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는 어려서부터 ‘멍때리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아무 판단 없이 특정 사물을 바라보며 머리를 비우곤 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다 명상이었다.
매일 공 하나에 승부가 엇갈리는 그라운드..
박찬호의 눈에 다른 선수들도 집중력을 높이는 저마다의 방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어떤 선수는 잔디 위 개미를 찾기도 했다. 명상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답답하면 ‘후유’ 하고 한숨을 내쉬잖아요. 그게 잠시 명상일 수도 있어요.”
절체조? “108배 먼저 하고 명상에 들어갔어요. 절체조가 몸의 전체 관절을 구부렸다 폈다 하는 것이거든요.
한 동작을 반복하면 집중력이 생기는데, 집중력은 인내력에서 나옵니다. 그때 108배를 매일 했어요.
몸의 에너지를 통해 정신적인 깨달음도 얻게 돼요. 행복함, 감사함 이런 것들….”
박찬호는 1999년 무렵 슬럼프에 빠졌을 때 다저스의 동료 베테랑 투수 케빈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신시내티로 원정 갔을 때 자기 방으로 오래요. 갔더니 노인 한 분이 계시더라고요.
케빈 브라운의 심리치료사였어요. 처음 만났을 때 30분 정도 제 얘기를 했더니,
그분이 하는 말이 너의 얘기 좀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한국 언론 얘기, 고마운 사람, 밥 사줬던 사람, 어머니 등을 얘기했는데 다 내 얘기가 아니라는 거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라고 했어요, 마운드에서 포수 미트에 정확히 공을 집어넣는 것.
타자를 못 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정확히 집어넣는 거래요.”
투수들은 포수 미트에 공을 넣는 연습을 수도 없이 하지만 게임에 나와서는 타자를 아웃시키려고 한다.
안타를 맞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긴장을 가져온다.
“타자는 내가 아니고 게임도 내가 아닙니다. 손끝에서 공이 빠져나갈 때의 느낌이 있어요, 그 느낌만이 제것이에요.
그 감각을 찾기 위해 수없이 연습하는데 정작 마운드에 올라서는 연습한 것을 안 써먹고 다른 것을 쓰는 거죠.
타자 생각, 관중 반응, 언론 반응 등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거죠.”
“은퇴 이후의 명상가가 아니고, 그 훨씬 전에 명상을 했어요. 명상가였기에 124승을 할 수 있었고,
또 명상가였기에 124승에서 스톱을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125승, 130승을 향해 달려갔을 거예요.
그건 집착이었고,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중요했다는 것을 명상을 통해 깨달았어요.
아시아 최고 선수 이런 수식어가 달갑지는 않아요.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기에.
안 없어지는 것은 거기까지 가는 과정 속의 저의 깨달음이에요.”
“언젠가 일본 선수 누군가가 125승을 하면 한국 사람들은 또 다른 수치, 실망을 느낄 수도 있어요.
그런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처음 진출해 124승 기록을 세우기까지 그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저스에서의 화려함도 있었지만 텍사스에서의 어두운 암울한 시간도 있었는데,
오히려 사람들과 진정성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은 뭘까요.
암흑 속에서 극복한 정신과 경험 이런 것들입니다.
다저스에서의 화려함은 언젠가 더 화려한 것 속에서 잊혀 가요.”
☞ 자세한 내용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