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자
우주는 인과의 법칙에 지배되는지, 아니면 우주는
그 법칙의 밖에서 작용하는지에 관한 질문이 몇 번에 걸쳐 제기되었습니다.
마하라지
인과란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시간 속에서의 연속을 뜻하는데
그 공간은 물리적이거나 정신적인 것입니다.
시간, 공간, 인과는 마음과 함께 일어나고 가라앉는 정신적인 범주들입니다.
소위 인과 법칙이라는 것도 스스로 모순됩니다.
존재하는 어떤 사물도 특정한 원인을 갖지 않습니다.
전 우주가 가장 작은 사물의 존재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우주가 지금 이대로 존재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지금 이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만물의 근원이자 터전인 것이 만물의 유일한 원인인데,
인과성을 우주의 법칙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릇된 것입니다.
우주는 그 안에 존재하는 것에 의해 구속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잠재성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주는, 근본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자유로운 어떤 원리의 한 나툼 혹은 표현입니다.
질문자
궁극적으로 한 사물이 다른 사물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릇된 것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우리가 늘 어떤 결과를 염두에 두고 행위를 시작합니다.
마하라지
그렇지요. 무지 때문에 그렇게 진행되는 행위가 많습니다.
전 우주가 그 일을 일어나게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기력을 덜 쓰고도 더 많은 일을 성취할 것입니다.
질문자
모든 사물이 각기 무수한 원인들의 총합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우리가 어떤 성취를 향한 목적성 있는 행위를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마하라지
성취하려는 그 충동 자체도 전체 우주의 한 표현입니다.
그것은 단지 어떤 특정한 시점에 그 잠재적 에너지가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대가 인과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간이라는 환상 때문입니다.
과거와 미래를 무시간의 '지금' 안에 있는 하나의 공통된 유형의 부분들로 볼 수 있으면,
원인-결과의 관념은 타당성을 잃고 창조적 자유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아이 앰 댓(I AM THAT/마하라지) 31-32쪽 중에서]
※ 아니, 인과(因果)를 부정하다니? 불교의 가르침에 위배된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도 인과를 부정(?)하는 경전이 있습니다. 바로 '반야심경'입니다.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명도 없고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내지 늙고 죽음도 없고 그 다함 또한 없나니..
이 말이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무명에서부터 노사까지 <12연기>가 무(無)이다.. 이런 뜻입니다.
연기(緣起)가 곧 인과(因果)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세상의 참모습, 공(空)의 도리, 궁극의 관점에서는
인과도 없다.. 인과를 초월한 경지이다.. 이런 뜻이니만큼, 마하라지도
이러한 궁극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부분을 보면 있지만, 전체를 보면 없다..
현상을 보면 있지만, 근원을 보면 없다..
☞ 불교 가르침의 <3차원> 인생의 하수, 고수, 초고수 http://cafe.daum.net/santam/IQ3i/1068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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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햇빛엽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1.20 그렇죠.. 세상이 복잡한 게 아니라 머리통이 복잡하다는.. 법륜스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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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원각 작성시간 12.01.20 12연기를 이해하면 법 공부에 더 심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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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술래 작성시간 12.01.21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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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소요유 작성시간 12.01.26 무시간의 지금...창조적 자유,,,,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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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내가 작성시간 12.01.26 감사합니다,,좀 천천히 깊이 들여다 보겠습니다,,인과의 일반성과 특수성 그리고 보편성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인가 잘 모르지만,,질문자의 입장에서 살펴 보겠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