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표 교수 '붓다의 철학'(2-12) /bbs]
사성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괴로움'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한다
4고8고?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괴로움의 핵심'을 알아야 한다
팔리어 경전에는 4고8고.. 그런 말 없고, 그건 후대에 나온 말이고
"오취온이 괴로움"이라고 나와 있다 --- 고성제의 핵심
오취온: 우리가 자아로 취하고 있는 다섯 가지, 오온
불교에서 말하는 '괴로움'은 '나'라는 망상 (망상 속에 있으니까 괴로운 것)
(부처님은, '나'는 12처에서 연기한 망상이라고 하셨다)
따라서 괴로움의 실체는 '나'
'나가 있는 곳'에는 괴로움이 있다
'나'라는 생각(고집,대립적인 입장) 없이, 연기하는 관계로 접근하면
가정생활도 달라지고 모든 상황이 달라진다 (화합)
그렇게 내가 변하면 상대도 변한다 -- 연기
오온을 나라고 취하고 있는 순간, 그 지점으로부터 근본적으로 괴로움이 나타난다
그래서 불교는 오취온을 멸하는 가르침
오취온이 괴로움이며, 모든 것은 연기한다는 것을 모르고 무지(무명)로 살아갈 때
"생로병사 우비뇌고 큰 괴로움의 덩어리가 쌓인다"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는데,
---- 그 '큰 괴로움 덩어리'가 오취온이다
12연기는 다른 말로 하면, 중생들이 어떻게 오취온을 쌓아가고 있는가?
오취온을 쌓아가면서 어떻게 끊임없이 '자아'라는 망상을 키워가고 있는가?
그리고 자아의 망상이 카면 커갈수록 나와 세계는 얼마나 대립적으로 보이고
얼마나 서로 대립적으로 충돌하고 있는가?.. 이것을 보여주는 게 연기법
오온이 무명에 있을 때, 끊임없이 이음이 상속하고, 상속한 음들이 모여 쌓이고 있다
상속만 하면 괜찮은데,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것을 모은다
- 우리는, 과거도 현재에 계속 살아 움직인다
과거 고통, 생각하면 또 분노.. 그러나 과거 그 '나'는 지금 없는데..
그리고 그때 나를 괴롭혔던 사람도 지금은 달라져 있는데..
그때 충분히 괴로워했는데 왜 지금까지 붙들고 또 괴로워해야 하나?
무명 때문에 사라지지 않은 과거에 대한 집착
12연기는 오온의 구조로 되어 있다
무명은 오온의 상(想)에 해당 (무명: 연기, 공, 무아를 모름)
8정도는 12연기의 환멸문
무명을 멸하려면 정견이 생겨야
정견으로 3업(정사,정어,정업)을 하면 행이 멸한다 - 식과 명색 멸
분별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 정명(바른 삶)
정정진 =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한다
정념 = 4념처 (육입,촉,수,애,취,유: 4념처 수행의 대상)
보고,듣고,냄새 맡는.. 6입을 통찰하는 게 신념처
보고,듣고,냄새 맡으면서 통찰하지 않는 삶을 살았지만 이제부턴 통찰
볼 때 보고있는 놈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
촉,수에서 수념처 / 애,취는 심념처 /유를 볼 때 법념처를 관하게 됨
이렇게 신수심법을 관하면 정정.. 바른 선정, 바른 통찰 속에서 지혜가 일어나고, 생노사 소멸
8정도 수행이 제대로 되려면 연기에 대한 통찰이 필수적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이르는 유일한 길,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은 8정도"라고 하심
어떤 형태의 수행을 하든 그 내용은 8정도여야 한다
가장 가치있는 삶은 8정도를 실천하고, 자기 삶으로 일체화되는 것
이렇게 8정도가 자기 삶으로 완성되는 것을 오분법신(계,정.혜,해탈,해탈지견)
(정견=혜, 정사 정어 정업 정명=계, 정진 정정=정)
8정도 수행하면 계신,정신,혜신,해탈신,해탈지견신(해탈했음을 분명히 인식)을 갖춘다
오분법신의 삶 = 열반 / 오온을 자아라고 살아가는 삶 = 생사
※ 오음성고 盛(성) - 중국어 발음 '썅':번성하다,왕성하다 / '창~':담다,수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