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사카 부인의 환희에 찬 게송
사위성 장자의 부인이며 미가라의 어머니인 위사카는, 변치 않는 미모만이 아니라 그녀의 자식들과 손자들이 건강하고 강인하였기 때문에 상서로운 부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왜냐하면 그들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자기 천수를 누렸기 때문이다. 사위성의 주민들은 공양을 올리는 의식이 있을 때는 언제나 위사카를 최고의 손님으로 초청하곤 하였다. 하루는 위사카가 그러한 모임에 참석한 다음 거기서 바로 사원으로 갈 때, 신부용인 호화찬란한 드레스로 성장한 채 부처님 앞에 나간다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원 입구에서 그것을, 위사카의 과거의 위대한 공덕에 의해 위사카와 마찬가지로 수컷 코끼리 다섯 마리와 같은 힘을 가진 하녀에게 맡겼다.
신부용 드레스를 하녀에게 맡긴 다음 그 대신에 시아버지가 해 준 옷을 입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서 법문을 다 들은 다음,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하녀는 자기가 앉아서 부처님 법문을 들은 자리에 신부용 드레스를 놓았었는데, 옷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그 자리를 떠났다. 부처님 사원에 왔던 방문객들이 잊어버리고 놓고 간 물건을 챙기는 것은 아난다 존자 담당이었다. 그날 위사카의 신부용 드레스를 발견한 그가 부처님께 보고하자, 부처님께서는 적절한 곳에 보관해 두라고 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그것을 집어서 층계 끝에 걸어놓았다.
그때 위사카는 유명한 여자 신도 숩삐야와 함께 기원정사 안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방문 중인 비구들이나, 병든 비구들이나 여행을 떠날 예정인 비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하여 순회하였다. 그렇게 두 부인이 방문하여 순회할 때, 통상적으로 젊은 비구들이나 사미들은 자신들의 그릇에 버터기름이나 꿀이나 기름을 받았다.
그녀가 병든 비구들과, 젊은 비구들과 사미들을 찾아가서 필요한 것을 나눠 준 다음에, 기원정사의 다른 쪽 문으로 나와서, 사원을 떠나기 전에 갈아입기 위해서 하녀에게 신부용 드레스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제야 옷 생각이 난 하녀는 “주인마님, 옷을 가지고 오는 것을 깜빡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위사카는 “그럼 가서 가지고 오너라.”고 말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아난다 존자께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면 존자께 그 드레스를 보시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씀드려라.” 그녀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기원정사를 방문한 네 가지 계급의 모든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간 모든 물품들을 항상 아난다 존자가 보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사카의 하녀를 본 아난다 존자는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신부용 드레스를 놓고 갔다고 이야기하자 아난다 존자는 “층계 끝에 걸어놓았으니 가서 가져가거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존자시여, 제 마님께서, 그 드레스에 존자의 손이 닿았다면, 그것은 이미 존자에게 보시한 것으로 생각하고, 되돌려 받지 않겠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녀는 위사카에게 돌아가서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위사카는 하녀에게 말했다.
“나는 그것을 아난다 존자에게 보시한 걸로 생각한다. 존자의 손이 닿은 다음에 그것을 입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존자가 그것을 보관하는 것은 그분께 골치 아픈 일이 될 것이다. 승가에게 사용하기에 알맞은 무언가를 보시해야 하겠다. 가서 가지고 오너라.”
하녀는 시키는 대로 했다. 위사카는 신부용 드레스를 금세공인에게 보내서 그 값을 감정하게 했다. 그는 “드레스는 재료비 9천만 루피에 인건비는 10만 루피입니다.” 위사카는 신부용 드레스를 공개적으로 팔기 위해 코끼리 등위에 전시하였다.
그러나 그 엄청 비싼 드레스를 살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순수한 보석으로 치장된 위대한 드레스가 주는 중압감을 견뎌낼 여자가 없었다.
위대한 드레스를 살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위사카는 자기 스스로 감정가에 사기로 하였다. 그녀는 그 돈을 수레에 싣고 기원정사로 가서, 부처님께 인사드린 다음 이렇게 말씀 드렸다.
“세존이시여, 아난다 존자가 저의 신부용 드레스에 손을 대고 그것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제가 그것을 입는 것이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승가가 알맞은 곳에 쓸 수 있도록 그것을 팔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이제 그것을 판매가인 9천만 루피와 인건비는 10만 루피에 제가 샀습니다. 비구의 네 가지 필수품 중 어떤 방법으로 이 돈을 사용하였으면 좋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승가를 위해서 사위성의 동쪽 문 근처에 사원을 짓는 것이 좋겠다.”
위사카는 그 말을 듣자 몹시 기뻤다. 그녀는 9천만 루피로 사원용 부지를 샀고, 건물 짓는데 필요한 9천만 루피를 추가로 확보했다. 공사는 곧 시작되었다.
1) 목건련 존자의 감독으로 사원을 9개월 만에 건설
어느 날 아침, 부처님께서 일어나셔서 중생들이 사는 세상을 둘러보시고, 전생에 천상계에 있었던, 밧디야 장자의 아들 밧디야가 깨달을 때가 된 것을 아셨다. 그래서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집에서 공양을 마치신 다음에, 부처님께서는 사위성의 북문을 향해 떠나셨다.
(부처님께서는 통상적으로 위사카의 집에서 공양을 받으셨을 때에는 사위성의 남문을 통해서 숙소인 기원정사로 가셨으며, 아나타삔디까로부터 공양을 받으셨을 때에는 사위성의 동문을 통해서 숙소인 녹모 강당으로 가셨다. 북문 밖으로 나가실 때에는,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여행을 떠나시는 걸로 알았다.)
부처님께서 북문으로 향하신다는 소식을 들은 위사카는 부처님을 찾아뵙고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행을 떠나십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위사카여, 그렇다.”
위사카가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사원을 짓기 위하여 많은 재산을 투자하였습니다. 건물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실 수는 없으신지요?”
“위사카여, 내 여행은 미룰 수가 없다.”
그러자 위사카는 과거 공덕이 쌓여서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를 얻을 때가 된 제자를 부처님께서 염두에 두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서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시다면 건설을 감독할 스님을 남겨 놓으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위사카여, 네가 비구를 선택한 다음, 그 비구의 발우를 잡아라.”
위사카는 원래 아난다 존자를 좋아했지만, 신통력이 있는 목건련 존자가 사원을 단기간 내에 짓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목건련 존자의 발우를 잡자, 그는 부처님을 쳐다보았다. 부처님께서는 목건련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목건련이여, 그대와 그대의 제자 500명의 비구들은 남아 있어라.” 그리하여 목건련 존자는 위사카 사원의 건설을 감독하는 비구가 되었다.
목건련 존자의 신통력에 의하여, 건축용 자재들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오십 내지 육십 요자나의 먼 길도 걸어갔다. 그것들을 운반하는 데 있어서도 그들은 별 어려움 없이 그 일을 해냈다. 수레의 차축이 부러진다든지 하는 등의 재난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깨끗하고 평평한 8 까리사 넓이의 부지 위에 7단으로 된 이층 사원이 완성되었다. 7단 사원의 일층에 500개의 방이 있었고, 이층에도 500개의 방이 있었다. 주 건물 주변에 효용성을 높이고 실제적인 용도에 맞도록 하기 위해, 500개의 명상실과 500개의 작은 숙소, 그리고 500개의 계단을 추가로 건설했다.
2) 4개월간 계속된 기증식
부처님께서는 9개월 만에 여행에서 돌아오셨다. 목건련 존자가 감독한 덕택에 녹모 강당의 건설이 그때까지 완료되었다. 위사카는 물병 60개를 담을 수 있는 넓은 황금 접시로 사원의 뾰족탑을 장식하게 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위사카는, 부처님을 승가와 함께 새로 지은 녹모 강당에 머무시도록 초청했다. 사원을 기증하는 기념식을 개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우기 4개월 동안 머무시기를 요청 드립니다.”
부처님께서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이시자, 그녀는 부처님과 승가에 장기간 동안 음식 공양을 올렸다. 그때 위사카의 여성 친구가 찾아와서 부탁했다.
“위사카여, 나는 그대의 사원에 10만 티칼에 해당하는 복도 지붕을 보시하고 싶으니 설치할 곳을 알려 주면 좋겠어요.”
위사카가 말했다.
“아주 좋아요. 하지만 마땅한 곳을 스스로 찾아보세요. 왜냐하면 내가 ‘복도 지붕 설치할 곳이 없어요.’라고 말하면 나를 오해할지도 모르니까요.”
그 친구는 넓은 사원을 돌아다니면서 일층과 이층을 모두 조사해 봤지만, 단 한 군데도 지붕이 없는 곳이 없었다. 그녀는 크게 실망하여 한쪽 구석에서 울었다.
아난다 존자가 그녀가 우는 것을 보고 왜 그러냐고 묻자, 그녀는 사연을 이야기했다. 아난다 존자가 말했다.
“지붕 씌울 곳을 내가 알려 주겠으니 걱정 말아라.” 그리고서 층계 끝에 승가가 발을 씻는 곳에 지붕이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녀는 모든 비구들이 발을 씻은 다음에 사원에 첫발을 들여놓는 곳이 복도의 그 지점이라는 것, 그리고 거기에 지붕을 씌우면 보시자에게 많은 공덕이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지점이 위사카가 빠뜨린 단 한 곳이었다.
3) 승가에 네 가지 필수품을 보시
우기 4개월 동안 위사카는 부처님과 승가에 비구의 네 가지 필수품을 보시했다. 11월 보름날 그녀는 최고급의 가사를 보시했다. 이제 막 수계한 비구들이 받은 가장 낮은 품질의 가사의 값이 1천이었다. 모든 비구들은 네 가지 혼합 스프(짜뚜마두)도 발우 가득히 받았다. 녹모 강당 기증식을 하는 4개월 동안의 음식 공양에 그녀는 9천만 루피를 지출했다.
그리하여, 위사카가 녹모 강당을 보시하는데, 부지 구입에 9천만 루피, 건물 짓는데 9천만 루피, 기증식 음식 공양에 9천만 루피, 모두 2억7천만 루피가 소요되었는데, 그렇게 많이 보시한 여신도는 거의 없었으며, 더욱 주목할 만한 것은 그녀가 불교신도가 아닌 집에 시집가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4) 자신의 선행에 대한 위사카의 환희
4개월간 계속된 기증식 마지막 날 저녁, 위사카는 자기가 행한 일련의 보시에 파묻혀서, 평생 동안 꿈꾸던 자신의 열망이 충족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무척 기뻤다. 커다란 사원을 돌아다니면서 순수한 환희에 넘친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운 곡조로 다음과 같이 다섯 개의 사구게를 노래했다.
⑴ 아! ‘나는 모든 방문객들이 기뻐할 멋진 콘크리트 구조의 사원을 언제 지을 수 있을까?’라는 나의 소중한 열망은 이제 이루어졌다!
⑵ 아! ‘나는 승가에게 긴 의자, 등받이가 있는 의자, 방석, 베개 등이 갖춰진 사원을 언제 보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열반을 목표로 하여,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절부터,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나의 소중한 열망은 이제 이루어졌다!
⑶ 아! ‘나는 승가에 일곱 가지 종류를 포함한 음식 공양을 언제 올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 열반을 목표로 하여,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절부터,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나의 소중한 열망은 이제 이루어졌다!(원주: 음식 공양의 공덕은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힘과 지성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⑷ 아! ‘나는 승가에 여러 가지 가사를 언제 보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열반을 목표로 하여,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절부터,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나의 소중한 열망은 이제 이루어졌다!
⑸ 아! ‘나는 승가에 보약과 같은 네 가지 혼합 스프를 언제 보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열반을 목표로 하여, 빠두뭇따라 부처님 시절부터,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나의 소중한 열망은 이제 이루어졌다!
(이것들은 답빠 아다의 주석서로부터 발췌한 것이다.)
3. 제일가는 여신도로 지명
아침나절의 위사카의 집은, 자유로이 오고 가는 비구들이 입은 가사의 노란색으로 불타는 듯했으며, 염료의 향기를 풍기며 이동하는 비구의 모습으로 생기가 넘쳤다. 아나타삔디까의 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위사카의 집에서도 여러 종류의 비구들, 즉 여행 떠날 비구들, 병든 비구들, 방문한 비구들에 따라서 알맞게 요리를 했다.
위사카는 아침에 그러한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렸다. 오후에는 버터기름, 버터 우유, 꿀, 당밀 등의 보약 같은 음식, 그리고 유지니어, 망고, 두 가지 종류의 바나나, 로터스 과즙 등의 여덟 가지 종류의 음료수를 하녀들에게 운반하게 해서, 필요로 하는 비구들에게 보시하였다. 그리고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것이 공덕으로 충만한 위사카의 전형적인 하루 일과였다.
그런고로 부처님께서 “비구들이여, 공덕을 많이 쌓은 여자 신도 가운데 위사카가 제일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출처: “부처님의 제자들2”, 경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