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본받으라!(고린도전서 4:6-16)

작성자정수국|작성시간13.04.30|조회수319 목록 댓글 0

오늘의 말씀: 나를 본받으라!

 

 

고린도전서 4:6-16

 

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

8.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노릇 하기를 원하노라

9.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사도 바울은 그 당시에 서로 좋아하는 목회자를 따라 당을 짓는 것을 경계하며 본문 앞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4-7)

 

초대교회 시대의 성도들은 바울과 아볼로와 베드로 등 자기들이 선호하는 목회자를 더 높이며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하나님의 도구일 뿐, 하나님이 아닙니다. 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취급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 말은 그들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너무 높게 평가하여 마치 하나님처럼 섬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정말 말씀도 훌륭하고 인품도 좋고..." "그런데 어느 목사님은 말씀을 못하면 인격이라도 좋아야 할 텐데..." 뭐 이런 식으로 교인들은 목회자를 평가하며 자기 입맛에 맞는 목회자를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기가 좋아하는 목회자만 높이고 자랑하면서 당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자기 생각에 좋으면 좋은 목회자이고, 자기 생각과 다르면 좋지 않은 목회자라고 단정 짓는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따라서 죄의 본성을 버리고 우리는 겸손해져야 합니다. 주안에서 참된 겸손은 어떤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며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물질적으로 풍부하여 많은 것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정신적으로 여유가 많다보니 마음도 자유로워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그들의 생각이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무 것도 받은 것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즉 자신의 모든 것을 자랑하며 살았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선물을 받은 것이라면 선물과 그 선물을 주신 분에 대해 자랑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가진 것을 자랑하는 것은 그것이 선물이 아니라 자기의 재능과 지식으로 모으고 벌어들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떄문입니다. 즉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은 빠지고 자기 자신들만이 남았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냐?"고 질문합니다. 그는 또 "네게 있는 것 중에 선물로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느냐?"라고 반문합니다. 세상에서 우리를 부르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결혼을 했다면, 배우자나 자녀도 내가 택하여 내가 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들입니다. 또 나에게 있는 달란트 역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거듭난 것, 구원을 받은 것 등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들입니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빛들의 아버지께서 주신 것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따라서 우리의 어떠한 것도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자랑할 것은 나를 나 되게 하신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또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라고 말씀합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이처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사도들을 하나님께서 죽이기로 작정한 자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10절부터 사도들을 왜 구경거리로 만드셨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혹독한 고난을 받으시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주의 자녀들이 구원을 받은 것처럼, 주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예수님처럼 구경거리가 되어 비천에 처하며, 미련한 자처럼 보이며, 주리며,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고, 정처 없이 다니며, 비방하는 자들에게 권면하며, 욕을 먹으면서도 욕하는 자들을 위해 축복해주며, 핍박을 참아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모든 것을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다"라고 설명합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이렇게 세상의 쓰레기처럼 취급되었던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들의 비천한 사역으로 인해 많은 이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지도자가 되려고 하면 먼저 남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만물의 쓰레기처럼 되었던 것을 설명하는 것은 그의 글을 읽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권면하기 위해서 이러한 글을 쓴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므로 말미암아 자식이 지혜를 얻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그들의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직접 전도해서 세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있던 교인들을 가르치는 자를 스승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 모르고 있는 사람을 전도해서 교인으로 만드는 일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식을 낳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많은 스승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복음 안에서 낳은 자식 즉 고통과 인내로써 낳은 자식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권위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아버지는 자녀들 앞에서 당당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안에서 낳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나를 본받으라"라고 당당하게 권면합니다. 이 말은 그의 교만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그가 자기를 본받으라고 한 것은 그의 낮아지고 만물의 쓰레기처럼 되어 핍박을 당하면서도 참고, 비방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권면하며, 욕을 먹으면서도 그들을 위해 축복해주었던 그의 모든 겸손함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교만함으로 분열 상태에 있었습니다. 다툼은 교만 때문에 생깁니다. 파가 갈라지는 것도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은 무엇입니까? 남을 나보다 낫게(better, higher, excellent)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남을 나보다 낮게(worse, lower, terrible) 여기는 상태를 말합니다. 서로 겸손해야지, 한 쪽만 겸손해도 싸움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피차 복종하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의 교만을 낮추는 방법을 예수님께서는 잘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누가 높은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아무 말 없이 종처럼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인들의 교만함을 내려놓게 하기 위해 자신이 당한 모든 고난과 비천함을 피력했습니다. 또한 사도와 선지자들의 고난과 수고로 교회가 세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아무 것도 아니며, 오직 자랑할 대상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수고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온갖 핍박과 고난을 받은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면, 편안하게 신앙생활 하면서 그들이 자랑하고 있는 자신들의 행위는 더더욱 입 밖에도 내기 부끄러울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너희가 복음 때문에 예수님이나 우리들이 당한 고난보다 더 고난을 당했다면 자랑해봐라.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너희들의 자랑은 허공을 맴돌다 사라질 안개와 같이 허무한 것이므로 겸손히 입을 다물어라"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나를 본받으라"라고 말할 수 있는 신앙생활을 해왔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동안 고린도교회 교인들처럼 편파적이 되어서 내가 싫어하는 목회자를 비방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 이외에, 하나님 이외에 나의 어떠한 것을 자랑한 것은 없는 지 살펴봅시다.

 

9절에 쓰인 "구경거리"(θέατρον 쎄아트론)라는 말 theatron에서 theatre(극장)이란 말이 파생되었습니다. 즉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삶은 극장에서 공연하는 배우로서의 삶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현재 우리의 신앙생활에 비추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공연을 한다면, 과연 그것을 자랑스럽게 공연할 수 있습니까? 우리 크리스천의 삶은 모든 이들의 빛이 되어야 하며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선한 생활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모든 이들이 바라보고 "나를 본받으라"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나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해왔던 모든 말들을 부끄러움 없이 공연할 수 있습니까? 내가 해왔던 모든 행동을 본받으라며 사람들 앞에서 재현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각자 하나님으로부터 배역을 받아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책임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까?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감독이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배역을 주시며 하라고 하신 그 역할을 NG를 내지 않고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연기를 잘 못하면 무대에서 쫓겨납니다. 다시는 무대에 세우지 않습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세상이라는 무대 한 복판에서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자기에게 주어진 배역을 해내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모든 공연을 잘 끝마친 뒤에 천국에서 모든 성도들 앞에서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시는 주님의 칭찬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를 자녀삼아주시고, 저를 불러주시고, 저를 거듭나게 하시며 저에게 은사를 주셔서 주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주신 주님, 이 모든 것을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공급받게 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죄인인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고난을 받으신 주님, 그 주님의 공로는 뒤로 하고 때로는 제가 잘나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생각하고, 때로는 제가 잘나서 직분을 맡아서 일을 하는 줄로 착각하며 살 때가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무언가 잘 하고 있을 때에도 그것이 제가 지식과 경험과 재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 삶 속에서 저를 자랑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제가 좋아하는 목회자를 하나님처럼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을 존경하며 알아주어야 하지만, 그들도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그들이 실수할 때에도 그들을 욕하거나 비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엇이든 다른 이를 나보다 낮게 여기는 마음이 교만이며, 다툼은 교만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제 생활 속에서 자주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는 제가 교만해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교만한 마음인데, 저는 주께서 미워하시는 일을 골라서 하면서도 제 기도가 응답되기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모든 이들이 보기를 원하는 극장의 무대 위에서 제 삶을 재현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합니다. 그 동안 입으로는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살아왔지만, 막상 제 삶을 사람들에게 모두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감추고 싶은 것들 투성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본받으라"라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무대 위에서 연기를 마치고 난 뒤에 "이러한 나를 본받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 본받으라"라고 말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뿐입니다.

그런데 사실 저의 모든 행위가 하늘나라의 행위록에 다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식으로만 알 뿐, 정말로 그 행위를 통해 심판 날에 그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저에게 깨닫게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진정으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저에게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잠시라도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저를 주의 오른 손으로 꼭 붙잡아 주옵소서.

오늘부터의 삶은 모든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그런 삶이되기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제 속에 온전히 거하시고, 저 역시 주님 안에 거하는 가운데 모든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고 온유하신 주님을 본받아 귀한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제 열매를 보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도전을 받고 주님께 돌아오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일들이 천국에 갈 때까지 계속해서 일어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의 삶도 감독이신 주님의 연출에 맞추어 제 배역을 하나도 NG내지 않고 잘 감당하여서 모든 이들에게 기립박수를 받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으로부터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온전히 제 삶 가운데에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주께서만 영광 받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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