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때였는지는 지나봐야 안다
삭막한 겨울에 바라보는 봄꽃 사진과 곱게 물든 가을 단풍 사진은, 당시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아름다움을 전해 준다. 몇 년 전 찍은 인물사진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젊고 고와 보인다. 그때도 나이 들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 시절마저 그립다. 왜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더 많이 여행하고, 더 좋은 취미를 즐기면서 자신을 가꾸며 살지 못했을까. 왜 그토록 눈부신 풍경들과 역사 유적들을 그 순간에는 충분히 느끼지 못했을까. 마치 처음 보는 사진처럼 새롭고 낯설다.
좋은 시절은 늘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젊을 때는 젊음의 가치를 모르다가 늙어가며 그것이 축복이었음을 깨닫는다. 사랑할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떠난 뒤에야 존재의 의미를 절실히 느낀다. 뒤늦게 후회하고 어리석었다고 탄식하지만, 그것 또한 삶의 한 조각이며 운명 같은 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건강할 때는 돈과 욕심만 좇다가 막상 병상에 누워 보면 돈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건강해야 먹고 싶은 것도 먹고,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젊은 날에는 영원히 건강할 줄 알았지만, 이제는 몸 여기저기의 통증이 건강이 최고의 자산임을 일깨워 준다. 비록 몸은 예전 같지 않아도, 맑은 초여름 햇살과 마당의 푸른 느티나무, 정원에 기대 이상으로 잘 피어난 갖가지 꽃들을 바라보는 작은 기쁨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알게 된다.
넉넉할 때는 늘 부족하다고 불안해했지만, 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풍요로운 시절이었다. 진정한 부는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에 있다. 두 다리가 성하고, 허리와 무릎이 아프지 않고 정신이 맑아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부유함이요 축복이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당연하게 여기다가, 떠나고 나서야 그들이 인생의 선물이었음을 깨닫는다.
명절에 가족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고 웃음을 나누는 순간에도 우리는 그 소중함을 잊곤 한다. 자식 때문에 속상하고 배우자가 원망스러울 때조차, 언젠가 그들이 다시 기쁨이 되어 줄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 가족이란 서로 실망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단점과 장점이 공존하는 것이 인간의 본모습이기에, 미워도 결국 품고 기다려야 한다.
모든 것을 내 것이라 믿었지만, 잃고 나면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잠시 맡겨진 것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돈을 잃어도 본래 없던 것이라 여기면 덜 괴롭고, 몸이 조금 아픈 것도 더 큰 고통을 대신하는 액땜이라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사람은 좋은 때 그 가치를 모르고 지나간 뒤에야 후회하는 존재다. 이는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집착은 현재를 바라보는 눈을 흐리게 하고 지금을 살아가는 힘을 약하게 만든다. 그러나 자신이 집착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비로소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 성찰과 알아차림은 의식을 바꾸고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우울하고 나이 들고 부족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바로 화양연화(花樣年華)라고 생각하자. 오늘이 일생에 가장 젊은 날이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인간은 오직 현재 속에서만 존재하고 행복할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가족과 친구, 따뜻한 햇살과 달빛, 계절의 찬란함, 서로의 인간적 온기를 느끼며 살아가자. 지금 내가 누리는 이 시간이 바로 꽃처럼 가장 아름다운 때임을 잊지 말자.(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