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우리의 문화는 물질추구는 타락에 근원이라 생각하였다.
청렴결백한것이 도덕적이고 옳바른 삶이라고 권장하는 분위기 였다.
게다가 한국기독교에서는 더욱더 물질을 추구하면 안될것 같은 분위기가 불문률처럼 퍼져있었다.
그래서 돈에대해 강조를 하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그런데 같은 성경을 보고 있는 유대인들을 보면 그들은 금융과 물질에 대해 세계최고의 기술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나의 물질관에 첫 물음표있다.
성경에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가 나온다.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3명의 종에게 5,2,1달란트를 각각 맡기게된다.
5,2달란트를 받은 종은 두배로 키워놓았고, 1달란트 받은 종은 땅에 묻어두고 주인이 돌아오자 꺼내서 돌려준다.
주인의 평가는 5,2달란트를 받은 종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며 상을 내리고, 1달란트 받은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평가를 하며, 벌을준다.
이비유를 보며 처음에 1달란트를 받은 종이 도대체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라고 의문이 들었다.
돈을 떼어먹은것도 아니고, 손해를 본것도 아니다. 그냥 본전을 남겨 돌려준것일 뿐인데 악평을 받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1달란트를 받은 사람처럼 반응을 할것이다. 남에돈으로 함부로 사용하여 잘못되었을경우
주인에 질책을 먼저 생각하며 최대한 안전한 길을 선택을 하는것, 이것이 자연스런 반응에 가깝다.
게다가 주인은 다른종에게는 더많은 달란트를 주고 나에게는 적은달란트를 맡겼다. 자신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런 주인에게 충성하고자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것이 보통 사람의 본성이다.
게다가 이들은 종이었다. 종이란 노예처럼 시키는 일만 하면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다. 책임은 주인이 질것이기때문이다.
그래서 노예근성이란, 항상 수동적인 사람들에게 붙여주는 대명사이다.
그런데 종이 종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뿐인데 잘못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인간적으로 볼때 상당히 억울해 보이는 상황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비유에서 5,2달란트 받은 종들이 칭찬을 받았다. 그것이 하나님게서 인간에게 요구하는 삶이란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뜻대로 살아가는 종이라고 볼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종처럼 살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주인의 뜻에 순종은 하지만 거기에 창의성과 도전을 가지고
주어진 달란트를 최대한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성된 자세인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두배의 결실을 맺는 희극이 될수도 있고, 모든것일 손해보는 비극이 될수 있다.
여기서 비극으로 인해 벌을받을 것을 생각하는 악한 주인을 믿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한 삶에 대해 평가하는 선한 주인을 생각할때 앞과 같은 도전과 창의성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곧 선한주인을 믿는다는것이 이 비유의 핵심이 된다.
누군가 나를 악하게 믿고 선하게 믿는다는 것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선한 주인을 믿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내용이 길어졌지만,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선한 하나님을 믿고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크리스챤에 삶이다. 그래서 나의 물질관은 청렴에서 자본주의자로 변화되었다.
내가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며 발생하는 생산물을 가지고 나와 내가족 그리고 사회를
채워나가는 삶이 크리스챤의 삶이고 자유자의 삶이다.
그리고 여기 투자라는 도구가 있다. 잘못 사용하면 투기가 되어 반사회적인 사람이 될수도 있는 시작점이지만,
잘 사용하면 많은 사람을 살리는 유용한 도구가 될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은 이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나도 이 도구를 잘사용해보고자 한다.
그래서 공부하고 느낀 것들을 이렇게 글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