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박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구경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래부터 안 한것은 아니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거의 다들 그랬듯이,
나 역시 20대 젊은 시절에 일찌감치 화투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민화투에 짓고땡에 섯다에 나이롱뽕에 고스톱등 해서,
숱하게 도박판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러나 30대 중반에 이르러, 어느 날 갑자기 도박과 인연을 끊었습니다.
너무나 쪽팔리는 사연이 하나 끼어들면서 끊은 것입니다.
내가 그때는 이곳 전주에서 보훈 연금매장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을때 돈에대한 아쉬움이
전혀 없을때 였는데 어느날 선배 상갓집에 갔을 때 끼어든 사연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카드 일명 세븐오디 바람이 한창 불 때여서 상갓집에 찾아온 문상객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로 모여서 화투판과 카드판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 카드판에 끼어들었습니다.
여느 도박판처럼 그날의 판도 자정을 넘기고 말았습니다.
몇 푼 되지는 않았지만, 지갑에 있는 돈을 다 잃었고,
잠시 뒷자리로 물러나 승자가 딴 돈에서 조금씩 떼 주는 개평 몇 푼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개평을 받다보니 어느덧 돈이 쌓여,
그 판에 다시 끼어들 수 있을 정도의 밑천이 되더군요
“이제는 저도 좀 끼어들게요.”
내 그렇게 말하면서 엉덩이를 당겨 패거리 틈새로 끼어들려 했습니다.
그랬더니 선배 하나가 엉덩이를 밀어서 옆 사람과의 사이로 벌어진 그 틈새를 좁히면서
이렇게 나를 힐난하더군요.
“개평은 돈 잃은 놈 불쌍해서 그저 먹고 떨어지라고 준 거야.
그 돈 받아서 다시 끼어드는 놈은 세상에 처음 봤네.”
참으로 모질고 따끔한 울화통이 터지는 힐난이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쪽이 팔리고 말았습니다.
애초부터 끼어들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잃은 돈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쪽팔림을 무릅쓰고, 내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이번 한 번만 좀 끼워주세요.”
내 그렇게 통사정 하다시피하면서,
좁혀진 틈새로 엉덩이를 다시 당겨 들어가 억지로 끼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딱 한 판에, 그 개평 받은 돈까지 몽땅 날려버렸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끼어들 수 없었습니다.
텅텅 빈 주머니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개평 받은 돈으로 또 끼어 들까봐, 이제는 내게 개평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 판에 내 더 이상 앉아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했으나, 이제는 그 택시비도 없었습니다.
“누구 택시비라도 좀 주세요. 저 좀 집에 가게요.”
아무나 붙잡고 내 그렇게 구걸하다시피 했습니다.
“엣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에잇! 재수 없어!”
누군가 그러면서 던져준 돈, 딱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이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그 돈을, 나는 주울 수가 없었습니다.
쪽이 팔려도 너무 팔린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냥 두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자정 넘은 시각에 그 상갓집에서 12키로를 넘어 집까지 걸어가야 했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내 양 볼을 적셨습니다.
한줄기 차가운 밤 바람이 내 목을 휘감고 스쳐갔습니다.
그때 내 정신을 버쩍 차렸습니다.
그리고 빈주먹을 불끈 쥐면서 속다짐을 했습니다.
곧 이랬습니다.
‘내 살아생전 화투짝이나 카드만은 안 만진다.’
지난주 일요일 일이었습니다.
내 오랜 페이스북 친구인 어느님이 특별한 게시를 하나 했습니다.
화투짝 열한 장을 펼쳐놓은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흑싸리 피에, 국화 피에, 오동 피에, 오동 쌍피에, 비 피에, 또 다른 피 해서,
오로지 피로만 모아놓은 화투짝이었습니다.
그 사진에 이런 글을 붙여놓고 있었습니다.
"기분도 컨디션도 별루였는데, 고스톱이나 치자고 친한 동생이 찾아와서 엄청 웃었다.
이렇게 껍데기 다 쓸어가기도 어렵다며 기념샷하라 해서 찰칵.
결국 다 잃고 막차 타고 갔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추억이 있었습니다.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겪었던, 도박판, 그 슬픈 추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