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교수 '현대철학자 노자' / ebs 인문학특강]
▒ 10강
'五色令人目盲' (다섯 가지로 구분된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도덕경>
이 세상에는 무한대 종류의 색깔이 있는데 그 중에서 5가지만 골라내어 관계하게 한다면 봉사와 다름없다
기준이 생기면 이런 일이 생긴다
'五音令人耳聾' (다섯 가지로 구분된 소리는 사람의 귀를 먹게 한다)
궁상각치우 다섯 가지 소리만 가지고 무한대 종류의 소리와 관계를 하려고 한다면
귀가 안 들리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냐?
'五味令人口爽(상)' (다섯 가지로 구분된 맛은 사람의 입맛을 잃게 한다)
무한대로 많은 맛 중에 5가지만 정하고, 그 5가지로만 맛을 느껴라 하면
입맛이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입맛을 잃은 것이다..
'말을 달리며 즐기는 사냥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한다' (發狂하게 한다) <도덕경>
사냥은 기본적으로 목표물을 쫓는 것인데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살았나..
바람직한 일을 하며 살았나, 바라는 일을 하며 살았나?
해야 하는 게 중요했나, 하고 싶은 게 중요했나?
좋은 것이 중요했나, 좋아하는 것이 중요했나?
좋은 것이 따로 있는데 좋은 것을 해야 하는 이 사람.. 발광하죠? ㅎㅎ
하고 싶은 게 따로 있는데 해야 하는 것을 하는 이 사람.. 미치는 거예요.
자기가 바라는 것과 바람직한 것 사이에 생기는 엇박자 때문에..
인생은 고달프다.. 삶에 재미가 없다..
노자 생각은.. 그 구분을 만들어내는 개념이라는 것은 실재에 서 있는 게 아닌데
그것을 만들어 놓고 왜 개별적 자아들이 그렇게 주눅이 들고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 그러지 말자..
바람직한 것을 모두 똑같이 수행하는 사회보다
각자가 바라는 것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 더 강하다
'얻기 어려운 재화가 사람의 행동을 어지럽힌다' (헷갈린다)
원래부터 얻기 어려운 물건이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 기준이 그렇게 구분짓고 만든 것
이 강의실에서 주먹만한 다이아몬드와 주먹만한 고구마가 있다면 어느 것을 가지겠는가? (다이아몬드요)
그런데 어느 무인도에 표류해서 굶어죽기 직전이라면? (고구마요 ㅎㅎ)
그 가치는 본래 그렇게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조건에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것은 귀하고 어떤 것은 귀하지 않다고 기준이 분명하게 정해진 사회에서
인간의 행동은 항상 헷갈린다..
'그래서 성인은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않는다'
본다=구분한다 (어떤 것을 보는 것 = 다른 것은 안 본다)
'성인은 구분을 분명히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대신 구분이 해소되는 단계로 진입한다'
'대장부는 두터움(내면의 중후함)에 처하지 가벼운(얄팍한) 곳에 거하지 않는다'
개념, 이론, 진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항상 경박하고 과감하다
대립 면의 경계를 품은 사람들은 중후하다
'참된 모습(지금 여기, 바탕)에 처하지 꾸며진 곳(개념의 세계)에 거하지 않는다'
변화하지 않는 비실재의 세계를 만들어 놓고 변화하는 이 실재의 세계를 통제하려 말라
변화 속에서, 구체적인 실상 속에서 이념, 지식, 개념이 관계되어야 한다
노자는 '우리'보다 '나'를 중시한다
이념을 벗어나서, 이념이 사라진, 나만의 상태로 세계를 봐야 한다
- 그렇게 하는 활동을 노자는 무위(無爲)라고 하였다
- 기준과 이념을 가지고 하는 행동 - 有爲的 행동
▶無爲는 아무것도 안 하는 행동이 아니라
이미 선제된 이념이나 가치관을 버리고 오직 자기 자발성으로 활동하는 일
보편적 이념이나 집단적 가치를 벗어난 자아의 활동성
'爲學日益 爲道日損'
學 - 어떤 모델을 모방하는 것. 유교는 기본적으로 쌓아가는 것 (성인의 말씀을)
道 - 날마다 덜어내는 것 (이념, 지식, 개념을 약화시키고 그 자리에 내가 차고 앉는다)
남이 만들어 놓은 것, 이미 정해진 것이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주도권을 약화시켜야 한다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무위의 경지에 이르는구나)
기존에 이미 있는 프레임(가치관, 신념 등)으로 세계와 관계하지 않는다
자기가 주인이 돼서 신념과 이념 없이 직접 세계와 관계한다
- 멋대로 해도 괜찮을 정도의 내공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
노자는 소극적 철학? 반문명적 철학? 아니다
노자는 천하를 장악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無爲而無不爲' (무위를 행하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이다)
- 결국 노자는 '무불위'에 방점이 이다
- 노자가 무위를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무불위의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 노자는 절대로 초월적 철학자가 아니라 철저하게 세상을 품은 사람이다
'取天下常以無事' (천하를 차지하려면 항상 무위적으로 일 처리를 해야 한다)
특정한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개방성과 자율성 안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마음껏 활동하게 해줌으로써 천하를 차지한다
'天長地久' (천지 자연은 장구하다) <도덕경 7장>
'천지가 장구할 수 있는 까닭은 그 자신을 살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不自生 부자생)
'後其身而身先' (성인은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본받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앞서게 된다)
'外其身而身存' (그 자신을 도외시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보존된다)
자기가 좋은 일을 해놓고 그 공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그것은 자기가 한 그 공을 계속.. 빛나게 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한 친구가 갑자기 사업에 실패를 했을 때..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운 형편을 보고 아무도 모르게 500만원을 줬다. 생활비에 보태쓰라고..
그 500만을 주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참으로 뿌듯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내가 500만원을 준 그 친구가
어디 가서도 내가 500만원 도와줬다는 얘기를 안 해주는 거야..
처음에 줄 때는 그런 생각을 안 했지만 그래도 한두 명한테는 얘기할 줄 알았는데.. 안 하고
그리고 자기한테도 아무 말도 안 해.
그렇게 한 두세 달이 지났는데 친구들끼리 모여 있는 자리에서 그 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거기 모인 친구들이 아무도 그 이야기를 안 해.
그러니까 그 친구가 말을 안 한 게 분명해.
그러면 도와준 이 친구는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자기 내공의 호흡이 바닥이 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런 말은 안 해야 하는데.." 하면서 자기 입으로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나 '안 해야 되는데' 하는 이야기는 평생 안 해야 한다.
"안 해야 하는데.. 내가 꼭 고맙다는 말을 듣자는 게 아니라.." 꼭 이 말도 붙인다. ㅎㅎ
"걔가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래~"
교묘하게.. 마치 그 친구를 걱정하는 것처럼..
그 친구 인격에 문제가 있다고 소문이 나는 것을 걱정해주는 것처럼..
그러나 내심은 무엇인가? 자기가 빛이 나고 싶은 거다.
그래서 자기 입으로 여러 가지 미사려구를 붙인다.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부터 시작해서
"꼭 인사를 받자는 게 아니라.. 걔가 그렇게 살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런데 세상에 이런 원칙이 있다.
어떤 사람 아이큐가 130이면 자기를 보는 데는 아이큐가 한 13정도 되고..
그런데 남을 보는 데는 아이큐가 한 1억 3천 정도 된다. ㅎㅎ
다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친구가 하루 이틀만 더 기다렸으면 정말 빛이 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자기 공을 자기가 이야기함으로써 자기 공이 사라져버렸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한다.
'자기라고 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자기는 물러나야 한다'
'자기가 물러날 때 너는 앞서게 된다'
리더는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듣는 사람인데
아이큐가 1억 3천인 사람들에 의해서 그의 내공이 발견되는 것이다.
'잘 살게 해주고도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하지 않는다' (生而不有 도덕경 2장)
'공이 이루어져도 그 이룬 공 위에 자리잡지 않는다' (功成而不居)
우리 행동은 항상 변화하는 세계와 함께해야 한다
세상을 봐야 하는 대로 보지 말자. 보고 싶은 대로 보지 마라
세계가 보여지는 대로 봐라.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고 반응하는 것 = 무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