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현스님의 '자신감'(16,17) /bbs]
▶부처님 출가, 열반일 - 인도에서도 지역별로 다르기도 했다
현장스님은 각 지역별로 다른 날자를 정리, 기록해 놓았다 (꼼꼼한 성격)
초기에 부처님생애에 대해 일목요연 기록 안 되어 있고, 인도 지역마다 달력 다른 경우도.. 혼선
▶해탈과 열반은 다르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보이는 건 똑같지만 생각과 관점만 바뀌는 것
문제해결은 어떤 단계적해결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관점에서 자유를 얻는 것 = 열반
해탈 = 어떤 장애,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다, 감옥으로부터 벗어났다
새장에 갇힌 새가 다이어트해서 창살을 비집고 나와.. 빠삐용새가 돼서 탈출해도
역시 세상이라는 '커다란 새장'에 갇혀 있는 것 (새장의 범위만 달라져 있을 뿐)
병원에서 치료받고 "나, 죽을 뻔 했어" 하지만.. 생명이 조금 연장됐을 뿐, 어차피 죽음
이런 식으로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 안 돼 (순환구조일 뿐 해결 아냐)
그래서.. 불을 불어서 껐을 때, 그 불이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고
그 존재 자체로서 해결되는 것처럼,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이 '열반'
--> 해탈과 열반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개념
'무엇으로부터 벗어난다, 속박으로부터 벗어난다' 이해하기 쉬워
그러나 열반은.. 풀리는 개념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서의 자유'라는 개념 (=깨달음)
(스님들께서 돌아가실 때는 열반이라는 용어보다는 '입적, 원적' / 부처님한테만 '열반')
열반: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개념 (공기처럼)(변화,증감 없어)
번뇌를 말려버리는 방법(붓다), 번뇌를 타고 가는 방법(번뇌는 있으나 영향받지 않음, 선종)
▶천(川)<수(水)<강(江)(수량일정),하(河)(수량변동) .. 조선시대만 해도 '한강'보다 '한수'라고 많이 사용
인도사람들은 갠지스강이라고 안 해.. 강가강(ganges, 恒河) (우리가 스스로를 가리켜 '코리아'라고 안 하는 것처럼)
강북에선 차(茶), 강남에선 다(茶)라고 함 (남방, 광동지역 발음: 탸.. 이걸 영국인들이 듣고 티(tea)라고 한 것
(중국 강북 강남은 회수(양자강)으로 갈림)
▶조주스님께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 의심을 가지라는 뜻으로 이 일화를 많이 인용하는데.. 뒷부분도 있다)
"왜 없습니까?" "업식에 가려서!" (안 좋은 것에 덮여 있어서 작용을 못 한다는 의미)
이것은 마치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대전제)
'저 사람은 대통령이 못 된다' '왜요?' '상태를 봐라 ㅎㅎ'
될 수 있다 vs 현재적으로 될 수 없다
화두를 만들면서 뒷 부분을 잘라낸 것이다
왜? 화두는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님 (의심을 통한 정신집중)
불성? 부처가 될 가능성 - 나무로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씨앗처럼
(모든 씨앗이 나무가 되는 건 아님 - 콩으로 콩밥 해 먹으면 콩으로 자랄 수 없어)
여래의 가능성=여래장(인도) --> 불성(중국사람들은 불확실성 싫어해)
'불성 있어!' (씨앗 속에 확실한 나무) 그러나 증명할 방법은 없어
모든 종교는 귀납 아닌 연역논리를 사용.. 증명 불가
'신이 세상만물 창조' '누구나 불성 있다' -- 믿음의 영역
불성.. 붓다의 항상성이 나에게 존재.. 가려져 있어도 지금 나는 곧 붓다라는 의미..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다'고 말하지만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구름은 태양을 가릴 수 없다
-> 미래에 내가 붓다가 될 수 있다고 하면, 이것은 절대성이기 때문에, 지금도 나는 부처
이것을 자각하는 게 '돈오' - 불성을 자각하는 순간 나는 곧 붓다
깨달음의 시각에서 볼 것인가? vs 중생의 시각에서 볼 것인가?의 차이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라, 내가 바뀌어 세상을 새롭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