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일어나세요!"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웅웅 거리는 듯했다. 카카시는 미간을 심하게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복면은 그대로다. 눈부신 햇살을 등지며 천천히 눈을 뜨니 희미한 시야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뭔가 들뜬 듯이 웃고 있는 노란 머리칼의 엉터리 제자 하나, 마찬가지로 홍조를 띄우고 미소를 짓고 있는 소녀, 왠지 덜 냉담해 보이는 까만 녀석…….
"으음. 너희들이냐?"
카카시는 몸을 뒤척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꽉 잠긴 기운이 그를 불쾌하게 했다. 이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조차 힘들다.
"선생님, 선생님. 오늘은 무슨 날?"
나루토의 목소리였다. 언제나처럼 변하지 않은 얼굴을 들이밀며 씨익 웃고 있었다. 카카시는 흐리멍텅한 눈동자로 제자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사쿠라에게 시선을 옮겼다. 사쿠라도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다가 시선이 마주치자 입을 열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겠어요?"
카카시는 멍하게 생각에 잠겼다. 무슨 날이라니…… 갑작스럽게.
"쳇. 알 리가 없잖아. 이런 무신경한 얼굴인데, 대답을 원하고 있는 거냐?"
차가운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장본인 사스케가 다가오며 팔짱을 낀 채 카카시를 내려다 보았다. 카카시는 오른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써클렛은 벗겨진 채…… 감긴 왼쪽 눈이 왠지 불편했다. 유카타를 입고 있는 탓에 바짝 마른 맨 가슴이 깊게 드러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랐다. 이렇게 허약하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된 건…….
나루토는 갑자기 입을 다물어 버린 카카시를 가만히 쳐다 보다가 카카시의 눈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바보같은 생각 그만하고, 대답해봐요."
나루토의 말에 카카시는 미간을 찌푸렸다.
"바보같은 생각이라니……."
그러나 다시 머리는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인 걸까? 가만 보자, 오늘은…… 순간 카카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이라니. 사실 자신은 날짜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침대에 누워 신음을 흘리며, 땀을 흘리며, 고통에 몸부림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카카시의 생각 없는 눈이 깊은 호수를 그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세 제자의 얼굴에도 그늘이 졌다.
그러나 사쿠라는 재빨리 나루토를 밀치고 카카시의 곁에 앉아 그의 회색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절대 만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마냥 강하고 힘있고 큰 사람이었으니까. 그만큼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너무나도 작고 약한 모습으로 침대 위에 누워 지내고 있는 카카시를 볼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사쿠라였다. 겨우 감정을 삭히며 사쿠라는 메마른 카카시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오늘은, 선생님의 생일이에요."
사쿠라가 말했다. 카카시는 시선을 들어 세 제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생일…… 생일이라니?
"바보. 자, 봐요."
사쿠라는 사스케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스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벽에 걸린 달력을 떼어 내 사쿠라에게 건네 주었다. 9월이라는 숫자 아래 적힌 30개의 숫자…… 그리고 붉은 펜으로 동그랗게 표시된 15라는 글자. 9월 15일. 하타케 카카시의 생일이었다.
나루토가 카카시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작게 속삭였다.
"선생님의 서른 두 번째 생일, 축하해요."
"아아."
카카시는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를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렇구나. 오늘이, 바로 자신의 생일이었다. 한 번도 이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저…… 단순히 다른 날과 다를 바가 없는 날이었다. 카카시는 안겨온 제자의 등으로 손을 옮겼다. 푸른 핏줄이 돌출된 가느다랗고 흰 손가락이 나루토의 등 위에 얹어졌다. 카카시는 움직이지 않는 나루토에게,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고맙다."
나루토는 침묵했다. 사쿠라도 그저 시선을 아래로 내리 깔고 있었고, 사스케는 아예 창 밖으로 시선을 던져버렸다. 나루토는 한 팔에 들어오는 좁은 어깨의 카카시를 느끼며 그렇게 조용히 눈을 감고 속으로 외쳤다. 고맙긴 뭐가 고마워요. 당신이 여기서 일어난다면, 그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을 텐데.
카카시 역시 나름대로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허리를 조금 넘는 키의, 동그란 얼굴의, 장난 끼가 가득한 웃음을 짓던 그 나루토가 이렇게나 컸다. 그 때로부터 6년이나 지난 지금, 나루토는 18살이 되어 있었다. 커다란 체격에 긴 팔다리, 성인을 닮아가는 골격…… 그리고 어른스러워진 행동과 말투. 여전히 그 장난 끼는 남아있었지만 이젠 앳되었다는 표현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자라있었다. 자신을 꼭 안은 나루토의 팔도 카카시의 그것보다 훨씬 굵고 힘있어 보였다. 카카시는 씁쓸하게 웃었다.
"무거우니 이젠 내려와라. 나루토."
"……어."
나루토는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났다. 사쿠라는 카카시의 얇은 손목을 애처로이 바라 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선생님. 우리, 밖으로 나가 보지 않을래요?"
사쿠라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사스케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나루토도 '엑?' 이라고 외쳤고, 카카시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놀란 눈으로 사쿠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사쿠라는 셋의 반응에 당황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 보였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옛날에는 D랭크라고 마구 화내고 그랬지만……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물론 선생님도 빠져서는 안 되잖아요. 생각해봐요. 잡초를 뽑으러 갔는데, 정원의 허브를 몽땅 뽑아버려서 실컷 얻어 맞았던 나루토. 그리고 호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를 잡았던 일…… 폭포에서 떨어질 뻔한 나루토를 간신히 붙잡은 사스케. 항상 둘은 티격 티격 했고, 선생님은 팀 워크가 흐트러진다고 걱정을 하셨고……."
그러나 결국, 사쿠라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을 아프게 내리 누르는 감정 때문에 숨기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다 결국…… 눈물 방울을 흘려 보내고 말았다.
"사쿠라……."
카카시가 중얼거렸다. 알고 있었다. 제자들의 마음 쯤이야…… 하지만.
"말은 고맙지만, 역시 이런 몸으로는 무리겠지?"
카카시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웃었다. 입을 감추고 감정을 남에게 전달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쿠라와 나루토, 사스케는 카카시의 마음을 뼈 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사스케는 긴 흉터자국이 새겨진 카카시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중얼거렸다. 항상 그랬다. 카카시, 당신이라는 사람은.
그런데, 갑자기 카카시가 이불을 걷어 올렸다. 세 제자는 카카시를 의아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카카시는 잠시 주춤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와줬으니…… 걸맞는 대접을 해 줘야겠지."
그러고는 두 다리를 바닥으로 내려 놓았다. 나루토는 경악하여 카카시의 어깨를 붙잡았다.
"무슨 짓이에요!"
사쿠라는 멍한 얼굴로 카카시를 바라보았다. 카카시는 나루토의 팔을 붙잡더니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단지, 옛날처럼 너희들을 안아주고 싶었을 뿐이다."
유카타 사이로 드러난 카카시의 다리는, 과연 설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가늘었다. 나루토는 다시 카카시를 말리려다가 그의 단호한 눈동자에 그만 물러서고 말았다. 카카시는 두 팔로 몸을 지탱하며 땅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 동작 하나가 얼마나 안타까워 보였는지, 사쿠라는 이미 흐느끼고 있었다. 힘없고 위태로운 카카시의 움직임에, 결국 지켜 보고만 있던 사스케가 자리를 박차고 카카시를 붙잡았다. 헉…… 순간 사스케는 숨을 몰아 쉬었다. 너무 가벼웠다. 게다가 이젠…… 자신 보다도 작았다. 그 높던 눈이 아래에 있었다. 그 강인하던 어깨가 아래에 있었다…….
사스케는 카카시를 끌어 안으며 쉰 목소리로 외쳤다.
"이젠…… 이젠 그만해요!"
사스케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힘이 들어간 팔 안에 가두어진 카카시는 그저 조용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
아아, 신이시여.
어째서,
어째서 이 작은 사람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이렇게 힘없고 아픈 사람에게…… 어째서…… …….
나루토도 슬금슬금 다가와 사스케의 반대편에서 카카시를 껴안았다. 역시 나루토도 카카시보다 키가 자라 있었다. 사쿠라는 창가에서 울먹이다 발걸음을 옮겨 카카시에게 다가갔다. 그 당당하고 능글능글한 웃음은 이제 볼 수 없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설움이 터져 올라왔다. 사쿠라는 카카시의 손을 가만히 붙잡았다. 앙상한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차례로 끼워 넣으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한참을……
그렇게,
흘려 보냈다.
셋 중 어느 사람도 카카시를 놓지 않았다.
지금 놓으면 다시는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모두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언제부터인가…… 셋은 동시에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카카시의 몸이 힘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나루토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선생님! 이봐!"
그 동안 안고 있었던 탓에 몰랐다. 셋은 카카시를 둘러 싸고 앉은 채 카카시를 흔들었다. 사스케가 다급하게 손목을 붙잡고 맥박을 재어봤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침통하게 일그러진 사스케의 표정을 바라보던 나루토가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야! 거짓말! 거짓말이야!!"
나루토의 아픈 목소리에 사쿠라도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 사스케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카카시를 내려다 보았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의 입술을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스케의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그 입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생일,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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