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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방

꿈털되는 바람 제77장

작성자검은 눈동자|작성시간22.03.14|조회수197 목록 댓글 6

제77장

 

 

 


하우돈의 얼굴에 감탄의 표정이 어렸다.

 

귀주성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흑사파의 잔여병력을 처리하기 위해서 전서구를 날리는 곳을 먼저 점령하라 하였던 남진룡의 치밀함에 대한 놀라움이다.

귀주성에 흑사파의 인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전혀 대처방안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게 능력인가?'

처음에야 운이 좋아서 각주자리를 꿰찼다지만 신룡각을 이끌어 가는 것은 운만으로 되지 않는다.

천 명이 넘는 인물들에게서 존경심을 얻어내야 하는데 단 한번의 전투로 남진룡은 그 모든 것을 얻어냈다. 대부분의 부하들이 인정하는 진정한 신룡각주가 된 것이다.

"각주님! 이런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수하 한 명이 가져온 종이 뭉치를 받아든 남진룡의 얼굴이 흠칫 변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그 종이 뭉치를 하우돈과 군무해에게 넘겼다.

"이것은…."

받아든 종이 꾸러미를 본 하우돈과 군무해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사천에서 암약하고 있는 암천회(暗天會)의 모든 것이 들어있는 비밀 문건이었다.

암천회(暗天會).

청성파, 점창파, 아미파 등 구대문파 중 세 곳과 당문이라는 엄청난 세력이 있는 곳에서 그 뿌리를 내리고 있는 천마맹의 한 기둥.

철저한 점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어 회에 소속된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이 안 된다고 알려진 문파이다.

그런데 그들의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는 문건이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각주님. 우리가 이곳을 점령한 사실은 아직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치자는 말입니까? 하지만 맹에 먼저 연락을 해야…."

"그때는 이미 늦다는 것을 각주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우돈과 군무해가 암천회의 공격을 주장하고 나섰다.

 

맹에 보고를 하고 다시 지시를 받는 시간이면 흑사파의 멸망이 알려질 것이고 암천회도 거점을 바꿀 것이라는 말이다.

"사천에 있는 세 개 문파도 하지 못한 일입니다."

구대문파 중 세 개파도 어쩌지 못한 암천회를 신룡각에서 제거하면 그 공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더구나 지금은 전쟁의 시기가 아니던가. 신룡각의 위상이 더욱더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힘든 길이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사천까지는 먼길이니까요. 일단 오늘 일을 먼저 해결하고 다시 상의합시다."

그날 이후 귀주성에서 흑사파는 사라졌다.

연통을 받고 본파로 귀환하던 흑사파의 잔여병력은 매복해있던 신룡각 인물들에 의해서 전원이 제거당하고 밖으로 나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수하들의 사기는 어떻습니까?"

"다음 작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사기 충천입니다. 천마맹의 두 세력을 우리 손으로 없애는 것입니다. 맹의 노인네들도 하지 못한 일을요…."

"좋습니다. 오늘밤 바로 출발하지요."

 

남진룡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어렸다. 자신의 의도대로 되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하우돈과 군무해가 또 한가지 간과하고 무시해버린 점.

암천회의 비밀 문건이 왜 흑사파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파악할 수 없다던 암천회의 비밀이 아니던가.

그러나 자신들이 세울 공에만 관심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

 

* * *

 

서안 모산파의 멸망과 낙양 설가장의 몰락이후 또 다른 소식이 중원을 휘젓고 있었다.

천마맹의 주축이던 귀주 흑사파와 사천 암천회의 멸문이 그것이었다.

전의 두 사건과는 달리 이번 두 문파의 멸망은 그 배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천무맹의 신룡각, 젊은 무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그들이 승리의 주역이었고 강호상에는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알렸다.

아무런 배경 없이 신룡각의 각주가 된 팔극도룡 남진룡이 그 장본인이었고 강호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또한 남진룡 같은 영웅을 꿈꾸는 이름 없는 무사들이 하남성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흑사파와 암천회의 멸망은 확전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난세가 도래하고 있었다.

신룡각의 승전보에 대한 강호인들의 환호성과는 달리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바로 전쟁수행의 당사자들인 양맹의 수뇌들이었다.

 

* * *

 

커다란 중원전도.

실물모양을 축소한 듯, 산과 강 등 주요 시설물들이 생생하니 살아있는 것 같은 축적도였다.

전도에서 가장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천마맹이 있는 감숙성에서 하남성의 천무맹까지 이어진 직선화살표 하나와

 

감숙성과 섬서성의 경계선상에 있는 혈마궁, 청해 패천마궁, 서안에 있는 철마궁, 그리고 산서의 나찰마궁에서 섬서성 한곳으로 집중된 네 개의 화살표였다.

 


천마맹의 검마전.

중원전도를 둘러싸고 광뇌 궁유의 설명을 듣고 있는 구마들의 표정이 침통하게 굳어있었다.

천마맹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음이다.

연일 들려오는 소식이 천마맹에 불리한 소식밖에 없었다.

모산파의 멸망과 남궁세가의 등장은 구파일방 중 팔파의 전쟁참여를 불러왔고 낙양 설가장의 몰락은 제갈세가의 부상을 가져왔다.

천무맹에 악재가 되어야할 사건들이 오히려 그들의 힘을 키워주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천마맹에는 불리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흑사파와 암천회의 멸망은 천마맹 전력에 커다란 손실을 가져오게 했다.

흑사파의 멸망은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결과였지만 암천회가 당했다하는 것은 이곳 수뇌부를 다급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암천회는 모든 조직이 분산되어 있어서 다른 곳보다 약한 곳임에는 모두들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천에 기반을 두고 있는 그들은 지하에서 암약하는 점조직으로 구성되어있다. 다시 말하면 천마맹에서 조차 그들의 정확한 근거지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무맹에서는 그들 모두를 파악하고 있었고 신룡각만을 동원하여 몰살을 시켜버렸던 것이다.

천무맹의 정보력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확인된 사실은 천무맹 측에서 전면전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맹 내에 있는 첩자는 모두 제거했느냐?"

검마 요대철이었다. 암천회의 멸망소식에 천마맹에서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천무맹의 첩자를 색출하는 일이었다.

예전부터 이곳에 숨어있던 대부분의 첩자들을 파악하고 있었으나 역정보를 흘리는데 이용하고자 방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 천밀각의 밀정들은 대부분 제거했고 화진악의 정보통만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광뇌 궁유의 말에 그곳에 있던 수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천무맹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천무맹의 첩자가 두 부류가 있다는 말이질 않는가.

정보수집이 목적인 천밀각의 인물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지만 천무맹주인 화진악의 정보원까지 있다함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좋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검마 요대철만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지 별다른 표정 없이 궁유를 쳐다보았다.

일단 초반의 기세는 천무맹에게 완패를 했다. 비록 두 파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맹도들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냉추렴을 제거함과 동시에 확전을 유도하려 했던 천마맹의 작전이 유명무실하게 되어버렸다.

"저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이번 전쟁을 끌고 가야 합니다. 이 전도를 보아주십시오."

궁유가 가리키는 중원전도에는 화살표 말고도 흰색과 붉은색의 깃발이 여러 개가 꼽혀있었다.

"여기 하양 깃발은 우리 천마맹의 세력을 말함이고 붉은색의 깃발은 천무맹세력을 표시한 것입니다."

천마맹이 있는 감숙성에 가장 큰 하양 기를 기준으로 해서 남쪽과 북쪽에 하양의 깃발이 섬서성을 감싸고 있는 형태로 되어있고 그 외의 지역은 거의 붉은색의 천무맹 깃발이 꼽혀있었다.

지도상의 깃발로 보았을 때 천마맹에게 불리한 형세임에 틀림없었다.

"냉추렴을 제거하여 철목승을 전쟁에 끌어들임과 동시에 이곳 섬서성을 장악하는 것입니다."

궁유가 가리키는 섬서성, 구대문파중 화산파와 종남파가 있는 곳이다.

"차라리 사천에 있는 세 개 파를 쓸어버리는 것이 더 유리하지 않겠나?"

지도를 쳐다보던 철마 지청인이 사천성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왕 출병을 하는 바에 두 개의 문파가 있는 섬서보다, 세 개의 문파가 모여있는 사천을 공격하자는 말이었다.

그러나 궁유는 고개를 흔들었다.

"철마전주님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섬서성 공략은 저희들에게 세 가지 이점이 있습니다."

"세 가지 이점이라고?"

"네. 우선 강호무림에서 화산파가 차지하는 위치입니다."

태산북두라 인정하는 소림 무당을 제외하면 구대문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 화산파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화산의 멸망은 천무맹 사기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섬서성을 공략함으로 천마맹이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효과는 팔파의 분열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광뇌의 설명이었다.

"다음은 천마맹에서 천무맹으로의 직선 공격로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감숙성과 섬서성 그리고 섬서성과 하남성은 서로 인접해 있는 곳이다. 따라서 섬서성의 확보는 보급과 기동성에 있어서 유리한 입장에 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우리 천마맹의 전력 분산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사천의 점령은 섬서성과 호북성에 포위되는 형국을 만들지만 섬서성은 천마맹의 모든 세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말이다.

"천무맹에서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할까?"

 

궁유의 작전은 타당성이 있는데 천무맹의 정보력이 문제였다. 암천회마저 파악하고 있던 곳인데 자신들의 행보를 파악하지 못하겠냐는 소리다.

또한 천무맹의 머리가 되고 있는 자들은 제갈세가다. 부맹주였던 설검후가 떠난 자리를 제갈장령이라는 거물이 차지하고 있질 않던가.

요대철의 지적에 광뇌 궁유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갈세가도 저의 의도를 짐작하겠지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심증만 있을 뿐 확신이 없고, 화진악에는 확실한 정보가 있다면요."

"그래서 화진악의 정보통만 살려준 것이었더냐?"

요대철을 비롯한 나머지 구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진악과 제갈세가의 알력을 이용하는 절묘한 방법이었다.

화진악이나 팔파의 입장에서 보면 제갈세가의 발언권이 커지는 것은 그리 달갑지가 않을 것이다.

군사인 제갈수연이 섬서성을 방어하자고 해도 자신에게 확실한 정보가 있는 이상 따르지 않을 것임에 분명하다.

이 작정이 성공한다면 천마맹에 불리한 국면을 단번에 역전시키고 천무맹에는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지금 천마맹에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본대가 떠나기 전에 사천도 공격을 할 것입니다. 결사대만으로 말입니다."

치밀한 작전이었다. 사천을 공격하는 것처럼 꾸미고 그 시간을 이용해서 섬서성으로 모든 병력을 집중시켜 순식간에 친다는 것이다.

천마맹의 외부 문파들은 섬서성과 거의 경계를 이루고 있기에 기동성에 있어서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궁유가 걱정하는 것은 섬서성의 공략보다 그 이후를 방비책을 더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섬서성의 공략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산서성의 공략에 들어가야 합니다. 산서성을 공략하는 쪽이 이번 전쟁의 승리자가 됩니다."

산서성.

섬서성의 북쪽에 인접해 있는 곳이고 하남성과는 북서쪽으로 인접해 있는 곳이다.

즉 천마맹에서 산서성을 공략하게 되면 천무맹을 양쪽에서 공격하는 형세가 만들어지고 천무맹에서 장악하게 되면 천마맹은 포위를 당하는 형국이 된다.

 

두 맹에 있어서 총력전을 펼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거점이 바로 산서성이 된다는 소리였다. 또한 백산 일행이 가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광뇌 궁유와 천마맹의 수뇌들이 섬서성의 점령을 위해 작전을 짜고 있는 바로 그 시간 천무맹에서도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 * *

 

"이제 저들이 어떻게 나올 것 같으냐?"

"섬서성이 더 확실해 보입니다만 사천성도 방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걱정이구나…."

제갈세가의 조손.

무천각주가 된 제갈장령과 군사인 제갈수연 두 사람이 천마맹의 공세에 대한 대응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었다.

정보의 부재 때문이었다. 천마맹에 나가있던 거의 모든 밀정들로부터 연락이 두절되어버렸다.

 

또한 아직 남아있던 몇몇 밀정들은 대대적인 색출작업으로 인하여 더 이상의 활동은 물론이고 연락조차 취할 수 없다는 마지막 전문만 도착했다.

천마맹의 대대적인 공세가 목전에 다가왔는데 맹주를 비롯하여 각 문파 수뇌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적의 공격진로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팔파 중 두 개 또는 세 개 문파의 멸망으로 이어진다.

 

과거의 전쟁처럼 봉문수준이 아니다. 신룡각이 흑사파와 암천회를 멸망시킬 때 너무 잔인하게 처리했다.

완전한 몰살을 시켜버렸던 것이다.

일부 강호인들이야 마인들이 사라졌다며 환호하고 있지만 각 문파를 구성하고 있는 수뇌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환영할 일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문파도 공격을 당하면 바로 멸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구대문파가 천무맹에 협조하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자신들이 창설 모체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과거의 일이다.

정의 수호라는 대의명분(大義名分)으로 이곳에 남아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파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산이 위험에 처한다면 천무맹에 있어야할 이유가 사라진다.

제갈수연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 점이다.

혹여 공격진로를 잘못 잡아 팔파 중 어느 한곳이 멸망하는 사태라도 생기게되면 최악의 경우 십천각의 와해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그 책임은 제갈세가에서 져야 할 것이다. 더구나 더욱 염려스러운 점은 천마맹의 대응이다.

"제가 걱정하는 또 한가지는 천마맹이 주력을 출병시킬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들이 맹을 비우면서 까지 출병할 수도 있다는 말이냐?"

아직은 총력전을 펼칠 시기가 아니라 생각하고 있기에 손녀의 말이 너무 억측처럼 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철혈전신 철목승 때문입니다."

천마맹이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철목승의 존재로 해서 천마맹은 빈집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권력에 관심이 없는 사람임으로 맹이 빈 기회를 타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사람이란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터전인 천마맹이 천무맹이나 기타 다른 세력들로부터 공격받으면 지키기 위해서 나설 사람이란 것이 제갈수연의 판단이었다.

"으음!"

제갈장령의 침음성이다. 천마맹의 축이 되는 세력 두 곳을 멸망시켰고 팔파의 가세 등으로 해서 겉보기에는 유리한 국면 같지만 깊이 따지고 보면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더구나 전쟁에 진 곳은 완전한 멸망이라는 사실이다.

"일단은 가자. 우리가 책임질 필요는 없지 않느냐."

이곳에서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나 큰 사안이고, 자신들만으로 결정할 사안도, 결론을 내릴 수도 없다. 전체회의에서 결정되어야 할 사항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두 분 각주님."

"수고하시는군요."

두 사람을 향해서 정중한 포권을 취하는 내성 경비무사의 행동에 제갈수연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지난 오십 년 간 제갈세가를 치욕스럽게 했던 검문이 없어졌다.

이제는 천무맹에서 제갈세가를 홀대하는 자는 없다. 아니 천무맹뿐 아니라 강호 전체에서 세가를 무시하지 못한다.

그렇게 뛰어넘고 싶었던 남궁세가와 하북팽가도 넘어선 것 같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직 멀었음이야.'

이제 한 걸음 내딛었을 뿐이다. 아직 먼길이 남아있다.

 

외부의 경쟁자들이 아니라 천무맹 내부의 적들을 넘어서야 한다. 그들이 인정하는 최고가 되기 전까지는 쉴 수도 쉬어서도 안 된다.

그녀의 표정에 굳은 의지가 실려있었다.

"어서들 오십시오. 두 분 보기가 좋습니다."

두 사람이 도착한 천명실에는 많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바로 팔파의 수뇌들과 무천각을 구성하고 있는 세가의 대표들이 자리를 함께 한 것이다.

이제 완전한 확전에 돌입했고 천무맹에서도 멸망하는 문파 및 세가가 생길 수 있다.

 

그럴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돌발적인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화진악이 총회를 제의했던 것이다.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과거 구파일방이 끌어가던 시기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제갈 군사는 그 두 곳 중 섬서가 더 유력해 보인다, 이 말이오?"

맹주 화진악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제갈수연이 섬서성이 더 유력하다는 근거로 제시한 내용은 천마맹의 광뇌 궁유가 생각했던 것과 거의 일맥상통했다.

그러나 화진악의 반응은 동의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군사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구려.

 

이 중요한 시기에 밀정들에게 연락이 없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요? 평소에 어떻게 관리를 했기에 이 모양이란 말이요."

지금이 전쟁의 시기이고 모두 하나가 되어 천마맹에 대응해야 함에도 오히려 제갈수연을 견제하는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연륜이 부족해서 그런 모양이외다."

청성파의 풍뢰검객(風雷劍客) 문상(汶常)이었다. 강해진 제갈세가를 견제하기 위해서 화진악과 팔파가 합심해서 제갈수연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럼 맹주님은 사천을 예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잘 들으시오, 군사."

화진악이 제시하는 사천 공략의 근거는 제갈수연이 제시하는 것과는 또 달랐다.

불리한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공격이다.

 

두 개 문파보다는 세 개 문파를 치는 것이 천마맹의 입장에서 보면 훨씬 유리한데 왜 굳이 섬서성을 공격하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철목승에 대한 것도 의견을 달리했다.

철목승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제거하질 못하고 구금만 하고 말았는데 그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맹을 비울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맹주님…."

"아니오. 군사! 이것은 내 독단으로 이러는 게 아니오. 확실한 근거가 있습니다."

화진악이 보여주는 문건은 천마맹에서 날아온 비밀 정보였다.

"이곳에 보면 적의 경로가 정확하게 적혀 있소. 사천으로 말이오."

"그것을 믿으십니까?"

제갈수연이 보기에는 천마맹의 이간계(離間計)였다.

 

천밀각의 비선은 모두 제거하고 맹주의 정보통만 살려둔다. 자신이라도 그런 방법을 쓸것만 같았다.

점점 섬서쪽으로 마음이 굳어지고 있었다.

"맹주님! 중요한 결정입니다. 화산파와 종남파 천백 명의 목숨이 달려있습니다. 천마맹의 이간계입니다."

"무슨 소리요. 내가 일부러 섬서성을 포기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요?"

제갈수연이 계속해서 반론을 제기하자 화진악의 목소리가 커졌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한 것도 아니고 천마맹에 있는 정보원으로부터 온 전갈을 가지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번 결정에 무천각과 천밀각은 반대합니다."

제갈수연이 최후의 수를 던졌다. 만일 섬서성이 공격당하게 되면 모든 책임은 화진악이 져야된다는 것이다.

"좋소. 내가 모든 책임을 지리다. 대신… 내 생각이 옳다면 두 분 각주도 맹주의 권위에 도전한 항명죄로 다스릴 것임을 알아두시오."

 

엄청난 발언이었다. 천무맹의 총회자리에서 맹주 화진악과 제갈세가의 격돌이 일어나고 말았다.

 

번복될 수 없는 약속이 되었다. 무천각의 대표세가들이 보고 있었고 팔파의 수뇌들이 듣고 있었다.

"전서를 보내시오. 사천으로 모든 전력을 집중하라고. 아울러 신룡각주에게도 더 이상 개인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전하시오."

결국 맹주령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더 이상 번복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 공석중인 부맹주직은 당분간 십천각주가 겸임하기로 했소. 폐회하오."

더 이상은 아무소리도 듣지 않겠다는 듯이 화진악이 천명실을 나가버렸다.

"권대협, 추대협!"

천명실을 나가려는 대라운검 권효웅과 종남파의 오뢰검객 추상효를 제갈수연이 불러 세웠다.

"말씀 좀 나눌 수 있습니까?"

"군사는 정말로 그리 생각하십니까?"

"확실합니다. 두 분, 화산에 연락해서 방비를 하셔야 합니다."

제갈 군사, 신경 써주는 것은 고맙지만 우리도 맹주의 의견에 동의하오이다. 아니 동의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

다른 문파의 눈치 때문에 화산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따르기만 하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 현재의 입장에서는 맹주를 지지하고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화산파의 입장이었다.

"알았습니다. 구대협. 하지만 제 이름으로 전서를 보내는 건 말리지 마십시오."

"그리해 주시면 감사할 뿐입니다."

구효운과 추상효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떴다.

 

그들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사천으로 모아졌고 자신들의 문파를 지켜달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맹주의 생각이 옳기를 바랄 뿐이었다.

 


"왜 그리 맹주를 몰아치느냐? 섬서로 확신하는 게냐."

두 사람을 배웅하고 돌아온 제갈수연을 향해 제갈장령이 물었다. 손녀딸의 행동이 너무하다 싶은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확신이 없었는데 맹주의 정보원이 보냈다는 전서를 보는 순간 명백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천마맹의 이간계입니다. 분명 섬서성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천각이나 천밀각은 아무나 맡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무천각과 천밀각의 모든 것을 걸고 맹주와 한판 승부를 벌인 이유였다. 또한 무천각이나 천밀각은 아무나 맡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그녀의 말.

세가의 집합체인 무천각의 각주는 그들이 선택했다.

 

결코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천밀각, 무려 오십 년 동안을 제갈세가에서 운영해온 곳이다.

 

세가인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운영할 수 없다는 자신감이다.

'맹주를 끌어내릴 것입니다. 아니 스스로 물러나야겠지요.'

제갈수연의 목표였다. 제갈세가에서 천무맹을 차지하려는 야망.

"네가 나보다 낫구나…."

제갈장령도 손녀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은 결코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추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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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안가을 | 작성시간 22.03.14 즐독하였습니다
  • 작성자깍두기할배 | 작성시간 22.03.15 감사 합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 작성자큰 바 위 | 작성시간 22.03.15 감사합니다
  • 작성자신두 | 작성시간 22.03.16 즐독 ㄳ
  • 작성자머루와들꽃 | 작성시간 22.06.25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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