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불화대전 메모
석청 등 돌을 가루를 내어 다소 거친 건 진한 색으로, 아주 미세한 가루는 엷은 색으로 (아교와 섞어서)
이렇게 광물성으로 한 채색은 햇빛에도 퇴색하지 않음
배채법 - 그림 뒷면에도 색을 두텁게 칠함(앞면엔 얇게 칠해도 되므로 색이 밝고 선명하게 보임)
이 배채법은 중국불화에선 찾아볼 수 없는 고려불화만의 특징
'우리나라 문화재 이미지로 소박하고 검소한 美를 말하지만,
고려불화를 보면 우아하고 화려하고 섬세한 이미지가 강함' <최광식 박물관장>
부처님 몸이나 중요한 묘사는 금가루를 사용하기도 함
주존 - 화엄종: 비로자나불/ 법상종: 미륵불, 아미타불/ 천태종: 석가여래불
비로자나불도 萬五千佛 - 자세히 봐야 보일정도 크기의 작은 부처님 그림이 엄청나게 많음 (大 平)
아미타불 두상(미간백호)에서 뻗쳐나온 광명은 왕생자를 끌어올리고 그 앞에서
관음보살은 허리를 굽혀 왕생자에게 그가 탈 금련화(金蓮花)를 내미는 모습
아미타불은 주로 푸른 연꽃에 두 발을 올리고 있음
실제 성인 키만한 아미타불내영도 압권 (높이 190cm)
법화경 변상도 - 돋보기로 봐야 보일 정도로 가는 실선 - 그저 놀라울 뿐
손바닥만한 크기의 판에 오밀조밀 그려진 매우 섬세한 그림도 있음 (확대한 사진 전시)
그림에서 부처님께 공양올리는 향로와 똑같은 모양의 실제 향로도 함께 전시하기도 함
관음보살 투명한 옷 - 사라 / 정병 - 중생의 목마름 해결
여의륜관음 - 팔 6개, 밀교의 존상
수월관음도 - 관음보살이 정면을 향한 그림은 유일하게 한 점뿐
물방울 모양의 광명 속에 그려진 관음보살 그림이 최고로 인기가 높은 것 같았음
지장보살 협시 - 범천 제석천 도명존자 무독귀왕(지물:경전상자)
업경대, 업칭대(죄의 무게를 달아봄)
지장시왕도 하단에 개가 그려진 경우가 몇점 있었음
미륵하생경변상도(고려후기) 하단 - 땅에 비오듯 떨어진 보석들을 쓸고있는 사람들 (평화로운 세상 묘사)
일본 '문수보살도' - 얼굴모습이 일본인 느낌 분명
보살이 손에 들고 있는 화염보주(불치?), 원형보주, 여의
독고저 - 마치 검과 비슷한 모양
이 수행자는 목숨을 마치려고 할 때에 아미타불께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비롯하여 모든 권속들과 함께 금련화를 가지고
오백의 화신불을 나투시어 이 사람을 맞이하러 오시느니라
'진리의 아들이여 그대는 이제 청정하게 위없는 도를 구하는 마음을 내었기에
내가 그대를 맞이하러 왔노라' <관무량수경>
하루만이라도 부처의 가르침을 행한 자는
마땅히 부처를 쫓아 극락의 연꽃에 태어나느니라
'수행이 적은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고 말하지 말라
만 개의 횃불도 지푸라기 불에서 나오는 것이니 <관경16변상경 게송>
비로자나불도 / 고려후기 162*88.2cm (일본 후도인 소장)
아주 작은 화불(化佛)이 수많이 그려져 있음 - 다양한 표정이 생생하게 묘사
아미타여래도 / 고려후기 190*87.2 (일본 교토 쇼보지正法寺 소장. 일본 중요문화재)
서구방의 수월관음도 / 고려 1323년 165.5*101.5 (일본 개인 소장)
수월관음도 / 고려후기 110*57.7cm (일본 단잔진자 소장)
혜허(彗虛)스님 물방울 수월관음도 / 고려후기 142*61.5 (일본 센소지 소장)
미륵하생경 변상도 / 고려후기 1350년경 171.8*92.1 (일본 지온인 소장)
지장보살 삼존도 / 고려불화 14세기 98.4*50.1 (개인 소장)
연꽃 모양 향로 / 고려 1077년 높이 14.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본 경신사 소장 백의수월관음도(고려 1310년 419.5*254.2) 부분 - 투명한 옷 사라에 금색으로 봉황과 구름문양
일본 대덕사 소장 수월관음도 (고려후기 1323년 227.9*125.8cm) 부분 - 용왕과 그 권속들 (의상대사의 낙산사 설화)
서울 호림박물관 소장 수월관음도 부분 - 선재동자
▒ 사진자료 인용 http://tayler.tistory.com/679 ▒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 조선일보 2010년 11월 02일]
고려불화 명품 중의 명품을 갖고 있는 도쿄 의 센소지(淺草寺)를 찾아갔다. 이곳의 '수월관음도'는 일본 내에서도 좀처럼 공개하지 않아 한국인으로 실물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지 스님이 내어 온 수월관음도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세 번 절한 다음 무릎을 꿇고 합장했다. 물방울 광배(光背) 안에 서 있는 관음보살 앞에 찬탄이 절로 나왔다. 관음보살이 딛고 선 연화좌는 물속에서 솟아나 있었고 물결무늬는 먹선으로 잔잔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결을 보여주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처럼 힘 있고 세밀하고 유려한 선, 고구려를 이은 고려가 내게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주지 스님은 "불교 신자냐"며 묻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내가 이렇게 경배할 정도라면 그림을 보내줘도 소중하게 다룰 것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하지만 절에서는 "한국에서 문화재 환수 분위기가 있어 잘못하면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불안해했다. 일본 정부의 보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도쿄국립박물관이 보증을 서줘 700년 만에 현해탄을 건너오게 됐다. 보물 중의 보물 수월관음도가 고향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소장처들은 한 번 빌려주면 다시 돌려받지 못할까봐 불안한 생각 때문에 대여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인 정서 가운데, 고향을 떠난 사람은 한 번은 꼭 고향에 다녀와야 한다는 정서가 있는데, 그래서 고려불화도 한 번은 한국에 갔다와야 하는데 이번 기회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대여해준 곳이 많았다고 한다. /btn)
(※ 혜허스님의 메시지, '물방울 관음도' http://cafe.daum.net/santam/IQ3i/298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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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향원 작성시간 11.08.12 아주 소중한 자료들이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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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햇빛엽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8.12 감사합니다. 정말 큰 감동이었습니다. 그때 그 여운이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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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소금인형 작성시간 11.11.22 불교는 아주 수수한데 불화는 왜 화려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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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햇빛엽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1.22 중생 수준에 맞춰서.. 중생 제도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관세음보살님 장신구가 화려한 것도, 보살님이 이쁘게 치장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환희심이 나게 하여 한 명이라도 더 불법으로 인도하려는 방편이듯이요.. -
답댓글 작성자소금인형 작성시간 11.11.22 그렇군요....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