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열왕기상 17:8-24)

작성자정수국|작성시간13.04.22|조회수576 목록 댓글 0
오늘의 말씀 :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

 
열왕기상 17:8-24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9. "너는 일어나 시돈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
10. 저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과부 그곳에서 나무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가로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11. 저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대 손에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12.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움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아들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후에는 죽으리라."
13. 엘리야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아들 위하여 만들라.
14.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5. 저가 가서 엘리야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 식구 여러 먹었으나 
16.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17. 후에 주모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죄를 생각나게 하고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19. 엘리야 저에게  아들 달라 하여 그를 여인의 품에서 취하여 안고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 올라 가서 자기 침상 누이고 
20.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주께서 내가 우거하는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 아이 위에 몸을 세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아이의 혼으로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22. 여호와께서 엘리야 소리를 들으시므로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 오고 살아난지라

23. 엘리야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아들 살았느니라." 

24. 여인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와의 말씀이 진실한 아노라" 하니라

여러분은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그리고 그 순간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우리의 인생을 살펴보면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를 붙여 주신 것처럼, 엘리야에게 사르밧 과부를 붙여 주신 것처럼,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이렇게 사람을 붙여주십니다. 그래서 정말 힘들고 어려울 , 사람을 통해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굶어 죽기 직전에 있는 사르밧 과부를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먹여 살리십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은 그를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가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오히려 풍성히 다른 사람을 위한 사역을 있게 해주십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며, 부귀 영화생명 또한 나의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셨기에  허락하신 기간동안만 우리에게 있을 있습니다최선의 때에 최고의 것으로 우리에게 채워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적당한 때에 알맞게 우리에게 공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가져가셨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최선임을 알아야 합니다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좋기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제한된 지혜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를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을 정말로 갖고 가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지 테스트 하시기 위한 것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얼마나 원하며, 그것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 하십니다.하나님보다 그것을 더 사랑하는지, 아니면 그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지만,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여 믿음의 도약을 시켜주시기 위해 잠깐 우리에게서 가져가실 때가 있습니다.
 
본문의 사르밧 여인은 처음부터 엘리야에게 떡을 만들어 먹고 아들과 함께 죽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차피 그녀의 아들은 굶어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를 통해 아들의 삶은 연장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부는 아들의 생명이 그렇게 연장된 것에 대한 감사가 없었던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아파서 죽을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을 형편이었기 때문에 아들의 생명이 연장된 것을 별로 느끼지 못했고, 그저 경제적으로 풍성해진 것이 고마울 뿐이었을 것입니다. 아들과 함께 굶어죽었을 수도 있었던 것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기억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과거의 힘들었던 시절을 기억나게 하며 그동안 풍성히 먹고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일깨워주기 위해 그녀의 입에서 나왔던 그대로 아들을 죽게 하셨습니다. 소중한 아들이었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을 수도 있었지만,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먼저 선지자를 대접한 그녀였습니다. 당시에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언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그녀의 순종하는 믿음을 재차 테스트하십니다. 첫번째는 아들이 죽을 수도 있는 환경을 만드셨지만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번째는 정말로 아들을 죽이십니다. 아들이 죽을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에 순종한 그녀가 아들이 죽었을 때에는 어떠한 태도로 나오는지 알고 싶으셨던 겁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는 테스트에서는 믿음의 사람으로 통과되었는데, 두번째 테스트에서 테스트의 강도가 높아지자 실격됩니다. 이유는, 기적을 통해 믿음이 생길 수는 있지만, 그러한 믿음은 일시적일 뿐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시련 필요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기적을 체험한 다음에는 반드시 시련의 단계가 찾아옵니다.
 
사르밧 과부는 아들을 잃자 엘리야를 원망합니다. 그녀는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생각의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녀의 태도와 엘리야의 대조되는 태도에서 나타납니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그녀는 아들이 살아날 것에 대한 소망을 갖지 못하고 슬픔에 빠져 엘리야에게 원망의 소리를 내고 있었고, 엘리야는 말을 듣자마자 아이를 안고 다락으로 올라가 아이가 살아날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많은 이들이 사르밧 과부처럼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자신이 정해놓은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는 믿음을 보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움이 닥치면 "이번엔 정말 되려나보다"라는 마귀가 주는 절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하고 절망의 구덩이에서 헤메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자신이 정해놓은 생각의 한계가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기에 엘리야처럼 자신의 생각의 한계를 뛰어 넘어 믿음의 도약을 하기 위해 소망을 갖고 부르짖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문제에 파뭍혀 헤어나오지 못하고 문제 속에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문제가 생길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킵니다. 왜냐하면, 문제 속에 빠지면 문제를 없기 때문입니다. 한발짝 뒤로 물러서서 문제를 바라보아야 제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문제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르밧 과부처럼 반응합니다. 자신이나 사랑하는 이에게 임한 비극을 자신의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비난합니다. “무슨 죄를 지었기에 아이가 아픈 것일까?”“무슨 때문에 삶에 이런 재앙이 닥쳤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고통이 우리의 죄악된 선택에서 비롯될 때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만약 어떠한 죄가 생각이 나면 회개하면 됩니다. 그러나 회개하지는 않고 죄책감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주위의 사람들을 원망하는 행위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며 마귀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죄책감은 2가지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첫째로 성령께서 주시는 죄책감은 생각이 나자마자 곧 회개케 하셔서 우리에게 평안을 줍니다. 둘째로 마귀가 주는 죄책감은, 그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죽을 때까지 회개하지 못하게 하며 회개하지 않았기에 평생을 죄책감 속에 시달리며 살게 합니다. 그리고 회개를 했더라도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그렇게 회개했다고 될 것 같아?”
 
따라서 우리는 죄책감이 들면 그 즉시로 회개하고 거기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삶 속에서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없는 이유 때문에 재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인정한 욥에게도 상상할 수 없는 불행이 닥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겪는 고난의 원인을 설명하려고 주의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지, 추측에 불과한 원인에 집착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알 없는 고난이 인생길에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자신과 주위를 원망하기보다는 그 고난을 극복할 있는 믿음과 주님 안에서 소망을 갖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정말 믿음으로 살려고 애를 쓰고,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데, 때로는 불신자들보다 험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정말 답답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주님 앞에 성실하게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그래도 우리의 가는 길이 조금은 평탄하고 형통하도록 뭔가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열심히 신앙생활도 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정성으로 공궤한 사실만 보더라도 여인에게 유일한 희망인 아들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무엇때문에 이 여인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육신의 것을 포기할 것을 매 순간 결단하게 하십니다. 과연 불확실해 보이는 미래의 약속을 위해 현재 내가 갖고있는 한 웅쿰의 밀가루를 포기할 수 있는가? 또한 내 사랑하는 가족을 포기할 수 있는가? 우리는 사르밧 과부를 통하여 전적인 포기전적인 헌신, 그리고 완전히 버리고 포기했을 때 잃음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의 결과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매우 절박한 상태에 처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명령이 더욱 강해질 때가 있습니다. 지금 먹고 살기도 힘든데, 내 자식 하나 먹여 살릴만한 처지가 못되어 자식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고 가슴이 아파 죽겠는데, 하나님은 잘 알지도 못하는 엉뚱한 사람을 내 앞에 보내어 그 사람을 도와주라고 하십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이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반면에,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에만 전적으로 순종하기 위하여 지금 굶어죽기 직전에 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다 바치라고 하면서 그의 믿음을 테스트하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만약에 그렇게 했다가, 그 사람과 원수가 되거나 그 사람에게 욕을 먹지 않으면 다행일텐데 말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까?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정말 쉽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매 분초마다 선택하며 살도록 되어있습니다. 예전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라는 광고가 있었지만, 우리의 선택은 영원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결단해야 합니다. 무엇을 결단해야 할 지는 여러분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아실 겁니다. 각자 매 순간 결단해야 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오늘 집을 나가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옳은 선택을 하고 결단을 하여 경제가 어려운 이 시점에서 사르밧 과부처럼 통의 가루가 없어지지 않는 복을 받고, 잃었던 아들 즉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을 다시 찾는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정말 어려웠을 때, 절망과 좌절감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것만 같던 그 때에 저에게 누군가를 붙여주셔서 그를 통해 저를 구원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그 사람이 없었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사람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귀한 깨달음을 주신 주님, 정말 고맙습니다.

주님은 항상 저를 사랑하셔서 저를 좋은 곳으로 인도해주려고 하시지만, 저는 가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주님의 손을 뿌리치고 마귀의 손을 잡고 걸어갔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을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

현재 저에게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것임을 지식으로는 알면서도 실제의 삶 속에서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제 것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저의 짧은 생각으로, 제한된 지혜로 한계를 그어놓고 믿었습니다. 주님은 무한하신 분이신데, 제가 제한된 사람이다보니 저처럼 하나님을 제가 만든 울타리 안에 가두어놓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이 얼마나 무식하고 무지한 신앙생활이었는지요!

저의 연약하고 어리석음을 저 자신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저를 사랑하시며 저를 인도하시고, 제가 옳은 길을 걸어가도록 항상 주위에 좋은 신앙의 형제 자매를 붙여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인생길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면서, 그것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순간을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고난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연단받는 것은 두렵기도 합니다. 그 동안의 삶이 너무나 고단하고 지쳤기에 또 믿음의 도약을 위해 어떤 시련이 온다는 것은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함께하신다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오른 손이 저를 붙잡아 주시고, 주님의 불꽃같은 눈이 저를 지켜주시며, 주님의 강한 팔이 저를 안아 주실 것이므로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 이젠 좀 쉬고 싶습니다. 이젠 좀 평화를 누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 욕심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주께서 잘 아실 줄 압니다.

오늘도 주님의 품 안에서 평안을 누리기를 소망하오니 오늘도 저와 함께 동행하시며 저를 주님의 오른 팔로 꼭 붙잡아 주셔서 악한 마귀가 결코 저를 건드리지도 못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