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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 조선숙종대왕 최숙빈 생가지 "朝鮮肅宗大王 崔淑嬪 生家址" 비(碑) 건립 (1)

작성자레나|작성시간19.03.28|조회수7 목록 댓글 1

Re: 조선숙종대왕 최숙빈 생가지 "朝鮮肅宗大王 崔淑嬪 生家址" 비(碑) 건립 (1)

오래 전에 츨장차 굼실마을에 몇 번 가보고 또 수 년 전에는 사진을 찍는다고 가본 후에 오늘 기념비 제막식을 한다는 소문이 있어 오랜만에 굼실마을을 찾았다

억산(億山)에서 뻗은 두 개의 기암괴석의 봉우리와 그 사이의 폭포는 여름날 긴 장마가 끝나고 햇살이 들 때 피어나는 오색 무지개는 굼실마을을 선경(仙景)으로 만든다.

여기서 태어나신 최 숙빈은 조선왕조의 바탕을 건실하게 만드는 성군을 대대로 탄생시켰다

손흥수와 도재국은 오늘(2019.3.27) 오후에 최 숙빈 생가지의 비(碑) 건립 현장을 둘러보았다

왕조(王朝)가 존재하므로써 왕(王)이 존재한다. 따라서 왕이 있으므로써 빈(嬪)이 존재한다. 왕조와 왕이 존재하므로서 그에 관련되는 비문은 왕조와 왕을 주격(主格)으로 하고, 빈을 결부시키므로써 빈(嬪)과 비(碑)의 품격이 더욱 높아진다. 또 상궁과 숙빈은 중복의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 하나에 "조선숙종대왕"으로 대체하여 비(碑)의 명칭을 만들어보면 <朝鮮肅宗大王 崔淑嬪 生家址> 가 더욱 역사적인 품격이 있어 보인다.또 우리에게 자문을 구했더라면 비문을 이렇게 권고를 해 주었을 터인데, 오늘 오전 10시경에 비 제막식을 한다는 소문을 들어 현장을 가 본 것이다

최 숙빈은 해주최씨인데
대종가인 경주최씨 문중 화수회와 몇몇 분이 성금을 내어 비를 건립했다 한다

숙빈의 생가지가 강변의 제방에 인접한 집이라 하나

도재국과 손흥수가 마을을 둘러본 결과 강변쪽은 제방이 없던 옛날에는 강바닥과 집터가 번갈아 변한 것 같아 보였다

마을 뒷쪽에는 산돌로 축대를 쌓은 집터가 열대여섯집이 있었는데 다 철거되고 축대로 구분된 집터가 밭으로 변해 있었다
또 옛날 집터와 지금의 거의 사용하지않는 것으로 보이는 집터에는 우물터가 각각 한 군데씩 있었다

다시 마을로 내려와 80대 초반의 할머니에게
"마을에 사람이 많이 살았던 옛날에는 몇 집 정도가 살았는지" 물어보니
"전해오는 이야기와 또 할머니가 시집왔을 때는 열대여섯집 정도였고 마을의 집은 대부분 산쪽에 있었고, 지금의 집들은 산쪽의 집이 철거된 후에 지었다 하셨다

우리가 보기로는 350여년 전의 최 숙빈의 생가지는 강변이 아닌 산쪽으로 더 윗쪽에 있었던 것으로 조심스럽게 여겨진다

마을앞 제방에 비를 세웠다

전주 바로 밑 뒤의 왼쪽의 스레이트집이 생가지라 했다

옛날 집터

옛날 집터 축대는 산돌로 쌓았다

왼쪽의 맨 위에는 우물로 보이는 터가 있다

지금의 마을담장은 전부 강돌로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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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레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3.28 또 상궁과 숙빈, 육(毓)과 생가지(生家址)도 중복의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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