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2강] 재기의 철학 (손명자, 배정규, 정신분열병과 가족, 2003, 저서의 2장)

작성자촛불|작성시간15.04.20|조회수722 목록 댓글 4

첨부파일 개정판(조현병과_가족).hwp

2장. 재기의 철학

(손명자, 배정규, 정신분열병과 가족, 2003, 저서의 2장)



우리는 지금까지 정신장애의 진행과정에서 첫 번째 단계인 증상에만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증상 때문에 환자의 인생이 와해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쓰지 못하였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에게는 병 자체보다 병의 결과를 극복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오랫동안 병을 앓아 온 환자들에게는 증상자체가 아니라 기능결함과 역할장애, 그리고 사회적 차별이 더 큰 고통을 안겨준다. 즉 사회 속에서 자신이 할 역할이 없고 기회를 갖지 못하여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고통이다. 자신에 대한 가치감의 상실, 희망의 상실, 열등감, 그리고 상황에 대처하는 것에 대한 불안 등은 증상이 사라져도 계속 남아서 벗어나기가 너무나 힘들다. 그리하여 바깥 세상에 나가지 않으니 생활경험이 없고, 경험이 없으니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확인해 볼 길이 없이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러나 이 악순환의 고리를 깨는 것은 가능하다. 이것은 조현병 때문에 망가진 인생으로부터 재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전문가들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병으로부터 회복하는 현상을 인생의 재기의 문제로 보고 있다.


재기(recovery)는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서 희귀하게 일어나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재기는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이며, 1장에서 소개한 재활모형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연구에 의하면, 정신장애가 진행되는 네 단계들간의 상호작용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각 단계가 어느 정도는 서로 독립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증상이 아무리 심해도 그 다음 단계의 기능이 높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능은 멀쩡한데도 직장생활을 못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나아가 사회적 편견이 아무리 커도 직장생활을 잘 해내고 오히려 그 편견을 우호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네 단계간의 상호독립성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만일 네 단계가 순서적으로 반드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라면 환자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약하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노력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환자도 실제로 살아 남기 위해서 치열한 투쟁을 하고 있다. 그들은 증상이 아무리 심해도 현실세계를 붙들고 놓지 않으며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정신장애라는 엄청난 사건이 자신에게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딛고 일어난다. 문제는 재기의 의지인 것이다.


따라서 재기는 재활의 개념을 환자 자신의 내적 경험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장애가 있는 환자가 재활의 네 단계를 겪으며 어떻게 투쟁을 하면서 일어서는가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재활은 객관적인 측면을, 재기는 주관적인 측면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재활과 재기의 차이를 잘 설명해 주는 글을 아래에 제시하였다. 이 글은 디건(Patricia E. Deegan)이라는 조현병으로부터 재기한 환자가 쓴 글로서 그녀는 현재 임상심리학 박사로서 재활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자동차가 정비되고, 텔레비젼이 수리되는 것처럼 재활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재활과 재기의 의미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활이란 장애인이 이용하여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하는 서비스와 기술을 가르친다. 재기란 장애문제를 수용하고 극복해 가는 실생활의 경험을 뜻한다. 동일한 현상에 대해 재활은 ‘외부세계적 측면’을, 재기는 ‘자기주체적 측면’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재기과정을 토대로 해서만이 재활서비스의 효과가 가능하다... 단순한 양질의 서비스 이상이 필요하다... 그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약물로 인한 무감각하고 지친 마음을 떨쳐 버리고 옷을 차려 입은 다음 과감히 재활프로그램 장소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하며, 재활프로그램에서 실패하리라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이렇게 정신장애인이 자신의 재활방안에 적극적이며 용기 있게 되는 것은 바로 재기과정을 통해서이다.


따라서 재기과정은 재활노력의 결과가 결정되는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현상이다. 때문에 전문과학잡지에서 이에 대하여 다룬 바가 거의 없다는 사실은 놀라울 뿐이다.” (디건의 회복수기, 「가족협회보 6호」, 26쪽)



1. 재기의 개념


미국의 정신보건분야에 재기(recovery)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자서전 또는 수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정신재활프로그램의 성과가 나타나면서, 1980년대에는 조현병으로부터 회복된 환자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강연 또는 자서전으로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그들 중에는 소수의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기타 정신보건전문가들도 포함되어 있다. 예로서 자신의 장애를 공개한 정신과의사로는 Carol North, Dan Fisher, Suzanne Vogel-Scibilia 등이 있고, 심리학자로는 Patricia E. Deegan, Ronald Bassman, Al Siebert, Kay Jamison, Wendy Walker Davis 등이 있고, 사회복지사로는 Donna Orrin, David Granger 등이 있다.


조현병으로부터 재기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개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그 이유는 다른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강연과 글을 통하여 그들은 예후가 좋지 않으리라는 전문가들의 당초 예상과는 달리, 수많은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 또한 만족스럽고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길을 어떻게 찾았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보스톤대학의 앤쏘니는 소비자들의 자서전과 수기를 바탕으로, 그들의 글에서 언급된 재기(recovery)의 개념을 학술적인 개념으로 연구하고 보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였다. 이에 관한 앤쏘니의 글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재기는 소비자/생존자 문헌으로부터 출현한 개념이며, 심한 정신질환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변혁시킬 수 있는 전망(vision)이다. 그 동안 소비자/생존자들이 재기를 경험해 왔지만, 또 보다 소박하게 재기에 대하여 술하고 언급해 왔지만, 전문가들은 이제야 재기의 전망(vision of recovery)의 미와 시사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앤쏘니의 「재기의 전망」에서 인용함)


재기의 개념은 1990년대 초반에 앤쏘니가 이를 소개한 이후 현재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예로서 1999년에는 공중위생국장이 모든 정신건강분야에서 재기철학을 채택하도록 촉구하는 지침서를 발표하였다.

재기의 개념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합의된 정의는 없다. 다만 앤쏘니가 내린 정의가 많이 인용되고 있다.


“재기는 개인의 삶의 태도, 가치관, 감정, 인생목표, 기술, 역할 등이 변화하는 과정(process)으로서, 각 개인마다 서로 다른 매우 독특한 과정이다. 그것은 만족스럽고, 희망적이며, 가치있는 삶을 사는 길이다. 재기는 정신장애로 인하여 겪게되는 수많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성장함에 따라, 자신의 삶의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앤쏘니의 「재기의 전망」에서 인용함)


재기는 완치(cure)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완치란 병의 증상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비하여 재기란 인생의 재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예로서 척수손상으로 인하여 하반신 마비가 된 사람은 비록 척수손상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에서 재기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을 지닌 사람들도 비록 정신질환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에서 재기할 수 있다.” (앤쏘니의 「재기의 전망」에서 인용함)


“재기는 비록 자신의 증상을 완전히 책임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것을 의미한다.” (앤쏘니의 「재기의 전망」에서 인용함)


앤쏘니는 재기는 환자 본인의 과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전문가와 가족은 환자를 도와줄 수는 있다. 그러나 환자를 재기시킬 수는 없다. 재기는 오직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본인이 재기하기를 선택하는 일이다.


“변화 자체는 어려운 것인지 몰라도 변화를 시작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쾌러의 회복수기,「가족협회보 5호」, 16쪽)


재기의 개념에서 질병은 질병 자체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파국적인 인생사건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재난으로부터의 성공적인 재기를 했다고 해서 재난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 영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삶이 돌이킬 수 없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성공적인 재기는 개인이 변화하였다는 것을, 그래서 그러한 재난이 개인에게 주는 의미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난은 더 이상 그의 삶을 지배하지 못한다.” (앤쏘니의 「재기의 전망」에서 인용함)


이렇듯 리커버리(recovery)라는 용어는 단순히 ‘병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회복’을 뜻하는 용어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에서는 이 용어를 회복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재기라고 번역하였다.

우리는 신문을 통하여, TV와 영화를 통하여, 회복 불가능한 신체손상에도 불구하고 자랑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인간승리의 이야기를 접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헬렌켈러의 전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을 아직까지 잊지 않고 있다. 그녀는 장님이면서 동시에 귀머거리였지만 전 세계를 순회강연하며 열정적으로 활동한 사회사업가였다. 우리는 또한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의 놀라운 활동을 알고 있다. 그는 근무력증으로 전신이 마비되어 혼자 힘으로는 꼼짝도 하지 못하면서도 현재까지 저술활동과 강연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재기는 신체장애인이나 정신장애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살이에서 심각한 좌절을 경험하였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앤쏘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기경험은 전문가나 가족들에게 낯선 경험이 아니다. 재기는 진정으로 통합된 인간 경험이다. 우리는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이혼, 심각한 질병 등과 같은 인생의 재난을 경험하며, 따라서 재기해야만 하는 도전에 직면한다.” (안쏘니의 「재기의 전망」에서 인용함)



2. 재기의 과정


조현병은 환자에게 있어서 충격적인 사건이며, 그 사건을 극복하고 인생에서 재기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과정에서 환자들은 자기자신에 대한 혼란을 경험한다. 가족들은 환자의 재기과정과 그에 따른 자기감의 변화과정을 이해하여야 한다.


“대다수 우리 장애인에게 재기란 하나의 과정이며, 생활방식이자 태도이며, 문제에 다가가는 방식이다. 이것은 완전히 직선적인 과정은 아니다. 때로 과정이 잘못되면서 우리는 비틀거리고 주춤하지만 몸을 추수르고 다시 시작한다.” (디건의 회복수기,「가족협회보 6호」, 29쪽)


이제부터 재기과정과 자기감의 변화과정을 앤쏘니가 제시한 대로 단계별로 설명하겠다. 환자들은 수년간에 걸쳐서 고통스럽게 이 과정들을 거쳐간다.


1) 혼란과 충격


정신질환의 발병은 점진적일 수도 있고 매우 갑작스러울 수도 있다. 환자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모를 수도 있다. 그 경험은 종종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럽다. 정신질환은 그 자체로도 낯설지만, 병원이라는 생소한 환경 속에서 치료라는 낯선 경험이 시작된다.


“폐쇄병동에서 나는... 다소 안정을 찿을 수 있었지만 자유가 구속되었다는 또다른 절망이 엄습했다... 내가 말로만 듣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으며 그것이 사실이기에 절망했다.” (회복수기, 「한그루 싱싱한 소나무처럼」, 79쪽)


이때부터 그들에게는 이전과는 다른 생활이 시작되며, 인생과 자신에 대한 느낌에 혼란이 시작된다. 그들이 지금까지 간직해 왔던 희망과 꿈이 산산히 깨어져 버릴 수도 있다. 과거의 삶은 사라지고, 방향을 알 수 없는 낯선 삶이 시작된다. 그것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이다.


2) 부인


감당할 수 없는 혼란과 충격에 직면하여 환자가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은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환자는 자신에게 아무런 중요한 변화가 없으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이전처럼 정상적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환자는 병의 심각성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병으로 인한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의사와 사회사업가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 불투명한 예언에 대해 단호히 부인하였고 격분하였다. 우리는 모든 것이 단순한 착오이며 나쁜 꿈이며 우리 인생의 일시적인 좌절일 뿐이라고 느꼈다. 한두 주일만 지나면 모든 것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만 알았다...... 이러한 현실부인은 중요한 회복단계였다. 그것은 정상적인 반응이었으며, 그 끔찍스러운 처음 몇 달간 살아남는 길이었다.” (디건의 회복수기, 「가족협회보 6호」, 27쪽)


이것은 일정 기간 동안에는 필요하고도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부인은 질병으로 인한 충격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한다. 병이 환자의 꿈과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 정도가 심할수록, 환자와 가족이 조현병을 비관적인 병으로 생각할수록, 환자는 더욱 강력하게 더욱 오랜기간 동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인은 질병이 지속되고 가혹한 현실에 부딪히면서 점차 사라져 간다. 일상생활에 대처하기가 어렵고, 매사가 뜻대로 되지 않고, 친구들은 멀어져 간다. 그와 비례하여 그가 간직해 왔던 꿈들이 멀어져 가며, 그 꿈들을 결코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환자는 점차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3) 우울과 절망, 그리고 포기


앞서나가는 친구들을 지켜보면서, 환자는 자신이 낙오되고 있으며, 자신이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꿈이 무너져 내리고 있지만, 그것을 막지 못하는 무력한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의 병을 인식하게 되고, 결국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우울감, 슬픔, 절망감, 비탄, 분노 등의 감정이 찾아온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리라고 믿는 일은 점점 더 힘겨워졌다. 처음엔 한순간 지나칠 나쁜 꿈같이 보였던 것이 깨어날 수 없는 깊은 악몽으로 돌변하였다. 걱정거리 없이 태평한 젊은이들로부터 점점 유리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였다... 시간은 우리를 배반하였다. 시간은 우리의 병을 고쳐주지 못하였다. 과거는 우리를 져버렸고 우리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디건의 회복수기, 「가족협회보 6호」, 27쪽)


“내 삶 전체가 무너져 갔고 이를 막기 위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신병을 앓으며 살아가야 할 내 나머지 삶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항상 잠을 원했고 일상생활도 제대로 지속하지 못했으며, 가장 단순한 일도 힘들어 했다. 좌절감은 점차 눈물, 자기연민, 분노로 변해갔다.” (쉬묵의 회복수기, 스패니올과 쾌러의 책에서 인용함)


환자가 우울해 하고 슬퍼하는 것은 필요하고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것은 일종의 애도기간이다. 잃어버린 꿈과 돌아올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우울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이때 전문가와 가족은 성급하게 환자를 우울로부터 끌어내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환자의 우울과 절망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동안의 시간이 필요하다. 환자는 잃어버린 꿈, 깨어진 희망, 고통스러운 감정 등을 충분히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하며, 슬퍼하고 울 수 있어야 한다. 가족과 전문가는 환자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표현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즉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슬퍼하고 울 수 있도록...


우울은 종종 극도의 절망감을 가져오기도 한다. 환자는 아무런 희망이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무감각하게 오랜 세월을 보내기도 한다. 달리 방법이 없을 때, 그것만이 고통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부인은 절망과 고뇌로 바뀌었다. 우리 둘 다 포기하였다. 우리에겐 포기가 해결책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왜?’ 그리고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묻지 않았기 때문에 절망으로 인한 고통은 둔해졌다.” (디건의 회복수기, 「가족협회보 6호」, 27쪽)


“자신의 삶에서 최악의 순간을 상상해 보기 바란다. 그것을 한시간으로 연장해 보라. 한달, 일년, 햇수가 연이어 끝없이 지속된다면 바로 그것이 정신이상의 허무한 경험이다. 정신질환자가 무감각한 듯이 보이고 행동하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활기가 영구히 중단되는 것이 고통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보다 낫다.” (운지커의 회복수기, 스파니올과 쾌러의 책에서 인용)


4) 분노


환자들은 분노를 경험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분노, 정신병원과 전문가에 대한 분노, 사회에 대한 분노, 일반인들의 편견에 대한 분노, 신에 대한 분노, 부모에 대한 분노, 친구들에 대한 분노, 자신의 질환에 무력한 자기자신에 대한 분노 등을 경험한다.


“나는 미쳐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지만, 그보다도 그동안 겪은 비인간적이고 가슴아픈 수모와 ‘명령적 치료’에 대해 화가 났다.” (운지커의 회복수기, 스패니올과 쾌러의 책에서 인용)


다음의 글은 미국의 한 환자가 쓴 글인데, 다소 과격하기는 하지만, 정신질환자가 어떠한 처우를 받게 되는지, 그래서 어떤 분노를 느끼게 되는지, 그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은 하나의 치욕이며 배척당하고 교화되며 정신과에 입원당하는 것이다.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나의 삶을 통제하는 것이다.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은 지속적인 치료를 받으며 사는 것이며 언제 어디서건 누구에 의해서도 감금당할 가능성이 있다.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은 푼돈으로 한달을 사는 것이다. 눈물을 닦아낼 티슈 한장 살 수 없으면서 담당의사가 점심식사를 마치고 고급승용차를 몰고 돌아오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은 정신을 둔화시키고 감각을 무디게 하고 신경과민을 일으키는 치료제를 복용한후 부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또다른 약을 먹는 일이다.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은 일자리에 지원해서 지난 몇 달간 입원한 기간에 대하여 적당히 거짓말을 하더라고 어찌됐든 정신질환자이므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은 TV쇼에서 자신이 얼마나 난폭하고 위험한 인물이며, 바보이고 무능력한 사람인지를 시청하는 일이다.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은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다.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은 수용소에서 자신과 같이 겁에 질리고 배고프고 권태롭고 망가진 다른 정신질환자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는 일이다.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알리지 못하는 꼬리표를 계속 달고 사는 일이다.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은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담당의사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은 슬플 때 기쁜 듯이 행동하고 화가 날 때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은 치료법이라고 하는 멍청한 그룹에 참가하는 것이다. 음악이 음악같지 않은 것이 치료법이고, 배구가 운동 같지 않은 것이 치료법이다. 바느질이 치료법이고, 설거지가 치료법이다. 심지어 마시는 공기조차 치료법이고 그것을 ‘환경’이라고 부른다.


정신질환자가 되는 것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며, 울 수도 없고, 아픔을 느끼지 않고, 공포를 느끼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것이며, 소리내어 웃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경우 실상 아니더라도 자신이 정신질환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허공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만다.” (운지커의 회복수기, 스패니올과 쾌러의 책에서 인용)


환자들마다 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그들은 분노를 느낀다. 한 환자는 “삶에서 좋은 것은 무엇이든 증오한다. 이것은 내면으로 향하는 격분이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분노는 질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분노는 문제가 아니라 자산이다. 즉 분노는 자신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인식, 옳고 그른 것에 대한 인식,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변화의 제한점에 대한 인식 등으로부터 오며, 따라서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된다.


5) 수용과 희망


많은 환자들이 오랜 기간 우울, 분노, 비탄, 절망의 늪에서 몸부림치며 괴로워한다. 그들 중 일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아무런 감정도 없이, 무감각한 채로 멍하니 지내는 상태로 빠져든다. 그들은 고통을 외면하였지만, 고통은 떠나지 않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터널처럼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날 희미한 희망의 불빛이 나타난다. 그들은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를 설명할 길이 없다고 하며, 의지적이라기 보다는 ‘신의 은총’에 비유한다.


“그러던 어느날, 무엇인가가 우리를 변화시켰다. 연약하고 작지만 희망의 불빛이 우리를 비추어 암흑 밖에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약속해 주었다... 이는 미스터리와 같았다. 이는 신의 은총이었다. 신의 사랑으로 태어난 희망의 탄생이었다. 어떠한 논쟁이나 정신과적 기술, 심리학, 사회사업, 과학으로도 이 희망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기한 우리는 이 같은 은총이 현실이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직접 겪었다. 이는 우리만이 나눌 수 있는 비밀이다.” (디건의 회복수기, 「가족협회보 6호」, 28쪽)


“30세 생일을 맞이하면서 병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나를 밖에 데리고 나가 점심을 사주면서 로버트 메쎄이가 쓴 러시아 피터대제의 전기를 선물해 주었다. 무언가가--내 마음 안에서 노래하는 작은 새같이--이것은 무언가 새로운 것이 시작하는 것이라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것은 새로 영웅이 된다는 것도 아니었고 나의 어머니의 관심이 달라졌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 이상의 것, 즉 암시, 예감, 직관, 일종의 묘사할 수 없는 느낌, 그리고 어떤 ‘똑바로 지적할 수 없는 느낌’ 같은 것이 앞으로의 10년은 지난 10년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쾌러의 회복수기, 「가족협회보 5호」, 14쪽)


이러한 느낌은 생생할 수도 있고 무심코 지나칠 정도로 희미할 수도 있다. 아무튼 환자가 절망의 바닥에 있을 때, 어느날인가 어떤 편안한 느낌과 무언가 변화가 있으리라는 느낌이 찾아오는 듯하다. 이때부터 환자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발적인 노력을 시작한다. 희망은 고통이 끝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전환점이다.


그러나 희망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순서적으로 앞뒤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는 없으나, 그것은 수용을 바탕으로, 또는 수용과 동시에 찾아오는 것으로 보인다. 수용이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 현실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 이룰 수 없는 꿈을 포기하는 것, 그리고 고통을 있는 그대로 달게 겪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우리의 재기는 우리의 한계를 마음깊이 수용함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은 절망할 때가 아니며, 우리 자신의 한계성이 진정한 가능성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는 재기의 역설이다. 즉 우리가 할 수 없거나 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서 우리가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디건의 회복수기, 「가족협회보 6호」, 28쪽)


“재기란 고통이나 투쟁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기란 고뇌가 고통감수로 바뀌는 일이다. 고뇌 속에서 그와 나는 희망없이 지냈다. 우리는 고뇌가 헛된 고통인 것, 즉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고통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그러나 희망을 품으면 고뇌는 진정한 고통의 감수로 변화된다. 고통을 감수하는 일은 내면의 평화로 나타난다. 즉 비록 아직은 고통이 클 지라도 이 고통이 우리를 새로운 미래로 인도하리라는 사실을 아는데서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디건의 회복수기, 「가족협회보 6호」, 29쪽)


수용은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아는데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성공과 실패를 아는데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잃은 것을 아는데에서 시작된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한없이 많지만,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자신이 여전히 가치로운 존재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의 상처를 용서하고 잊어버리며, 과거를 되씹지 않는다. 현재의 고통으로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후에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들이 자신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그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여 준 사람들이 있다. 타인에 의한 수용은 자신이 스스로를 수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들이 희망을 잃어버렸을 때, 희망을 간직하고 격려해 준 사람들이 있다. 사실상 수용은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들의 격려에 힘입어 긴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포기했던 순간에도 우리를 사랑하여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들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변화시킬 만한 힘도 없고 우리를 개선시키지도 못하였다. 그들은 우리를 대신하여 그 큰산을 올라갈 수 없었지만, 기꺼이 우리를 위해 어려움을 감수해 줄 수 있었다. 장래에 대한 낙관적인 계획을 가지고 우리의 귀를 넘치게 하지 않았으며, 그러나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사랑은 우리가 자기연민과 절망에서 벗어나도록 끊임없이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기적처럼 그 친구와 나는 이같은 사랑어린 손짓에 차츰 귀기울여 반응하게 되었다.” (디건의 회복수기, 「가족협회보 6호」, 29쪽)


“내 병이 낫기까지 부모님, 형님들 그리고 내가 병에 걸렸던 사실을 모르던 무지한 친구들이 있었다(그들에게 감사드린다). 불치의 병이었던 이 병을 위해 완치가능의 약물과 방법을 개발한 많은 의료인들에게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정신병이란 가혹한 절망과 함께 그 치료제인 희망을 안배한 신에게 거듭 경배한다.” (회복수기, 「한그루 싱싱한 소나무처럼」, 83쪽)


수용이란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들은 자신을 위하여 헌신하는 가족들에게, 그리고 늘 자신을 지켜봐 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끼며, 조현병 그 자체에 대해서도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러한 감사의 마음을 얼굴표정으로, 말로, 행동으로, 매일의 생활자세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을 편안하게 대할 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하기 시작하며, 말과 행동에서 안정감, 자부심, 자신감이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고, 새로운 삶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6) 노력


“그 수없는 절망을 헤쳐 나온 어느날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였다. 재기의 주춧돌--희망, 의욕, 책임있는 행동--을 디디고 일어서서 우리의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 (디건의 회복수기, 「가족협회보 6호」, 28쪽)


수용과 희망은 재기의 계기이며, 주춧돌이다.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인생이 바뀌지는 않는다.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것을 대응이라고 한다.


“우리 대다수에게 재기란 갑작스런 전환의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희망이란 번개처럼 느닷없이 찾아와 우리 삶 전체를 새롭게 돌변시키지는 않는다. 희망은 전환점이며, 우리는 그것에 즉시 대응할 의욕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디건의 회복수기, 「가족협회보 6호」, 28쪽)


수용, 희망, 그리고 대응은 처음에는 매우 연약하다. 어린 새싹과도 같다. 그것은 쉽게 깨어질 수도 있다. 첫 출발은 작은 일들로부터 비롯된다. 매우 작고 사소한 사건들, 매우 작고 사소한 성공들, 이것이 시작이다. 회복수기를 통하여 그들이 새로운 삶의 첫걸음을 어떻게 내디뎠는지를 살펴보자.


“나는 차를 타고 수요일에는 쇼핑을 하였고 친구와 만나 몇분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약물치료를 따랐으며, 아르바이트를 하여 용돈을 벌었다. 나는 심리학자가 되고자 입학하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디건의 회복수기, 「가족협회보 6호」, 28쪽)


“나의 중요한 대응방법은 피아노 연주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또하나의 성공적인 대응방법은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걷기는 초기 대응방법 중 한가지였다... 병을 앓는 동안 나는 신체건강관리에 한 번도 소홀하지 않았다.” (맥퀼린의 회복수기, 스패니올과 쾌러의 책에서 인용함)


“8년간 정신병을 앓았다. 그 세월동안 회복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키워 왔다. 언니가 「생각하고 성장하라」라는 한권의 책을 건네주면서 책속에 담긴 원칙들을 지키면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그 전에 아무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강한 호기심이 발동되었다.


책을 읽고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 책의 주제는 ‘정신적으로 인식하고 믿는 것은 무엇이든지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책 속의 주인공들과 동일감을 느꼈다. 나는 그 원칙들을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옮겼다. 나에게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쉬묵의 회복수기, 스파니올과 쾌러의 책, 1-3쪽)


“89년 미국서 지내던 작은형이 결혼을 하기 위해 집에 왔다. 당시 집엔 작은 정원이 있었고 좁은 대문을 통해 차를 출입시켰으며 익숙하지 않으면 차가 손상될 우려가 많았다. 실제로 나도 87년초 면허를 획득하여 연수를 받고 차를 밖으로 빼내오려다 차가 벽에 부딪쳐 크게 손상된 이후 차를 움직이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미국서 내가 병에 걸린 줄 모르고 있던 작은형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다 차를 밖으로 안전하게 빼내고 주차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여러번 연습을 하고 숙달되니 아주 쉬웠고 재미있었다.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동네 한바퀴 그리고 서울역, 시내 강변도로 등을 다니며 몇시간을 운전하였다. 간혹 식은땀이 흐를 때도 있었지만 규정속도, 표지판, 신호를 잘 지키면 문제가 없었다. 모든 차량이 빨간 신호등 앞에 정지하였으며 녹색 신호가 떨어지면 출발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규정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우리 사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삶은 하나의 거대한 교통신호체계가 아닐까? 삶은 이처럼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렇게 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우연히 약을 안먹고도 숙면을 취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더 이상 약의 노예가 아니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세상이 새롭고 아름답게 느껴졌으며 걸어다닐 때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으며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우리 가족과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는 전용기사가 되었으며, 나의 병은 그렇게 치유되었고, 어느 누구를 만나도 부끄럼 없이 떳떳하게 행동하게 되었다.” (회복수기, 「한그루 싱싱한 소나무처럼」, 81쪽)


외출을 시작한 것, 피아노 연주를 시작한 것, 가슴에 와닿는 책 한권을 읽고 실천하기 시작한 것, 자동차 운전을 시작한 것 이러한 것들이 새로운 삶을 향한 그들의 첫걸음이었다. 사소한 일들을 시도하고, 작은 성취감을 경험하는 것이 자신감을 가져다 준다. 이러한 작은 일들이 환자로 하여금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떠한 세계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 준다. 비록 아직까지 많은 시련과 난관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들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작은 성공경험을 통하여 매일 조금씩 강해진다.


“질병은 지속되었고 때때로 재발했다. 그러나 이전에 비하여 재발의 간격은 길어지고 보다 빨리 회복되었다. 정신이 건강해지는 만큼 병으로부터 건강해지기 시작하였다... 나 자신에 관해 기록하였다.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을 기록하였다... 오늘의 약간의 변화를 통해 내일 나 자신과 자식들을 위해 좀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나 힘든 일이 많았고 절망과 좌절도 많이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으며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것이라 믿을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이었다.” (쉬묵의 회복수기, 스파니올과 쾌러의 책, 1-3쪽)

이 시기에 환자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사소한 일들을 환자와 함께 해주는 것, 환자가 두려워할 때 용기를 불어 넣어 주는 것, 환자의 실수를 너그럽게 눈감아 주는 것, 환자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 등이 환자를 돕는 방법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내 주위에는 정신병 환자에 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내가 회복될 수 있다고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긍정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정신병 환자니까 난 할 수 없어’라고 말할 때마다 언니는 ‘불가능한 것은 없어. 그렇게 자신감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해. 적어도 시도는 해봐야지‘라고 말했다.


결국 집을 나서서 직장을 구했고, 그곳 사장과 동료 직원들은 내가 정신병 환자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용기도 북돋아 주었다. 그리고 장애를 일으키면 항상 곁에 있어 주었다. 그 때문에 부끄러움과 당황감을 느꼈지만 그들은 모른 척 해주었다. 단지 견뎌내 주어서, 그리고 매일매일 강해지고 건강해져서 기쁘다고 말해 주었다.” (쉬묵의 회복수기, 스파니올과 쾌러의 책, 1-3쪽)


수용, 희망, 그리고 대응은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 준다. 환자는 사소한 일들에서 작은 성공을 거둠으로서 자신감을 조금씩 회복한다. 그것은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내었다는 성취감은 자신의 실수와 단점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아량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실패할 가능성이 있더라고 시도는 해볼 수 있는 용기를 가져다 준다. 이렇듯 수용, 희망, 그리고 대응이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 줌으로서 환자는 매일 조금씩 강해져 간다.


7) 옹호/ 힘의 획득


환자는 자신에 대한 새로운 느낌과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함에 따라, 지금까지와 다른 어떤 힘을 얻게 된다. 환자는 자기자신의 수호자가 된다. 환자는 자신을 다르게 경험한다. 이전의 자신이 아니다. 질환은 계속될 수 있으나 환자는 변했다. 이전과 동일한 증상을 경험할 지라도, 그것에 대하여 덜 고통스러워하며, 생활에 영향을 적게 받는다. 환자는 자신의 흥미를 가지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다. 환자는 보다 자신만만하고, 유능감을 느낀다. 환자는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은 다른 사람들에게 유대감을 느끼며, 그들을 지원한다. 환자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다.


“정신질환을 경험했다고 해서 반드시 불리한 것이 아니며 그것은 자산이 될 수도 있다. 점점 더 전문적인 영역에서 재기한 환자들이 동료의 삶을 위해 그들의 기술과 이해력, 치유력, 힘의 획득, 권익옹호 활동 등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우리는 자신들도 동료를 돕는데 있어 깊은 열정과 높은 영감에 놀라움을 느끼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 연대감을 나타냄으로서 우리 자신의 고통이 없어지며, 또한 그것을 좋은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병을 받아들이고 경감시키며 인내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본보기를 통하여 사람들을 격려할 수 있다.” (쾌러의 회복수기, 「가족협회보 5호」, 16쪽)


“조현병을 앓고 있는 모든 환우에게 나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굶어 죽을까봐 염려하던 내가 앞으로 수녀가 되고 정신과의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도구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나님은 나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모든 정신병환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사랑하신다. 모든 환우들도 나처럼 희망을 가지고 힘껏 투병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회복수기,「한그루 싱싱한 소나무처럼」, 62쪽)


“나는 현재 지난 8년간의 정신병으로부터, 약물치료로부터, 그리고 정신치료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제 그 경험을 환자, 가족, 의사, 공동체, 회사, 및 종교단체들과 더불어 나누길 원한다. 정신건강은 가장 심한 환자에게도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우리에게는 실제로 그 일을 해낸 사람이 있다는 희망이 필요하다.” (쉬묵의 회복수기, 스파니올과 쾌러의 책, 1-3쪽)


지금까지 환자들의 재기과정을 시간경과에 따라 순서적으로 살펴 보았다. 이러한 재기과정은 손상된 피부에 새살이 돋아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충격, 부인, 우울, 분노, 수용, 대응, 그리고 옹호에 이르기까지 어느 단계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그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야 새해가 오는 것처럼 필연적으로 거쳐야만 하는 자연현상이다.


재기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들의 자기감은 변화해 간다. 모든 과정을 거친 후 그들이 얻게 되는 것은 새로운 자기감, 즉 새롭게 변화된 자신에 관한 긍정적인 느낌이다. 그래서 우리는 재기과정을 ‘자신을 찿아 가는 길’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들의 손을 잡아줄 수는 있지만, 모든 시련을 이겨나가고 결국 새로운 자기감을 획득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줄 수는 있으나, 재기시킬 수는 없다. 긍정적인 자기감을 획득하고,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일은 오직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을 치료한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일어서는 것이며, 우리는 그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비옥한 땅을 제공함으로서 그들을 도울 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면,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당신을 돕는 길인가’를 그들에게 진지하게 물어 보아야 한다.



3. 재기의 요소


인디애나대학 심리학과 설리반(William Patrick Sullivan) 교수는 조현병을 앓았으나 재기에 성공한 사람 46명에게 “병을 이겨내는데 가장 도움이 된 것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물어 보았다. 그들은 평균 9년간 투병생활을 했으며, 평균 6번 입원하였으나, 현재 6년 이상 재발하지 않고 직업생활을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연구가 소비자, 즉 환자에게 직접 물어 본 연구라는 점이다. 과거에 전문가들은 환자에게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거의 물어 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환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또 가족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방법은 현명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에게 그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 주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전문가들은 증상을 평가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서 전문가적 입장에서 관찰하고 판단하는 방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그들의 ‘삶의 질’, 다시 말하여 생활만족도가 평가의 촛점이 되어야 한다. 관찰하기 보다는 물어 보아야 하며, 판단하기 보다는 공감하여야 한다.


설리반의 연구에서는 응답자 한사람이 평균 5개의 요소를 지적하였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표 2-1>. 재기에 필요한 요소들

약물복용72%

지역사회 지원체계와 사례관리 67%

자신의 의지와 자기감찰 63%

직업활동 또는 학교생활 46%

종교적 믿음43%

병에 대한 지식과 병의 수용35%

환자 모임33%

아껴주는 사람 30%



1) 약물복용


많은 환자들이 약물복용을 재기의 필수적인 요소로 지적하였다. 당연한 결과이다. 약물복용을 중단하게 되면 2~3개월후부터는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우리의 경우 환자들이나 가족들이 약물복용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러번 약물복용을 중단하여 재발과 재입원을 반복한 뒤에야 비로소 약물복용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약물복용을 꾸준히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환자와 가족에 대한 약물교육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의사가 환자의 약물부작용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가족 또한 환자가 약을 먹지 않으려고 할 때 그 이유에 귀를 기울이고, 환자의 약물부작용을 덜어 주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2) 지역사회 지원체계와 사례관리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지역사회 지원체계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며, 사례관리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지역사회 지원체계란 환자를 돕는 여러 형태의 기관들이 서로 긴밀히 협조하면서 그때그때 환자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정신병원만 있을 뿐 다른 종류의 기관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병원은 응급치료기관의 역할은 할 수 있으나, 환자의 사회복귀를 촉진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에도 낮병원, 응급진료센터, 직업훈련센터, 직업소개소, 중간거주지, 정신건강센터, 환자자조모임 등 환자를 돕는 다양한 기관들이 설립되어야 한다.


설리반의 연구에서 환자들은 이러한 기관들이 자신들에게 활동을 제공하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하였다. 이러한 기관들은 환자들에게 체계적인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 여가선용 프로그램, 직업재활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며, 환자들은 “바빠서 아플 틈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환자들이 “갈 곳이 없고, 할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얼마나 대비되는가?


재활사례관리사는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환자에게 친구와 같은 존재이다. 그들은 자신의 근무기관에서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나 환자를 만난다. 예를 들어서 환자의 집이나 직장으로 환자를 방문하기도 하고, 커피숍에서 만나기도 하고, 같이 쇼핑을 하러 가기도 한다. 그들은 환자가 고민이 있을 때 들어주며, 환자의 하루 생활계획을 같이 짜주고, 사야 할 물건의 목록을 같이 작성하기도 한다. 또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기관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친구를 소개시켜 주기도 하며, 필요한 행정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기도 한다.


환자들은 사례관리사를 친구처럼 느끼며, 그들이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필요할 때는 언제나 도와준다고 느낀다. 환자들은 재활사례관리사들이 자신을 대등한 동반자로 여기고 존중하며, 정상적인 방식으로 대해 주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재활사례관리사들은 환자를 위한 일을 할 때 항상 본인의 의견을 묻고, 본인의 동의를 얻어서 실천한다.


3) 자신의 의지와 자기관찰


병으로부터 회복하고 인생에서 재기하고자 하는 환자 본인의 의지는 병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더욱이 증상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다. 이때 중요한 점은 환자의 결심과 희망이다. “자신의 병을 극복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리라”고 결심한 사람과 그것을 포기한 사람의 차이는 매우 크다.


환자들은 단순한 결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열쇠는 자신의 증상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한 환자는 환청이 들릴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악기를 연주한다. 그러면 환청은 사라진다. 또다른 환자는 텔레비젼을 보다가 텔레파시를 느끼면 텔레비젼을 끄고 자리를 피한다.


실제로 만성환자들은 경험을 통하여 자신의 증상을 조절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발병한지 얼마 되지 않는 환자들은 다른 환자들로부터 자신의 증상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전문가와 가족들은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그리고 증상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자기관찰이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관찰해 나가는 것이다. 많은 환자들이 증상이 심해지려 할 때의 느낌을 알고 있다. 또한 어떤 장소에 갔을 때,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을 할 때, 어떤 종류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신이 불안해 지고 증상이 심해지는 지를 알고 있다.


재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관찰하여 자신에게 유익한 환경과 자신에게 해로운 환경을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유익한 환경을 추구한다. 이것은 위장병이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부담이 없는 음식과 배탈이 나는 음식을 구별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전문가들은 환자들이 스스로의 경험을 통하여 터득한 증상관리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많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 주어야 한다.


4) 직업활동 또는 학교생활


흔히들 말한다. “병이 나아야 일을 하지”라고, 그러나 사실은 이 말과 정반대이다. “일을 해야 병이 낫는다”. 직업활동은 재기의 목표일 뿐만 아니라 방법이기도 하다. 직업활동에는 직장생활, 사업 뿐만 아니라 학교생활도 포함된다. 직업활동은 매일의 생활을 규칙적으로 하게 한다. 사람들을 만나도록 한다. 바쁘게 만든다. 집중하게 한다. 집밖으로 끌어낸다. 직업활동은 목표가 있는 생활을 하도록 하며, 스스로를 가치있는 존재로 느끼게 한다. 직업활동은 그때 그때 작은 성취의 기쁨을 느끼도록 해 주는데, 이것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 준다.


가족들이 기억해야 할 점은 “일을 하는 것이 환자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직업이 없다면, 학원에 보내거나, 견습공으로 보내거나, 낮병원에 보내거나, 환자 자조모임에 보내야 한다. 환자가 할 일 없이 집에서 빈둥거리게 하는 것은 재입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다.


5) 종교적 믿음


종교는 환자에게 심리적 위안을 준다. 증상이 있을 때, 절망적일 때 기도를 통하여 환자들은 마음의 평정을 회복할 수 있다. 종교집회는 환자에게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주며, 따뜻하게 대해 주고 관심을 기울여 주는 사람을 제공해 준다.


저자들이 만나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 중에도, 발병 이후 종교, 특히 기독교에 귀의한 경우가 많다. 종교적 믿음이 회복에 도움이 되지만, 몇가지 유의사항이 있다. 모임을 통하여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 행사와 활동에 참여하는 것 등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추상적인 종교교리에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환자들은 사고의 혼란으로 인하여 추상적이고 비유적인 종교교리를 이해하기 힘들며, 자칫하면 종교교리를 엉뚱하게 이해하거나, 자신의 환청이나 망상을 종교적으로 해석하여 증상이 보다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재 우리나라의 종교지도자들 중 다수가 이 병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도 문제점이다. 오늘날 신체질환을 의학적 도움없이 기도만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지도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정신질환의 경우, 신이 들렸다거나, 마귀가 씌였다거나, 신앙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거나, 마음의 병이라거나, 의지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종교지도자들이 많다. 그들은 환자에게 약물복용을 중단하고 오직 신앙의 힘으로 치료할 것을 권한다.


따라서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조현병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자신들만이 환자를 치료하거나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의사들이 이 병에 관여하기 이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많은 환자들이 종교지도자를 찾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그들과 협력해야만 한다. 만일 그들이 이 병에 관하여 충분한 지식을 갖게 된다면 그들은 환자의 재기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6) 병에 대한 지식과 병의 수용


병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질 수록, 환자들은 약물복용을 철저히 하며, 자신의 증상을 관찰하고, 증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며, 유해한 스트레스 상황을 피하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려고 애쓰게 된다.

더욱이 환자들은 자신과 병을 구분하게 된다. 즉 자신을 ‘정신병자’로 인식하기보다는 ‘정신병 증상을 겪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 차이는 상당히 큰 차이이다. 우리나라에서 만성환자들의 큰 문제점은 자신을 정신병자로 인식하고, 환자 역할에 젖어 있는 점이다. 자신을 ‘정신병자’가 아닌 ‘정신병 증상을 겪는 사람’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건강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병에 대한 지식의 증가는 자신의 병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해 주며, 자신의 병을 수용하는 것은 또한 병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해 준다. 따라서 입원환자 및 퇴원환자를 대상으로 조현병에 관한 환자교육을 실시하여야 한다. 가족들 또한 자신이 이 병에 관하여 알게된 모든 사실들을 환자에게 전달해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7) 환자모임


환자들 간의 만남은 재기를 위한 중요한 요소이다. 불행히도 우리의 경우 아직까지 환자모임이 제대로 결성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환자들끼리 친구가 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심지어 환자들도 다른 환자를 경멸하며 친구가 되지 않으려 한다. 그만큼 이 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무지가 심하다. 가족들이 다른 환자를 경멸하면서, 환자가 다른 환자를 경멸하면서, 어떻게 남들에게 자신을 존중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환자들은 서로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다. 환자 모임은 서로에게 정서적 지원을 제공해 주며, 바람직한 교육적 기능을 수행한다.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열악한 정신병원 및 요양원 실태에도 불구하고, 큰 사고없이 병원이 운영되고 요양원이 운영되는 것은 그 시설 내에서 환자들의 건강한 부분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누구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정신병원에서는 입원한지 오래된 환자가 새로 입원한 환자에게 병원에서의 생활요령을 교육시켜 주고, 힘들어 할 때 위로해 주고, 필요한 도움을 제공해 준다. 심지어 그들은 치료진을 격려해 주고, 치료진에게 도움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들의 건강한 부분이 없다면, 그들의 도움이 없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정신병원은 단 하루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환자들을 상담해 보면 그들이 서로를 도와 주려고 얼마나 애쓰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은 상대방의 장점을 칭찬해 주고, 단점을 정확하게 지적해 준다. 인간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느낄 때 뿌듯해 한다. 환자들은 자신을 위해서는 할 수 없는 일도 다른 환자를 위해서는 할 수 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환자들은 환자모임 속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기쁨을 느끼며, 자신 속에 타인을 위하는 마음과, 자신도 미처 몰랐던 어떤 능력이 있음을 깨닫는다. 이것이야 말로 환자에게 정말로 좋은 치료약이다.


8) 아껴주는 사람


환자들은 보통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정과 사랑과 성생활을 필요로 한다. 재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를 믿지 않을 때라도 자신을 믿어 주었던 사람, 자신의 재기를 격려하면서도 강요하지는 않았던 사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 여겨질지라도 경청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 사람은 환자가 필요로 할 때 ‘거기에 있어 주었던’ 사람이다. 환자에게 꼭 무엇인가를 해 주지 않아도 된다. 항상 애정과 관심을 갖고 그를 지켜 보며, 그가 힘들어 할 때 함께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으면 된다.

환자들은 우정과 사랑을 바라면서도, 그러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기술이 부족하여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환자들에게 그러한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바람직한 대화법을 가르쳐 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전문가들과 가족들은 환자의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하고, 격려해야 하며, 또한 여유를 갖고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환자를 돕고 싶다면 먼저 환자의 마음 속에 ‘언제나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4. 재기철학의 시사점


재기철학은 환자를 돕기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하여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중요한 시사점 몇 가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1) 재기의 주체는 환자 본인이다.


재기의 열쇠는 전문가가 아닌, 환자 본인에게 있다. 전문가만이 아니라 인생의 난관을 극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인의 재기를 도울 수 있다. 과거에 병을 앓았으나 회복에 성공한 사람, 환자, 가족, 친구는 환자의 재기를 도울 수 있다. 학벌이나 자격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환자가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가, 환자에게 진정한 관심이 있는가, 환자를 존중하는가, 환자의 재기를 격려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재기에 이르는 길은 매우 다양하다. 정신과 치료뿐만 아니라, 운동하는 것, 취미 생활하는 것,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 신앙생활을 하는 것, 직장에 다니는 것, 자격증을 따는 것,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는 것 등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


환자를 무시하고, 소홀히 대하고, 절망감만 안겨 주는 병원이나 전문가는 재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병원에 다니는 것을 그만 두는 것, 그러한 전문가를 만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재기에 도움이 된다.


2) 재기는 그를 아껴주는 사람에 의하여 촉진된다.


인생의 난관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한가지 공통분모는 재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곁에 그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재기에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를 믿지 않을 때라도 자신을 믿어 주었던 사람, 자신의 재기를 격려하면서도 강요하지는 않았던 사람, 언제나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고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던 사람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재기는 진한 인간적 경험이며, 진한 인간적 반응에 의하여 촉진된다. 우리가 환자를 돕고 싶다면, 먼저 환자의 마음속에 ‘자신을 아껴주는 소중한 사람’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3) 재기는 증상의 빈도와 기간을 변화시킨다.


치료와 재기는 서로 상호 작용한다. 증상이 경감되면 재기하기가 쉬워진다. 또한 반대로 재기를 위하여 노력하게 되면 증상이 경감된다. 환자가 인생목표를 새롭게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되면, 증상이 보다 덜 빈번하게 나타나며,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생활에 지장이 덜하고, 증상이 보다 빨리 사라진다. 그는 증상으로 고통받을 때라도, 참고 견디면 그것이 지나간다는 것을 안다. 그는 증상에도 불구하고 덜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을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 환자의 삶은 증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4) 재기는 오랜 세월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재기과정에는 성장과 후퇴가 있으며, 변화가 거의 없는 시기가 있고, 급격히 변화하는 시기가 있다. 전반적인 경향은 상승하는 것이지만, 순간 순간의 경험은 ‘방향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환자는 희망과 좌절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그러나 통찰과 성장의 시기는 예상치 못한 때에 일어난다.


대체로 환자가 재기에 성공하기까지는 보통 10년이 걸린다. 그 동안 보통 5~6차례 재발한다. 환자가 얼마나 빨리 재기에 성공할 수 있는가는 그가 정신병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그가 이 병을 비참하게 여길 수록, 위협적으로 느낄 수록, 이 병이 그의 생활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을 수록, 그의 꿈과 인생계획을 산산이 부수어 놓을 수록, 회복은 더욱 많은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참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비록 환자의 증상이 악화되고 재입원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일이며, 환자는 비록 조금씩이지만 여전히 좋아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5) 병 자체보다 병의 결과로부터 재기하기가 더욱 어렵다.


환자는 증상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는 것 보다 떨어진 기능과 어떤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것, 그리고 사회가 주는 불이익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기가 더욱 어렵다. 이것들은 환자의 자존심과 희망을 앗아간다. 만일 우리가 환자를 ‘덜한 채로’ 살아가도록 하는데 초점을 둔다면 환자의 자존심과 희망을 되찾아 주기는 매우 어렵다. 즉 증상이 덜한 채로, 생활에 지장이 덜한 채로, 불이익이 덜한 채로 살아가기를 목표로 한다면 환자는 자존심과 희망 또한 덜한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환자를 ‘더한 채로’ 살아가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즉 자신의 삶에 있어서 더 많은 의미, 더 많은 성공, 더 많은 만족을 추구하며 살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6) 재기의 결과는 자기감과 통제력의 회복이다.


재기의 결과는 자신에 대한 새로운 느낌과 삶에 대한 새로운 만족감을 경험하는 것이다. 즉 재기에 성공한 사람은 자신에 대하여 진실된 느낌, 생생한 느낌, 심오한 느낌을 경험한다. 또한 자신의 삶에 대하여 마찬가지 느낌을 경험한다. 그는 타인에 대해서도 깊은 유대감을 느끼며, 자신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전문가들은 이제서야 이러한 자기감과 유대감이 어떻게 발달하는지에 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재기에 성공한 사람은 보다 효율적으로 행동하며, 보다 자신만만하고, 보다 안정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임을 자각하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간다. 비록 모든 환자들이 다 재기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병으로 인하여 고통받은 만큼, 그 고통을 능가하는 개인적인 결과가 있다.



5. 맺는 말


이제까지 재기의 개념을 다루었다. 그리고 단지 병의 증상을 없애는 것이 환자를 돕는 길이 아니며, 환자가 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소개하였다. 그들이 이 병을 극복하고 인생에서 재기할 지의 여부는 그들의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끊임없이 지켜보고 격려함으로서 그들의 노력을 지원할 수 있다.



참고문헌


대한신경정신의학회(1997). 한그루 싱싱한 소나무처럼: ’97 정신건강의 날 기념 조현병 극복수기 당선작. 서울: 한국얀센.


손명자(1997). 정신장애로부터 회복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가족협회보, 제5호, 14-16. 서울: (사)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


손명자(1997). 회복: 재활의 체험. 가족협회보, 제6호, 26-29. 서울: (사)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


손명자(역)(1998). 정신재활(Anthony, W. A., Cohen M. R., & Farkas, M. D., Psychiatric rehabilitation. 1990). 서울: 성원사.


Anthony, W. A.(1990). Toward a vision of recovery. Boston: Boston University, Center for Psychiatric Rehabilitation.


Hatfield, A. B.(1990). Family Education in Mental Illness. New York: The Guilford Press.


Hatfield, A. B., & Lefley, H. P.(1993). Surviving Mental Illness: Stress, Coping, and Adaptation. New York: The Guilford Press.


Rogers, J. A.(1995). Work is key to recovery. Psychosocial Rehabilitation Journal, 18(4), 5-10.

Spaniol, L., & Koehler, M.(Eds.)(1994). The experience of recovery. Boston: Boston University, Center for Psychiatric Rehabilitation.


Spaniol, L., Koehler, M., & Hutchinson, D.(1994). The Recovery Workbook. Boston: Boston University, Center for Psychiatric Rehabilitation.


Sullivan, W. P.(1994). A Long and Winding Road: The Process of Recovery from Severe Mental Illness. Innovations & Research: In Clinical Services, Community Support, and Rehabilitation, 3(3), 19-27.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촛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4.22 본 카페의 [자료실 함께 만들어가기] 메뉴에 있는 <촛불저서> 게시판에 들어가시면, 이 책 (정신분열병과 가족) 전체를 무료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단 회원가입을 하셔야만 됩니다. 가입신청 즉시 정회원으로 가입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cso3936 | 작성시간 15.10.27 배교수님 강의에 참석하려면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세요
  • 답댓글 작성자촛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0.28 cso3936 아직 정기적인 강의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선 본 카페에 올려져 있는 동영상들을 보시길 바랍니다. [기초교육] [촛불강의] 등의 게시판에 제 강의가 올려져 있어요. 유튜브에서 "배정규"라고 검색어를 치시면 제가 올려놓은 동영상이 64편이 있는데, 그 중의 절반 정도는 제 강의예요. 유튜브로 보시는게 검색이 용이할 수도 있겠다 싶네요. 제 메일은 bae9190@daum.net 입니다. 연락처는 010-4084-6365 인데, 미리 누구인지 문자주시고 연락하시면 통화가능합니다. 정기적인 교육 또는 공부모임을 구상하고 있는 중인데, 언제부터 어디에서 어떤 내용과 어떤 형식으로 진행할 지를 두고 아직도 계속 고민 중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촛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0.28 cso3936 이번 주 금~토요일에 대구에서 1박 2일로 카페 연차대회가 있습니다. 카페공지글에 올려져 있으니 확인해 보시고, 여건이 되신다면 참석하시기를 희망합니다. 그때 자세한 얘기를 나눠보면 좋을 듯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