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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방

[ 청춘무림(靑春武林) ] 제 12 장-1

작성자검은 눈동자|작성시간21.11.11|조회수342 목록 댓글 10

 

[ 청춘무림(靑春武林) ] 제 12 장 피비린내의 시작.


하나 혼천소마가 숨어 어떤 모의를 하건 아직 표면상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는 일.
이런 따위야 알 바 없이 다음 날 진시(辰時).
철기보의 사자전에서는 새로 임명된 백대봉공들을 중심으로 무림맹의 존속문제와 후계자 문제가 집중 거론되고 있었다.
무림맹주 유목의 뒤에는 언제나처럼 철기보의 여섯 당주가 시립해 있었고, 앞에는 새로이 취임된 백대봉공과 각파의 대표들이 함께 열 지워 서 있는 가운데 회의가 진행되었다.
유목공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군림대회 후, 새로 임관되신 봉공들을 모시고 첫 회의를 진행해 보겠소. 첫 번째 사안은 역시 맹의 존속문제, 지난밤에도 잠시 거론이 되었었지만, 모두에게서 후계의 이야기가 나왔던 점을 미루어 보면 맹의 존속을 반대하는 분은 없다고 여겨지오. 여기에 대해 이견이 계신 분께서는 기탄없이 말씀해 보시오.”

백대봉공들 중 우측 중간쯤에 서 있던 한 인물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적산(赤山) 화월보(花月堡)의 신궁필(新宮必)이 한 말씀 아뢰겠습니다. 존속여부에 관한 일이라면 이 몸 역시 찬성하는 바이지만 그러나 이런 문제라면 역시 천하의 의견을 물어 확고한 결정을 내리는 게 옳다고 여겨지는군요. 저희들이 백대봉공의 지위로서 이 자리에 섰다고는 하나 역시 추천해준 방파들을 우선 생각해야 한다고 사료되기 때문입니다. 한즉 이 문제는 보다 시일을 두고 천하의 중지를 모아 표결되는 게 마땅하다 생각합니다.”

그러자 곧 좌중 몇 곳에서 같은 의견이 이어졌다.

“신궁대협의 말씀이 옳다고 사료됩니다. 백대봉공이라 해도 천하각파의 뜻을 따르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즉 독단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돌다리도 두드려 본 후 건너는 게 힐난을 면할 것이라 여겨지는군요.”

유목공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씀도 옳소. 백대봉공이 각 방파의 대표로서 왔다고 한들 무림 자체는 아닌 것...! 여기에 동의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시오.”

그러자 즉시 신궁필의 의견에 동의한 인물들이 하나하나 손을 들었다.
황보선을 비롯한 사도횡, 당삼화도 그중에 있었다.
하지만 거수(擧手)한 인물들은 의외로 수효가 작아 고작 스무 명에 지나지 않을 정도였다.
유목공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의외로 소수구려. 하다면 백 명 중에 스무 명만이 신대협의 말씀에 찬성했을 뿐 나머지 분들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볼 수 있소. 반론을 가진 분은 고견을 피력해 주시오.”

좌측 행열에 섰던 인물 하나가 나섰다.

“중검방(重劍?)의 하후민(夏候民)이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속하가 생각컨데 분명 신궁대협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나 다시 되짚어 보면, 이 자리에 선 모두가 무림맹의 존속을 원하듯 여타 방파들 역시 대개가 같은 생각을 지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신궁대협의 말씀은 선후를 가리자는 것일 뿐, 결과에 대해서는 매한가지라고 여겨집니다. 그런즉 순서를 바꿔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군요.”

하후민은 계속 주위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기실 우리 백대봉공은 모두가 주위 방파들의 추천을 받아 이 자리에 이르게 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우선 중지를 물어야 마땅하겠지만, 그러나 결과가 같을 것이라면 선처리를 한 후 보고를 하는 게 어떨까 싶은 것입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지니셨겠지만 우리 중에 그 정도 설득력을 지니지 않은 분은 없으실 것이라 봅니다.”

얼핏 들으면 전혀 틀리지도 않는 아주 미묘한 차이인 것 같기도 했다.

“반면 이로서 얻게 되는 것은 실로 크다고 봅니다. 우선 시간이 크게 절약된다는 것입니다. 마침 이 자리에는 각파의 대표들이 거의 와 계시는 만큼, 지금 결정이 되면 돌아가신 후 여타에 사실을 알려 한 차례만 회합을 통해 이해를 구하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
"반면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려면, 대표들께서 돌아가 각처의 군소방파들과 또 회합을 하셔야 하고 여기에서 승낙을 구해 다시 이 자리에서 표결을 해야 하며, 일이 결정된 다음에도 다시 타 방파에 사실을 알려야 하는 등 삼중 사중의 번거로움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 처리를 한 뒤 후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럴듯한 의견이었다.
정상적인 차례를 거치자면 역시 많은 번거로움이 따를게 당연한 노릇...!
유목공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궁대협과 하후대협의 의견을 들으셨소. 사실 본좌도 이미 결정되다시피 한 일을 가지고 이 넓고 먼 중원 길을 몇 차례씩이나 오가며 회합한다는 것이 괜한 소모 같다고 여겨지긴 하는구려. 하나 역시 결정은 여러분들께서 하는 것, 찬성하시는 분들께서는 손을 들어주시기 바라오.”
“찬성하는 바입니다. 역시 무모한 소모는 없이 하는게 좋다고 여겨지는 터이오라...!”

그러자 하나하나 손을 들기 시작했고, 그 수효는 무려 육십 여가 되었다. 과반수이상의 찬성!
관례에 따라 분명 무림맹의 존속이 확정된 것이었다.

“이로서 본좌가 물러난 후에도 맹은 계속 존속되는 것으로 알겠소. 하나 신궁대협께서도 이르셨듯 아무리 편리를 위해 하는 것이라 해도 역시 선 처리가 되는 것이니 적지 않은 동요가 일어날지 모르오. 각 대표들께서는 돌아가신 후 모쪼록 각 방파들을 잘 설득해 주시기 바라오. 하나의 오점이라도 남아서는 아니 될 것이니 반론이 심할 경우 한 번 더 표결에 붙이기로 하겠소.”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자는 이야기인 것이었다.
재고의 여지를 남긴 이상 또한 각 대표들도 상당수 부담을 덜 수가 있기도 한 것이다.

“천세!”

이에 모두 일제히 허리를 숙여 부복지례를 취했다.
유목공은 이러한 그들을 훑어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림맹의 존속이 사실화된 만큼 후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소. 언급했듯 본좌는 무림의 안정을 위한 것이라면 역시 한 개인의 지도력도 중요하지만 보다 천하를 살필만한 강력한 파벌의 힘이 중요하다고 여겼소. 그래서 백대방파 중 차기후계가 나왔으면 하는 민심에 따랐고, 여러분께 이미 큰 기략을 펼칠만한 분이 계시면 천거하라고 말씀드렸소. 기탄없이 천거해 주시기 바라오.”
장내의 인물들은 서로 간 크게 눈치를 살피는 모습들이 되었다.

역시 이런 경우는 당사자의 손익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터이라 선뜻 나서기가 꺼려질게 분명했다.
그러나 잠시, 급기야 우측의 끝자리에서 한 중년수사가 성큼 앞으로 나섰다.

“산동(山東) 매화부(梅花府)의 삼중요(森重僥)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우선 이십여 년 동안이나 천하 무림의 안정을 위해 힘써 오신 맹주께서 은퇴를 하신다니 억감이 교차되옵고, 이만큼이나 후덕하신 분이 다시 나오리라 여겨지지도 않습니다. 하나 기어코 짐을 벗으시겠다고 천명하시니 후계를 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 우리 산동과 섬서 등 강북 무림에서는 상황보(常皇堡)의 천수검(千手劍) 여만옥(余滿玉) 대협을 후계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상황보의 천수검 여만옥...!

“음...!”

순간 주위에서는 큰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본시 상황보란 역대로부터 철기보와 나란히 이곳 섬서 무림에서 대명을 떨쳐온 대방파의 하나.
다시 일컫자면 철기보의 맹방(盟邦) 중 하나인 셈이었다.
유목공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스쳤다.

“상황보로 말할 것 같으면 옛 부터 우리 철기보와 우에를 돈독히 해온 방파일뿐더러, 청화의 난 당시 누구보다 강력하게 권선징악에 앞장섰던 의로운 곳이오. 또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크게 세(勢)를 확장하여 진중원의 위명을 떨칠뿐만 아니라, 문주 상황신검(常皇神劍) 여상락(余翔樂), 여방주께서는 덕망이 높고 장자인 여만옥대협도 고강한 무공과 덕목을 두루 갖추었다고 들었소. 이러한 인물이라면  본좌 기쁘게 이를 받아들이겠소.”

그러자 우측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던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하남 비붕방(飛鵬?)의 등천룡(騰天龍) 당호(唐號)도 한 분을 천거해 올리겠습니다. 감히 누가 맹주처럼 지금의 자리를 이끌어 갈 수 있겠습니까만, 중지를 모아본 결과 중경무림에서는 서문세가의 태사자 서문한랑소협을 적임자라 여기고 추천키로 하였습니다. 부디 헤아림 있으시기를...!”

중경무림이란 곧 천하를 세분화 해볼 때 양자강과 황하의 중간지역, 곧 하남, 강소, 하북, 절강성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유목공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서문세가라 하면 칠파일방과 더불어 중원 무림을 이끌어온 명문 중의 명문이외다. 가주 금천대인께서는 문무(文武)뿐 아니라 금기서화, 천문지리에도 대단한 기략을 지니신 분이시오. 또한 물망에 오른 서문소협은 삼랑일연의 명성을 떨쳐온바, 차기 후보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오. 역시 기쁘게 받아들이겠소.”

이번에는 좌측대열의 중간에서 사십대 장한 하나가 나섰다.

“사천 응조문(鷹爪門)의 탁운작(卓雲雀)이 맹주께 인사올립니다. 강남 무림의 대표들 역시 상의한 결과 광동성의 철기린(鐵麒麟) 장청(張晴), 장소협을 추천키로 협의를 보았습니다. 헤아려 주시옵기를...!”

태사자 서문한랑과 철기린 장청 모두 삼랑일연!
그야말로 하나같이 용호상박이라 아니할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유목공의 다시 크게 웃었다.

“헛헛... 서문소협이나 장소협은 삼십여 세 남짓한 연령으로 누구보다 앞길이 창창하니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있을 수 없다고 여겨지오. 장소협으로 말할 것 같으면 광동의 오랜 패주(覇主)로 군림해 오신 옥호방(玉豪方), 옥문주의 적제(赤弟)이자 남해검문(南海劍門)의 전인이라 들었소이다. 이것만으로도 장소협은 충분히 후계의 물망에 오르고 남을만한 것. 본좌 기꺼이 여러분의 추천을 받아들이겠소.”

유목공은 천천히 좌중을 둘려 보았다.

“그 밖에 다른 분은 더 안계시오?”

그러자 군웅들은 머뭇대며 눈치만 살필 뿐 더 이상 나서지 않았다.
나서고 싶어도 도저히 천거된 세 방파를 이겨낼 만한 세력을 지닌 곳이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모두가 침묵하자 유목공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안계신가 보구려. 하면 이 세 사람을 오늘부터 무림맹의 차기 맹주후보로 여기고 대내의 일에 직접 참여토록 하겠소이다. 선출되신 세 사람과 상황신검 여상락 방주 등 대표들은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라오.”

그러자 줄지어 선 군웅들 속에서 천수검 여만옥을 위시한 태사자 서문한랑, 철기린 장청 그리고 상황보주 여상락, 서문세가주 금천군, 상청문주 옥호방 등이 조심스럽게 단(壇) 앞으로 나와 유목공에게 포권지례를 취했다.

“천수를 누리시기를...!”

유목공은 잔잔히 미소 지었다.

“크게 경하드릴 일이오. 무엇보다 이렇게 든든한 후인들을 키워내신 문주들의 마음이 얼마나 흐뭇하시겠소. 본좌로서는 부럽기만 하구려.”

부럽다...!
그대로였다.
기실 유목공으로서는 당대에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명성과 위업을 다 쌓은 셈이었지만, 그러나 후계를 제대로 길러내지 못했다는 아픔이 있지 않던가?
금천군 등 세 사람은 한 번 더 조심스럽게 예를 취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어릴뿐더러 부족함이 많은 아이들이오니 모쪼록 맹주께서 많은 가르침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마땅히 그렇게 하겠소. 삼랑일연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아직은 다소 못 미치는 것은 사실...! 특히 연륜면에서 더욱 그러할 터, 본좌가 이제부터 크게 가르쳐 보겠소. 대내의 일에 동참시켜 많은 경험을 쌓게 하는 한편, 하잘 것 없는 것이지만 본좌의 독문무공 역시 틈틈이 전수해 어느 누가 차기에 오를지라도 완벽히 무림을 이끌어갈 재량으로 만들어볼 생각이오.”
“무공까지...!”
“그런...!

좌중에는 즉시 분분한 소란이 일어났다.
설마 유목공이 산하의 육십개 향을 내놓을 뿐 아니라 본신의 절예까지 그들에게 전수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치도 못했었던 일이 아니겠는가?
그의 무공이 현 무림 최고봉의 위치에 올라있으니 천거된 세 사람은 설혹 후계자가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결코 이에 못지않은 행운을 거머잡게 된 것이다.

“이렇듯 무림을 생각하시는 맹주의 흉금에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결코 오늘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유목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고개를 저었다.

“별 말씀을...! 본좌가 천하를 위해 해야 할 마지막 도리라고 여기고 있소. 하나 본좌의 힘만으로는 기대만큼 후인들이 성장할 수 없을지도 모르니 세분 문주께서도 각별히 뒤에서 힘을 실어주시기 바라오.”

힘을 실어 달라...!
마땅한 당부일 수도 있었다.

“천수를 누리소서...!”

이에 금천군 등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자, 유목공은 다시 차기의 물망에 오른 서문한랑 등 세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부터 너희는 대내의 일에 참여를 하게 되는 만큼 수하를 대하듯 말을 놓겠다. 특히 주지해야 할 것은 너희 세 명의 어깨에 이제부터 무림의 백년대계가 걸려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실로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니 죽기로 수업을 쌓고 위엄과 기품을 갖추어라. 무림맹주로서 결코 부끄럽지 않은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각골명심 하겠습니다-!”

세 사람은 즉시 유목공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
이는 곧 스승에 대한 예의와 같은 것이다.
유목공의 표정이 더욱 진중하게 변해갔다.

“너희가 맡아 할 일을 세분하여 일러 주겠다. 만옥, 네게는 본 철기보의 외삼당(外三堂) 중 제일외당 무진당(無塵堂)과 제이외당 적진당(敵塵堂)의 일을 맡기겠다. 무림 도처에서 일어나는 소요를 진압하고 불미한 일들을 처결해 나가는 일을 맡아보는 것이다. 설궁도와 독고우에게 크게 배우도록 해라.”
“분부 받자옵니다!”

마흔 초반의 나이에 빗자루 같은 팔자 눈썹을 한 동안의 중년인이 한쪽 무릎을 꿇어 부복지례를 취했다. 
상황보의 천수검 여만옥이었다.
유목공은 계속 서문한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한랑, 너는 제삼외당 보위당(堡威堂)과 제일내당 정희당(正希堂)의 일을 함께 돌보거라. 대내와 외부의 일을 번갈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나, 또한 가장 많은 것을 배우는 위치가 될 것이다. 두 당주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도록 해라.”
“받자옵니다!”

끝으로 유목공은 갓 서른 가량의 나이에 용안을 지닌 청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서문한랑과 더불어 나란히 삼랑일연의 명성을 떨치는 철기린 장청이었다.

“마지막으로 장청, 너는 제이내당 천희당(天希堂), 삼내당 지희당(地希堂)과 더불어 대내의 일을 관장, 수행하도록 해라. 내실이 튼튼한 후에야 외부의 일도 확고히 해낼 수 있을 법, 이런 무난한 업무를 맡아 무슨 공을 세울 것인가가 우려될 수도 있겠지만, 하나 해보면 실상의 내용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초사극, 남혁, 두 당주에게 가르침을 받도록 하라.”

유목공은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희가 대내의 업무를 보는 것은 삼 년의 기간이다. 그 안에 가장 재량이 뛰어나고 탁월하게 일 처리를 하는 사람을 후계자로 삼겠다. 결과는 훗날 이 자리에서 공정히 가려지겠지만, 본좌가 무엇보다 확실히 지켜보겠다. 공평을 기하기 위해 맡은 일은 일 년을 기한으로 번갈아 하도록 시킬 터, 하나하나가 다 천하 무림의 안위와 직결되는 일임을 명심하고 신명을 다하도록 해라.”
“명(命)-!”

이에 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복명을 외치며 다시 유목공을 향해 일례를 올렸으니...!
이것으로 마침내 후계에 대한 문제까지 결정이 난 것이다.

      *          

그로부터 한 시진 후.

“핫핫핫... 경사군요! 진심으로 하례 올립니다, 문주!”
“어떤 말로 축하를 드려야 할지...!”

철기보의 접객원.
차기 후계의 물망에 오른 삼인의 처소는 왁자지껄한 웃음과 더불어 천거한 각파의 대표들, 여기에 예속된 백대봉공들이 한데 모여 또 한 번 들썩한 잔치분위기를 이루었다.

“남은 것은 자제(子弟)의 기량 뿐, 모쪼록 크게 공을 세워 우리 쪽에서 차기 맹주가 나오기를 바라마지 않겠습니다!”
“헛헛...! 고맙소. 모두 여러분들의 덕분이오. 미흡한 녀석을 차기의 물망에 올려주셨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구려.”
“마땅히 선출되어야 할 사람을 선출한 것일 뿐이외다. 우리 쪽에서 맹주가 나오도록 합심해서 계속 밀어 봅시다.”
“고맙소. 결코 여러분의 은덕 잊지 않겠소!”

강북, 강남, 중경무림 저 마다 끼리끼리...!
훤백과 개왕 등이 이야기 했듯 어느 틈에 백대봉공들의 사이에 지금껏 보이지 않던 파벌이 이렇게 구축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들 삼인 중 과연 누가 대권을 장악하게 될는지 한 치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                  

하지만 그들이야 잔치분위기를 즐기거나 말거나...!

“아, 씨! 진짜 박 돌아가네, 이거! 빌어먹을 것들이 정말 사람을 완전히 사람을 또라이로 만들고 있어! 이건 정말 놀림만 당한 기분이야!”

도천은 추밀원의 거처에서 시뻘겋게 머리통을 달군 채 울화를 터뜨리고 있었다.
주위에는 훤백을 위시해 사도횡, 황보선, 황보소미, 당삼화, 곽나영이 지켜보고 있었고...!
훤백이 히죽 웃었다.

“형이 화내는 건 처음 보는 걸? 혼천소마 때문이지?”

도천은 눈꺼풀을 뒤집으며 크게 소리쳤다.

“열 받아 돌아가시겠다, 정말! 기실 이것들이 대내 주위에서 회합을 가진다는 서찰을 흘린 게 벌써 사 개월 전인데, 정말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공연히 사람 긴장시켜 발이 부르트게 오가게나 했지 그림자조차 볼 수 없잖냐!  덕분에 나만 실없는 놈이 된 데다 앞으로 얼마나 더 지역순시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미칠 지경이다!”

그러했다.
말 그대로 도천이 황보세가로부터 첩지를 발견해 태화로 달려오기까지 벌써 넉 달째.
하지만 정작 혼천소마들은 털끝만치도 종적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니 울화가 안 치밀 수 없었다.
부드득! 이를 갈았다.

“혹시 이것들이 사람 실없이 만들려고 장난친 건 아닐까?”

훤백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렇다면야 잘됐잖아. 사실이라면 바보야 됐건 말건 위험성이 없어진 거니까 형의 공로가 커. 위험을 가장 먼저 알아내고 사전봉쇄를 한 주역이니까.”

사전봉쇄...!
하지만 도천의 생각은 달랐다.
변함없이 달아오른 얼굴로 투덜거렸다.

“결과적으로 문제를 확산시킨 나만 우습게 된 거지 뭐야! 짜샤! 솔직히 경계령을 내리고 난리를 치게 한데는 너도 일조를 했어. 괜히 일의 심각성을 자꾸만 부추기는 통에...!”

훤백은 히죽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정식으로 사자전에 통고할 일이 아니었던 것 같어. 이렇게 헛물만 켤 바에야 내 선에서 끝내는 게 백 번 나았지. 이런 어이없는 일은 정말 처음이다.”
“아, 그래, 정식...!”

훤백은 약 올리듯 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다 고사하고라도 첩지 이후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다는 점부터가 가장 수상쩍거든? 정말 잠적했다 치더라도 그들이 개별적으로 흩어졌다면...! 어디서 누구의 눈에 뜨이더라도 한 사람 정도는 뜨였겠지? 하지만 칠십 명이 넘는 자들이 한꺼번에 자취를 감췄어. 다시 말해서 이건 절대 흩어졌다고 볼 수가 없는 거야. 그렇다면 역시 회합을 한 것이 사실이고 전원이 어딘가 한 곳에 웅크리고 있다는 답이 나오지. 분명 이제 곧 사고를 칠거야.”

도천은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믿었지. 그러나 놈들은 내내 기척조차 없고...!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경계령을 내리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 이제란 게 언젠데?”
“하하... 그야 나도 잘 모르지만! 상대는 청사의 서백이야. 그런 자가 생사를 걸고 싸움을 벌일 판에 섣불리 일을 시작하겠어? 보다 용의주도하게, 완벽히 기회를 기다려서 단숨에 치명타를 가하겠지.”
“…….”
“그렇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야. 현재 무림맹은 큰 실책을 범하고 있어. 내가 서백이라면 절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아. 그러니 터지길 원한다면 며칠만 더 참아봐. 아마 터져도 머리가 돌아버릴 정도로 크게 터질 테니까.”

도천의 표정이 떫떠름하게 변했다.

“지금 위로하는 거냐, 악담을 하는 거냐? 말하는 것하고...! 실책이란 건 일방처리 된 후계자 문제겠지?”

훤백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보형에게 들으니 결국 백대봉공의 선에서 일방적으로 모든 게 결정 지워졌대. 더불어 후계자 추천까지 다 끝난 상태고. 이건 크게 잘못된 거야.”

무슨 소리냐는 듯 도천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 일이라면 나도 들었다만 어차피 될 일이 된 거다. 번거로움을 없애려는 차원에서 선 처리한 후 추후에 동의를 구하기로. 백대문파의 힘이 무림에서도 최강임을 알면 전혀 문제될 게 없어.”

훤백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형도 꽤 단순히 생각하는군. 아무리 결과가 같다 쳐도 말이지, 절차라는 것은 밟아야 할 순서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야. 세상사란 게 아주 미세한 그 순서 차이로 한두 번 뒤바뀐 게 아니거든? 다시 말해 세상일이란 것은 아무리 다수가 원한다 해도 분명 소수의 반대자들도 있게 마련이란 말이야. 한데 이번 일은 이런 소수를 완전히 무시하고 들어간 거지. 존속되길 원하는 사람이라 해도 이런 식의 일처리라면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반드시 문제가 불거져 나올 소지가 많아.”

도천 역시 이 점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래봐야 어차피 결정 난 것을 어쩌겠어? 그렇다 치고 처진다면? 네가 서백이라면 어떻게 처신할건데?”
“히히... 적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잖아? 허를 봤으니 당연히 찔러 명분으로 삼아야지.”

훤백은 서슴없이 말을 이어갔다.

“내가 서백 같으면 이렇게 말할 거야. ‘무림맹과 유목공은 지난 날 대방파의 횡포에 맞서 싸웠다 큰 소리 치지만, 오늘에 와서는 그들이 지난날 대방파들이 일삼았던 짓들을 그대로 저지르고 있다. 백대방파의 지지를 등에 업고 천하에서 가장 엄중한 맹의 존속과 후계자 문제를 자신들 중심으로 처리하는 등, 타 군소방파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동을 보이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대협인척 하는 모습을 더는 참을 수가 없다. 이에 우리도 지난 날 그가 했던 것을 똑같이 돌려주겠다!’ 어때?” 

황당한 소리...!
이는 유목공이 직접 듣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었다.
기실 유목공은 지난 날 무림 대방파들의 횡포에 맞선다는 명목을 등에 업고 오늘에 이르게 된 인물인 셈이다.
이런 경우라면 역시 전 날 군소방파들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일을 처리했던 대방파가 했던 것과 똑같은 우(愚)를 범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따라서 이것을 약점 삼아 서전(序戰)의 명분을 삼는다면 분명 무림맹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

순간 모두 할 말을 잊은 채 훤백의 얼굴만을 바라봤다.

“무섭군...!”

황보선이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경우가 달라. 그들은 악명 높은 혼천소마이니 아무리 명분이 좋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말이 먹힐 리 없잖아? 특히 실수라 해야 뿐, 이런 걸 횡포라 할 일도 아니고.”

그러나 훤백은 씨익, 웃었다.

“안 그래. 오히려 악당들이기에 더 잘 먹힐 수도 있어. 알다시피 그들은 무려 이십 년 간을 척살령에 쫓겨 왔잖아. 따라서 그들도 이젠 우리도 할 말이 있다는 거지. ‘이렇듯 자신의 허물은 살피지 못하는 자들이 우리들만 핍박하니 우리도 이젠 더 이상 쫓기지만은 않겠다. 이렇게 천하대사를 멋대로 좌우하려는 무림맹과 백대문파를 치겠다하는 명분이 생긴 거야.”

명분!

“이게 무서운 거야. 다시 말해 우린 이런 멋대로 행정을 하는 무림맹과 백대문파만 표적으로 삼을 것이니 여타의 인물들은 개입하지 말라는 은근한 뒤띰도 되고.”

무림맹과 백대문파만 적으로!
실로 대단한 두뇌가 아닌가.
기실 이 이야기라면 지난 밤 서백의 입에서도 흘러나온 바 있었으니, 그야말로 장군에 멍군! 서백의 심중을 확실히 꿰뚫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따라서 명분이 생긴 만큼 위험도는 더욱 커지는 거야. 우선 이 일을 핑계 삼아 그들이 의외로 무림맹에 큰 치명타를 가할 경우 군소방파의 인물들은 은근히 겁이 날 마당에, 그들이 이런 명분까지 가졌으니 모른 척 할 수가 있다는 거지. 즉 이걸 정도(正道)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그냥 무림맹과 백대방파에 쌓아온 한풀이라 일소할 수가 있다는 거지. 반대로 이쪽은 실수를 했으니 할말이 없고, 혼천소마에게는 도처에 숨어있던 사마외도의 세력들이 명분에 따라 같이 동조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이렇게 되면 일이 천파만파로 번지게 되는 거지.”

모두의 간담이 한 번 더 크게 써늘해졌다.

“확실히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긴 한가?”
“없길 바래야지. 가장 좋은 건 역시 그들의 겁을 먹고 그대로 잠적한 것이겠고, 아니라도 서백이 이 정도로까지는 교활하게 일을 벌이지는 않길 바랄 수밖에.”

도천이 표정이 점차 납덩이 같이 굳어졌다.

“봉쇄할 방법은? 너라면 어디서부터 일을 벌일 건데?”

훤백은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까지가 한계야. 이렇게 되면 봉쇄할 방법이란 건 전혀 없어. 혼천소마라는 자들이 워낙 강력한 무위를 지녔을 뿐더러 근거지조차 제대로 가지고 있지 않잖아. 있다해 봐야 고작 서백 하나뿐인데, 그나마 살수집단이라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알 수도 없지. 이런 자들이 뭉쳐 다니며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사고를 치면 막아낼 방법이 어디 있겠어? 고스란히 깨지는 수밖에.”
“…….”
“일을 벌일 기회도 지금이 가장 좋아. 무림맹에서 허를 노출했으니 명분도 있고, 우선 목표가 될 백대방파의 수뇌들도 대부분 여기에 모여 있어. 또한 그들은 이곳 어딘가에 모여서 회합을 가졌으니, 그렇다면 수뇌들이 흩어질 때를 기다려 파리 잡듯 잡아야지. 솔직히 이건 나도 처음엔 생각하지 못했던 건데 무림맹에서 너무 완벽히 기회를 줘버린 거야. 막을 수 있겠어?”

먼저 이야기했던 완전한 기회란 게 이것이었던 건지...!

“그런...!”

도천은 머리 전체가 파랗게 변해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빽, 소리쳤다.

“명분은 그렇다 치고... 정말이라면 어쩌냐 이 일을? 모인 방파의 대표들만 해도 무려 일백이다! 이런 수효라면 아무리 대내에 사람이 많다고 해도 일일이 호위해 줄 수가 없어...! 그렇다고 사람을 총 동원시켜 호위를 할 경우에는 놈들이 본 성을 치고 올 거고...! 그렇다고 누구 한두 사람만 호위를 해서 집으로 보내줄 수도 없고...! 또 빈 집에 불 놓으라고 그쪽 방파 사람들에게 몽땅 호위하러 오라고 할 수도 없고...!”

그야말로 완전한 궁지!
훤백은 이것조차 이미 계산에 넣고 있었던 듯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양수 겹장이야. 서백이 진짜 백대문파 대표를 칠 것 같으면 무림맹은 이제 죽었어. 분명 군림대회 보류하는 게 좋겠다고 했지?”

그야말로 황당...!
훤백은 휙, 고개를 저었다.

“어쨌건 시작되면 봉쇄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 전에 하려면 오직 하나뿐이야. 속히 혼천소마에게 사면령(辭免令)을 내리면 돼. 지금까지 지은 죄를 모두 탕감해 주는 거야.”

소마들의 죄를 탕감...!

“말 되냐, 시방...?”

도천의 안색이 핼쓱해 졌다.

“혼천소마가 저지런 악행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한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예측해서 이런 자들에게 사면령을 내린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도...! 특히 혼천소마에게 사면령을 내린다면 무림전체의 공적(共敵)들을 다 사면해줘야 한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무림맹에서 할 수 있다고 보는 거야?”

훤백 역시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대책이 없다고 했잖아? 어쨌건 난 더 할 말이 없어. 군림대회 보류하자고 했고...! 그래서 황보가주께도 지난 밤 속히 떠나시라고 일러드린 거야. 관구를 죽게 했으니 서백은 누구보다 먼저 황보가주님을 노릴 거니까. 하지만 무사히 가셨으니 다행인 거지.”
‘댁에...!’

황보선과 황보소미의 얼굴에 순간 수월치 않은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실제로 지난 밤 서백의 회합을 보더라도 황보욱은 확실히 훤백으로 인해 목숨을 구한 게 분명했다.
다만 아직은 모두가 이런 심각성을 피부로 직접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이 일을...! 대체 이 일을...!?”

도천은 어쩔 줄 모르고 마구 말을 더듬어 댔다.
분명 혼천소마의 잠적에 놀림을 받았다고 투덜거리기는 했으나 이렇게 되면 실로 예삿일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안되겠어! 맹주를 뵙고 또 상의할 수밖에…”

도천은 급기야 비명 같은 외침과 함께 다시 몸을 날려 바깥으로 쏘아나갔다.

     *             

유목공은 무림맹의 존속여부와 차기맹주의 선출문제를 마무리 짓고 큰 짐이라도 내려놓은 듯한 심정으로 처소에 머무르고 있었다.

“어째...!?” 

한데 허겁지겁 도천이 찾아와 이런 말을 하자 크게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도저히 말도 안 되는...! 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더냐?”

도천은 거듭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훤백입니다. 새로 임명된 원사...! 놈들이 지금껏 잠자코 있은 것은 모인 대표들이 흩어질 때를 노린 건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그 아이가...!”

유목공의 눈빛이 더욱 크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사실이라면 이것은 확실히 예사의 일이 아니었던 것! 
잠시 뭔가를 생각해 보는 듯 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다면 막을 방법은...?”

도천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측은 되지만 방법이 없다고...! 사실 모인 대표들이 백여 명이 되옵는데 일일이 호위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그들 방파도 크게 염려가 되는 만큼 대거 출동하라고 할 수도 없고...! 속하의 힘으로서는 역부족이라 맹주를 뵌 것입니다.”

이에 유목공 역시 천천히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 밖에 또 다른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다만 혹시 놈들이 그런 기습을 하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하더군요.”

물론 이것은 거짓이었다.
실로 훤백은 무림맹의 실책과 서백이 그것을 명분 삼을 것이라는 것까지 모두 이야기했지만, 그러나 이는 유목공에 대한 비난이 되는 셈이라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지금이라도 그들에게 사면령을 내려주면 되지 않을까 하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유목공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삼척동자도 알다시피 혼천소마의 죄는 크다. 이러한 그들을 사면해 준다고 하면 천하는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고 마는 거지. 무림맹 자체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야.”

도천은 입술이 바싸바싹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하오나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진다고 하면... 맹주님의 생각으로는 막으실만한 대책이...?”

유목공의 안면근육이 무겁게 씰룩였다.

“설마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 믿겨지진 않지만... 사실이라면 솔직히 나로서도 대책이 없다.”

유목공은 한 번 더 뭔가 깊이 생각에 잠기더니 한참이 지난 후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도천...!”
“하명하십시오.”
“이 일을 아는 사람이 너와 이원사 외에 또 누가 있느냐?”

도천은 유목공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말을 돌렸다.

“아무도 없습니다. 훤백이 워낙 과묵할뿐더러 이런 이야기는 오로지 속하와 상의를 하기에...!”
“다행이로구나.”

유목공의 얼굴에 다소 안도의 기색이 돌아왔다.

“어쨌건 알다시피... 이 일은 첩지 때의 보고와도 같다. 모든 게 예상일 뿐, 시작되지도 않은 일이며 정말 벌어질지 조차도 알 수가 없지. 또한 벌어진들 속수무책이라 막아낼 방법도 없고. 각파의 문주들은 벌써 하나씩 흩어져 돌아가고 있는 상황인데 지켜줄 수가 없으니...! 그렇다고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으니 그냥 각자 알아서 조심해서 가라고 할 수도 없잖겠느냐? 그야말로 죽어가는 쥐에게 고양이가 죽지 말라고 해주는 꼴인 것이야.”
“하오면...?”

도천이 답답하여 묻자 유목공은 잠시 망설이다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람이란... 더러 어떤 일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인 것 같구나.”

도천의 안색이 홱, 일변했다.

“모른 척해야 된다는 것입니까!?”

유목공의 표정이 더더욱 굳어졌다.

“이 일은 벌어질지 않을지 조차도 모르는 일이다. 벌어진다 해도 전혀 대책을 세울 수 없고. 이럴 경우라면 아예 몰라야 하는 것이다. 모르는 자에게야 죄가 없는 법이지.”

실로 무책임 한 말이지만, 어찌 보면 또한 합당한 처사이기도 했다.
벌어져도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미리 알아서 무엇 하겠는가?
말 그대로 우리가 힘이 없어 너희가 죽게 될지도 모르니 부디 죽지 말고 무사히 돌아가라 할 수는 더욱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가장 문제는 역시 이게 예측에 지나지 않을 뿐, 일이 정말 벌어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
하나 사람이란 게 이런 피 내음을 맡고서야 결코 마음이 편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오면 모르는 척 다른 명목을 대고... 그중 몇몇이라도 호위해주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내외 육 당과 속하가 나서면 일, 이십 명 정도라도 지킬 수 있을 듯 하온데...?”

백 명 중 일, 이십 명...!
유목공은 어두운 신색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대체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이자는 것이냐? 특히 사실이라 해도 그들 역시 일백여 대표들을 모두 습격할 수는 없을 터인데 누구를 치고 들어올지 알고? 다시 말해 우리가 열명을 호위할 경우 다른 열명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옳은 견해였다.
공정함이 우선해야 할 무림맹이 대체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 것인가?
어떤 수를 써도 돌아올 것은 오로지 손가락질 밖에 없는 것이다.

“…….”
“어쩔 방도가 없으니 모르는 것으로 하자. 예측뿐인 일이기도 하지만 막을 방도도 없는 바에야...! 지금으로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장장 이십여 간에 거쳐 실수 없이 무림을 영도해온 노맹주 유목! 그러나 지금 그의 음성과 노안에 왠지 기운이 없었다.
도천 역시 이러한 그의 신색을 지금껏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이에 금시 소나기라도 쏟아져 내릴 듯 어두운 표정으로  포권지례를 취했다.

“그리하겠습니다. 달리 도리가 없으니...!”
“본좌 역시 이런 일은 평생 처음이다. 그런즉 이원사에게도 가서 각별히 주의하도록 일러라. 아니면 속수무책인 일에 돌아올 책임조차 피할 도리가 없다고 말이다. 네가 끌어들인 아이이니 네가 입막음을 해줄 수밖에...!”
“그리하겠습니다.”

유목공의 표정이 비로소 다소 밝아졌다.

“더불어 수하들에게는 한시도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게끔 각별히 주의를 주도록 해라.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소마들이 잠적한 게 분명한 것이니 경계령을 풀겠지만, 일어난다면 놈들이 또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그 아이, 실로 지혜가 깊구나. 서백이 그가 아니길 바란다.”

도천은 한 번 더 깊숙이 허리를 조아렸다.
그는 결국 아무 답도 얻지 못한 채 다시 추밀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           

침중하기 그지없는 표정의 도천을 보며 훤백은 씁쓸히 입을 열었다.

“모르는 것으로 하자고?”
“도리가 없었어.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훤백은 골똘히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잘못된 거야. 혼천소마가 운집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군림대회를 포기했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난 모르겠어. 전에 호면천황, 우화동녀를 한 번 봤지만 혼천소마가 진짜 그렇게 강한 거야?”

훤백의 물음에 도천은 설레설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놈들이 셋이면 현 무림에서 상대할 만한 사람이 오로지 맹주님 부자(父子)뿐일 거다. 그런 놈들이 칠십여 명이라니 그래서 나로서도 생각조차 하기 싫은 거지. 부디 그대로 잠적해 주기만 바랄밖에...!”

뭔가가 안 터진다고 투덜댔던 그였으나 막상 불이 떨어지자 헤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서백은 이미 완벽히 기회를 잡고 공격만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니 역시 그것은 희망사항.
급기야 훤백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무림은원에 휘말리기 싫었어. 말했듯 난 무림인이 될 생각도 아니었고, 이곳도 구경이나 하려고 왔던 것이니까. 하지만 형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부득이 조금만 같이 해보자, 그럼. 난 진짜 내 속을 누구에게 보이기가 싫은데...!”

순간 도천의 얼굴에 번쩍, 희색이 돌아왔다.

“뭔가 방법이 있는 거야?”

훤백은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다시 말해도 없어. 다만 고스란히 앉아서 몽땅 피박을 쓸 수는 없으니까 나름대로 뭔가를 조금이라도 해서 화풀이라도 해 보자는 거지.”
“좋으니까 말해 봐!”

그러자 훤백은 곧 황보선, 사도횡, 황보소미 등 모두에게 은밀히 뭔가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말한바 대로 역시 그다지 속 시원한 수단은 아니었던 듯...!
도천의 어두운 표정은 끝내 풀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 날 저녁!
급기야 운집했던 무림명숙들은 하나하나 흩어져 다시 각자의 방파로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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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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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머루와들꽃 | 작성시간 21.11.27 감사합니다.
  • 작성자명 소 | 작성시간 21.12.03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 작성자장군바위 | 작성시간 21.12.14 잘읽었습니다
  • 작성자오랑유탄 | 작성시간 22.02.12 즐감요
  • 작성자행복한인생 | 작성시간 24.09.24 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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