠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게 만드시고 사용하신다.
나무는 불이 닿기만 해도 금방 타서 재가 된다. 그래서 나무같은 이는 결코 연단을 견디지 못한다. 조금만 힘들고 욕을 먹고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불평하며 놀라 자빠지며 불탄 재가 되는 자를 무엇에 쓰겠는가?
목사를 비롯한 수많은 육적인 자들이 리더가 되고싶어 안달이다. 그런데 그런 자들을 살펴보면 조그만 일에도 정신을 못차리고 쓰러져서 신음을 한다. 그러면서도 리더의 자리에는 앉고싶어 한다. 그 자리에 앉아서 뭐하려고? 그런 자들이 리더가 되면 그 단체는 자살골을 넣는 것이다.
참된 리더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자신이 서있는 그 자리에서 섬길 대상과 섬겨야 할 일거리를 찾는다. 그래서 늘 바쁘다. 남들은 왕좌에 앉으려고 이사람 저사람 찾아다니느라 바쁜 그 시간에 참된 리더는 섬길 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섬겨준다.
그러나 리더십이 없는 자들은 섬길 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섬겨줄 자들을 찾아다니느라 바쁘다. 리더십이 없다는 말은 섬길 줄을 모른다는 말이다. 하나님나라의 리더십은 섬김이 기본이다.
당신은 섬길 자를 찾고 있는가, 아니면 당신을 섬겨줄 자를 찾고 있는가?
즉 당신은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자인가, 땅에 속한 나라의 백성인가?
🔸잠언 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죄인이 옥중에서 글을 써서 신문에 기고할 수 없지만, 간수들의 호의로 이승만은 익명으로 계속해서 잘못된 정치와 "기독교로 나라 세우기"에 대한 논설을 썼다.
사대주의가 뼈속 깊이 배어있던 이들은 독립에는 관심이 없고 러시아에 붙었다가 일본에 붙었다가 유리한 쪽을 선택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습을 이승만은 차마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감옥에 있었지만 그의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로하여금 그렇게 3년 동안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글을 쓰게 했다. 감옥에서의 그의 행사는 그가 얼마나 리더십이 뛰어난지를 증명하고 있었다.
성경 다음으로 세계의 베스트셀러인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도 감옥에서 쓰여진 것처럼, 진실된 글을 쓰는 자들은 대부분 고난 당하고 힘든 역경 속에서 벗어난 뒤에 쓰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고난을 극복하며 쓰기에 정금과 같은 글이 탄생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역자들은 아프다고 쉬거나 힘들다고 나중에 하겠다거나 낙심된 일이 있을 때 좌절하지 않는다. 육체를 가졌으므로 잠시 못 일어나서 쉬기도 하지만 곧 주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아 오뚜기처럼 일어나 달려간다.
그들은 상황과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상황과 환경을 통해 주께서 주시는 귀한 교훈을 깨닫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높이 뛰어 오르고 더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만약 누군가에게 어떻게 그렇게 글을 잘 쓰느냐고 묻고 싶다면, 진주가 고통 속에서 만들어지듯 그만한 고난이 있었겠구나를 생각하라. 답은 아주 간단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고난의 깊이가 깊을 수록 영적인 글의 깊이도 깊어지며, 고난의 폭이 넓을 수록 글의 지경도 넓어진다.
그러므로 무탈한 것과 행복한 것을 자랑하지 말고, 깊고 넓은 고난을 경험하게 허락하신 하나님을 자랑하라. 그 고난 속에서 주께서 어떻게 당신의 삶을 이끌어 주셨으며 그것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이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자랑하라!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고난이 없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사생자)는 것이므로 결코 자랑할 것이 못된다.
🔸예레미야 9:23-24
2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찌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히브리서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로마서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계속)
🔺대한민국에 <국가기도의 날>이 제정되어 하나님께만 기도하는 나라가 되도록 간구하자!
리더를 양육하는 리더
김수경 목사 Pastor Esther Soo-Gyung Kim
뉴 욕 퀸 즈 교 회
†he 2nd Life Foundation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