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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소설방

벼락맞은 약장수 83

작성자마나슬루|작성시간26.01.07|조회수187 목록 댓글 9

83.스승님과의 추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왜 그러느냐? 그들이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것이냐?"
 
무영은 금령의 물음에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무영과 금령은 은왕곡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곳에 아직도 은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흔적이라도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무영과 금령이 은왕과 혈왕을 찾아 헤매는 동안 뇌룡장 사람들은 은왕과 혈왕을 제외한 나머지를 정리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무영이 거세게 반대했지만, 그들의 고집을 결국 꺾지 못했다.
 
"그들은 강하다.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신선단도 충분히 주지 않았느냐."
 
"그야 그렇지만......"
 
무영의 뇌리에 세 여인이 떠올랐다.

그녀들 역시 뇌룡장 사람들과 함께 은왕곡의 나머지 무리와 혈왕의 그림자들을 처리하기로 했다. 무영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 그런지 너무나 기쁜 얼굴이었다.
 
"그렇게 걱정되거든 이 일을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 도우면 되지 않느냐."
 
금령의 말에 무영이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건 무영도 잘 안다. 다만 이 일이 빨리 끝나지 않을 것 같아 그러는 것이다.

혈왕이나 은왕이 작정하고 숨으면 그들을 찾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무영은 이동하면서도 스스로의 힘을 더 키울 방안을 강구했다. 끊임없이 신선단을 만들었고, 빨리 걸으면서 권을 수련했다.

혈왕이 피를 흡수해 강력해졌을 때, 자신이 약하다면 그의 위치를 알 수 없지 않겠는가.
 
"서두르자. 거의 다 왔으니까."
 
금령의 말에 무영이 걸음을 더 빨리했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은왕곡 입구에 도착했다.
 
"꽤 쾌적한 곳이군요. 산세도 아름답고."
 
무영이 의외라는 듯 주변을 바라보자 금령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은왕도 은환이라는 영단을 만든다. 너도 알겠지만 영단은 이런 곳에서 더 잘 만들 수 있지 않느냐."
 
무영은 금령의 말을 수긍하며 안으로 더 들어갔다. 이곳은 기의 흐름이 좋고 기운이 밀집하는 지형이 곳곳에 위치했다. 무영은 그런 곳을 확인하며 끊임없이 감탄했다.
 
이런 곳이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만일 지금이 아닌 일 년쯤 전에 이런 곳을 발견했다면 당시 훨씬 좋은 신선단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굉장한 곳이군요."
 
"넌 이곳이 자연적으로 생겨난 곳으로 보이느냐?"
 
금령의 물음에 무영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폈다.
 
말을 듣지 않았을 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이곳은 인위적으로 기운의 흐름을 조절한 곳이었다.
 
"정말로 대단하군요! 이것이 은왕의 솜씨입니까?"
 
"이것은 천기비록의 힘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천기비록...... 정말 대단한 책인가 보군요."
 
"대단하지. 그 녀석처럼 재능이 뛰어난 자가 요체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난해한 책이기도 하고."
 
"사형께서도 천기비록을 보셨습니까?"
 
"봤으니 이곳을 만들었을 것 아니냐."
 
무영의 눈이 더욱 커졌다. 설마 천기비록을 금령이 익히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천기비록을 익힌 건 아니니까. 다만 기의 흐름에 대한 것이 궁금해 조금 도움을 받았을 뿐이다.

천기비록의 요체에는 접근조차 못했다. 아니, 겉핥기조차 못했다고 봐야겠지. 어쨌든 덕분에 이런 곳을 만들 수 있었다."
 
무영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은왕곡은 정말로 대단한 곳이었다. 이곳이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니라 금령이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이 더욱 대단했다.
 
무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이곳엔 흐르는 모든 기의 흐름은 한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그곳이 은왕의 연단실이 있는 곳이리라.
 
'연단을 계속 한다면 모를까, 아니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 흐름은 세상이 조화를 깨트린다. 이대로 두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듯하구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내가 굳이 이곳에 온 이유도 곡을 폐쇄해 기의 흐름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함이다."
 
"아, 그렇군요."
 
무영은 그제야 표정에서 걱정을 지웠다. 과연 자신보다 사형의 생각이 훨씬 깊었다. 무영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금령은 그런 무영의 표정을 보며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이런 곳을 발견하면 자신의 잇속을 챙길 궁리부터 할 터인데 어찌된 것이 그의 사제는 세상의 조화를 먼저 챙긴다.
 
'하긴, 그게 사부님의 가르침이기도 했지. 난 그걸 아직도 얻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으니......'
 
금령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무영을 바라봤다. 왠지 또 다른 사부를 보는 것 같았다. 금령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졌다.

은왕곡에는 예상대로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 다만 은왕이 어느 쪽으로 향했는지에 대한 작은 단서 하나를 알아냈을 뿐이었다.
 
은왕이 은환을 만들던 밀실에는 끈적끈적한 느낌이 들 정도로 기의 밀도가 높았다. 은왕은 그곳에서 은환들을 챙기느라 한참 동안 머물렀을 것이다.

그때 그에게 달라붙은 기운들이 끈끈하게 이어져 있었다.
 
물론 은왕이 있는 곳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이동한 방향을 찾을 수는 있었다. 은왕은 이곳을 떠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했다.
 
"일단 이곳을 폐쇄할 테니 곡에서 나가 있어라."
 
금령의 말에 무영은 두말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무영이 도와줄 수도 있었고, 무영의 힘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금령이 저지른 일이니 그가 마루리하는 것이 옳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금령의 마음에 앙금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은왕곡에서 나간 무영은 여전히 늘어져 있는 기의 흔적을 눈으로 쫓았다.

그러면서 은왕의 밀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알아차리지도 못한 흔적인데 어떻게 지금은 이렇게 선명한지 생각해 봤다.
 
'재밌군. 기의 성질이 완전히 다른데 인식을 못하고 있어. 그러면 다른 기 역시 마찬가지인가?'
 
무영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주변의 기를 좀 더 자세히 살폈다. 과연 같은 자리에 있는 기인데도 조금씩 성질이 다른 기들이 모여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였다. 애태껏 기는 모두 같다고만 생각했다. 근본적인 성질은 같았으니 당연했다.
 
'생각해 보면 마기(魔氣)나 사기(邪氣)도 다 같은 기운이다. 그저 성질이 다를 뿐이지.'
 
무영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모두 어차피 같은 기라면, 그것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자신이라면 겉에 두른 성격을 바꿀 수 있을 것 아닌가.
 
순간, 무영은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느낌을 받았다. 뇌리가 새하얘지더니 주변에 떠돌던 수많은 기를 흡수했다. 그 기운들은 모조리 무영의 정수리로 빨려 들어갔다.
 
쉬아아아악!
 
어찌나 세게 빨려 들어가는지 거센 바람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은왕곡을 폐쇄하고 밖으로 나온 금령은 무영 주변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고 기겁을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놀라본 것은 사부의 능력을 확인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세상의 모든 기운이 무영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이런!"
 
금령은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자신의 단전에 잠자던 기운까지 거세게 들끓어 오르더니 맹렬히 무형에게로 달려갔기 때문이다.
 
한참을 물러나서야 간신히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안간힘을 써서 몸의 기운이 움직이지 않게 해야 했다.
 
금령은 혀를 내둘렀다. 백여 장이나 물러났는데도 기의 흐름이 너무나 맹렬했다. 마치 온 세상의 모든 기운을 빨아들이려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신경을 안 쓰면 큰일 나겠군.'
 
지금도 엄청난 기가 무영에게로 흘러가고 있다. 금령은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의 기운을 통제했다. 그 의지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모든 기운을 무영에게 빼앗기고 말 것이다.
 
"생각보다 좋은 수련이 되겠군."
 
금령은 그렇게 의지를 다지며 아주 천천히 무영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의지력과 기에 대한 통제력을 한 단계 높일 기회였다.

무영은 미안한 표정으로 금령을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됐다.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다. 나쁜 일이 아니지 않느냐. 오히려 축하를 할 일이지. 그래, 얼마나 경지가 높아진 것 같으냐? 예전의 사부님 정도는 되느냐?"
 
금령의 물음에 무영이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금령은 무영의 말에 슬쩍 웃었다. 무영의 성격에 설사 예전 사부의 경지를 넘어섰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령은 무영의 대답을 통해 대충이나마 유추가 가능했다. 만일 무영이 정말로 사부의 능력에 못 미쳤다면 대답이 저러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어림도 없다고 얘기했겠지. 그렇다는 것은......'
 
금령의 눈에서 금빛 광망이 일어났다. 그렇다는 것은 무영이 예전 사부의 경지를 넘어섰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니,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거의 근접했을 것이다.
 
'고작 스물세 살이라고 했던가?'
 
금령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무영을 바라봤다. 금령의 눈동자에는 경탄의 감정이 어려 있었다.

자신이 백 년 동안 노력해도 얻지 못한 것을 무영은 고작 이십삼 년만에 얻었다. 실제 수련한 기간만 따지면 더 대단하다.
 
'고작 십 년 수련으로......'
 
금령이 무영을 빤히 바라보자 무영은 더욱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금령은 그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어째 전혀 달라지지가 않는구나."
 
어쩌면 그래서 이런 대단한 경지에 이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영은 금령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금령은 다시 한 번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됐다. 앞으로 사부님의 경지를 반드시 넘어서도록 해라. 그것이 사부님이 가장 원한는 바일 테니까."
 
무영이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반드시 그리 하겠습니다."
 
금령의 입가에 걸린 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
 
"자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금령이 주위를 살피자, 무영도 다시 한 번 신중히 주변의 기를 확인했다.
 
방금 전 무영이 주변의 모든 기운을 끌어들였기에 은왕이 남긴 기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백 장이 넘는 거리에서도 마치 폭풍이 몰아치듯 기가 빨려 들어갔으니, 은왕이 남긴 미약한 기의 흔적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무영이 순간적으로 많은 기를 흑수한 덕에 근처에 기의 공백 상태가 만들어졌고, 무영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사방에서 기가 휘몰아쳐 들어왔다.

즉, 현재 이곳에 있는 기는 완벽히 새롭다는 뜻이었다.
 
무영은 그 와중에도 눈을 크게 뜨고 은왕이 남긴 기의 흔적을 찾았다.
 
그 끈적끈적한 기운은 무영의 뇌리에 완전히 각인되었기에 다시 본다면 반드시 알 수 있었다.
 
"이거 쉽지 않구나."
 
금령은 결국 포기하고 무영을 바라봤다.

무영은 여전히 기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금령은 문득 새로운 경지에 들어선 무영이라면 기감도 탁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에서 찿지 말고 멀리서 찾아봐라."
 
금령의 말에 무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기감을 이용해 아까의 기운을 찾아보란 말이다. 모르긴 해도 나보다 네가 더 뛰어날 것이다."
 
그제야 무영은 금령의 말을 알아듣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감각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기감이 확대되었다.
 
무영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기감을 넓혀갈 수 있었다.

무영은 기감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점차 감각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는 더 넓혀봐야 의미가 없었다.
 
'이렇게 퍼트렸는데도 그 기운을 찾을 수 없구나.'
 
하지만 무영은 실망하지 않고 다시 방법을 강구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넓히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일종의 예감이었다.
 
무영은 조금 더 궁리하다가 이내 기감을 더욱 넓혀 버렸다. 그러자 감각이 지나칠 정도로 희석되어 버렸다. 감각에 그 어떤 기운도 걸려들지 않았다.
 
무영은 숨을 한 번 고른 후, 뇌기 한 조각을 터트렸다.
 
빠직!
 
마치 호수위에 파문이 일듯 기파가 형성되어 사방으로 밀려났다.
 
뇌기를 머금은 기파가 무영을 중심으로 감각의 끝까지 훑고 지나갔다.

무영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생각해던 대로였다. 이런 방법을 쓰면 더 먼 곳도 살필 수 있을 듯 했다.
 
무영은 기감을 더욱 많이 확장했다. 그리고 뇌기를 터트렸다.
 
빠직.
 
지이이잉.
 
뇌전의 신호가 기감의 끝까지 여행했다. 무영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찾았습니다."
 
금령이 놀란 눈으로 무영을 바라봤다. 설마 정말로 찾아낼 줄은 몰랐다.
 
"찾았으면 이렇게 있을 필요가 없지. 어서 가자."
 
무영이 앞장서서 달려가자 금령이 그 뒤를 따랐다. 금령은 무영의 뒤를 따라가며 정말로 놀랐다.
 
무영이 가진 기감의 한계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멀었기 때문이다. 금령이 원래 생각했던 한계만큼은 더 갔을 때, 무영이 멈춰 섰다.
 
금령은 근처를 살펴 가느다란 기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처음 은왕곡 근처에서 본 것보다는 훨씬 희미했지만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끈끈했다.
 
"가자."
 
이제부터는 이 흔적을 따라가면 된다. 흔적을 끝까지 따라가도 은왕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기의 흔적은 시간이 지나면 점차 사라지니까 말이다.
 
무영은 금령의 뒤를 따라가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방금 전의 경험은 너무나 새로웠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듯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급해 기를 찾는 데 집중했지만, 막상 일이 끝나고 나니 억눌렸떤 감정이 급격히 터져 나와 가슴이 떨렸다.
 
무영은 몇 번이나 깊이 숨을 쉬고 나서야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막 마음을 정리했을 때, 금령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부터 관도로 흔적이 이어진다. 아마 중간쯤에 끊겼겠지."
 
금령의 말에 무영이 흔적을 살폈다. 과연 금령의 말대로 관도를 따라 기의 흔적이 이어지고 있었다. 금령은 무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다시 한 번 기감으로 살펴봐라.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파악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느냐."
 
무영은 금령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고 기감을 퍼트렸다. 이번에는 처음과 달리 관도를 따라 길게 기감을 늘였다.
 
무영은 쭉쭉 뻗어나가는 기감을 느끼며 은왕의 흔적을 따라갔다. 그러다 감각이 한계에 달했을 때부터는 뇌기를 이용해 추적을 계속했다.

그 한계도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었지만 그 전에 추적을 멈춰야 했다.
 
은왕의 흔적은 관도를 따라 가다가 중간에 방향을 한 번 틀었다.

그쪽을 따라 계속 쫓아가니, 점차 희미해지다가 이내 흔적이 사라져 버렸다. 무영은 눈을 뜨고 금령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금령은 무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둘러 움직였다. 무영이 설명한 대로 향하면 그 끝에 동정호가 나온다.

금령은 동정호를 바라보며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동정호는 너무나 넓었다.
 
이제 더 이상 은왕을 추적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은왕을 제대로 따라왔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쩌면 중간에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향했을지도 모른다.
 
금령이 가만히 서 있자, 무영이 금령에게 다가갔다.
 
"왠지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영의 말에 금령이 놀란 눈으로 무영을 바라봤다. 무영은 금령과 눈이 마주치자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예전에 혈왕과 스승님에 대한 말씀을 해주시지 않았습니까. 혈왕이 강해지지 못한 이유가 스승님이 찾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입니다."
 
금령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설마 은왕의 위치를 알겠느냐?"
 
"정확히 위치를 아는 건 아니고, 그저 희미한 향(香)이 느껴집니다. 은환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으니까요."
 
무영은 드넓은 동정호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향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금령은 무영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동정호에 있는 섬들 중 하나에 있다는 뜻인가?'
 
금령은 그렇게 생각하며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벽운학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돌아온 남궁상룡을 크게 치하해 주었다. 남궁상룡은 정말로 큰 공을 세웠다. 혈교가 이끄는 철강시들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별동대로 데려간 백 명의 무사들을 모조리 죽었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무사들 중 몇몇은 다시 철강시가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공은 정말로 대단했다.
 
벽운학은 이제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하기로 했다. 무림맹의 힘을 집중해 정면에서 혈교를 박살내기로 했다.
 
그들이 감춰둔 힘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현재 무림맹에 모인 전력으로 싸우면 적이 어떤 수를 부리든 이길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들은 지금 동정호 근처에 모여 있습니다. 다시 백 명의 무사가 있다면 그들을 계속 괴롭혀 완전히 몰살시킬 수 있습니다."
 
남궁상룡의 말에 벽운학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싸울 겁니다. 더 이상의 기습은 이제 효과가 없습니다."
 
남은 철강시의 수가 이제 오백 구도 안 된다. 수가 적으면 더 기습을 하기 어렵다.
 
지금은 아예 훨씬 더 큰 힘으로 밀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남궁상룡이 별동대를 대부분 잃어버린 것도 벽운학의 명을 제대로 듣지 않고 끝까지 기습을 했기 때문이다.
 
벽운학은 출정하기 위해 모인 무사들을 둘러보며 조용히, 하지만 강하게 말했다.
 
"출발!"
 
수많은 무림맹 무사들이 눈을 빛내며 출발했다. 수천이나 되는 수였다. 이들의 가장 앞에는 벽운학이 있었고, 벽운학 바로 뒤를 따라 무림맹 장로들과 주요 인물들이 함께였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동정호, 예전 흑사맹을 물리친 곳이었다.

무림맹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뇌룡장에서도 일단의 무사들이 길을 떠났다.
뇌룡장은 은왕곡 무사들이 은밀히 움직여 무림맹을 기습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그들을 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뇌룡장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은왕곡 무사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은왕이 은왕곡 무사들과 함께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무영이 은왕을 찾기 위해 떠난 것이다. 은왕을 물리치지 못하면 은왕곡의 다른 무사들은 아무리 없애봐야 소용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은왕곡의 흑귀들은 대부분 철강시가 되었다.

그렇게 되지 않은 자들은 고작 삼백 여명에 불과했다. 지금 뇌룡장이 치려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은 삼십 여명의 그림자와 함께 있었다.
 
그림자는 흑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그리고 뇌룡장 사람들은 그림자에 대한 무서움을 금령으로부터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단히 각오를 하고 출발했다.

뇌룡장에서 그들을 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뇌룡대와 녹룡대, 그리고 세 여인과 세 명의 십대고수였다. 거기에 표중산이 함께했다.
 
표중산은 주기적으로 뇌룡장에 남은 소소와 연락을 취했다. 모든 정보가 뇌룡장으로 모이기 때문에 그것을 중간에서 연결하기 위해 따라온 것이다.
 
뇌룡장 사람들은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적들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십대고수가 셋이나 포함된 뇌룡장이 그들에게 질리 없었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신선단이 있었다. 무영이 새로 만들어준 것이었다. 고통도 없고 내상은 물론이고 외상까지 단번에 치료해 주는 영약 중의 영약이었다.
 
뇌룡장의 사기는 최고조였다. 그들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힘차게 걸어갔다.

 
무영과 금령이 급한 대로 쪽배 하나를 구해 몸을 실었다.
쪽 배를 저을 사공은 필요 없었다. 배에 탄 순간부터 배가 저절로 물 위를 미끄러져 이동했다. 무영이 기를 이용해 배를 움직인 것이다.
 
"정말로 찾을 수 있겠느냐?" 
 
금령의 물음에 무영이 빙긋 웃었다.
 
"사형께서도 느껴 보십시오. 조금만 집중하면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금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이내 무영의 말대로 눈을 지그시 감고 은왕의 기운, 아니, 은환의 기운을 느껴보고자 집중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금령의 얼굴에 놀람이 떠올랐다. 금령은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정말이구나!"
 
금령은 감탄했다. 분명히 은환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을 금령이 모를 리 없었다.
 
금령은 은왕과 수십 년을 함께했다. 그동안 은환을 삼키는 사람을 본 것만 수백에 달한다. 은환의 기운이 익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익숙한 기운이 분명히 느껴졌다.

지금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방금 집중하고 있을 때는 틀림없이 느꼈다. 금령은 고개를 들어 배가 향하는 방향을 바라봤다. 멀리 떠있는 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배가 섬에 가까이 가자, 무영과 금령은 훌쩍 몸을 날려 섬에 올라섰다.
 
배는 자연스럽게 섬에 다가오더니 뭍으로 조금 올라와 멈췄다. 이제 누가 일부러 배를 밀지 않은 한, 계속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섬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상당히 큰 섬이었다. 그리고 갈대는 물론이고 수풀도 많이 우거진 곳이었다.
 
두 사람이 한참 안으로 들어가자, 이내 공터가 나왔다. 그 공터 한가운데에는 꽤 커다란 전각이 하나 서 있었다. 은환의 기운은 그 전각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로군."
 
금령은 그렇게 말하며 전각을 바라봤다. 오층이나 되는 전각이었다. 그리고 은환의 기운은 오층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금령은 조금 뒤로 물러섰다.
 
여기서부터 난 빠진다. 아무래도 은왕과는 싸우기가 껄끄럽군."
 
무영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금령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다. 자신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금령을 잠시 바라보던 무영은 다시 전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우르르르르.
 
은은한 뇌성이 울리며 무영의 주먹에 뇌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무영은 주먹에 한껏 뇌기를 모은 후, 그대로 내질렀다.
 
꽈르릉!
 
강렬한 섬광이 전각을 되덮었다.
 
꽈과과과광!
 
전각의 아랫부분이 터져 나갔다. 일층과 이층의 절반 정도가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전각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그그.
 
꽈과광!
 
결국 전각이 바닥에 누웠다. 뿌연 먼지가 일어나 전각의 모습을 완전히 감춰 버렸다. 그리고 그 먼지 안에서 사람 하나가 불쑥 튀어 올랐다.
 
"웬 놈이냐!"
 
은왕은 소리치며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 경악에 찬 얼굴로 금령을 바라봤다.
 
"네, 네놈이!"
 
금령은 은왕을 슬쩍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외면했다. 은왕은 그런 금령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흥, 어차피 그냥 둘 생각이 없었는데 잘 찾아왔다."
 
금령은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로 대답했다.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떠난 거다. 언젠가부터 눈빛이 달라졌거든."
 
금령의 말에 은왕이 이를 갈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무영을 바라봤다.
 
"이놈이 약선의 제자로구나."
 
은왕은 무시무시한 눈으로 무영을 보려봤다. 무영은 담담하게 은왕의 눈길을 받아 넘겼다.
 
"큭큭큭. 용케도 날 찾았군. 어떻게 찾았지? 이곳은 아무도 모르는 장소인데 말이야."
 
은왕의 말에 무영이나 금령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은왕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인사는 아주 잘 받았다. 덕분에 은환들이 아주 못쓰게 돼 버렸어. 그 대가를 지금부터 받을 거다."
 
은왕은 그렇게 말하더니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은왕의 손에서 은빛 섬광이 일었다. 그리고 은왕을 중심으로 거대한 기파가 뻗어나갔다.
 
끼기기기긱!
 
기괴한 소음이 들려왔다. 무영은 소리가 나는 쪽을 힐끗 쳐다봐다. 무너진 전각에서 사람 손이 불쑥 솓아나왔다. 그 손은 모두 아홉 개였다.
 
끼기긱!
 
소음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손이 튀어나온 자리에서 나머지 몸이 빠져나왔다. 그들은 놀랍게도 구대흉마였다.
 
"혈마맹주를 구슬려 강시 제조법을 얻어냈지. 구대흉마로 만든 혈강시야.

어때? 재미있겠지? 큭큭큭큭. 아홉 시신을 다 모으느라 꽤 고생했으니 한 번 즐겁게 그 힘을 느껴보도록. 큭큭큭큭."
 
은왕의 말에 무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구대흉마의 시신을 모두 모을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은왕이 한 짓은 선을 넘었다.
 
"후우, 일단 저들부터 처리해야겠군."
 
무영은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빠지직!
 
무영의 주먹에 뇌전이 감돌았다.
 
스팟!
 
무영의 몸이 순식간에 구대흉마 사이에 나타났다. 구대흉마들이 미처 자세를 잡기도 전이었다. 은왕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고, 무영의 주먹이 눈부신 속도로 섬광을 뿜어냈다.
 
꽈릉! 꽈릉! 꽈르르릉!
 
정확히 아홉 개의 벼락이 쏟아졌다. 각각의 벼락이 구대흉마를 하나씩 집어 삼켰다.
 
"키에에에엑!"
 
혈강시가 된, 더 정확히 말하면 불완전한 혈강시가 된 구대흉마는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털썩 털썩 쓰러졌다.
 
강시는 사기(邪氣)와 사기(死氣)의 집합체, 사기의 상극인 뇌기를 맞았으니 그것들이 타버리는 게 당연했다. 강시를 움직이는 근원이 사라졌으니 바닥에 쓰러지는 것도 당연했다.
 
은왕은 멍한 표정으로 무영을 바라봤다. 무영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 버렸다.
 
조금 전 무영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정말로 별것 아니라고 여겼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갑자기 약선이 떠올랐다.
 
"으으으으......"
 
은왕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눈에 살짝 공포가 어렸다. 하지만 이내 은왕은 괴성을 지르며 공포를 몰아냈다.
 
"크아아아!"
 
은왕의 눈에서 은빛 광망이 뻗어 나왔다. 그리고 그의 피부가 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죽인다!"
 
은왕은 무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쩡!
 
무영은 은왕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막으며 뒤로 살짝 물러났다. 굉장한 힘이었지만 무영에게는 별반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은왕은 물러나는 무영을 쫓아가며 연방 주먹을 뻗었다.
 
쩌저저저정!
 
주먹과 손바닥이 부딪칠 때마다 뭔가가 깨져 나가는 소리가 울렸다. 은왕의 주먹은 빠르고 강했지만, 무영에게는 그가 주먹을 휘두르는 궤적이 훤히 보였다.
 
무영은 은왕의 주먹을 막으면서 손바닥에 뇌기를 흘리기 시작했다.
 
빠직! 빠직! 빠지지직!
 
"크아아아악!"
 
은왕은 뇌전이 몸으로 스며드는 짜릿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주먹과 손바닥이 부딪칠 때마다 뇌전이 은왕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결국 그렇게 몸으로 들어간 뇌전이 내장을 조금씩 죽이기 시작했다.
 
그 상황이 되어서야 은왕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너무 흥분해 제대로 된 무공 한 번 써보지 못한 것이다. 은왕은 훌쩍 뒤로 몸을 날렸다.
 
무영은 굳이 은왕을 쫓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은왕의 공격을 수월히 막긴 했지만 무영에게 아예 충격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무영은 손을 가볍게 흔들어 충격을 털어냈다.
 
"후우, 추태를 보였군."
 
그렇게 말하는 은왕의 몸이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은왕은 품에서 은빛이 나는 단약 하나를 꺼내 단숨에 삼켰다. 그 은환은 은왕의 내상을 단숨에 치료했다.
 
그러자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양이 더욱 많아졌다. 은빛 광망이 무영의 몸을 비췄다. 그리고 은왕의 손이 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손만 은으로 바뀐 듯한 모습이었다.
 
"이제 시작해 볼까?"
 
은왕의 몸이 순식간에 무영 앞에 나타났다. 무영은 일순 수백 명이 동시에 주먹을 내지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수백 개의 주먹이 거의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빠지지직!
 
무영은 눈에 뇌기를 집중했다. 그제야 주먹이 하나로 보였다.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내지르는 주먹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쳐냈다.
 
꽝! 꽝! 꽝! 꽝!
 
주먹과 손바닥이 만날 때마다 폭음이 터져 나갔다.
 
은왕은 경악에 찬 눈으로 무영을 바라봤다. 설사 금령이라해도 막기가 쉽지 않은 공격을 이렇게 간단히 막아낼 줄은 몰랐다.
 
"크으윽! 이놈!"
 
은왕의 눈빛이 조금 더 밝아졌고, 손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먹질의 속도가 훨씬 더 빨라졌다.
 
빠지지지직!
 
무영은 온몸에 뇌기를 둘렀다. 무영의 손도 더욱 빨리 움직였다. 무영은 이대로 가다가는 계속 막기만 하다가 끝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은왕의 무위는 대단했다.
 
'어떻게든 공격을 해야 해.'
 
무영은 정신없이 손을 움직이는 와중에 단전에서 꿈틀대는 거대한 뇌기를 움직였다.
 
우르르르르!
 
뇌성이 진동을 했다. 은왕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 순간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꽈르릉!
 
벼락은 무영의 정수리를 그대로 관통했다. 은왕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그렇게 무영의 몸에 들어간 벼락이 그대로 무영의 손바닥을 통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끄으아아아악!"
 
벼락에 정통으로 맞은 은왕은 뒤로 날아가 버렸다.
 
콰과광!
 
전각의 잔해에 파묻힌 은왕의 몸이 꿈틀거렸다. 어떻게든 몸을 세우려 안감힘을 썼지만 내장이 완전히 타버리고 근육과 신경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스스로의 의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금 꿈틀대는 것은 벼락의 기운이 몸에 남아 근육을 자극하는 것일 뿐이었다.
 
"후우우."
 
무영이 길게 숨을 내뿜었다. 한 번에 움직인 뇌기의 양이 상당했기에 호흡을 조금 조절해야 했다.
 
하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예전 같으면 힘들고 괴로웠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 역시 최근의 깨달음으로 얻은 성과였다.
 
무영은 천천히 은왕에게 다가갔다. 무영이 은왕 앞에 섰을 때, 은왕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억지로 앉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더 이상 싸울 의지는 엿보이지 않았다.
 
"그, 그만! 그만하게. 내, 내가 졌네."
 
은왕의 말에 무영은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은왕은 무영의 눈빛이 겁난다는 듯 고개를 돌려 눈길을 피했다.
 
"쿨럭!"
 
은왕은 피를 토했다. 피에 내장 조각이 섞여 나왔다. 은왕의  눈에 암울한 절망감이 어렸다.
 
"나, 나를 살려주게. 신선단! 신선단으로 나를 살려주게! 신선단은 이곳에 있는 풀로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은왕이 무영을 바라보며 애원했다. 무영은 멍한 얼굴로 은왕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금령이 무영과 은왕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은환은 다 떨어졌소?"
 
금령의 말에 은왕이 금령을 보려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며 체념하듯 말했다.
 
"아까 내가 먹은 게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로는 날 살리지 못해."
 
은왕은 그렇게 말하며 자괴감에 휩싸였다. 그렇게 신선단을 능가하고자 애써왔는데, 결국은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는 신선단에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부, 부탁이네. 솔직히 말하면 남도 아니지 않은가."
 
은왕의 말에 무영의 눈이 커졌다. 무영은 급히 고개를 돌려 금령을 바라봤다. 금령은 무영의 눈길에 그저 어깨만 한 번 으쓱 했다. 그 역시 무슨 말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사람의 제자였네. 그러니 우리는 사형제인 셈이지."
 
은왕의 말에 무영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은왕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혈왕 역시 마찬가지일세. 그 사람은 내 사형이지."
 
"하, 한데 어찌......"
 
"그 사람, 아니, 사부의 그늘이 너무 컸네. 우리가 사부에게서 도망친 건 그저 신선단을 능가하는 영단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야."
 
사실 그 이면에는 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은왕은 그렇게만 얘기했다. 하지만 그 얘기는 금령이 이어갔다.
 
"아아, 이제 어렴풋이 기억나는군. 예전 사부님이 내게도 사형이 있었다는 얘기를 해주셨던 기억이 있어."
 
금령의 말에 은왕의 얼굴이 시꺼멓게 죽었다. 금령은 차가운 눈으로 은왕을 노려봤다.
 
"사부님의 등에 칼을 꽂고 신선단을 몽땅 훔쳐 달아난 사형이 하나 있었다는 얘기를 어렴푸시 들었지. 그게 너인가? 아니면 혈왕인가?"
 
은왕이 소리쳤다.
 
"그건 혈왕이야! 난 그렇게까지 악독한 인물은 못 된다고!"
 
금령의 웃음이 더욱 차가워졌다.
 
"아아, 그럼 네가 사부에게 독을 먹이고 집에 불을 지른 후 도망간 놈이로군."
 
은왕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사실 사부의 등에 칼을 꽂은 건 자신이었다.

하지만 혈왕이 그런 짓을 했다는 건 그도 몰랐다. 적어도 사부의 등에 칼을 꽂지는 않았을 거라 믿었기에 그리 말한 것뿐이었다.
 
금령은 은왕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사부의 등에도 칼을 꽂는 놈을 살려서 뭐 하겠나. 어차피 또 뒤통수를 때릴 텐데."
 
스릉.
 
금령이 검을 뽑았다. 은왕은 창백해진 얼굴로 외쳤다.
 
"그만! 멈춰! 무림맹 놈들을 다 죽일 셈이냐!"
 
그제야 금령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게 무슨 말이지?"
 
"큭큭큭. 날 살려준다고 약속하면 알려주지."
 
은왕의 말에 금령이 잠시 갈등했다.

무림맹에는 벽운학이 있다. 무림맹이 위험하다는 뜻은 벽운학도 위험하다는 뜻이다. 잠시 고민하던 금령은 이내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필요 없다."
 
서걱!
 
은왕의 머리가 허공에 떠올랐다. 그의 눈에는 공포와 회한이 담겨 있었다.
 
무영은 피를 뿌리며 날아가는 은왕의 머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스승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스승님이 그런 일을 겪었는지 전혀 몰랐다. 스승님은 무영과 함께 있는 동안은 언제나 즐겁고 자유로운 분이었다.
 
'스승님......'
 
털썩.
 
은왕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무영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스승님과의 추억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잠시 눈을 감았던 무영은 눈을 번쩍 떴다.
 
"가죠. 무림맹을 살리고 혈왕을 잡으러."
 
무영의 말에 금령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왕을 살려봐야 별 소득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최선은 서둘러 무림맹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배를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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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리스트
  • 작성자다리위에서 | 작성시간 26.01.07 즐감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시골사f랑 | 작성시간 26.01.07 즐감.행복하세요
  • 작성자희망포 | 작성시간 26.01.08 무림맹을 살리고 혈왕을 잡으러~고
  • 작성자지키미 | 작성시간 26.01.09 즐감하고 감니다
  • 작성자엉생 | 작성시간 26.07.09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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