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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할머니 간병인이 선생님으로 보이는 이유

작성자한수수|작성시간12.04.23|조회수50 목록 댓글 2

 

 

 

 

 

갑자기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 환자가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식사를 할 수 없을 경우에는 가족이나 친지 가운데 환자 곁에 상주하며 도움을 줄 보호자나 전문 간병인이

필요하다.

 

환자의 병세를 관찰하면서 의사나 간호사와 긴밀히 소통하여 필요한 결정을 내리고 환자의 식사를 돕고 대소변 처리, 목욕, 옷과 침구 세트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무의식 상태로 의사소통을 전혀 하지 못하고 누워 지내며 몸을 거의 가누지 못하는 식물인간 상태의 경우에는 간병을 맡은 사람의 역할은 그 환자의 생사를 가름할 만큼 중요하다.

 

어머님이 입원해 치료 받고 있는 병실은 6인실인데 입원한 첫날부터 한 달 이상 한 병상은

비어 있고 다섯 환자와 3 명의 보호자, 2 명의 전문 간병인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여성 환자 전용실이어서 남자라곤 각각 나이든 노모를 간병하고 있는 사십대와 오십대 종반의

아들 두 사람뿐이고 나머지 8 명은 여성이다.

 

병실에 처음 들어서면서 여성들만 방에 가득해서 혹시 방 안에 계신 환자와 보호자들이

남성 보호자를 낯설어 하고 기피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고 먼저 남자인 내가 어머님을 주로 보살펴야 하니 양해해주시기 바란다고 죄송한 말씀부터 드렸다.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간병인과 사나흘 간격으로 교대하는 남성 보호자가 한 명 있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여러 해 전에 어머님이 협심증을 앓아 심장수술을 받을 때 약 일주일과 백내장 수술 등 작은 병으로 사나흘씩 입원했을 때가 있긴 했지만 이렇게 장기간 간병을 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번에는 최상위급 종합병원이어서 구내에 일반인 식당이 대규모로 구비되어 운영되고 있어 식사는 그곳에서 해결하면 되겠지 하고 쉽게 생각해 배낭 안에 간단한 세면도구와 간편 작업복만 챙겨 들어왔다.

 

이렇게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는 뇌졸중 어머님의 24 시간 밀착 간병이 시작되었다. 의식이 없고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해 누워서만 지내고 음식조차 혼자 씹어 삼키지 못하기 때문에 식도 안으로 가는 관을 콧구멍을 통하여 삽입하여 두고 잘 흐를 수 있는 미음 형태로 음식을 만들어 위에서 흘려 들여보내는 방식으로 생명을 지탱할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

호흡기능도 약화되어 산소를 기도 속으로 넣은 관을 통해 공급해야하는데 처음에는 입에 간단한 플라스틱 기구를 끼우고 그 안쪽에서 시작하여 목젖 안으로 관을 넣더니 일주일쯤 지나자

더 이상 오래 기구를 물고 입을 벌리고 있는 상태가 지속되면 세균 감염의 우려가 크다고 하면서 목에 구멍을 내고 그곳을 통하여 기관지 속으로 약 8 센티미터 길이의 플라스틱 기구를

연결해놓았다. 그 안으로 산소가 지속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산소관을, 손가락 하나의 끝에는 집게 모양의 빨간색 불빛이 나오는 센서를 연결해두고 혈중 산소 농도와 맥박수를 자동으로 실시간 모니터에 나타나게 했다. 소변은 요도에 관을 끼워 넣어 수시로 흘러나와 큰 비닐주머니에 모아지게 해놓았고 대변은 성인용 큰 귀저기를 채워 받아내게 했다.

 

이렇게 종일 의식 없이 누워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누구나 가래침이 많이 생긴다고 하는데

적어도 한, 두 시간 간격으로 진공으로 빨아들이는 기계에 연결된 관을 목에 삽입한 기구 안쪽과 코, 그리고 입 속으로 약 20 센티 미터 까지 집어넣어 빨아내야 했다. 그런데 환자 상태에 따라 훨씬 더 많이 자주, 또는 일정치 않은 간격으로 가래가 생겨 기도를 막아 기침을 하고 헉헉거리는 일이 있어 잠시도 안심하고 자리를 비울 수 없다. 늘 환자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즉각 대응을 하여야 한다.

 

식사 시간은 어찌 그리 자주 돌아오는지 모른다. 환자용 영양죽 200 그람 들이 깡통 1~2 개와 병원 급식실에서 조리한 쌀미음이 100 또는 200 그람 함께 나오는데 비교적 차가운 깡통을 뜨거운 물에 십여 분 동안 담궈 적당한 온도로 덥힌 다음 이 두 가지를 섞어 잘 저어 고르게 한 뒤 비닐로 만들어진 죽 주머니에 부어 높은 곳에 매달고 주머니 아래쪽에 붙은 가는 관을 코 속으로 삽입해 놓은 관과 연결해 흘려 넣어야 한다.

 

식사가 끝나면 죽 주머니 안밖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해 말려놓아야 하고 30 분쯤 뒤에

매끼 지급된 가루로 된 약을 물에 타서 용량이 큰 주사기에 담아 다시 코 속 관을 통해 흘려 넣어야 한다. 이렇게 환자의 식사가 끝나면 보호자와 간병인들이 식사를 하게 된다.

전문 간병인들은 대부분 병원 안에서 눈치를 보며 환자식을 데우기 위해 마련된 전자레인지를 반은 묵인받고 사용하거나 소형 전기밥솥을 사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적당히 밥을 짓고 반찬을 외부에서 가져오거나 병원 안에서 간단한 반찬을 만들어 식사를 해결하는데 대부분 환자의 가족인 보호자들은 다른 가족이 집에서 밥을 해서 반찬과 함께 여러 끼 분을 준비해 가져오는

수가 많아 보였다.

 

나의 경우는 다행히 누이 3 명과 형수님이 번갈아 밥과 반찬, 간식을 마련해 와서 음식이 남아돌 지경이 되었지만 혈육이 적은 가정이나 모두 바쁜 경우는 궁색하게 시간을 내서 구내식당에 드나들거나 전문 간병인들처럼 밥을 지어 먹어야할 것이다.

 

음식이 준비된 경우에도 환자를 돌보는 틈틈이 제대로 된 식탁도 없이 간신히 몸 하나를 눕히기에도 넉넉지 않은 보호자용 간이 의자에서 식사를 하자면 궁색하기가 짝이 없다.

 

그런데 어머님이 머무시는 병실에선 식사하는 일이 궁색하지 않고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서로가 가진 음식을 한 자리에 모아 둘러 앉아 함께 식사하고 내 것 네 것 따지지 않고 끼니마다 나눠 먹고 있어서 기분 좋게 식사를 해오고 있다. 또 병문안 오는 손님이 무슨 음식을 선물로 가져오거나 병실 식구가 집에 다녀올 때마다 대개 크고 작은 과일이나 떡, 기타 맛있는 먹을 거리를 들고 오고 그것들을 다섯 집이 고르게 나눈다.

쉽게 치료되는 가벼운 병만 간병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갑자기 중병을 앓는 환자를 돌보는 일은 처음 병원에 올 때 생각했던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환자의 가래를 진공으로 빨아내는 일은 얼핏 보면 쉽지만 실제론 여간 조심해야할 일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연약한 기도 속으로 가느다란 고무관을 집어넣고 강력한 진공을 작용시켜 기관지 벽에 붙은 끈끈한 침들을 훑어내는 과정에서 자칫 그 진공의 강도나 넣는 깊이, 작동 위치 등을 잘못하면 기관지 속에 상처를 입힐 수 있고 강력한 진공이 작용하면서 환자의 자연스런 호흡을 방해해서 환자가 무척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일들을 처음 하면서 알게 모르게 적잖은 실수를 했다. 진공을 쭉 작용시키는 것이 아니라 외부 공기 흡입구를 열었다 뗐다 하면서 환자의 숨쉬는 리듬을 최대한 살려야하고

기관지 속을 다치지 않도록 부드러우면서도 효과적인 흡입이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 것이다. 기구를 잡는 방법, 또 기구 자체의 선택, 안 다치게 진공을 작동시키며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가래를 뽑아내는 일은 중환자실에서 입원실로 옮기며 간호사에게서 들은 간단한 설명을 들은 것만으론 턱 없이 부족했다.

 

어떤 특별한 은총이 작용한 것인진 모르겠지만 이 병실에선 어머님처럼 뇌졸중으로 반년 이상 수년까지 치료중인 장기입원 환자가 둘 있었고 군 근무중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8 년 동안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무의식중에 잠만 자는 환자가 한명 있는데 그들의 보호자와 간병인들이 이미 상부상조하며 하나의 가족처럼 병원생활을 하는 놀랄만한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이 감각과 기억력이 크게 떨어지는 초로 간병 보호자의 일 거수 일 투족을 자신들의 일을 확실히 하면서도 곁눈으로 감시해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내가 요청하지 않았어도 스스로 다가와 가르쳐주고 잘못한 것들을 지적하며 바로 잡아주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 8 년째 식물인간 환자를 돌보는 전문 간병인 김씨 아주머니이다. 아주머니라지만 나이는 이미 70 가량이다. 말씨나 외모는 영락없이 우리네 가난한 시골 출신으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손주들을 본 초로의 할머니이다. 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할머니가 바로 만난 첫날 두어 시간도 지나기 전에 그 행동과 말, 일하는 솜씨로부터 가장 배울 것이 많고 존중하지 않으면 안될 나의 선생님이 되었다.

 

그녀의 환자 돌보는 솜씨와 태도는 그야말로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철두철미한 프로바로 그것이다. 병원생활을 오래한 일부 간병인들은 틈 날 때마다 서로 오가며 개인적인 일들을 하고 수다를 떠는데 비해 그녀는 누가 찾아오는 일은 있어도 스스로는 바로 옆이나 앞 방 간병인에게도 찾아가지 않으며 어쩌다 복도나 화장실 등에서 마주쳐도 결코 시간을 끌며 길게 이야기 하는 법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환자를 일깨워 전신 맛사지를 시키고 팔 다리 등을 움직이고 신체 각 부위를 주물러주는 것부터 시작하여 세 때 식사와 간식 등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간 맞춰 준비하여 먹여준다. 돌보는 환자의 침대는 마치 일류호텔의 것처럼 항상 청결하고 잘 정돈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환자의 목욕과 재활 운동도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시키는데 누가 볼 때나 보지 않을 때나 전혀 차이가 없이 정성껏 하는 점이 대단하다.

 

자신의 일을 그렇게 철저히 완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병실 안의 다른 환자나 간병인, 보호자들의 일이나 상태도 빈틈 없이 살피고 있어 누가 무슨 일이 필요한데 미처 못하고 있거나 잘못하고 있어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제일 먼저 다가가 필요한 도움을 준다. 그 가운데 가장 비근한 실례를 한 가지 들어본다. 내가 어머님을 목욕시키기 위하여 병실 침대에서 번쩍 들어 안아 이동용 간이침대에 옮길 때 무엇이 걸리는지 아래쪽에서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때 그녀가 금새 다가와 침대 모서리에 매어 놓았던 몸으로 부터 긴 관으로 이어진 소변 주머니가 그대로 있어 당겨진 것을 보고 풀어 옮겨주었고 또 환자를 모시고 목욕실에 다녀왔더니 어느 새 침대보를 새것으로 깨끗이 갈아놓고 있었다.

 

그런 행동들은 특별히 나와 어머님에게만 베풀어진 것이 아니었다. 두고 봤더니 방 안의 누구한테나 그렇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 말도 가정집 할머니처럼 하고 외모는 벌써 70 가까운 노인에 지나지 않는 이 아주머니가 이젠 더 이상 보통 아주머니로 보이지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존경받아야할 모든 요소들을 다 가지고 실행하고 있었다. 선생님이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여전히 아주머니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방 환자 가운데 한 사람은 실제 학교에서 교사로 이십 년 이상 근무한 전직 교사이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단순히 이름 뒤에 님 자 하나만 붙여 부르게되고 그냥 가정주부로 아이들 키우고 살림살이만 챙겨온 주부로 뒤늦게 돈벌이하러 나온 이 초로의 여인에겐 참으로 자연스럽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선생님소리가 나오는 것은 다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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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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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왕십리두레박 | 작성시간 12.04.26 님의 글을 읽은 저로서도 진정 고개가 숙여지는 훌륭하신 분이군요. 우리 사회에 그런 분이 계시는 한 이세상은 살아갈 가치를 느끼게 해줍니다. 본받고 싶네요.
  • 답댓글 작성자한수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4.26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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