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 내가 사흘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마태복음 27:62-66
62.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63.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가로되 "너희에게 파숫군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66. 저희가 파숫군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본문 앞에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뒤에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며 산헤드린 공회의원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입니다. 그때 그는 '거듭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예수님께 처음으로 들으면서 그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할 때에 그들 앞에 나서서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요 7:51)라며 예수님에 대해 담대히 변호하며 그들의 잘못을 지적했던 것으로 보아 그 역시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9장에 보면,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시체를달라고 하여 장사를 지내려고 할 때에 니고데모 역시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져왔습니다(요 19:38-40).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그가,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예수님에 대해 변호하였고,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을 보면서 예수님을 장사하기 위해 정말 비싸고 값진 몰약과 침향을 백 근이나 가져왔습니다.
몰약과 침향은 방부 효과가 뛰어나서 장례용품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침향'의 진품은 물에 가라앉기 때문에 침향(沈香)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합니다. 침향은 영어로 앨로우즈 우드(aloes-wood)라고 하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알로에"로 잘못 번역되어서 '침향'을 '알로에 베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로에와 앨로우즈우드는 완전히 다른 겁니다.
아무튼 이 '침향'이라는 나무에 몰약을 섞은 것을 백근쯤 가져왔는데, 이것은 33kg정도 되는 엄청난 양입니다. 이 말은 엄청난 돈을 들여서 예수님의 장례를 왕의 장례식처럼 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셨을 때에는 밤중에 찾아왔던 그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겁도 없이 이렇게 최고의 장례식을 준비했던 겁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준비한 자신의 무덤으로 예수님의 시신을 옮길 때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등이 함께 따라가서 장례식이 끝나는 것을 보고, 그 무덤을 확인했습니다. 그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수많은 사람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아주 단촐하게 예수님의 장례식이 치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장례식은 소수의 사람이 모였지만 왕의 장례식처럼 모든 것을 갖추었습니다. 또한 영원히 죽고 살지 못하면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것도 좋겠지만, 다시 살아나실 것이므로 화려한 장례식은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3:54-56절을 보면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라는 말씀이 있듯이, 이 여인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안식일이 되기 전에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고 계명대로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62절에 보면, 예수님의 장례식을 마치고 난 뒤에 마태는 "그 다음날은 예비일 다음날"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누가복음 23장54절에도 "이 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라고 기록하고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비일은 무엇이며 또 안식일은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함께 지켰는데, 유월절이 끝나는 양을 잡는 시간(막 14:12)부터 무교절이 시작 됩니다. 또 무교절 첫날과 마지막날을 하나님은 성회로 모이며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 날은 안식일과 같이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무교절 첫날 즉 안식일 다음날이 초실절입니다. 초실절은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하나님께 흔들어 바치는 날로, 처음 익은 열매를 바치는 날입니다(레 23:5-11). 이것은 곡식의 첫 열매가 아니라, 일년 중에 가장 먼저 추수하는 곡식을 드리는 날입니다. 무교절 첫날을 안식일로 지켰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는 안식일은 평상시의 안식일이 아니라, 무교절에 속한 특별한 안식일이었으므로 '안식일'보다는 "예비일 다음날"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제사장은 사두개인들이었고, 사두개인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들과사두개인들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뒤에도 역시 안식일을 범하면서까지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빌라도에게 "주여"라고 말하고 주님에 대해서는 "유혹하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방신을 섬기는 로마의 총독에게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로마에서는 황제를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따라서 신인 황제가 보낸 총독에게도 "주님"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그들은 항상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겼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도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새로운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이 무슨 날입니까? 하나님께서거룩하고 복 주신 날로 하나님만을 섬기며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날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세상의 총독에게 "주님"이라고 하면서 안식일이 "여호와의 날"이 아닌 "총독의 날"로 만들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그들이 "주여"하며 찾을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의 총독에게 "주여"라고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그들은 예수께서 운명하신 뒤 사흘까지 경비병을 세워달라고 빌라도에게 부탁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만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까지 안식일을 범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20장을 보면 ""제 7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라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즉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만물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마치신 뒤에 아직 아담이 죄를 짓기 전에 제정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건 믿지않건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모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에 일을 해서도 안 되지만, 무엇을 사는 행위도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무엇을 사므로 그 가게가 문을 열어야 하고, 따라서 나 때문에 그 가게 사람들이 주일에 일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즉 나는 교회에 와서 주일을 지키지만,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주일을 지키지 못하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사러감으로 내가 그 가게에서 사람들을 일하도록 시키고 있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라고 백날 전도해봤자, 내가 주일에 무엇을 살 경우에는 전도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들도 주일 하루만큼은 쉬고 싶고, 교회에 나오고 싶지만, 주일에는 교인들 때문에 더 바빠서 교회에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 교인들 때문에 문을 열어야 한다고 합니다. 잔치집, 꽃집 등은 주일이 제일 바쁩니다! 결국 주일에 무엇을 사러가는 행위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처럼 외식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것임을 기억하고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동안은 힘써 네 모든 것을 행할 것이나 제 7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엿새동안 힘써 세상일을 한 것도 부족해서 쉬어야 할 주일까지 세상 일을 하도록 지시를 받고 그들의 지시에 따라 시체가 있는 무덤을 지키는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흘 뒤에 살아나실 것이라는 말씀은 제자들에게만 하셨던 말씀입니다(마 16:21, 17:22-23, 20:17-19). 제자들에게만 하셨던 말씀을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아마 소문으로 들어서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그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있는 반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그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말씀이 생각이 나서 두려워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두려워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결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들을 많이 보고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따라서 두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호세아서 6장1-2절 때문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에 대한 말씀이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제 3일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들은 그들은 호세아 선지자가 했던 말을 기억했던 겁니다. 왜냐하면 호세아와 예수는"구원자"라는 뜻으로 같은 이름인데다가 똑같이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큰 돌로 막고 인봉했습니다. 다니엘을 없애기 위해 사자굴에 넣고 인봉한 것처럼(단 6:17) 예수님의 시신이 있는 무덤을 그들은 인봉했던 겁니다. 아무리 큰 돌로 막고 인봉을 하면 무엇합니까? 하나님께서 살리시는 데에는 아무 재간이 없습니다. 사자굴에 다니엘을 넣고 인봉했지만 다니엘이 살아나왔듯이, 예수 그리스도 역시 큰 돌로 막고 인봉하고 경비까지 세웠지만, 살아서 나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로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의 어떠한 힘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두려움이 생기면 지각이 둔해집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고안해낸 아이디어는 고작 경비병을세우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큰 돌로 막았기 때문에 그들이 잠이 들었다고 할지라도 돌을 굴리는 소리에 잠을 깰 수밖에 없습니다. 보초를 서는 이들이 잠을 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며, 또한 깜빡 잠이 들었다고 해도 조그마한 소리에도 잠을 깨는 것이 보초를 서는 이들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죽는 것이 두려워서 모두 도망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있는 상황이었습니다(요 20:19, 26).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겁이 나서 숨어지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겁쟁이들이 군인들이 지키고 서있는 무덤에 와서 겁도 없이 큰 돌을 굴려서 시체를 꺼내갈 용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결국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함정에 자기들이 빠진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즉 경비를세움으로 인해 예수님의 제자들이 와서 그 시신을 훔쳐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알린 결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둔해진 지각으로 인해/ 오히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명해 준 것입니다.
무엇보다 죽을까봐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던 겁쟁이 베드로가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는 것은, 분명히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가 예수님의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모습을 본 뒤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전심으로 기도하며 성령을 받은 뒤에 모두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확실히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을까봐겁이 나서 몸을 도사리던 그들이 어떻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예수님을 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자기들도 비록 죽더라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은 어떻게 합니까? 누가 확실히 죽었을 때에 하는 것이 장례입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들은 예수님께서 확실히 죽은 것을 보았기에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예수님은 확실히 죽으셨습니다.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이단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기절했던 것이라고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15:20)라고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바로 "초실절"입니다. 무교절 안식일 다음날이 초실절이었는데, 초실절은 그 해의 처음 익은 곡식을 하나님께 바치는 날입니다. 이 절기에 맞게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처음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구약시대에 지키던 것이 없어진 것들이 몇가지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완성이 된 것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17). '유월절'이 '성만찬'으로, 할례가 세례로, 초실절이 부활절로 완성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교회"를 탄생시켰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분부대로 모여서 전심으로 기도한 결과 성령을 받아 초대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이처럼 자신을 죽이며 전심으로 기도하며 성령을 받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신앙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체험이 없는 신앙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부활은 죽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죽어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얼마나 죽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육체의 습관을 따라 살던 옛 모습을 완전히벗어버려야 합니다. 육체의 습관대로 말과 행동을 계속해서 할 때에 우리는 성령과 반대로 육체의 열매인 지옥의 열매를 맺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회개하고 완전히 죽었을 때에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처럼 죽어야 세워질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처럼 남을 죽이고 자기만 살려고하는 사람들은 결코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주일을 범하더라도 그것을 범하게 내버려두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자기 자신을 완전히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이 세운 교회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밤새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뜨듯이, 우리는 매일 매일을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도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성경에서 죽는 것을 "잠을 잔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을 자는 것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며, 잠에서 깨는 것은 부활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매일 부활을 체험하면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바보스럽고 불쌍한 일은 없을 겁니다. 따라서 부활을 믿을 수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큰 복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는 그들이 신봉하는 신의 거대한 무덤을 자랑하지만, 기독교는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다른 종교에는 부활이 없지만, 기독교에는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처럼 쓸데없이 무덤을 지키느라 애쓰는 이들이 우리 가운데에는 한 사람도 없기를바랍니다. 주일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세상의 것을 따라가며, 하나님보다 권력이나 명예나 내가 원하는 그무엇을 나의 '주님'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종교지도자들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보다 내 생각대로 하는 것,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안식일의 규정보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바로 쓸데없이 무덤을 지키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처럼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말고,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처럼 주님안에온전히 거하며, 주님의 말씀대로 안식일의 규례대로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가운데 부활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면서 주일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예수께서 안식일 다음날 부활하셔서 첫 열매가 되신 날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도 "주의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일요일" 즉 "태양의 날"이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태양신을 섬기는 날"이 바로 "일요일"이며,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 "주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용하는단어도 구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 동안은 잘 몰라서 사용했던 분이 계실 줄 압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본인이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한다면 "주일"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단어 하나갖고 뭘 그렇게 따지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주일"이라는 말은 "주님께서 그날 부활하셔서 주님의 날이 되었다"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즉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는 말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주일이라고 말해야 하며, 또 주일을 거룩하게잘 지켜야 합니다. 결코 주님의 날에 주님과 상관없는 세상적인 어떠한 것도 해서는 안됩니다.
주일에는 사사로운 말도 하지 말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거나 자신을 위한 오락이나 즐거움을 추구해서도 안됩니다. 오직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과 전도하는 것과 가족들이나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며 감사하며 지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겁니다.
바라기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한 분 한분이 완전히 말씀 안에서 자신을 죽이고 성령으로 거듭난 가운데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부활의 증인이 되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시기를바랍니다. 할렐루야!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영적으로 죽었던 저희를 살리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제물로 삼으신 그 크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죽음 후에 부활이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심으로 저희에게 주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갖게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어주셔서 저희에게 산 소망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또 저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 사랑과 죄값은 사망이라는 하나님의 공의를 가르쳐준 것을 또한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부활하신 날을 저희가 '주의 날'이라고 하면서 '주일'이라고 부르며 살게 해주심을 또한 감사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태양신을 섬기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여 일요일이라고 하지만, 단어에서부터 주님을 섬기는 자라는 구별을 시켜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거룩한 날에 지금껏 장도 보러가고 커피를 마시러 가기도 하며 사람들과 어울려 놀러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주일에 단 하루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시고,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아무 일도 시키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동안 너무나 많은 죄를 저질러왔음을 고백합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면 즐거움을 주신다고 이사야를 통해 말씀해주였는데, 주일을 잘 못지킴으로 말미암아 제 삶 속에서 즐거움 대신 고통과 아픔이 있어왔음을 고백합니다.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시고 주께서 부활하신 이 기쁜 날에 주님을 위한 일만 하게 도와주옵소서. 주님께 예배드리고 주님을 알기 위한 성경공부와 말씀 묵상에 전념하며, 전도하며, 또 가족들과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날로 보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제가 먼저 변하므로 제 가족들과 주위 성도들이 함께 변화되어 주님의 거룩한 날을 진정으로 거룩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주님의 십자가에 저의 모든 정욕과 명예욕과 권세욕을 다 못박고 새롭게 주님 안에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도록 저를 깨끗게 하여주시고 변화시켜 주옵소서.
잠을 자고 깨면서 죽음과 부활을 매일 경험하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금껏 깨닫지 못하고 부활신앙의 뚜렷함이 없이 살아왔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진정으로 부활신앙을 갖고 부활의 주님을 전하며 살아가는 전도인으로서의 삶을 잘 살도록 주여, 조와주옵소서.
오늘도 저를 통하여 온전히 주께서만 영광받아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e 2nd Life Foundation
Esther Soo-Gyung Kim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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