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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시 작품방

[스크랩] 왕건

작성자태공 엄행렬|작성시간24.07.15|조회수48 목록 댓글 5

왕건(王建)

 

 후삼국시대에 궁예(弓裔)가 한반도 중부지방을 석권, 철원(鐵圓)에 도읍을 정하자 당시 송악(지금의 개성)의 지방 호족이었던 부친 왕융의 말을 따라서 아들 왕건과 함께 기득권을 포기하고 궁예의 부하가 되었다. 900년에 궁예의 명령으로 왕건은 광주(廣州) · 충주 · 청주(靑州) 및 당성(唐城) · 괴양(槐壤: 지금의 충청북도 괴산) 등의 군현을 쳐서 평정한 공으로 아찬(阿湌)이 되었다.

 

 903년 3월에는 함대를 이끌고 서해를 거쳐 후백제의 금성군(錦城郡)을 공격, 함락시켰다. 그리고 부근 10여 개 군현을 빼앗아 군사를 나누어 지키게 하고 돌아왔다. 이때 궁예는 금성군을 나주(羅州)로 개명하였다.

 또한 양주수(良州帥) 김인훈(金忍訓)이 위급함을 고하자, 궁예의 명을 받고 구해주었다. 그리하여 궁예와 주위의 신망을 얻게 되었으며, 그 동안의 전공으로 알찬(閼湌)으로 승진하였고, 913년에는 파진찬(波珍湌)에 올라 시중(侍中)이 되었다.

 

 그 뒤 궁예의 실정이 거듭되자, 홍유(洪儒) · 배현경(裵玄慶) · 신숭겸(申崇謙) · 복지겸(卜智謙) 등의 추대를 받아, 918년 6월 궁예를 내쫓고 새 왕조의 태조가 되었다. 철원의 포정전(布政殿)에서 즉위해 국호를 고려(高麗), 연호를 천수(天授)라고 하였다.

 

 그러나 태조에게는 많은 난관이 가로놓여 있었다. 먼저, 안으로는 환선길(桓宣吉) · 이흔암(伊昕巖) 등 왕권에 도전하는 적대세력에 대처해야 하였다.

 또한 민심을 수습하고 호족세력을 회유, 포섭하는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다. 이와 함께 밖으로는 후백제 견훤(甄萱)의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하였다.

 

 태조가 즉위 초부터 가장 역점을 둔 국내정책은 민심안정책이었다. 신라 말기 이래 문란해진 토지제도를 바로잡고, 궁예 이래의 가혹한 조세를 경감하는 조처를 취하였다. 취민유도(取民有度: 백성에게 조세를 수취할 때에 일정한 법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의 표방은 구체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호족세력에 대해서는 유력한 호족들의 딸과 정략적으로 혼인했으며, 지방의 호족 및 그 자제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나갔다.

 

 태조 왕건은 궁예나 견훤에게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정치적 역량을 지니고 있었고, 짧은 기간 동안에 어느 정도 새 왕조의 왕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하여 919년(태조 2) 1월에 개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신라 · 후백제 · 고려의 후삼국관계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것은 920년부터였다. 태조는 신라에 대해 친화정책을 썼다. 이 해 10월 견훤이 신라를 침범하자, 신라에 구원병을 보냈는데, 후백제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신라와의 친선이 필요했던 것이다.

 후백제와는 초기에 화전(和戰) 양면정책을 썼다. 이처럼 신라 · 후백제와의 미묘한 관계 속에서 새 왕조의 안정과 국력신장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대체로 후백제와의 군사적 대결에서 고려는 열세를 면하지 못하였다. 후백제는 고려와 신라의 통로를 차단할 목적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일원을 군사적으로 압박하였다. 이 지역은 고려 역시 중요시했으므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930년 태조는 고창(古昌: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전투에서 견훤의 주력부대를 대파함으로써 비로소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였다.

 

 935년 왕실 내분으로 왕위에서 축출된 견훤을 개성으로 맞아들여 극진하게 대우했으며, 같은 해 10월 신라왕의 자진항복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후삼국통일의 주역이 될 가능성이 확실해졌다. 마침내, 936년 후백제와 일선군(一善郡: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의 일리천(一利川)을 사이에 두고 최후결전을 벌여 후백제를 멸하고 후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태조는 통일 직후 『정계(政誡)』 1권과 『계백료서(誡百寮書)』 8편을 저술, 중외에 반포하였다. 이 저술들은 새 통일왕조의 정치도의와 신하들이 지켜야 될 절의를 훈계하는 내용으로 생각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그리고 죽기 얼마 전에 대광(大匡) 박술희(朴述熙)를 내전으로 불러들여 「훈요십조(訓要十條)」를 친수(親授)해 후계자들이 귀감으로 삼도록 부탁하였다. 「훈요십조」는 태조의 정치사상을 엿보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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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王建)

 

태공 엄행렬

 

 

왕王이 될거란 도선대사 예언 믿은 부친 왕융(王隆)

송악의 세력기반도 궁예에게 내어주었네

훗날을 생각하면서

큰 결단을 내렸지

 

건밤이 반복 되면서 몸은 점점 쇠약해지다

금성태수 부임 1년 뒤 사망(897년)하게 되었으나

아들에 대한 굳은 믿음

 의심 없이 갔다 하네

 

왕성한 혈기로써 견훤과 겨룬 궁예

승자가 누구일지 판가름도 못낸 채로

그것이 마지막 만남

서로 볼 수 없었지 

 

건재健在는 잎새 같아 어느 날 단풍 되어

총기도 사라지니 거친 행동 이어지다

결국엔 

옴 마니 밧메 홍

극락으로 갔을까 

 

왕국의 강세함을 안 신라는 귀부한 뒤

백제도 견훤 덕택에 쉽게 무너짐으로써

왕건은

도선대사 예언을 실현하게 되었다 

 

건국은 이와 같이 쉬운 일이 아니다

고구려 멸망하고 발해 건국까지 30년

굳건한 의지 없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

 

-20240715-

 

 

* 건밤 : 한숨도 자지 않고 뜬눈으로 세운 밤

* 왕융의 부친은 '작제건'으로 897년 5월에 사망한 뒤,

936년 고려 건국 때부터 왕 씨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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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베베 김미애 | 작성시간 24.07.15

    태조 왕건이 다녀간 산 중에
    태조산이 있답니다
    그 산은 저와 무관치 않아
    그 산을 오를 때마다
    왕건을 생각하게 되지요
    요즘은 역사적인 사실로
    행시를 엮어 주시는
    태공 시인님
    오늘 복 날인데
    복달임 잘 하시고
    더위 너끈히 이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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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태공 엄행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15
    태조산(태조봉) 왕건이
    아비 견훤 내친 백제 신검과 전쟁 앞두고
    주둔지 될만한 곳을 살펴보려 오른 산
    충남 천안시에 소재하는군요.
    한 수 이렇게 배움 또 합니다.
    감사합니다!~~^0^

    아!
    이제껏 못 느꼈던 오늘 더위
    말씀하셔서 지금 달력 보니 오늘이 초복이네요.
    기상예보대로 오후에 온다는 소나기
    시원하게 내렸으면 복달임 음식도 뜨겁지 않을 텐데요~~~~
    초복!
    함께 모여서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베베 시인님!~~~^0^
  • 작성자소 담 | 작성시간 24.07.15
    하도 많이 들은 왕건
    그이 일대기를 먼저 내려 주셨군요

    행시로 내려주신 왕건
    그의 산세기를 글로 주셨네요
    역사는 들으면 흥미진진합니다 ..
    그 시대는 어찌 지나갔겠지만은 요 ~~

    잘 계셨는지요
    몇일이지만 안부 드립니다
    소담은 나의 일상을 잘 보내고 왔다고 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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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태공 엄행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15
    왕이될 사람
    책사로 살 사람
    신하로 살 사람
    장군이 될 사람은 정해진 섭리인 듯합니다
    왕건이나 이성계나 죽을 고비
    무수히 많았지만 살아 남은 덕이지요.

    아!
    휴가철 시작일 때이지만
    벌써 다녀오셨는지요?
    잘 하셨습니다.

    오늘 초복이라고 합니다.
    친지 모여 덕담 나누시면서
    고운 하루 되십시오.
    소담 선생님!~~~^0^
  • 작성자태공 엄행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7.15
    옴 마니 밧메 홈
    오타 있네요.
    (모든 죄억이 소멸되고 모든 공덕이 생겨난다)
    (지옥의 땅에서 극락으로 이끌 것 - 원효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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