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봉] 어머니의 봉숭아 꽃물 작성자물 안 개|작성시간08.02.29|조회수94 목록 댓글 2 글자크기 작게가 글자크기 크게가 어머니의 봉숭아 꽃물 / 김수봉 나는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대학병원 담당의사로부터 암(癌)이라는 마지막 선고를 받은 후, 그 해 5월부터 늦가을까지 그 지루하고 막막하던 나날은 환자인 당신 못지않게 온 가족의 가슴을 바작바작 태웠었다. 치유(治癒) 불능이라고 말하는 의사들도 선뜻 퇴원을 승낙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보자는 소리요, 가족 역시 지레 포기하고 만다는 것은 도리도 아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병실에 누워 계신 채 결국은 헛짓거리가 되고 만 일을 그야말로 백방으로 서둘러 보았던 것이다.한다는 한방의 약은 선 닿는 대로 사 날랐으며 엉뚱하게도 한침(鍼)과 양침, 쑥뜸까지도 시도해 보았으며 전주와 서울 이름 있는 큰 병원은 모두 연줄대어 소개장을 들고 찾아다니기도 했다.3개월이 지나고 4개월째 접어들면서 어머니의 병세는 완연 티가 나게 악화돼 갔다. 본래 육덕(肉德)이 좋으신 어머님이었건만 팔다리부터 야위어 갔으며 정신만이 퀭한 눈과 함께 말짱하여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만 갔다. 당신에게 숨기고 있는 병명도 당신 몰래 침통해 하는 가족들의 얼굴에서 이미 읽고 계시면서도 당신 또한 짐짓 그렇게 모른 체 하셨던 것이다. "설마 내가 그런 병일까 보냐. 나는 안 죽는다. 나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은 몸인데…."삶에 대한 욕망은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불타 올랐다. 건강한 정상인일 때는 하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면 "이놈의 시상 칵 죽어뿔란다. 나 눈 딱 감으면 그만이제." 하고 곧잘 입버릇처럼 하시던 그 말씀도 정작 몸져눕게 되고 날로 쇠약해지시니 한번도 입밖에 내비치지 않았다.몸이 약하면 마음도 약해진다는 말처럼 자살할 수 있는 사람은 가장 건강한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실감됐다.'장병(長病)에 효자(孝子) 없다'는 말이 천만부당한 말일지 모르나 나같이 범상인에게는 점점 체감(體感)으로 저며왔다.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에 결코 못 미침을 뼈아프게 느껴야 했으며, 어느 어머닌들 맹모(孟母)나 사임당(師任堂) 같지 않은 분이 있을까마는 모든 그 아들들이 맹자나 율곡(栗谷)이 될 수 없음이다. 과연 자식도 육신은 다른지라 돌아가신 부모를 두고 서러워라 함이 빈말임을 누가 부인하랴.6개월 째 되는, 병세도 막바지에 접어드는 때에 나는 결국 어머님을 퇴원시켜 시골 고향집으로 모셨다. "결코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인 것입니다. 현대의학의 불가사의(不可思議)인 이 암 퇴치를 위해 세계 각국에선 지금도 끊임없이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내일이라도 신비의 약이 만들어질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의사의 미운 얼굴을 뒤로 남긴 채 나는 병원을 돌아서 나와야 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운명(殞命) 전갈을 받던 날, 나는 의외로 차분했던 것 같다. 모처럼 정돈된 기분으로 직장 근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이발도 하고 목욕도 하고 그리고 잠시 어머니에 대한 근심도 잊은 채. 그때 전화가 왔다고 말했던 것이다.오늘일까 내일일까 하고 초조히 하루 하루를 보내던 나로서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준비를 했고 가족과 함께 고향집으로 내려가면서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나의 눈물은 이미 6개월 전 선고를 받던 날 밤 병원 복도에서 혼자 다 흘려버린 것이다. 그 무너지는 듯한 슬픔, 찬바람 몰아치는 벌판에 혼자 선 것 같은 그 스산한 느낌을 나는 지난 6개월 간의 나날 속에서 맛보았던 것이다.그런데 어머니의 시신(屍身)을 입관하면서 마지막 어머니의 모습에서 나의 오열(嗚咽)은 다시 수렁논 생수처럼 터져버린 것이다. 푹 꺼진 눈, 앙상한 가슴, 그 무지한 암세포는 체내에 번지면서 근육 속의 단백질 성분을 녹아내리게 한다지만 쉰다섯의 그 육덕 좋던 어머니의 몸을 저토록 처참하게 야위게 했단 말인가. 그러나 그보다도 더 아프게 나의 가슴을 쳤던 것은 마지막으로 만져본 어머니의 손, 그 손톱에 남아 있는 봉숭아 꽃물이었다. 그 봉숭아물은 어머님이 발병 초에 병 때문에 한가해진 몸이 무료했던지 어느 날 당신의 손녀인 내 여섯 살 난 딸아이를 데리고 앉아 우리집 꽃밭에 몇 그루 핀 봉숭아꽃을 따서 함께 동여맨 것이었다. 당신께도 있었던 소녀 시절을 생각하며, 지나가 버린 헛된 날들을 아쉬워하며 손가락마다 함께 매었을 그 봉숭아 꽃물. 딸아이는 그 사이 잘도 자라는 손톱을 몇 번이고 깎아내 버려서 흔적도 없이 봉숭아물은 없어졌는데 어머니 손톱의 봉숭아물이 그저 남아 있었던 것은 그 몹쓸 암세포의 발악이 손톱마저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스물셋의 젊은 나이로 단산(斷産)하고 외아들 하나에 온 희망을 걸고 손톱 밑에 때 끼는 줄도 모르고 일에만 묻혀 사시더니 죽음복도 못 받으시고 봉숭아 꽃물로 호사스런 손톱만 지닌 채 마지막 홀로 가신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북마크 공유하기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2 댓글쓰기 답글쓰기 댓글 리스트 작성자축복의땅 | 작성시간 08.03.01 어머님을 보내신 당신의 마음은 슬프시겟지만 그래도 당신은 효도를 다했읍니다 작성자가시버시 | 작성시간 08.03.22 고생만 하시다 암까지... 하지만 다음세계에서는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사시겠죠~~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