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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경 법당설명

[사찰의 美(21)] 의상대사는 공중부양으로 탑돌이를?

작성자햇빛엽서|작성시간13.10.02|조회수595 목록 댓글 0

'숨겨진 사찰의 미(美)' (동국대 교수 자현스님 /btn) 21회

 

상원사 문수동자상(↓) -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불상 중에서는 유일한 국보

 


머리스타일이 보통 불보살상하곤 다르다
동자: 머리를 따았다 (총각- 따을 총總, 뿔 각角)
수염: 근엄하게 보이려는 것
그 복장유물로 세조의 피묻은 적삼과 함께 사리도 모심

 


※우리나라에서 세 종류의 사리가 제일 중요하다
1.자장율사(590-658)가 중국 오대산에서 모셔온 사리 - 5대보궁
(양산 통도사 적멸보궁, 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 법흥사 적멸보궁, 태백산 정암사)
2.미륵사지 사리 (백제 무왕이 백제의 구심점으로 만든 사찰)
3.상원사 사리 (월정사에)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 무너뜨릴 때 중요한 유물이 실권자 세조에게 많이 들어갔을 것)

 


중국 장안 법문사 - 당나라때 황실 사찰 - 이 탑 지하에서 사리가 나옴

 


비 와서 반쪽이 난 뒤에 발굴 - 부처님 손가락 뼈사리 나옴 (아쇼카왕이 전해줬다는 전설)

 


이 사리는 굉장히 쎈 사리: 당나라 황제도 이 사리는 30년에 한 번밖에 못 보았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 중 한 명, 한유 '論佛骨表'(불교를 비판한 글)
- "이방인의 뼈인데 황제가 궁으로 모셔다 예배하는 것은 황제 권위에 문제 있다. 물에 버리거나, 불에 태워 버려라"
상소문 보고 황제는 "죽여라~" / 불자 신하들이 말려 - 지방으로 좌천시킴

 


중국식 관 모양의 사리장엄구 속에 보관한 사리(↑)

석탑: 처음엔 목탑을 모방한 형태, 그래서 뚱뚱하고 둔탁한 모양 → 점차 간단하고 늘씬하고 정형화된 모양으로 변천

그 최고 걸작품은 불국사 석가탑 (고려초기 이후 다시 퇴보함)

- 다보탑처럼 복잡한 모양으로 미(美)를 표현하기는 오히려 쉽지만

  석가탑처럼 단순 간결한 모양으로 미를 표현하기는 정말 어렵다 (고도의 세련미)

 


의상대사 출가 사찰 황복사 탑(↑) (경주 보문단지 근처)
대사는 탑돌이를 할 때 세 척(약 1미터) 정도 공중에 떠서 탑돌이를 했다고 함.

 

의상대사가 황복사에 있을 때 제자들과 탑돌이를 하였는데 매양 발자국이 허공에 떴으며,

층계를 밟고 오르지 않으므로 그 탑에는 돌층대를 만들지 않았으며,
제자들도 섬돌 위를 석자나 떨어져 하공을 밟고 돌았다. 이때에 의상이 돌아보고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본다면 필연코 괴변으로 여길 터이니 세상에 이것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삼국유사 의상전교> (※자료인용 http://blog.daum.net/kelim/8700358)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경천사10층석탑(↑ 고려시대) - 일제시대때 일본에서 가져가려고 했는데
그 당시 상황에도 데모를 해서 일본에 가져갔던 걸 도로 갔다 놓았다고 함 - 경복궁에 방치돼 있다가 박물관으로 옮겨온 것

 

 

탑골공원에 있는 원각사탑은 이 탑의 짝퉁 (↗ 조선 세조때)

 

 

구례 화엄사 효대 (↑)

 

☞ 부처님 '사리'에 얽힌 진기한 이야기들.. <자현스님> http://cafe.daum.net/santam/IZ0A/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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