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당시에 마등이라고 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이런 저런 기술로 생계를 유지하고 살아가는데
그 기술이란 게 사람들을 홀리거나 액난을 물리치는 주문을 외거나 굿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 마등에게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등의 딸이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탁발에서 돌아오는 길인지 아난존자가 그 우물가를 지나치다가 그 처녀에게 물 한 잔을 청하였습니다.
경전을 통해 아난존자의 면모를 추리해보면 대체로 매우 온화한 성품을 지녔고 정이 많고 눈물도 많습니다.
게다가 부처님의 사촌동생이니 출가하기 전에 왕가에서 익힌 그 귀족적인 풍모와 행동거지는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무심코 한 바가지의 물을 떠서 건네주려고 아난존자를 향해 몸을 돌리던 마등의 딸은 제 눈을 의심하였습니다.
젊은 수행자가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데 그 동작하며, 음성, 눈길이 이 세상사람 같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마등의 딸은 그만 마음을 홀랑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아난존자의 뒤를 밟아 그 처소를 확인하고
부처님의 제자임을 알아낸 뒤에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였습니다.
바람결이 살랑 뺨에 닿아도 주르르 눈물을 흘렸고, 문이 덜컥 거려도 깜짝 깜짝 놀랐습니다.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밥도 삼키지 못하는 딸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그 이유를 알고서 기가 막혔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를 사랑한단 말이지? 아이고, 이것아. 네가 지금 제정신이냐?
그 분은 왕자님이셨다가 그 부귀영화도 싫다 하여 머리 깎고 출가하신 분이야.
그러지 말고 정신 좀 차려라. 내가 아주 근사한 청년을 알아보마.”
하지만 딸은 눈물을 흘리며 무조건 아난존자가 아니면 안 된다고 떼를 썼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위해 아난존자를 만나러가기까지 하였습니다만 자신은 출가하여 계율을 지키는 사람이고
부처님의 제자이므로 여인과의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대답만 얻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딸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제발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어머니. 그 분이 스님이라서 안 된다면
어머니에게 좋은 기술이 있잖아요. 남자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모든 술법을 다 써서라도 제 앞에 그 분을 데려다 주세요.”
사랑에 눈이 먼 마등의 딸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처지인지는 전혀 안중에 없었습니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아도 아난존자의 그 모습이 어른거리니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딸을 살리고 봐야겠기에 마등은 탁발하러 나선 아난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 뒤에 제 집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딸의 방에 밀어 넣고는 밖에서 문을 잠갔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옷을 꺼내 입고 곱게 단장을 하고 기다리던 그녀는 아난존자에게 온몸을 던졌습니다.
‘시간아, 어서어서 지나라. 이 밤만 지나면 이 분은 내 남편이 될 것이야.’
그녀는 아난존자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그를 껴안고 속삭였습니다.
그토록 그리던 아난존자의 눈, 코, 입과 귀를 쓰다듬고 그의 팔을 어루만졌습니다.
아난존자는 자기가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습니다.
젊은 여자는 자기를 사랑한다고 이리도 애절하게 매달리지만
이미 출가의 길을 선택한 구도자인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기에 오히려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간절하게 외쳤습니다. 경전에서는 그의 외침을 듣고
부처님이 어떤 기적을 부려서 그를 마등의 집에서 빠져나오게 하였다고 합니다.
아난존자를 유혹하려다 실패로 끝난 마등의 딸은 그를 향한 사랑을 달랠 길이 없어
아침마다 탁발을 하러 나가는 아난존자의 뒤를 밟았습니다.
몹시 부끄러움을 타는 아난존자는 결국 탁발을 하러 나가지 못하였고
절 문밖에서 이제나 저제나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마등의 딸은 슬피 울며 돌아갔습니다.
부처님이 해결사로 나셔야 할 차례가 왔습니다.
마등의 딸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난이 그리 좋으냐?”
“네, 부처님.”
“그럼 내가 두 사람을 맺어주겠다.”
그토록 사랑하는 아난과 맺어주겠다는 부처님의 말씀에 마등의 딸은 귀가 솔깃하였습니다.
“정말 아난 스님과 저를 결혼시켜 주시겠습니까?”
“그래. 그런데 아난은 보다시피 머리를 깎고 출가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너도 그런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데 할 수 있겠느냐?”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고 그 어떤 조건도 마다할 수 없었던 마등의 딸은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렸지만 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마등은 제 손으로 딸의 그 삼단 같은 검고 윤나는 머리칼을 잘라주고 말았습니다.
머리를 깎고 소박한 옷차림으로 승원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부처님이 물었습니다.
“대체 아난의 어디가 그리도 좋으냐?”
“저는 아난의 눈도 사랑하고, 코도 사랑하고, 입도 사랑하고, 그 음성도 사랑하고, 그 분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다 사랑합니다.”
사랑에 들뜬 그녀는 이렇게 조목조목 제 마음을 들려주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우리 함께 생각해보자. 네가 그리도 사랑한다는 아난의 코 속에는 뭐가 들었지?
또 아난의 귀 속에는 뭐가 들었고? 네가 그리 안고 싶어 하는 아난의 몸속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어디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겠느냐?”
마등의 딸은 머리를 쇠망치로 맞은 듯 멍해졌습니다. 자기는 거기까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눈에 비친 아난의 겉모습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한다고 하여 부부를 이루기는 하지. 그런데 그들의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
몸에서 흘러나오는 액체가 섞여 아이를 만들고 생명처럼 애지중지하다가 누구든 먼저 곁을 떠나면
그 아쉬움과 외로움에 평생 허탈한 눈물을 흘리고 말지 않더냐?”
마등의 딸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그토록 잘생긴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는데….
그런데 내 마음을 빼앗은 그 남자의 몸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가?’
그녀는 찬찬히 사람의 몸이란 것을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준수한 청년이건 절세미인이건 천하박색이건 한 꺼풀 벗겨내니
그 속에는 똑같이 눈물, 콧물, 침, 땀, 똥, 오줌 같은 것들이 들어차 있을 뿐이었습니다.
‘대체 내가 뭘 사랑스럽다고 느꼈던 것일까? 아난 스님의 그 준수한 이목구비는 다 어디로 갔을까?’
마등의 딸은 자기가 집착한 것에 대한 실체를 아주 천천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한없이 사랑스럽고 아름답기만 할 것 같았던 대상이 알고 보니 덧없고 괴로운 속성을 띤 것이었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한 자기 자신도 그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대상에 정신을 집중시키며 관찰하고 깊이 생각을 이어가자
제 마음을 온통 차지하고 있던 아난의 이미지가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덧없기 그지없는 아난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자 마등의 딸에게는
모든 생명체의 바탕에 흐르는 법칙을 바라보는 힘이 생겼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자, 이제 너를 놓아줄 테니 아난의 방으로 가보아라.”
하지만 마등의 딸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제가 참으로 어리석어서 아난 스님을 쫓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캄캄한 길을 헤매다 등불을 만난 것 같고, 난파당하여 집채만한 파도에 휩쓸리다가 강기슭에 이른 것 같고,
앞을 보지 못하는 이가 뭔가 의지할 것을 붙잡은 것 같아졌습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모든 번뇌를 다 떠난 성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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