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니까야 중에서>
"태어난 중생을 유지시키고 , 태어나려고 하는 중생을 태어나도록 돕는 네 가지 음식이 있다.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첫째는 거칠거나 부드러운 단식(段食)이고, 둘째는 촉식(觸食)이며
세째는 의사식(意思食)이고, 넷째는 식식(識食)이다.
비구들이여, 만약 단식 촉식 의사식 식식에 탐욕이 있고 좋아하는 마음이 있고 갈애가 있으면
그곳에 식이 안주하여 성장한다. 식이 안주하여 성장할 때 명색이 출현한다.
명색이 출현할 때 행들이 증가한다. 행들이 증가할 때 미래의 새로운 존재가 생긴다.
미래의 새로운 존재가 생길 때 미래의 생노사(生老死)가 있다.
비구들이여, 미래의 생노사가 있을 때 슬픔이 있고 근심이 있고 고뇌가 있다고 나는 이야기한다."
▶사식(四食)의 종류
중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계속해서 거듭하여 태어나게 하는 것 - 네 가지 음식
<1>거칠거나 부드러운 단식(段食 또는 團食) - 덩어리 단 (인도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음식을 뭉쳐서 먹어)
<2>촉식(觸食) - 경험 (18계를 연하여 촉이 있다..)
<3>의사식(意思食) - 의도 (무엇을 하려는..)
<4>식식(識食) - 분별하는 마음 (이건 책이다, 펜이다, 좋다 나쁘다..)
▶음식의 의미
사람들은 "나무가 영양분을 흡수하고 광합성 작용을 해서 성장한다"고 생각하고
나도 "내가 음식을 먹고 살아간다" 라고들 하지만, 부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
물이 주어지고 양분이 주어지면 자라나도록 되어있는 것이 나무
물, 영양분, 햇빛으로 자라나는 것을 우리는 '나무'라고 부른다
'나무'가 있어서 먹는 게 아니라, 여러가지 조건이 주어지니까 '나무'라고 부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이것이 '음식'이라는 말의 뜻이다
▶오온의 음식
중생도.. 오온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유지시키는 것이 있다 = 사식
우리는 일단 밥을 먹어야 해, 그래야 몸이 유지돼 - 단식
그리고 여러가지 지각활동을 통해서 촉을 활성화시켜서 삶을 유지
예) 눈이 아까워. 아끼려고 1년 동안 안 쓰면 더 잘 보일까? 퇴화해서 안 보인다
귀도 막아놓고 몇 달만 안 들어도 소리를 못 듣게 된다
--> '먹여 주니까 성장한다'
근육도 운동을 하니까 만들어지는 것이지, 근육이 있어서 운동하는 게 아니다
또 무언가 의도를 하고 행동하면 그것이 음식이 되고..
그렇게 오온을 계속 키워나간다
<쌍윳다니까야> "비구들이여, 만약 단식, 촉식, 의사식, 식식에 탐욕이 있고
좋아하는 마음이 있고, 갈애가 있으면 그곳에 식이 안주하여 성장한다." (識住增長)
오온 중에 식(識 분별하는 마음)은 (안)과 (색)을 연하여 (안식)이 발생하지만
무언가를 대상으로 분별하는 작용도 있다
(의식은 반드시 무엇을 상대로 해서 일어난다 = "식이 住한다")
우리 몸이 음식을 먹으면서 커가듯, 운동을 하면 근육이 커가듯
우리 마음도 대상을 향해 활동하면서 커지는 것
색(色)은 물질로서의 몸이 아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 몸의 활동 (지각활동)
불교공부 하면서 물질과 정신으로 나눠서 교리를 이해하면 안 돼
부처님은 '물질, 정신' 이런 얘기 하신 적이 없다, 다만
우리가 '몸'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통찰하라고 하셨지
"이건 몸이다, 이건 정신이다" 분별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우리는 눈, 귀, 코.. 이런 기관들이 작동하니까 '몸'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 = 이것이 색(色)
보면 촉을 통해서 느끼게 되고(受), 생각하고(想), 행동하고(行), 의식하는(識) 것이 오온이며,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의식이 성장하고, 그 새로운 의식으로 새롭게 보고 느끼게 돼.
그래서 매일 같은 것을 보는 거 같아도 의식의 성장에 따라서 보는 내용들이 달라지게 된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보던 것과 지금은 다르다. 왜? 식이 성장해서.. 식이 머물면서 커가기 때문인데
그렇게 식이 머물면서 커가게 해주는 자양분이 네 가지 음식
나의 의식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 관심있는 것들로 만들어졌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개성이 아니다
▶취하면 나가 된다 (오취온)
사마귀가 싫으면 떼내어 버리려 하지만 (내 몸 아냐)
사마귀가 기분좋고 하면 절대 안 버릴 것이다 '귀한 내 몸'
머리카락도 맘에 안 들면 짤라내지만 맘에 들면 '귀한 내 몸'
감정도 내가 좋은 것을 취해서 자기 감정을 만들고 있다
음식도 마음에 안 드는 건 안 먹는다 (맛집만 찾아다녀)
갈애가 있으면 취하게 되고, 취하면 '나'가 된다 == "取를 연하여 有가 있다"
생각도 마찬가지.. 자본주의(사회주의)를 취하면 내가 자본주의자(사회주의자)로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취한 것이 진리요, 옳다고 생각.. 아니다, 다만 자기가 취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근본을 알면 갈등이 없다 == 이것이 중도(中道)다 (적당한 중간 타협이 중도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진리가 보인다 (무명을 연하여 계속해서, 음식을 먹듯 오온을 취하려는 데서 벗어나니까)
*취(取): 우빠다나(upadana 연료) -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
불이 유지되려면 연료가 계속 공급되어야 하듯, 우리는 음식을 통하여 계속 존재.. 네 가지 음식
▶괴로움의 실체
오온은 이렇게 취해서 된 것이다 == 그래서 오취온(五取蘊)
이 오취온을 불교에서는 괴로움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괴로움의 실체)
왜 괴로운가? 내 마음에 안 들어서.. 여기서 '나'라는 생각(오온)을 빼 버리면? 기분나쁠 일 없어
그래서 불교공부는 항상 '나'를 버리고, '나'를 내려놓는 연습
'나'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세상을 보면 다르게 보이지만
'나'를 개입시키는 순간 문제는 복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