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의 이완(loosening of association)에 대한 이해와 대처 (교과서적 설명)
일반인의 경우 생각은 앞뒤가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일정한 방향성과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 즉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관련된 내용을 조리있게, 순서적으로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그러나 조현병이 발병하면 이것이 어렵다.
환자들의 생각은 앞뒤의 연결성이 부족하거나, 토막토막 단절되어 있어서 뒤죽박죽인 경우가 많은데, 전문가들은 이를 ‘연상의 이완’ 또는 ‘연상의 해이’라고 한다. 정신의학 교재에 수록된 환자의 편지를 예로 들어 보자.
“부모님 전상서.
햇빛을 등지고 글월로 소식을 전합니다. 시간의 흐름이 늦은 것 같군요. 이 몸은 내 몸이 아이요 바로 여러분들의 노예입니다. 존경하는 어머님! 감사합니다.
1969년 2월 2일 먼지가 뭉쳐서 떨어졌다. 즉, 부활이 됐지! 맛있게 라면을 먹다. 인내로 이성을 가져라. 노력 MP환자. --발산은 능력을 가져야. 완전무결. 실패하라! 재 출발. 2월은 왔다.” (「정신의학」, 169쪽)
이 예를 수록한 교재에는 “물론 이 환자의 횡설수설 가운데서 환자가 인내와 노력으로 실패를 이겨내고 재출발을 하여 새사람(부활)이 되려는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이렇듯 그 의미를 다소나마 파악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아예 의미 파악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환자가 연상의 이완을 보일 때, 가족들로서는 환자가 동문서답을 하거나, 대화에 집중을 못하거나, 앞 뒤 두서가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갑자기 엉뚱한 말을 지껄이거나, 혼자서 계속 중얼중얼거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
이때 환자 본인도 자신의 생각이 두서가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답답해한다. 회복된 환자들이 보고한 증상경험을 통하여 환자의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설명하겠다.
① 환자의 경험 : ‘자극의 홍수’와 ‘생각의 질주’
대다수 환자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오르거나, 생각의 속도가 너무 빨리 전개되어 고통을 겪는다.
“내 생각은 뒤죽박죽된다. 나는 어떤 것에 관하여 생각하기 시작하지만 그 생각을 마치지 못한다. 대신에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서 내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과 관련된 온갖 것들이 떠오르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토레이의 책 18쪽)
“나의 문제는 너무나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는 점이다. 당신은 어떤 것, 예를 들어 재떨이에 관해 생각할 때, ‘이건 담배를 끄는데 쓰는거야’라고 생각할 뿐이지만, 나는 재떨이와 관계된 것들을 한꺼번에 수십가지나 생각한다.” (토레이의 책 10쪽).
“내 생각은 어디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주변을 맴돈다. 책 한 페이지를 읽으려 해도 한참 걸리는데, 그 이유는 단어 하나로 인하여 열가지 서로 다른 생각이 한꺼번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트필드와 레플리의 책 45쪽)
“생각의 열차가 달리기 시작했으며, 결국 복잡하게 뒤엉킨 채로 끝났다. 아니 사라졌다. 나는 전혀 그것의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하트필드와 레플리의 책 45쪽)
이처럼 환자들의 머리 속에는 한 번에 한가지 생각만 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생각이 이것저것 동시에 떠오른다. 그런데 이들 중 어느 것이 중요한 것이고, 어느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를 종잡을 수가 없다.
이를 ‘자극의 홍수’, 또는 ‘생각의 홍수’, ‘생각의 질주’, ‘정보과잉’, ‘과중부하’라고 하는데, 환자들은 이를 ‘동시에 두세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라고 하거나 ‘동시에 수십통의 전화를 받는 것 같다’라고 비유한다.
② 환자의 경험 : ‘통제불능감’
이러한 상황에서 환자는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을 몰아내거나, 생각의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환자에게는 생각이 마치 자신의 생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내 생각은 그 자체의 생명과 방향성을 지닌 듯 했다. 그것이 점차 분명해졌다. 생각은 자신의 의도를 내게 알려 주지 않은 채, 그것에 관해 생각해 볼 틈도 주지 않은 채, 나를 끌어 들였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어떤 것을 행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는데, 정말로 조금이라도 생각한 흔적이 없었다.” (하트필드와 레플리의 책 46쪽)
환자는 혼란스럽고 당황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심한 두려움과 공포를 경험하며 또한편으로는 분노를 느끼게 된다. 생각이 뜻대로 되지 않는 중에도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를 알아내려고 애를 쓰며, 결과적으로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여 망상을 갖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관련없는 생각이 떠오르고 생각이 제멋대로인 것에 대하여 ‘누군가 생각을 내 머리속에 집어 넣는다(사고주입망상)’거나, ‘누군가 내 생각을 조종하고 있다(피조종망상)’고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③ 설명방식 : 여과장치(필터)의 손상
일부 전문가들은 ‘환자가 왜 자극의 홍수에 빠지는가’에 관한 가설을 내놓았는데, ‘조현병 환자는 뇌에 입력되는 자극들 중 불필요한 자극을 걸러내는 여과장치(필터)가 손상되어 있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이 설명에서 주장하는 필터라는 개념은 아직까지는 가상적인 개념이다. 그 주장을 좀더 상세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림 6-1>. 인간의 정보처리과정 (그림 생략)
<그림 6-1>처럼 인간의 뇌는 정보를 처리하는 기관이다. 어떤 한 순간에 우리의 뇌에 입력되는 자극의 양은 엄청나게 많다. 뇌가 이 모든 자극을 모두 처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불필요하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어떤 한 순간에 가장 중요한 자극만 선택하여 받아들이며, 불필요한 자극은 여과장치(필터)에 의하여 미리 걸러내어 진다.
조현병 환자는 뇌는 여과장치(필터)가 손상되어 있으며, 따라서 중요한 정보와 중요하지 않은 정보가 뒤죽박죽된 채로 한꺼번에 입력된다. 결과적으로, 처리해야 할 정보의 양이 너무 많기 때문에 환자의 뇌는 처리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말하자면 환자의 뇌는 ‘자극의 홍수’ 상태가 된다(<그림 6-2>).
<그림 6-2>. 정상적인 필터와 부서진 필터 (그림 생략)
여과장치(필터)의 손상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환자에게 유입되는 자극의 양을 줄여 주라고 권고한다.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자극을 줄이는 방법은 단순화, 규칙화시켜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소음을 줄여준다. 복잡한 곳을 피한다. 말을 짧고 간단명료하게 한다. 한 번에 한가지 말만 한다. 일상생활을 규칙화한다. 같은 일과를 반복한다.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는다. 한 번에 한가지 일만 한다. 이렇듯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자극을 줄이는 방법을 ‘스트레스관리’라고 하는데 10장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한편 내부로부터 유입되는 자극이 있는데, 우리의 기억이 회상되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을 줄이는 방법은 적당한 활동을 하는 방법이다. 운동, 청소, 빨래, 목욕, 음악감상 등이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