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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인터넷등]히리와 옷땁빠 - 특강

작성자그림자|작성시간18.12.22|조회수392 목록 댓글 2

히리와 옷땁빠 - 특강

 

이것은 2006/4/15~5/26에 봉인사 집중수행 할 때, 우 빤디따 사야도 법문 중에서 5회에 걸친 히리 옷땁빠에 관한 것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빤디따라마 서울센터관련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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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용어 수정

 

위빠싸나 큰스승 우 빤디따 사야도 초청 위빠싸나 명상수행기간 중에 매일 있을 큰스님의 법문을 올리는 곳입니다.

 

여러 사정으로 수행에 직접 참여하시지 못하시는 분들과 관심 있으신 모든 분들을 위하여 저희 빤디따라마 서울센터에서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매일매일 큰스님의 법문을 올릴 예정입니다.

 

큰스님의 법문을 마 마나삐까 세얄레이님이 통역하시는 것을 녹음하여 몇 분의 자원봉사자님들이 일일이 워드 작업을 하여 올릴 예정입니다.

법문의 내용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큰 스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며, 실시간 통역을 진행하므로 인하여 혹여라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므로 일단은 복사를 막아두는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꼭 복사를 하실 분들은 미리 저희 빤디따라마 서울센터에 연락을 주시기를 바라며, 옮기실 경우에는 출처를 밝혀주시는 센스와 최소한의 예의를 부탁드립니다.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법과 올바른 수행을 지도해주시기 위하여 먼길을 마다않고 와주신 큰스님과 우 따마네죠 사야도, 마 위말라냐니 세얄레이, 마 마나삐까 세얄레이, 마 윗수따냐니 세얄레이께 감사드리며, 음으로 양으로 이번 집중수행의 준비와 진행을 위하여 몸과 마음으로 함께 하시는 봉인사와 빤디따라마 서울 위빠사나 명상센터의 모든 분들과 보시를 해주신

 

모든 분들이 이렇게 쌓은 선업의 공덕으로 열반을 이루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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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문은 수행에 직접 참여하시지 못하시는 분들과 관심 있으신 모든 분들을 위하여 저희 빤디따라마 서울분원에서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매일매일 큰스님의 법문을 제공하는 관계로 번역의 거침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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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리' '옷땁빠' - 세상을 보호하는 법 (52)

 

며칠 전부터 믿음을 가지고 정말 바라면서 노력을 기울여서 확고하게 주시할 수 있을 때, 주시된 대상위에 마음이 모여서 떨어지게 되면서 주시되는 대상과 주시하는 마음이 맞아 떨어져서 바른 특성을 알게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바른 특성을 알게 될 때, 모르는 것, 혹은 바르지 않게 아는 것인 모하 어리석음이 사라지고 그 반대의 요소인 아모하’. 어리석고 흐릿함이 없는 마음의 요소가 생겨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바라는 것, 집착하는 것인 탐욕, 즉 로바. 이것의 반대인 아로바’, 탐욕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마음의 성분도 생겨나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의 흐름에 반드시 필요한 성분들이 서서히 생겨나고 강해지면서 예전에 불필요한 성분들의 자리를 대신해서 채워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자기 안에 집중해서 주시함으로서 바른 특성들을 단계단계 알아가게 될 때 그것에 대해서 믿고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써 삿다 즉 믿음이 없는 것에서부터 생겨나고 또한 생겨났지만 작은 것에서부터 커지고, 적은 것에서 많아지며, 어리고 약한 것에서 크고 강해지게 발전되게 됩니다. 이러한 식으로 삿다 즉 믿음이 서서히 발전하고 굳건해지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믿음이 서서히 발전해서 굳건해지는 상태에 도달하면 불신 믿지 못함과 같은 마음의 요소는 생겨날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삿다라는 믿음의 힘이 강함으로서 지배하고 장악해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배하고 장악해둔 것을 빨리어로는 인드리야라고 부릅니다. 어떤 것 하나가 힘이 강해서 지배하고 장악해둔 것과 같을 때, 그것을 다른 요소가 거부할 수 없고 그것 뒤를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마음의 요소가 불신들을 지배하고 장악해 두어서 그러한 것들이 생겨나지 못하고 믿음의 뒤를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믿음이라는, 즉 삿다라는 마음의 요소의 힘이 매우 강해지고 굳건해졌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위리야 노력이나, 사띠 알아차림, 사마디 집중과 같은 것들도 그 힘들이 점점 강해지고 단계 단계로 발전되어 굳건하게 됩니다. 예전에 위리야 노력은 게으름에 딸려가는 종류의 것이었다면 지금은 게으름을 장악하고 지배할 수 있는 종류의 활기찬 위리야 노력이 생겨나게 됩니다. 사띠 알아차림 등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힘이 강해지기 때문에 이것들의 반대가 되는 요소들이 이러한 선한 요소들의 뒤를 따르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의 놀라운 힘들이 점점 생겨나고 발전되어서 굳건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힘들과 같이 또 다른 힘 두 가지도 특별하게 생겨나 마음의 흐름에 들어올 수 있게 됩니다. 이 두 가지 힘은 지금처럼 사띠빳타나를 수행함에 있어서 매우 큰 도움을 주는 매우 중요한 받침이 되는 힘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히리 발라’, 즉 불선업적인 요소에 대해서 혐오하고 부끄러워할 수 있는 힘과 두 번째 옷땁빠 발라’, 불선업적인 것에 대해서 두려워할 수 있는 힘입니다. 이 힘들도 서서히 굳건해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히리라는 것은 부끄러워하는 특성입니다. 두 번째 옷땁빠라는 것은 두려워하는 특성입니다. 두려워하는 특성이자 혐오하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특성입니다.

 

저급한 단계에 떨어지는 것. 즉 수준이 떨어지게 하는 이러한 불선업들을 혐오할 줄 알고 부끄러워할 줄 알고 그것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좋지 않은 마음이나 좋지 않은 입의 행위나 좋지 않은 몸의 행위들을 부끄러워하고 혐오스러워할 수 있게 됩니다. 좋지 않은 마음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다른 이가 소유한 것을 부당하게 가지고자 하는 것 죽이거나 괴롭히고자 하는 것. 부정을 저지르고자 하는 것. 거짓말을 하고자 하는 것 등등입니다. 이러한 것들의 허물을 볼 수 있게 되고 이러한 것들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혐오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사람의 삶의 수준을 추락시키고 파괴할 수 있는 것. 몸과 입과 마음과 관련된 나쁜 행위, 업들이 생기게 될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할 줄 알게 됩니다.

 

히리라는 것의 특성을 살펴보면 빨리어로는 빠빠또 지구차나 렉카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빠빠라는 것을 혐오하는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빠빠라는 것은 자기가 통제할 수 없고 다스릴 수 없음으로 인해서 범하게 되고 저지르게 되었을 때, 이러한 것을 몸과 입과 마음으로 행하게 된 사람의 삶의 수준을, 그리고 이 사람의 삶의 수준을 추락시킬 수 있는 성질을 가진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빠빠’. 불선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혐오하는 특성을 히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옷땁빠는 불선업이나 좋지 않은 몸과 입과 마음의 행위를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웃따싸나 렉카나라고 부릅니다.

 

부끄러워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 혹은 혐오하는 것과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워하는 것이나 혐오한다는 뜻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나 걱정하는 것은 움츠리며 뒤로 물러난다는 뜻입니다.

 

경전들에서 알기 쉽게 예를 들어 보인 것을 보면, 쇠구슬 두 개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쇠구슬 두 개 중에서 첫 번째 쇠구슬은 차갑지만 오물이 묻어있다고 하고 두 번째 쇠구슬은 깨끗하지만 뜨겁게 이글거리고 있다면 첫 번째 구슬을 만지라고 했을 때 차갑지만 지저분하기 때문에, 이것을 혐오하기 때문에 만지지 않을 것입니다. 두 번째 쇠구슬은 깨끗하지만 뜨겁게 이글거리기 때문에 데이게 될까봐 두려워 이것을 만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혐오함으로써 만지지 않거나 혹은 데일까 두려워함으로써 만지지 않음으로써 손에 오물이 묻는 일도 없을 것이고 손이 데이게 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물이 묻은 쇠구슬은 혐오함으로써 만지지 않게 될 것이고, 뜨거운 쇠구슬은 데일까봐 두려워서 잡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혐오할만한 나쁜 행위들. 몸과 입과 마음의 나쁜 행위들을 혐오함으로써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리하는 것은 혐오한다는 측면에서 불선업적인 행위들을 금하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옷땁빠라는 것은 두려워하고 겁낸다는 측면에서 이런 불선업적인 것들을 금하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리옷땁빠는 불선업적인 것. 좋지 않은 행위들을 행하지 않게 하고 금하게 하는 것은 같지만, 차이는 히리는 혐오함으로써 금하고 옷땁빠는 두려워하고 겁냄으로써 금하게 하는 것입니다.

 

둘의 상태는 같습니다. ‘상꼬쨔나 빳쥬 빳타나라고 말합니다. ‘상꼬쨔나라는 말은 움츠리고 움찔하고 물러나는 특성입니다. ‘빳쥬 빳타나는 지혜의 드러남을 말합니다.

히리옷땁빠라는 요소가 마음에 생겨난 사람이 움츠리는, 움찔하는 상황을 보아 지혜로 이 두 가지를 보게 된다고 합니다.

 

원래는 우리가 매우 강력하고 매우 쉽게 행하던 불선업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불선업적인 것들에 대해 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동기는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혐오할 만한 것으로 보게 됨으로써 혐오하게 되고, 두려워할 만한 것으로 보게 됨으로써 두려워하게 되어 이러한 것을 실제 행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움츠리고 뒤로 물러난다고 부릅니다. 그래서 원래 매우 강력하고 예리하고 쉽게 생겨나던 마음의 동기가 약해지게 되고 허물어지게 됨으로써 불선업적인 것들이 실제 행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해 주는 것입니다.

 

움츠린다는 것은 앞으로 나가지 않게 된다는 뜻이기 때문에 뒤로 물러난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뒤로 물러난다는 뜻은 아까워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해서 아까워한다는 의미로도 풀이를 하는데, 이 뜻은 마음에 흐름에 생겨나는 매우 고귀하고 가치 있는 특성들이 불선업적인 몸과 입과 마음의 행위로 인해서 사라지고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을 아까워하고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뒤로 물러난다는 뜻은 앞으로 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뒤로 물러난다는 뜻을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두려워하거나 혐오해서 물러난다고 하면서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물러난다는 것, 두려워하고 혐오한다는 것은 좋은 두려움이고 좋은 혐오이기 때문에 불선업적인 것을 이김으로써 물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성공적인 후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의 의미는 세세생생 우리의 마음에 항상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번뇌에서 뒤로 물러나 후퇴함으로써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성공적으로 후퇴하게 됨으로써 조금 전 이야기한 불선업적인 행위. 좋지 않은 행위라는빠빠라는 성질이 줄어들게 됩니다. 줄어든다는 것은 그 수가 감소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점점 마이너스 곡선을 그리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뜻에 따라서 승리를 거두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승리를 거둔다고 하면 무엇을 이기는 것이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이기냐하면 마음에 생겨나는 번뇌, 몸과 입으로 행하게 되는 큰 종류의 번뇌에서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생겨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그리고 어느 때에 극단적으로 생기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것과 같은 잠재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이러한 것들에 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타인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 안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서 생겨나면서 가장 내부에서 가장 가까이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적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번뇌를 웨라적이라고 설명했었습니다. 이러한 번뇌라는 내부의 적에 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후퇴하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라 하지만 이것은 성공적인 바람직한 후퇴, 물러남입니다.

 

혐오하고 두려워함으로써 좋지 않은 불선업의 법을 행하지 않고 금해야 하는데, 이것들에 마음을 다스리지 못함으로써 행하고 저질러 버리게 되면 이러한 행위는 허물을 지을만한 행위가 되고 비난 받을만한 행위가 됩니다.

선하고 지혜로운 이들과 주변 사람들이 이러한 행위를 혐오하고 두려워함으로써 비난할 것입니다. 그래서 혐오하고 두려워함으로써 좋지 않은 불선업의 법을 행하지 않고 금하게 될 때에는 이러한 비난에서 반대로 자유로워 질 수 있습니다. 허물이 없어지고 비난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이익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난할 만한 허물이 없어진다는 것은 지저분한 것이 없어진다는 뜻으로써, 반대로 깨끗해진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래서 깨끗해진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깨끗하고 청정하지 않은 것을 수준이 높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깨끗하고 청정한 것만을 수준이 높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깨끗해짐으로 인해서, 히리옷땁빠라는 힘으로 인해서 자기의 삶이 수준이 낮고 저급한 것에서 수준이 높고 고귀한 곳으로 끌어 올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히리옷땁빠가 자기의 삶을 낮을 곳에서 높은 곳으로 끌어 올려 주는 것입니다.

 

매우 거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뒤를 따라서 저지르고 범할만한 이러한 번뇌들을 두려워하고 혐오함으로써 금하게 되면 몸의 행위가 깨끗해지고 입의 행위가 깨끗해질 것입니다. 깨끗해진다는 것의 의미는 다듬어진다는 뜻이고, 다듬어진다는 것은 부드럽고 평화롭고 만족스러울만한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불선업적인 것을 혐오하고 두려워함으로써 즉 성공적으로 뒤로 물러남으로써 원래는 저지르고 범할 수 있을 만한 강력한 불선업, 강력한 불선한 동기의 힘이 약해지게 되고 이것들이 뒤로 물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꽤 훌륭해 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수행하는 수행자들은 원래부터 마음의 흐름에 지저분한 것들이 들어오지 않을 수 있도록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서 알아차림이 생겨나게 하고 있습니다. 원래의 마음이 집착할만한 대상과 만나게 되면 집착하는 욕심내는 탐욕, 로바가 생겨나게 되고 성내고 화낼만한 대상과 만나게 되면 화나고 실망하고 죄절하는 성냄, 도사가 생겨나게 되고 대상을 분명히 모르게 되었을 때는 알지 못함인 어리석음, 모하가 생기게 됩니다. 사띠가 없을 때 알아차림이 없을 때 모하 어리석음이라는 요소는 언제나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특별히 마음의 흐름에 지저분한 것들이 들어오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서 알아차림하게 되면 이러한 불선업적인 요소들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허락할 수 없게 됩니다. 들어오게 되었을 때는 이것들 위에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크게 생겨나게 됩니다. 알아차림이 빈틈없고 알아차림이 좋은 사람일수록 이것을 분명하게 보고 혐오스럽고 두려워할 만한 것으로써 인식할 수 있습니다.

 

혐오스러운 것으로써 두려워할 만한 것으로써 보고 혐오하고 두려워할수록 더욱 더 노력을 기울여 대상에 집중해서 이러한 불선업적인 요소가 들어오지 않도록 알아차림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알아차림과 집중과 지혜라는 좋은 마음의 요소가 강해지게 될 것이고, 이것들이 강해지게 될수록 불선업적이 요소가 혐오스러운 것이고 두려운 것이라고 더욱 더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더욱 더 노력하게 되어 마음에 필요한 좋은 요소들은 점점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혐오스럽고 두려운 것이라는 것을 알수록 이렇게 볼수록 더욱 더 노력하게 되고, 이로 인해 좋은 쪽의 힘을 얻게 되고, 이것이 자신의 마음에 매우 크게 발전하여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 안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들어와서 생겨나는 것을 혐오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실제로 혐오하고 두려할 줄도 모른다면, 그래서 혐오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다면 특별한 노력이 기울려 질 리가 없습니다. 알아차림이 놓쳐지게 되면 마음의 흐름은 어떠한 바와나예방이 없기 때문에 마음의 흐름에 불선한 마음들이 들어와서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냥 생기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콸콸 흐르는 것처럼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이의 것을 부당하게 소유하고자 하거나 죽이거나 괴롭히고자 하거나 등등으로 시작되는 불선한 요소들이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생겨날 것입니다.

 

반대로 이러한 것들 위해 두려워하는 것과 혐오하는 것이 있다면 매순간 매우 주의를 기울여서 주시할 수 있습니다. 놓치지 않도록 매순간 순간 빈틈없이 주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게 될 때에 이 사띠빳타나라는 수행의 방법으로, 주시하지 않았을 때에 생겨날 수 있는 불선업적인 것들을 예방하고 이로 부터 보호하는 것과 같게 됩니다. 또한 생기게 되면 바로 제거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이 예방되고 보호받는다고 하니 이때의 마음이 어떠할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때의 마음은 깨끗하고 허물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많아짐에 따라 점점 더 마음이 다듬어 지고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점점 더 섬세하고, 점점 더 서늘하고 평화로우며, 점점 더 만족스러운 것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선업적인 것들에 대해서 혐오하고 두려워할 줄 알았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현재의 대상을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서 놓치지 않고 주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불선한 것들에 대해서 혐오하고 두려워함으로써 이런 것들로부터 점점 뒤로 물러나게 될 때, 점점 이런 불선한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더 깨끗하고, 부드럽고, 허물없고, 서늘하고, 만족할만한 상태가 될 것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마음의 흐름에 오염물이 들어오는 것 혹은 앞으로 들어오게 될 것을 혐오하고 두려워할 수 있을수록 더욱더 놓침 없이 주시할 수 있게 되며, 더욱 더 힘을 실어서 즉 위리야라는 노력을 실어서 주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위리야라는 것의, 노력이라는 것의 힘이 좋을수록, 더욱더 사띠 알아차림이 확고하게 생겨날 수 있을 것이며, 사띠 알아차림이 확고하게 생길수록, 대상에 알아차리는 마음이 모여서 떨어지는 힘, 즉 집중 사마디가 강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상에 확고하게 모여서 알아차리는 마음이 떨어질 수 있을수록 바른 본질들을 더욱 더 분명하게, 더욱 더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두려움이나 혐오라는 긍정적인 특성들로 인해서,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과 지혜라는 꼭 필요한 좋은 요소들의 힘이 점점 더 강해지게 될 것입니다.

 

불선업들을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근접한 원인을 살펴봅시다. 히리라고 불리는 혐오하는 것의 성질의 가장 근접한 성질은 앗따 가와나라고 합니다. 자신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바른 방식으로 존중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몸과 입으로 저지르고 범할 수 있을 만한 거친 종류의 번뇌나 혹은 마음 안에 생겨나는 탐진치라는 거친 종류의 번뇌, 혹은 아직은 생겨나지 않았지만 어떠한 조건만 만나면 생겨나기 위해서 기다리는 것과 같은 잠재된 번뇌를 제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을 때 자기의 마음과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삶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고 이럴 때에 자기 자신을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옷땁빠라는 두려워함이라는 성질의 가장 근접한 원인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수행하는 수행자들 주위에는 주변 수행자들이 있고, 다른 주변 사람들도 있으며, 특히 명상 스승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과 주변 수행자들과 명상 스승, 특히 명상 스승들이 수행자의 수행에 대해서 보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을 도와주는 수호해주는 천인들도 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나 아는 천인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수행자가 충실하게 수행하지 않고 알아차림에 노력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리고 통제할 수 없고, 마음의 흐름에 불선한 요소들이 많이 들어오게 될 때,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이 수행자를 불성실한 수행자라고 비난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비난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불선업적인 것들을 두려워하고 주변의 비난을 두려워함으로써 수행에 더욱더 충실하게 임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에 대한 가장 근접한 원인이 주변에 대한 존중이나 주변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변에게서 애정이나 관심이나 격려를 받는 것은 수행자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수행자가 바르게 수행하지 않고 마음을 풀어 놓았을 때, 명상 스승들은 그것에 대해서 좋아하지 않을지 라고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자가 마음의 흐름에 이러한 불선한 요소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정말로 성실하고 충실하게 수행한다면,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주변의 존재들이 더욱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더욱 더 크게 격려해 줄 수 있습니다.

 

사띠가 없음으로써 들어오게 되는 불선업들에 대해서 두려워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이것이 다른 사람을 소중히 하고 존중하는 방법입니다.

 

수행자 스스로에게 몸과 입과 마음의 상태가 비난할만한 허물이 없이 깨끗해지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생기게 되었을 때 번뇌라는 허물을 지을 수 있을 만한 것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게 되는 특성이 생기는 것은 히리옷땁빠라는 성질이 생기기 위해서 미리 준비된 것과 같습니다. 또한 다른이나 주변 사람들이 비난하게 될까봐 자기 마음에 불선업적인 요소가 생길 것을 걱정하게 되는 특성이 생기는 것도 이러한 히리옷땁빠가 생기기 위해서 미리 준비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히리옷땁빠라는 마음의 요소는 마음의 불선한 것들. 즉 뜨거움이 생길 것들을 반사해 둔 것과 같이 됩니다. 이러한 것이 생기지 못하게 반사해 둔 것과 같이 막아 둔 것과 같이 됩니다. 그래서 이 히리옷땁빠라는 법들을 수까 담마즉 하얀 법이라고 부릅니다.

흰색의 옷을 입었을 때 뜨거움이 들어올 수 없게 반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히리옷땁빠가 없는 것을 깐나 담마’. 즉 검은 법이라고 부릅니다. ‘히리옷땁빠가 없을 때 번뇌라는 뜨거움을 흡수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히리옷땁빠가 생김으로써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이 흰 법이라는 이 두 가지 법들이 반사함으로써 막아준 것과 같게 됩니다.

 

언제나 쉬지 않고 빠빠라는 불선업적인 것을 혐오하고 두려워하여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확고하게 주시할 수 있다면 마음의 흐름에 뜨거움을 막아서 반사해 둔 것과 같습니다. 뜨거움을 막아서 반사해 두었기 때문에 마음이 서늘해지고 평화로워 집니다. 수행하는 이의 마음이 이렇게 서늘하고 평화로워 지는 데 이것은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점입니다.

 

이때 수행자가 이러한 서늘한 평화를 세간에서의 평화와 비교해 보았을 때 이것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우월하다는 것을 보게 되어 만족스러움을 느끼게 되고, 이럴 때 삐띠라는 기쁨도 생겨나게 됩니다. ‘삐띠즉 환희롭게 기뻐하는 특성도 생겨나게 되고, 서늘한 행복으로 인해서 평화로운 고요한 행복인 수카가 생겨날 수 있게 되며 더욱 더 서늘하고 고요한 행복도 단계 단계 생겨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평화롭고 행복한 상태가 되었을 때, 이렇게 마음이 좋은 상태가 되었을 때, 이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을 때 수행자는 이것이 히리옷땁빠라는 마음의 요소로 인해서 마음이 불선업적인 것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히리 옷땁빠로까 빨라 담마라고 부릅니다. 즉 세상을 보호하는 법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먼저 자기 내부의 세상, 자기라는 세상을 말합니다. 자기라는 세상이 이렇게 히리옷땁빠라는 보호해주는 법으로써 보호되어서 평화롭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일 연결해서 더욱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2. ‘히리옷땁빠(53)

 

어제 자신의 마음의 흐름에 정말로 요구되는, 마음과 관련되는 굳건한 능력, 힘 일곱 가지 중에서 즉, '삳다 발라', 믿음이라는 굳건한 능력, '위리야 발라', 노력이라는 굳건한 능력, '사띠발라', 알아차림이라는 굳건한 능력, '사마디 발라', 집중이라는 굳건한 능력, '빤냐 발라', 지혜라는 굳건한 능력, '히리 발라', '히리', 즉 불선업적인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는 굳건한 능력, 그리고 '옷땁빠 발라', 불선업적인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굳건한 능력, 이 일곱 가지들 중에서 맨 나중의 것 두 가지, '히리''옷땁빠'에 대해서 설명했었습니다.

 

또한 이 '히리''옷땁빠'라는 이러한 성분들, 이러한 법들을 '쑤까 담마', 즉 하얀 법이라고 부른다고도 설명했었습니다. 하얀 법이라는 것은 마음을 희게 해 주는 법이라는 뜻이며, 또한 삶을 희게 해 주는 법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이 법들은, 이 두 가지 법들은 한 사람의 일생에서, 혹은 사람들의 일생에서 허물이 없이, 깨끗하고 청정할 수 있게, 이렇게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삶에서 그 삶이 깨끗하고, 청정하고, 허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법이 되어 줍니다.

 

그래서 어제 이 법을 '로까 빨라 담마'라고도 부른다 했습니다. 즉 세상을 보호하는 법입니다. 자기 자신이라는 세상, 즉 자기 세계를 보호하고 그로 인해서 주변도 보호함으로써 세상을 보호할 수 있는 법이라 했습니다.

다르게는 이 두 가지 법을 '데와 담마'라고도 부릅니다. '데와 담마'라는 것은 빛나는 법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미덕으로 빛나는 '데와', 즉 그러한 빛나는 존재들이 항상 손에 꼭 쥐고 써야 하는 그러한 법으로써, 그러한 존재를 빛나게 해주는 법이기 때문에 빛나는 법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로까 빨라'라는 것은 '로까'라는 단어와 '빨라'라는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로까'라는 단어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빨라'라는 말은 보호하고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보호하고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무너지고 파멸되는 일이 없도록 그것을 보호하고 다스려두는 것과 같은 법이 '로까 빨라 담마', 즉 세상을 다스리는 법입니다.

 

'로까' 즉 세상이라는 것에도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삳다 로까'입니다. 이것은 중생들 존재들의 모임으로서의 세상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의 모임, 혹은 인종들의 모임, 짐승들의 모임 이 모든 존재들의 모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존재들의 장소로서의 '로까' 세상을, '오가사 로까'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인간들이나, 짐승들이나 이러한 것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고, 또한 천신 계에 천신들이 있으며, 또한 각각의 세상에 각각의 존재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존재들을 삳다 로까라고 부르며, 이 존재들이 존재하는, 이 존재들이 사는 장소로서의 인간계나 천신계 등등을 '오가사 로까'라고 부릅니다.

 

마지막 '상카라 로까'는 물질과 정신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 가지는 조건의 부합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으로서, 각각의 원인에 의한 각각의 결과가 연결되어서 생겨납니다. 그래서 이렇게 원인에 의한 각각의 결과로 연결되어서 생겨나는 흐름, 물질과 정신의 흐름을 '상카라 로까' 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마지막 '상카라 로까'라는 말은, 이론적인 것에 대해서 아직 공부를 해 보지 않은 분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언어로 쉽게 말하면 좀 이해하기가 나을 것입니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면, 자기에게 있는 조건에 부합되어서 생겨나는 물질과 정신 현상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육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 그리고 마음이라는 '육문'입니다.

 

그래서 이 여섯 가지의 문이 있는데, 이 여섯 가지의 문에 보아야 하고, 들어야 하고, 냄새 맡아야 하고, 맛을 알 수 있고 그리고 닿아서 알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여섯 가지의 대상이 부딪쳐 옴으로써 드러나고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눈에 장면이라는 대상이 떠오르고, 귀에는 소리라는 대상, 코에는 냄새, 혀에는 맛, 몸에는 촉감 즉, 뜨겁고, 차갑고, 딱딱하고, 뻣뻣하고, 긴장되고, 이러한 등등의 닿는 대상 그리고 의식에는 상상, 생각 등등 이러한 다양한 대상들이 와서 부딪칩니다.

 

이러한 대상이 부딪쳤을 때, 예를 들어 눈에 장면이 부딪쳤다고 하면, 이러한 두 대상, 눈과 장면이라는 물질 현상이 부딪침으로써 봄이라는 정신 현상이 생겨납니다. 보아서 알게 되는 것, 그리고 보아서 접촉하게 되는 것, 즉 물질과 정신이 접촉하는 것과 같은 것과 보아서 알고 느끼게 되는 것 등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알고, 닿고, 느끼는 것, 이러한 것들이 정신 현상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물질과 정신 현상들을 '상카라 로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보는 순간에 봄이라는 것과, 접촉하는 것과, 느낌이라는 것들은 정신 현상들 입니다. 그래서 '나마 로까', 즉 정신적인 세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게 되는 것, 그리고 대상과 만나게 되는 것과 느끼는 것 이러한 정신 현상은 원인이 있어서 생겨나게 됩니다. 즉 보는 장소인 눈이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눈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눈이 맑아서, 즉 눈이 좋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눈이 어둡다면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원인으로써의 물질 현상으로써 이것들 역시 '상카라 로까'라고 부릅니다.

 

또한 봄이라는 것은 볼 광경이 있어야만 볼 수 있습니다. 눈이 있다고 해도 보이는 장면, 광경이 존재하지 않으면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도 물질 현상인 원인으로써의 '상카라'입니다. 이렇게 보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과 그리고 실제로 보게 되는 것, 이것들은 각각, 각각의 특성을 가진 어떠한 요소들일 뿐입니다. 각각의 특성들, 성질들일 뿐입니다. 어떤 원인과 결과의 연결로써 생겨나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사이에 창조주 등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각각의 어떤 특성들이 각각의 원인과 결과로써 연결 되어서 봄이라는 현상이 생겨날 뿐이지 이 사이에 그것을 만드는 창조주 등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볼 때에는 받아들이는 요소와 받아들이는 요소에 와서 부딪히는 요소, 즉 눈이라는 받아들이는 요소와 대상이라는 부딪히는 요소, 그리고 점화되듯이 열리는 요소, 즉 보게 되는 요소 이 세 가지만 존재하게 됩니다. 받아들이는 요소, 부딪히는 요소, 점화되듯 열리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가 만났을 때 봄이 생기는 것이고 이 세 가지 모두를 '상카라 로까'라고 부릅니다. 들을 때, 냄새 맡을 때 등등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후에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여기서 '로까 빨라', 세상을 보호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삳다 로까'라는 중생들의 모임, 존재들의 모임으로써의 세상에 대해서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중생들, 존재들의 모임이라는 것, 중생들, 존재라는 것들도 사실은 물질과 정신의 연속일 뿐이기는 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중생들 모임으로써의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데, 이때의 세상도 자기 소유의 세상과 타인의 세상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 두 가지 중에서 자기 소유의 세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소유의 세상, 즉 자기 내부의 세계가 허물어지고, 붕괴되고, 파괴되는 일이 없도록 이 '히리''옷땁빠'라는 법들이 다스리고 통제해 주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훌륭한 사람, 선한 사람, 고귀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다른 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저급하고 나쁜 행위라는 이러한 앎, 이러한 인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앎이 생기게 되면 누구도 저급한 수준이 되기는 싫어하기 때문에 이러한 나쁜 행위를 혐오하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할 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에 대해 혐오하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할 줄 알게 되면, 이런 마음이 생기게 되면 이러한 나쁜 행위, 이런 것들을 더 이상 행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또한 나쁜 행위를 행하고자 하는 그런 불선한 요소들이 마음에 생겨나도 마음이 움 추려 들고 뒤로 물러나는 것과 같이 되어서 이것들을 행하지 않고, 이것들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스스로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도 이렇게 될 수 있고, 또한 타인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도 이러한 결과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됨으로써 자기 세상이 무너지지 않게 다스려 두는 것과, 통제해 두고 보호해 두는 것과 같이 됩니다.

 

조금 전 이야기한 사람의 성향, 어떤 나쁜 행위들을 혐오할 줄도 모르고,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두려워해야 할 줄도 모른다면 혐오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이러한 성향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것을 '아히리까 아노따빠'라고 부릅니다. 즉 불선업적인 것들에 대해서 혐오하거나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두려워할 줄 모르는 법들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자기 자신도 존중하거나 소중히 여기지 못하게 될 것이며, 타인도 존중하거나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자기와 타인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지 못할 때 좋지 않은 행위들, 나쁜 행위들이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몸과 입과 마음에 좋지 않은 행위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몸과 관련해서는 죽이고, 훔치고, 간음, 즉 부정을 저지르는 것, 그리고 입과 관련해서는 거짓말하고, 거친 말을 하고, 이간질을 하고, 이익이 없는 쓸모없는 말을 하는 것, 그리고 마음으로는 다른 이의 것을 부당하게 가지고 싶은 것, 혹은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괴롭히고 싶은 것, 혹은 바르지 못한 견해를 가지게 되는 것, 이러한 몸과 관련되고, 입과 관련되고, 마음과 관련되는 좋지 않은 행위들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것들을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좋지 않은 행위들이 쉽게 생겨나고 이런 것을 쉽게 저지를 수 있게 될 때 이 사람의 마음은, 이 사람 자체와 이 사람의 삶은 점점 거칠고 난폭해 집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자기 세계가 무너지고 파괴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 전 이야기한 '히리''옷땁빠'라는 법은 자기 세계를 보호해 주는 것과 같은 법 이였다면 지금 이야기한 '아히리까 아노따빠'라는 혐오하고,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법은 자기 세계를 파괴하는, 즉 세상을 파괴하는 법과 같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로까 빨라 담마', 즉 세상을 보호하는 법이 있기 때문에 자기를 이길 수 있고, 자기를 다스리고 통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족에서 보면 어머니와 아들에게 이러한 법이 있을 때, 어머니와 아들로써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예의를 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질들이 없을 때에는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개념이 없게 되고, 어머니라고 해서 피하는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모나 고모나, 혹은 자기의 스승의 부인이나, 혹은 자기가 존중해야 할 사람의 부인들이라 해도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피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모두 섞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짐승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염소나, 양이나, 돼지나, 닭이나, 개나, 여우처럼 사람도 전혀 차이가 없이 존중해야 할 대상에 대해서 존중하거나 예를 표하는 것이 없이 모두 다 섞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짐승들은 나이가 들면 부모나, 어떤 친족이나 이러한 것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섞이게 되는 데 이렇게 짐승과 다를 것 없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세상을 보호하는 법이 없을 때 생겨나는 세상을 파괴하는 법으로 인해서 세상은 파괴되고 붕괴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파괴되고 붕괴될 수 있냐하면 폭탄보다 훨씬 더 심하게 파괴하고 붕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상에서 원자폭탄, 핵폭탄이라는 것들에 의해서 사람들이 많이 파괴되고 다칠 수 있기에 이러한 것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지만 사실 이렇게 세상을 보호하는 법이 없어지게 될 때 사람들은 백만, 천만 이렇게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심하게, 훨씬 더 나쁘게 망가지고, 파괴되게 됩니다.

 

그래서 세계의 인구의 대부분은 금해야 할 만한 대상, 즉 부끄러워해야 할 만한 것이나 두려워해야 할 만한 것들인 어떤 사람의 성품이나 나쁜 습관을 반대로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경우조차 많습니다. 그래서 좋지 않은 것들을 좋지 않게 바로 보지 못하고 반대로 좋은 것으로 조차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것에서 금하고 피하는 성품은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들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에 금하고 피하지 않게 되고 아주 용기 있게 저지르고 범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아주 용기 있게 저지르고 범하게 됨으로써 이 사람은 불선한, 잘못된 행위들을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이때 이러한 사람이 이러한 불선한 행위를 저지르게 하는 '아히리까 아노따빠'라는 요소, 즉 불선업적인 것들에 대해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두려워할 줄 모르는 이러한 성질이 그 사람의 삶을 파괴한 것이 됩니다. 어떻게 파괴하느냐 하면 죽임이라는 행위를 행함으로써 이 사람을 파괴한 것이며, 훔침이라는 행위를 행함으로써 이 사람을 파괴한 것이며, 부정을 저지르는 행위를 행함으로써, 혹은 거짓말을 하거나, 거친 말을 하거나, 이간질이나 쓸모없는 말을 함으로써 이 사람을 파괴한 것이 되고, 다른 이의 것을 부당하게 원하는 것, 혹은 다른 이를 죽이거나 괴롭히고자 하는 것, 혹은 원인과 결과를 믿지 않는 잘못된 견해를 가지는 것으로써 이 사람을 파괴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조차 착각하고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세계의 인구로 보았을 때 수백만을 죽이고 괴롭힐 수 있는 원자폭탄보다 훨씬 더 심하게 이 두 가지 법이 세상 사람들을 파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원자폭탄과 같은 외부적인 위험은 아주 드물게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아히리까 아노따빠'라는 불선업적인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두려워할 줄 모르는 법은 언제든지 세상을 파괴할 수 있는 그러한 폭탄과 같습니다.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폭탄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성분들로 인해서 자기 자신의 세계도 좋지 않은 행위를 따르게 됨으로써 파괴되게 되지만 이뿐 아니라 타인이라는 주변 세계도 뜨겁고, 고통스럽게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이렇게 '아히리까''아노따빠'라는 부정적인 두 가지의 법은 자기와 주변 세계를 뜨겁고 고통스럽게 만들면서 언제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거의 항상 터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술을 먹거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약물 등을 섭취하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인 오계 안에 포함시켜 두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인 '수라 메라야 맛자 빠마 닫타나 웨라마디'라는 말, 즉 술이나 정신을 흐리게 하는 그러한 약물을 금하게 하는 것으로써 포함시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행하게 되는 몸과 입과 마음의 바르지 않은 행위라는 '두짜리따' 열 가지 안에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잘못된 행위 열 가지 안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 행위가 잘못된 것이 아닌 바른 것이라고, 혹은 다듬어진 선한 행위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어디에 포함시킬 수 있냐 하면 이 열 가지 잘못된 몸과 입과 마음의 바르지 않은 행위 중 세 번째인 '까메수밋차짜라'에 포함 시킬 수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이것을 부정을 저지르는 것, 간음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 '까메수밋차짜라'의 실질적인 의미는 감각적인 대상, 즉 감각적인 쾌락에 대해서 혐오스럽게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잘못된 행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감각적 쾌락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이런 다섯 가지 중에서 우리가 보통 해석하는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접촉이라는 감각으로써의 대상을 의미합니다. 미혼인 남의 자식이나 다른 이의 부인 등에 혐오스럽게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것은 '라싸'라는, 즉 맛이라는 감각적 대상, 감각적 대상 위에 혐오스럽게 쾌락을 취하는 것 안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닿는 것이라는 다섯 가지의 감각적 대상들 안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닿는 것이라는 감각적 대상, 그리고 술을 마시는 것은 맛을 보는 감각적 대상 안에 혐오스럽게 행하는 것으로써 이 두 가지 모두를 세 번째인 '까메수밋차짜라'에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수라 메라야라는 것, 이것은 즉, 다섯 번째 계율인 술이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취하게 하는 약물을 섭취하는 것은 모든 두짜리따’, 즉 몸과 입과 마음의 바르지 않은 행위들 열 가지 안에 퍼져서 들어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모습에 대해 설명하고 살펴보자면 다섯 번째 계율인 수라 메라야 맛자 빠마 닫타나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수라 메라야라는 것은 술이나, 정신을 취하게 하는 것을 말하고, ‘맛자 빠마 닫타나라는 것은 정신을 흐리게 하고, 깨어있지 않게 하고, 결여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술이나, 이렇게 정신을 흐리고 깨어있지 않게 하는, 결여되게 하는 것들을 금한다는 의미가 다섯 번째의 계율입니다.

 

그래서 결여된다는 것, 깨어있지 않는다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금해야 할 것들을 금함에 있어서 결여되고 깨어있지 않는 것이며, 두 번째는 따라야 할 것들을 따르고 지킴에 있어서 결여되고 깨어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과 입과 마음의 잘못된 행위 열 가지 모두를 우리가 금해야 하는 데 이런 것들을 금함에 있어서 잊고 결여되게 하는 법, 이것이 바로 술이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약물입니다.

그리고 정신을 흐리게 하는, 그러한 원인이 되는 것을 모두 금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렇게 금해야 할 것을 금하게 함에 있어서 결여되게 하는 법 안에 이 술과 정신을 흐리게 하는 약물들이 포함됩니다.

 

또한 이러한 불선한 행위들 열 가지를 짓지 않고 선한 행위들 열 가지를 행함으로써, 깨끗하고 맑게 지냄에 있어서 따라야 할 것들을 따르고 지켜야 하는데 이렇게 따라야 할 것들을 따르고 지킴에 있어서 술이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약물이 잊고 결여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렇게 술이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약물을 취함으로써 잘못된 행위 열 가지, 즉 죽이고, 훔치고, 부정을 저지르는 것, 그 다음에 거짓말하고, 거칠게 말하고, 이간질을 하고, 이익이 없는 말, 필요 없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 그리고 다른 이의 것을 부당하게 취하고자 하는 것, 다른 이를 죽이거나 괴롭히고자 하는 것, 혹은 원인과 결과들을 믿지 않는 잘못된 견해를 가지는 것이라는 이 열 가지 행위들을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잘못된 열 가지 행위 열 가지 모두에 이렇게 정신을 흐리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들을 금하는 것 이것이 모두 다 금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잘못된 행위 열 가지를 저지르는 것이므로 이것이 잘못된 행위 열 가지 모두에 퍼져 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흐리게 하는 술이나 약물 등을 취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약으로 취하는 것이다, 혹은 좋은 음식이나 좋은 음료로써 취하는 것이다등등의 이유를 대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것들이 몸속에 들어가게 되면 원래의 다듬어지고 부드러운 상태가 사라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나른해 질 것이고 계속 이러한 것들을 취하게 되면 취하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마치 미친 것처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미친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통제하지 못해서 잘못된 행위들을 쉽게 저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술이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약물들을 취하고 섭취하는 사람은 마치 미친 사람의 마음처럼 마음을 다스릴 수 없게 되어서 마음이 난폭하고 거칠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난폭하고 거친 마음이 생기게 되면 쉽게 죽이고, 쉽게 훔치고, 쉽게 부정을 저지르고, 쉽게 거짓말하고, 쉽게 거친 말, 욕설 등을 하고, 쉽게 이간질을 하고, 쉽게 이로움이 없는 쓸데없는 쓸모없는 말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식의 몸과 입의 잘못된 행위들을 매우 쉽게 저지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술이나, 정신을 취하게 하는 약물 등으로 인해서 다양한 잘못된 몸과 입과 마음의 행위를 행할 좋은 기회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술이나, 정신을 취하게 하는 약물을 취하는 것이 열 가지 잘못된 행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가장 두려워할 만한 것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여럿이 모여서 범죄를 저지를 때 이 중 어떤 한 사람이 핵심이 되어서 계획을 세웠다고 합시다. 그러나 실제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이 사람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러한 범죄가 드러나서 이 모임이 잡히게 되었을 때는 여기서 계획을 세운 사람이 제일 중요한, 그러한 제일 중요한 피고인이 됩니다. 이 사람이 실제로 범죄를 행할 때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계획을 세운 사람을 가장 중요한 피고인으로 지목합니다.

왜냐하면 이 범죄가 생겨나는 것에 있어서 이 사람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두려워해야 할 만한 그런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술을 마시거나, 정신을 흐릿하게 하는 약물 등 이렇게 정신을 흐릿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들을 취하는 것이 더욱 더 두렵고, 더욱 더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때 이것들을 멀리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멀리하고 피하면 피할수록 자기 스스로가 자기 세계를 보호한 것이 됩니다.

 

일부 발전된 나라에서는 술이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약물의 불이익에 대해서 열거해 둔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을 해치고, 가정생활도 해칠 수 있으며, 어떤 힘이나 능력도 줄어들게 할 수 있고, 생산능력도 줄어들게 할 수 있고, 또한 범죄율을 높인다는 것 등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술이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이러한 약물 등의 불이익에 대해서 경전에서만 설명해 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시대의 발전된 나라들에서도 이것을 가장 두려워할 만한 요소로써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정을 저지르는 것, 까메수밋차짜라에 대해서 이러한 감각적 쾌락을 다스릴 수 없어서 이런 것들을 행하게 되듯이, 또한 술이나, 정신을 흐릿하게 하는 마약 등등을 다스릴 수 없어서 이러한 것들을 범하고 금하게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로 인해서 지금 세상에는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인 에이즈와 같은 병들이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부끄러워할 만하고, 혐오할 만하고, 두려워할 만한 것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이렇게 볼 수 있게 될 때 부끄럽고, 혐오하고,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부끄럽고, 혐오하고, 두려워하게 될 때 이것들을 금하고 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졌을 때 이것이 자기 세계를 평화롭고 서늘하도록 보호하고 다스린 것이 되는 동시에 주변의 세계도 어떠한 뜨거움이나 피해도 주지 않음으로써 평화롭고 서늘해지도록 보호하고 다스린 것이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일 더 연결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오늘은 한 시간이 다 되었으니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3. '히리''옷땁빠'의 이익 (54)

 

어제 히리 옷땁빠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히리 옷땁빠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가 정말로 세상에 이 히리 옷땁빠라는 요소들이 사라지게 되면 금해야 할 것들을 금해야 하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되어서 세상에 어두움이 내린 것과 같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두움이 내린 것과 같이 금해야 할 것들을 금해야 함을 모르게 되었을 때, 잘못된 행위들을 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잘못된 행위들을 행하게 됨으로 써 고통을 겪게 되고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지키고 따르고 발전시켜야 할 것에 대해서도 지키고 따르고 발전시킬 수 없다면 이로움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 지키고 따르고 발전시켜야 할 것을 지키고 따르고 발전시키지 않음으로써 이로움이 생겨날 수 없고, 잘못된 것을 행함으로써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히리옷땁빠라는 것은 그것이 없는 사람, 그것이 결여된 사람을 가장 먼저 파괴합니다. 어떻게 파괴하느냐면 잘못된 몸의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혹은 입의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또한 잘못된 마음의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이 사람을 파괴하게 됩니다. 이 사람 혼자뿐만이 아닙니다. 이렇게 파괴함으로써 이 사람의 주변도 아주 혼란스럽고 동요될 수 있도록 고통스럽게 만들고 파괴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히리 옷땁빠라는 요소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므로 설명할 기회가 되었을 때, 꽤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히리 옷땁빠에 대해서 경전에서 뒷받침이 되는 내용과 지금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함께 넣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이러한 히리옷땁빠가 결여되었을 때 인간으로써의 규율, 규범이 파괴됩니다. 거칠고 난폭하고 저지르기 쉬운 특성들이 생겨남으로써 잘못을 저지르게 되어서 허물이 생겨나게 되고 이러한 때에 고통과 위험이 생겨 납니다.

 

인간으로써의 규율을 실라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실라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짜릿따 실라’, 두 번째는 와릿따 실라입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첫 번째는 짜릿따 실라는 부처님께서 이당 까따빵이것을 해야한다’ ‘이것은 하기에 적절하다고 이렇게 정해둔 것들을 실제로 따르고 채우고 성취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와릿따 실라이당 나 까따빵이라고 하신 것. 이것은 하기에 적절하지 않고 금해야 한다고 부처님께서 정해주신 것을 실제로 하지 않고 금하고 이것들을 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서 오계에는

죽이지 않는 것,

훔치지 않는 것,

부정하지 않는 것,

거짓말하지 않는 것,

술이나 정신을 취하게 하는 약물등을 섭취하지 않는 것.

이렇게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의 저지를만한 것들을 하지 말라고, 금하고 피하라고 제안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제안해 둔 것을 히리’ ‘옷땁빠가 없게 되면 이것이 깨지게 됩니다.

제안해 둔 것. 와릿따 실라라는 두 번째 종류의 실라가 깨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인간으로써의 규범도 방일해지는 것이 되어서 엉망이 되어버리고, 그리 하였을 때 인간답지 않게 됩니다.

 

지금 여기 모인 수행자 분들은 팔계를 지키고 있습니다.

팔계와 오계의 차이점은 세 번째 계율인 까메수 밋차짜라브라마짜리야로 바꾼 것입니다.

까메수 밋차짜라는 소유가 있는 여성들 등을 제한한 것입니다. 이것은 와릿따 실라금해야만 하는 것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대로 자기 소유의 부부 사이 같은 경우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자기 소유의 부부 관계 같은 경우에는 짜릿따 실라즉 따라도 좋은 계율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것을 꼭 따라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 자기 소유의 선을 지켜 둠으로써 짜릿따 실라라는 지키는 계율 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또한 브라흐마 짜리야로 팔계가 바뀌어 지는데 (녹음 내용이 끊어 졌습니다.)

 

짜릿따 실라안에 들어갑니다. 청정하게 지내는 것을 지키는 것. 이것을 따르기에 좋다는 것에 들어갑니다. 또한 화장을 하거나 노래나 춤을 추는 것들이나 혹은 마지막 계율인 높고 화려한 침구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이것을 깬다고 해서 큰 허물이 되는, 인간으로써의 규율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짜릿다 실라안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오계, 다섯 가지 계율 일 때 세 번째 계율 까메수 밋차짜라는 이것이 와릿따 실라짜릿따 실라두 가지가 가능하며, 이것이 팔계에서 브라흐마 짜리야로 바뀌었을 때는 이것이 짜릿따 실라가 되고 또한 치장을 하거나 높은 자리에 지내는 것 등등은 짜릿따 실라가 되고 그 이외의 다섯 가지는 와릿따 실라가 되는 것입니다.

 

출가자들 즉 비구나 비구니와 사미 등에게는 조금 전에 이야기한 오계도 와릿따 실라에 완전히 포함되고 어떠한 성적인 관계라든가 춤이나 노래나 연주하고 치장하는 것 등 혹은 높거나 화려한 침구나 자리를 사용하는 것 등등도 모두다 와릿따 실라라는 반드시 금해야 하는 계율에 들어가게 됩니다.

 

재가자의 경우에는 오계가 누구나 반드시 따라야만 할 계율, 인간으로써의 규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따라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교인들뿐만 아니라 타 종교 인들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이 이 오계이고 이것이 반드시 따라야할 인간으로써의 규율입니다.

 

규율이라는 것은 인간의 질과 가치를 결정해주는 하나의 기준이 되어줍니다.

규율을 잘 따를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질이 빛나게 되며 그 사람의 가치도 고귀해 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규율을 따르는 것에 방일하고 가볍다면 그 사람의 질이 점점 어두워지고 빛을 잃게 되며 그 사람의 가치도 점점 떨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써의 지위도 점점 빛을 잃고 흐려지고 사람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것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없어지게 되면 인간으로써 마땅히 지켜야할 규율을 깨는 것을 두려워하고 혐오하지 않게 되며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어서 그것들을 아주 용기 있게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도 존중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이 되며 자기 주변도 존중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었을 때 점점 더 거칠고 난폭한 것 그리고 저지르고 싶은 대로 범하는 것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지금 시대의 한 일부 지식인들 지혜로운 사람들은 뭔가를 넘게 되었으면 잘못이 생기 되는 것 그것을 고치는 약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말이 꽤 새겨둘만 한 말입니다. 이 사람의 써둔 글에서 자동차 운전할 때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자동차에는 브레이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차에 브레이크가 없다면 혹은 브레이크가 있지만 운전하는 사람이 이 브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차가 멈춰야 할 때 멈출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멈춰야할 때 멈추지 않음으로써 그 앞에 있는 것들,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두 차로 받게 되어서 주변을 고통스럽게 하고 주변은 파괴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고치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사람으로써의 규율 즉 실라 계율을 이야기하고 또한 이러한 계율의 바탕으로써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이 브레이크와 같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 브레이크와 같은 것이 계율입니다.

운전할 때 브레이크가 있기도 하고 그 브레이크의 성능이 좋기도 하고, 또한 운전자가 사용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부끄러움과 두려움으로 인한 실라즉 계율이 있다면 이것이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해주는 약과 같은 것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족 안에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없어서 잘못된 행위나 잘못된 말을 다스리는 실라라는, 즉 계율이라는 브레이크가 없다면 그 가족은 무너지고 파괴됩니다. 이러한 영향이 친척들에게까지 가게 되면 친척들까지 무너지고 파괴됩니다. 어제 이야기했었습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존재한다면 어머니나 누나나 혹은 고모나 이모나 등등에 대해서 존중하고 공경하면서 금해야 할 것을 금해야 할 것이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마치 짐승들과 같이 모든 것이 섞이고 혼란스럽게 될 것입니다.

 

큰 스님께서 여러 나라를 전법을 위해 두루 돌아다니시던 중에 있었던 한 예를 들어 설명하고 합니다.

지금처럼 위빠사나 집중수행을 열고 있었던 한 나라에서 집중수행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중 수행을 주도 했던 여성 매니저가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서 스님들과 수행자들을 위해서 공양을 보시했습니다. 그 때 큰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은 부모님의 은혜가 크다는 것, 그 은혜를 아무리 갚아도 해소되지 않을 만큼 은혜가 크다는 것에 대해서 법문하셨습니다. 이러한 부모의 은혜를 잘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법문을 하셨습니다. 법문이 끝났을 때 그 여성이 솔직하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 때 그 말은 놀랍고 두려울만한 말이고 했고 또한 우리가 교훈을 얻을만한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그 여성은 스님께서는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서 말씀하셨지만 제 아버지는 스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은혜를 갚아야 할만한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어떤 일이 있으셨냐고 물으셨을 때,

그 여성은 제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저를 그릇되게 이용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야도께서 지금 시대의 여자들도 남자의 마음이 혼란스럽게 옷을 입거나 하지 않느냐?’고 이유를 드셨고,

그 여성은 자기는 그 때 어린 아이였다고 대답했고

사야도계서 나이가 들었을 때 도망을 칠 수 없었습니까?’라고 물으셨을 때,

그 여자 분께서는 도망을 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죽이겠다고 계속 협박을 해왔다.’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덧붙여 이 지역의 여자 10명중에 4명은 아버지나 할아버지나 삼촌이나 오빠나 동생에게 이러한 식으로 잘못되게 이용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가족 안에서 행하거나 말해야 하지 않는 것. 즉 인간으로써 기본적으로 지켜야하는 그러한 규율을 지키고 다스릴 수 없었기 때문에 와릿따 실라라는 금해야 만하는 계율이 깨지게 된 것이고, 또한 이렇게 다스림이 없음으로 해서 인간으로써의 최소한의 규율이 사라짐으로써 잘못된 행위를 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됐을 때 당한 딸들도 물론 고통스럽고 또한 그것을 행한 아버지도 또한 인간으로써 가치가 떨어져서 인간답지 못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들이 생겨나는 것은 혐오해야하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해야 할만한 것들을 혐오하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다스리고 제어함 없이 따름으로써 마치 짐승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혐오하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해야만 하는 것을 혐오하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지 못하면 인간들의 세상이 짐승들의 세상과 같이 된다고 하신 것이 이 이야기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아직은 그 수가 적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열 명중 네 명이라고 하면 40%입니다. 적은 숫자는 아닙니다. 이것이 그 나라에 해당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큰 스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생활수준이 높고 물질문명이 발달해서 풍요로우며 과학이 발전한 나라에서 이러한 일이 많은 것 같다고 판단하십니다.

그래서 이것이 특히나 우리가 주의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지금 시대에는 경제 수준이 풍요롭고 생활수준이 높은 많은 나라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부모나 스승이나 주변의 가르침과 훈계가 거의 없는 것과 같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자유로운 것만이 좋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몸과 입과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허물이 없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통제 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하게 됐을 때, 점점 더 거칠고 난폭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것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이러한 사람이 됐을 때, 그 사람의 삶도 혐오스러울만한 것이 될 것입니다. 또한 생을 마쳐야 할 때 아주 슬프게 생을 마쳐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제한하고 다스리고 통제하는 것의 이익을 모르고 이러한 것들을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길 줄 모르는 이들에게 많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살펴보면 경전적인 지식이 없고 경전에서 보이는 실제 수행 방법에 대해서 따름이 없는 것, 실제로 자기 수행이 없는 것이 이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경전적 지식이나 실제 수양이 없어서, 숙고하는 능력이 결여되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타인을 위해서 행하거나 말하거나 생각하고 계획할 때가 되면 먼저 이 행위, 이 계획이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 혹은 적절한지 부적절한지를 미리 숙고할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것들을 바르게 숙고하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숙고력을 빠띠쌍카나 발라라고 부릅니다. 이 힘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좋다’ ‘이것이 적절하다다고 여기는 대로 바르게 숙고하지 못하고 편한대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세상은 파괴되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잘못된 것을 행한 사람 자신을 파괴하고, 그 다음에 주변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동요시키면서 파괴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많아질 때, 우리가 사는 세상 전체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것을 지키게 되면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자기 자신을 안정되게 되며 이로 인해 주변에도 어떠한 혼란도 주지 않아 평온하게 됩니다. 이것이 자기와 자기 주변 세상을 보호하고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먼저 말한 빠띠쌍카나 발라라는 숙고력이 있게 될 때, ‘아 이것을 하면 이로움이 있을 것이다. ’혹은 이것을 행하지 않으면 위험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행하면 적절할 것이다. ‘적절한 것은 하고 부적절한 것은 금해야 한다.’라고 사고할 수 있고 숙고할 수 있는 힘. 사고력, 숙고력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마음에 요구되는 힘들이 먼저 생겨나게 하고 발전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힘들이 가장 먼저 생겨난 뒤 작은 것에서 커지고 적은 것에서 많아지고 어리고 힘없는 것에서 건장하고 굳건하고 강해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 전에 말한 숙고력이 빠띠쌍카나 발라이며 이렇게 마음에 요구되는 힘들을 발전시키는 것을 '바와나 발라' 즉 마음을 발전시키는 힘. 마음의 발전이라는 힘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사띠빳타나 수행을 수행하게 되면 수행자들의 마음의 흐름에 믿음과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과 지혜라는 힘들이 처음 생겨나고 또한 이것들이 점점 작은 것에서 커지고 적은 것에서 많아지며 어리고 힘없는 것에서 건장하고 굳건하고 강해며 발전됩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 이야기 했듯이 우다야바야 냐나라는 사물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아는 지혜즉 물질과 정신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아는 지혜의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삿다 믿음, 위리야 노력, 사띠 알아차림, 사마디 집중, 빤냐 지혜라는 것들이 보통이 아니라 삿다 발라굳건한 믿음. ‘위리야 발라굳건한 노력. ‘사띠 발라굳건한 알아차림. ‘사마디 발라굳건한 집중. '빤냐 발라굳건한 지혜로 특별하게 생겨나게 됩니다.

이 중에서 가장 특별하게 생겨나는 것은 히리 발라옷땁빠 발라즉 매우 굳건하고 강한 불선업적인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혐오스러워하는 것과 불선업적인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요소 입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이 좋아져서 법의 맛을 알게 되면 앉아서 일어나고 일어나서 앉고 구부리고 굽히고 펴고 눈을 깜빡이고 등등 이러한 모든 행위에서 알아차림이 없이 하게 될까봐, 혹은 알아차림이 없는 사이에 번뇌가 들어오게 될까봐 부끄러워하고 혐오하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또한 알아차림을 놓침으로써 지금하고 있는 중요한 가치 있는 일이 실패하게 될까봐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런 때에 히리옷땁빠가 분명히 생겨나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두려워하면 할수록 빈틈이 없게 알아차림이 놓치는 일이 없게 더욱 더 주의를 기울여서 주시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알아차림은 더욱 많아지고 확고해 질 것이며 집중도 점점 좋아져서 마음은 점점 안정될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실제하는 대상들을 더욱 많이 바르게 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바르게 보게 되었을 때, 즉 지혜가 생겼을 때, ‘히리옷땁빠의 힘이 강해 집니다. ‘히리옷땁빠의 힘이 강해지면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식으로 좋은 것들이 계속해 반복해서 연결될 때에 원래보다 잘못된 행위 등의 허물도 더 잘 보여 지게 됩니다. 그리고 바르게 보는 것, 바르게 경험한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믿음등등의 힘들도 매우 강해져서 마음에 바와나 발라라는 마음의 발전이라는 힘이 발전되어서 매우 만족스러운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때가 되면 자유롭게 행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이 좋다는 것의 이로움에 대해서 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의 이로움을 알게 되었을 때 잘못된 몸과 입과 마음의 행위는 더 이상 저지르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자기의 삶의 수준을 떨어뜨릴 수 있는 것들을 더 이상 행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이 사람의 몸과 입과 마음뿐만 아니라 삶 전체도 허물이 없이 깨끗하고 청정하며 그래서 뜨거운 고통이 없고 부드럽고 다듬어지고 만족스러울만한 종류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이익이 생기고 자기 삶의 수준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삶을 살다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기쁘고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다스리고 통제하는 것의 이익입니다. 이러한 식으로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도 자기 자신으로 인해서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일이 없도록 이로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몸과 입과 마음의 행위들을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 성분들로 채워져서 금하게 될 수 있고 멀리할 수 있다면 몸과 입과 마음이 허물이 없이 깨끗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히리옷땁빠라는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 법이 깨끗하고 청정하고 맑음의 원인이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수까 담마하얀 법. 즉 깨끗하게 해주는 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행위들을 저지르지 않음으로써 이 사람의 몸과 입과 마음에 허물이 없고 깨끗해서 청정하고 순수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의 질이 얼마나 밝게 빛나겠습니다. 계율을 지킴으로써 이 사람이 얼마나 밝게 빛나겠으며 마음마저 깨끗하고 허물이 없을 때 더욱더 얼마나 밝게 빛나겠으며, 지혜까지 생긴다면 이 사람이 얼마나 밝게 빛나겠습니까?

 

그래서 계율을 지킴으로써 사람답고 마음을 깨끗하고 허물없이 둘 수 있음으로써 사람답게 마음을 둘 수 있으며, 지혜까지 둘 수 있어서 사람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두 가지 법. ‘히리옷땁빠가 사람의 질이 빛나고 가치가 높아지게 해 주는 법이라는 것이 여기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래서 이것을 데와 담마즉 빛나는 법이라고도 말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일 계속해서 설명하겠습니다.

 

4. 히리와 옷땁빠의 중요성과 데와담마의 핵심 (56)

 

히리와 오타빠에 대해서 어제 끝을 내면서 이것을 마무리 지어서 설명하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다섯시에서부터 6시까지 모임 회의가 있으면서 어제 법우들끼리 불법에 대해서 의논할 게 있었기 때문에 어제 법문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오늘 마무리 짓지 못한 히리와 옷땁빠를 마무리 지어서 설하려고 합니다.

 

이 히리와 옷땁빠에 대해서 중요시하는 것은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 불법에서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깊이 있게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히리와 옷땁빠가 완성 되면 선을 넘는 것이 없어지고 잘못되는 것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선을 넘어서 잘못되는 것이 없어짐으로써 고통이 없이 위험이 없어지기 때문에 삶이 라는 여정이 안정되고 고요하고 평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 히리와 오타빠에 대해서 깊이 있게 언급하셨고, 주석서와 부 주석서에 있는 스승님들께서도 이것에 대해 매우 넓게 설명하셨습니다. 이 히리와 옷땁빠라는 두 가지 법은 매우 훌륭한 법입니다.

 

 

그래서 이 히리 옷땁빠라는 법을 특별한 법이라는 옷이라고 하기고 합니다. 여기서 특별한 법이라는 것은 히리와 옷땁빠를 의미 합니다. 그래서 옷을 입어 두었을 때에만 어떤 사람이 단정하고 보기 좋을 것입니다. 어떤 중요한 자리나 파티에 참석할 때는 더욱 더 신경 써서 깔끔하고 단정하고 아름답게 옷을 차려 입게 됩니다.

 

옷을 입지 않았다면 이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아예 옷이 없다면 정말 보기 나쁘고 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적절한 옷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히리와 옷땁빠라는 옷이 없어졌을 대는 보기 싫고 부끄러울 만한 상황이 되며 반대로 히리와 옷땁빠라는 법의 옷을 입어 두었을 때 법으로 아름다워지게 됩니다. 즉 히리와 옷땁빠라는 옷을 입을 있었을 때 까야 숫짜리따 라는 몸에 바른 행위들로 몸에 좋은 행위들로 완성되게 되었을 때 몸의 행위가 허물이 없고 청정하고 부드럽고 깨끗하고 섬세할 것입니다. 것입니다. 또한 와찌 숫짜리따라고 입에 좋은 행위 입에 바른 행위로 구족 됐을 때 입의 행위들도 부드럽고 달콤하고 부드럽고 좋은 것이 될 것이며, 마누 숫짜리따라는 마음에 좋은 행위들로 구족되게 되었을 때, 또한 마음의 행위들도 부드럽고 섬세해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히리와 옷땁빠가 완성됐을 때 숫짜리따라는 몸과 마음과 입에 좋은 바람직한 행위들로서 이 사람이 아름답고 고귀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히리와 옷땁빠를 법이라는 옷이라고 특별한 법이라는 옷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지금처럼 사띠빳타나 수행을 하는 공손하고 주의 깊고 빈틈없이 수행하고 있는 수행자들은 이러한 법의 옷이 정말로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공손하고 주의 깊고 빈틈없이 수행하는 수행자에게 몸으로 짓거나 입으로 지을 만한 거친 번뇌는 생길 리가 없습니다. 마음 속에 생겨나는 거친 번뇌도 생기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생겨나게 되어도 이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며 혐오할 줄 알게 되고 이것이 생기기를 바라지 않게 될 것입니다.

 

또한 알아차림을 놓침으로써 매우 고귀한 위빠사나 수행을 망치게 될 까봐 매우 두려워 하게 됩니다. 그래서 조금도 아주 미세한 것조차도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고 싶고, 그래서 놓치지 않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이렇게 수행함으로써 매우 고귀한 가치를 매우 고귀한 가치로써 알고 이해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당장 생겨나는 종류의 물질과 정신현상들을 적절한 조준과 적절한 힘을 실어서 노력과 알아차림 그리고 집중을 통해서 분명히 주시할 때 그렇게 주시하는 순간에 빠리윳타나 낄레사라는 마음에 생겨나는 종류의 거친 번뇌가 생길 기회를 얻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일분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을 통해서 주시하게 죄면 일 분 동안 이렇게 마음에 생기는 종류의 거친 번뇌가 생길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생기게 되어도 주시로써 즉 알아차림으로써 바로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적인 주시로 예방하면서 제거하고 또한 생기게 되어도 즉시 주시함으로써 제거하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번뇌가 생기게 되면 그것에 대해 혐오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더욱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번뇌가 생겼을 때 혐오하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면 할수록 더욱 더 주의를 기울여서 이러한 번뇌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며 알아차림 할 것이고 이렇게 될 때 들어오는 번뇌에 대해서 더욱 더 혐오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힘이 커질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수행자는 더욱 더 주의를 기울여서 빈틈없이 주시하고자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특별한 옷, 히리와 옷땁빠라는 특별한 법의 옷을 아름답게 입게 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단계 단계 알아차림이 점점 빈틈없이 되어짐으로써 지혜가 점점 발전하게 되어서 도와 과를 얻게 되면 이때에는 위빠사나 지혜의 단계에서는 일시적으로만 제거되고 기간적으로만 제거되어졌던 번뇌들이 완전히 제거됩니다.

 

그래서 잘못된 견해라든가 혹은 잘못된 수행을 의지하는 것, 혹은 불법승 삼보나 업과 업의 결과에 대한 의심들 이러한 것들이 완전히 뿌리뽑혀 잘려나가게 됩니다. 아직 탐진치는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탐진치가 사악도에 갈 만큼 극단적인 탐진치는 아닙니다. 이렇게 사악도에 갈만큼의 매우 극단적인 탐진치도 이렇게 첫 번째 도와 과를 얻었을 때 완전히 뿌리 뽑혀 잘려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자기의 생에 대해서 자기의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이러한 때에 자기의 삶은 히리와 옷땁빠라는 특별한 옷으로 인해서 안전하고 밝게 빛나는 아름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에 나타나는 관찰 대상들을 그것들이 나타나는 동안에 적절한 겨냥 조준과 적절한 힘을 실어서 확고하게 주시하지 못하면 번뇌는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지금 나타나는 관찰 대상을 그것이 나타나는 동안에 적절한 겨냥과 힘을 실어서 확고하게 주시할 수 있다면 이 대상을 알게 된다면 번뇌가 청정해집니다. 이것의 의미는 지저분한 마음의 오염 물과 같은 것이 깨끗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확고하게 주시함으로써 알게 되었을 때, 대상의 본질을 알게 되었을 때, 알지 못하고 흐리멍텅하고, 둔하고 불분명한 어리석음, 모하의 자리에 반대의 요소인 아모하 즉 어리석음이 없는 지혜의 상태가 자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이 분명하고 흐릿함이 없고 예리하며 깨끗해지게 됩니다. 또한 불만족스러움으로 인해서 화내고 성내고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도 생겨날 수 없게 됩니다. 이 자리에 반대의 요소인 아도사 즉 성냄이 없는 마음의 요소, 그러한 마음의 상태가 자리하게 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로바와 도사와 모하 즉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자리에 그것들의 반대의 요소들인 아로바, 아도사 아모하 즉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는 이러한 것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좋은 요소들 아로바 아로사 아모하 라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는 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허물이 없고 청정한 마음들이 생겨나고 즉 수행의 마음들이 계속해서 연속적으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로바 아도사 아모하 즉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는 것이 바탕이 되는 깨끗하고 청정한 이러한 마음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게 되어서 마음이 밝게 빛나게 되고 아름다워 질 때 이러한 것은 어둠에 번개 치는 것처럼 번쩍하고 사라지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어두운 밤 하늘에 매우 밝고 맑은 달과 별들이 빛나는 것과 같이 아름답고 밝게 빛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염물이 제거되어서 마음이 청정하고 깨끗해지고 이로 인해서 마음은 아름답고 찬란하게 밝게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되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별로 힘을 들이지 않아도 아주 적절하게 편안하게 대상을 주시할 수 있게 됩니다. 대성에 어떠한 치우침 없이 중립적인 태도로 대상을 주시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따뜨라 마찬다따라고 부릅니다. 즉 중립적인 요소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흐름에 오염물이 들어오지 않게 해주고 마음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요소들이 생겨나는 것 입니다. 또한 그 뒤를 따라서 몸과 마음이 고요해지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몸과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이러한 등등의 마음의 흐름에 오염물이 없어짐으로써, 깨끗하고 빛나고 아름답게 해주는 그러한 마음의 요소들, 이러한 마음들이 무더기로 쏟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와나 수행이라고 부릅니다. 즉 마음이 발전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조금 전 이러한 소중한 요소들, 마음을 깨끗하게 빛나게 아름답게 해주는 요소들이 적을 것에서 커지고, 작은 것에서 많아지고, 어리고 약한 것에서 크고 건장해지고 힘이 있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분에 60초에서 1초에 한 번씩 이러한 것들이 생긴다 하면, 1분에 60, 5분에 3001시간이면 3600번 이러한 것들이 쏟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것에서 커지고, 적은 것에서 많아지는 것 이러한 것을 마음의 발전, 수행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띠빳타나 수행으로 이러한 좋은 요소들이 생겨나게 되고 발전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로바 도사 모하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 시작 되어 지는 마음에 오염물이 자신의 마음의 흐름에 들어오게 될 때 부끄러워하고 혐오하고 두려워 할 줄 아는 자신의 마음이 히리와 오탑빠라는 옷을 입어두게 되었을 때, 자신의 마음은 보호되고, 또한 안전하고 아름답게 밝게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흐름에 마음에 오염물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을 때 마음은 아름다워집니다.

 

마음이 아름다워지고 또한 물질도 아름다워집니다. 삐띠 빳사띠라는 기쁨과 고요함이라는 요소들이 생겨나게 되면 이러한 삐띠 빳사띠라는 기쁨과 고요라는 요소들의 영향력으로 인해서 몸 안에 피가 깨끗하고 맑아지게 됩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인해서 생기는 물질입니다. 즉 삐띠 빳사띠라는 기쁨과 고요함이 이끄는 마음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물질로서 마음이 깨끗하고 맑음에 의해서 물질도 깨끗하고 맑게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겨나는 물질이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흐름에 삐띠와 빳사띠라는 기쁨과 고요함이 계속적으로 연속적으로 생겨나게 됨에 따라서 이러한 물질도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즉 몸 안의 피가 계속해서 깨끗하고 맑아집니다. 이렇게 됐을 때 이렇게 피가 맑아짐에 따라서 원래에 병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병이 낫는 경우가 생겨나게 됩니다.

 

또한 4대 요소에 의해서 의지해서 생겨나는 물질, 즉 우빠다루빠도 깨끗하고 맑아집니다. 즉 눈도 좋아지고 귀도 좋아지고 냄새를 맡는다던가 맛을 아는 이러한 감각 등들도 좋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피부 등도 좋고 맑게 되어서 빛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수행을 통해서 법의 영향으로 인해서 귀하고 좋은 물질들이 계속해서 생겨나서 온 몸에 퍼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름다워지듯이 몸도 이렇게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면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알아차림을 놓침으로써 오염물이 마음에 들어오게 될까 봐 혐오할 줄 아는 히리와, 두려워 할 줄 아는 옷땁빠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조금 전 히리와 옷땁빠라는 법의 옷을 입게 됨으로써, 마음에 오염물이 들어오지 않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마음이 아름답게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야 아! 이러한 법을 내가 이제야 수행하게 되었구나, 이것이 정말 소중한 법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바른 수행법과 이것을 설한 부처님에 대한 믿음과 믿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바른 수행법과 이것을 설한 부처님에 대해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고 이것이 확실한 법이고 이것을 설한 부처님께서도 바르다는 것을 결정 내릴 수 있게 됩니다. 이때가 되면 이것을 설한 부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이 법을 설하셔서 이 수행을 하게 되었구나 하고, 이 부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구나 라고 마음으로 감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입으로까지 칭송하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야 진정으로 부처님의 공덕에 대해서 알고 부처님의 은혜에 대해서 알 고 감사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공덕 미덕에 대해서는 그냥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설하신 법을 제대로 수행함으로써 이것을 실질적으로 본인이 경험함으로써 그 미덕과 공덕에 대해서 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법의 미덕과 공덕에 대해 알아야만 부처님의 공덕을 실제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전에서, 즉 부처님 께서 설한 말씀에서 보면 오직 법을 보는 사람이 나 여래를 보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은혜를 알 줄 아는 사람, 자기가 받은 은혜에 대해서 칭송하게 되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은 아름답고 선한 이의 대열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히리와 옷땁빠가 있는 이러한 사람은 자기의 마음에 오염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허물이 있는 불 선업을 제거해서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허물이 없이 깨끗한 선업이 마음에 생겨나고 발전되게 하기 때문에 이러한 히리와 옷땁빠라는 법이 자기 자신을 깨끗하고 청정하게 해주는 법이라는 것이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 데와담마라는 히리와 옷땁빠라는 법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이것을 문제로써 제기함으로써 매우 깊이 있게 여기저기서 의논하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 데와 담마 히리와 옷땁빠에 대한 게송이 있습니다. 그것을 읊어보자면,

히리오탑빠 삼빤나

삼빤노 수카담마 사마히따

산또 사뿌리사 로케 데와담마띠 우짜레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의 의미에 대해서 풀이하자면, 스스로를 존중함으로써 불 선업, 허물이 있는 것들이 자기에게 올 것을 혐오하고 부끄러워하는 히리, 그리고 주변을 존중함으로써, 불 선업이 자기에게 올 것을 두려워하는 옷땁빠, 이 두 가지가 구족 되면, 몸과 입과 마음이 오염 물 없이 깨끗해 진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히리와 옷땁빠가 생겨나게 되면 몸과 관련된 오염 물도 청정해지게 되고 입이나 마음과 관련된 오염 물도 청정해지고 깨끗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흰색의 법, 즉 히리와 옷땁빠라는 흰색과 같은 법, 이것을 받쳐두었기 때문에 불 선업이라는 뜨거운 법이 들어올 수 없이 반사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히리와 옷땁빠를 받쳐두었을 때, 불선업이 들어올 수 없이 반사되어지기 때문에 마음이 얼마나 깨끗하겠습니까? 매우 깨끗하게 되어서 매우 아름다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수카담마 삼마히타라는 말은 몸과 입과 마음 세가지 모두 특히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하도록 해주는 흰색의 법으로 채워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런 흰색의 법, 뜨거움을 반사하는 것과 같은 흰색의 법으로 채워짐으로써, 몸과 입과 마음이 깨끗하고 청정해지며, 아직 생기지 않은 깨끗하고 순수하고 청정한 법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몸과 관련된 어떤 행동들이 생겨났을 때, 이것이 깨끗하고 청정하며, 입과 관련된 행동도 깨끗하고 청정하게 생겨날 것이며, 마음과 관련된 어떠한 행동도 무명이 없는 것 등등으로 깨끗하고 청정하게 생겨날 것입니다. 이것이 다듬어졌다, 부드럽다, 섬세하다, 뜨겁게 불타지 않는다, 그리고 만족스럽고 좋아할만하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법이 얼마나 좋은 법입니까? 주의를 기울여서 주시할수록 더욱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때가 되면, 산따가 되게됩니다. 산또사뿌리사 로케라는 구절에서 산따라는 말, 이러한산따라는 상태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때가 되면 불선 몸의 행위와 불선한 입의 행위가 불선 한 마음의 행위들이 들어와서 동요되거나 흔들리는 일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바르지 않은 몸과 마음과 입으로 인한 행위에 의해서 동요되고 흔들림이 없게 되기 때문에 고요하고 서늘해집니다. 이렇게 고요하고 서늘하게 되는 것을 산따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히리와 옷땁빠의 능력들에 의해서 조금 전에 말했듯이 사람들의 성향이나 나쁜 습으로 인한 동요나 혼란 없이 자신의 삶이 고용하고 서늘할 수 있다면, 이때 어떠하겠습니까? 함께 매우 감사하게 될 것이며, 마음 뿐 만이 아니라 입으로도 칭송하게 것입니다. 타인이 행한 은혜를 알고, 이것을 표현해서 칭송할 줄도 아는 사람을 사뿌리사라고 부릅니다. 아름답고 선한 귀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러할 때 저절로 사뿌리사라는 아름다운 사람의 서열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설하셨기 때문에 불선업에 대해서 알 수 있고, 이것을 금할 수 있고, 제거하는 방법을 알 수 있고, 제거할 수 있으며, 또한 선업에 대해서 알고, 선업을 증대시킬 수 있었다는 것, 이러한 것을 알게 됨으로써, 또한 이러한 이로움을 알게 됨으로써, 부처님께 매우 감사하게 됩니다.

 

세상에 드문 사람 즉 얻기 힘든 사람이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그 첫번째는 뿌빠까래입니다. 이것의 의미는 앞을 내다보는 큰 시각 높은 시각을 가지고 큰 연민심과 큰 자애로서 존재들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서 행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간에 부모가 그러한 사람이며, 스승과 제자간에 스승이 그러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길들을 보여주고, 금할 것들을 금할 수 있고, 따를 것들을 따를 수 있을 때, 몸과 입과 마음에 오염이 없고 허물이 없게 될 것이며, 삶이 아름다워지고, 삶이 빛나게 되었을 때, 이러한 길을 보여주었던 사람들의 은혜를 알고 이것을 표현도 하고, 은혜를 갚기도 하는 사람이 두 번째 세상에 얻기 힘든 사람입니다. 까딴뉴 까따웨디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먼저 이익을 행해주는 사람과 이 사람들의 은혜를 알고 이것을 표현하기도 하고 이 두 종류 의 사람을 세상에 얻기 힘든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얻기 힘든 사람이라고 하니 이것은 고귀한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바른 길을 설하시고 연민심을 두어서 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두짜리따라는 몸과 입과 마음에 잘못된 행위들을 금할 수 있고, 또한 숫짜리따라는 몸과 입과 마음에 바른 행위들을 행할 수 있도록 이렇게 가르치고 설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의무는 즉 뿌빠까레로서 먼저 큰 예견력을 가지고 큰 자애와 연민으로 존재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 행해주는 뿌빠까레로서의 부처님의 의무는 끝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따르고 그에 따라서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에 대한 은혜를 갚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의무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은혜를 알고, 그것을 수행을 통해서 그 은혜를 갚을 수 있을 때 우리의 의무가 다해진 겁니다. 또한 이랬을 때에만, 우리들 자기 자신들은 사뿌리싸, 즉 아름답고 빛나는 이들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와담마라는 말에서 데와 라는 말은 세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데와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삼무띠데와, 두번째는 우빱빠티 데와, 세번째는 위숫띠 데와입니다. 첫번째 삼무띠 데와라는 것은 예전 시대에 지배자를 의미하는 왕이나 왕비, 왕자, 공주들을 의미했습니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한나라의 지배자나 지배자들을 의미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들이 히리와 옷땁빠를 가지고 불선업적인 것이 들어오지 않게 바르게 지배하고 통치하게 되었을 때 즉 법을 가지고 있는, 법을 지키는 지배자였을 때 밝게 빛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이 평온하고 행복해지게 되면서 이 사람들이 밝게 빛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웁빠빠디 데와라는 것은 땅 위에 사는 천신부터 시작해서 천신계에 살고 범천계에 사는 다양한 종류의 범천과 천신들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존재들이 히리와 오타빠를 가지고 선업을 발전시킴으로써 천신계에 태어나게 되고, 또한 색계 선정과 무색계 선정을 통해서 더욱 더 발전된 형태로서 범천계에 태어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위쑷띠 데와라는 것은 아라한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지금처험 히리와 오타빠라는 법을 가지고 지금처럼 수행을 통해서 번뇌을 제거할 수 있을 때 마지막으로 아라한까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라한들 처럼 혹은 그 밑의 성인들처럼, 그러나 특히 아라한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법이 청정하고 깨끗하고 밝다는 의미에서 아라한들을 위숫띠 데와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데와담마의 의미의 핵심 정도는 모두 설했습니다. 오늘 여기서 마무리해서 설명하기 때문이 이것들에 대해서 깊이 있게 언급하고자 하면 여러 주를 설명해도 모자를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 이 불법에서 이 히리와 옷땁빠라는 데와담마가 핵심이라는 것, 이것이 열쇠와 같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이해함으로써 불선업을 금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불선업을 금하고 선업으로 빛나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세계에서 삼무띠 데와라고 부르는 지도자 통치자가 될 수 도 있을 것이고, 천신계에 태어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세간선정을 할 수 있다면 범천계에 태어날 수 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사띠빳타나 길을 따라서 계속 수행을 할 수 있다면 번뇌가 완전히 제거된, 번뇌가 완전히 마르게 된 아라한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이 길을 따르게 되었을 때 이러한 결과들은 반드시 얻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세계에서 삼무띠 데와라 불리는 통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거나, 천신계에서 천신으로 태어나는 우빠빠띠 데와가 되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은 정말 여러 번의 생을 따라 우리를 따라온 번뇌를 제거함으로써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또한 이 수행을 설하신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최소한 하나의 도와 과를 얻음으로써 청정한, 청정하게 빛나는 존재인 진정한 위숫띠 데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것을 권유하면서 이 법문을 마칩니다.

 

5. '히리 옷땁빠' 그리고 '아로바' '아도사' '아모하' (58)

 

그제 히리 오따바 쌈빤나 수까 담마 싸마히따 산또싸 쁘리사 로께 데와담마 띠 우짜레라는 게송을 그것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서 이야기했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들이 실제로 수행과 연관해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이 히리라는 요소와 옷땁빠라는 요소가 채워짐으로써 자기 마음에 수까 담마라는 하얀색 법이 받쳐 둔 것과 같고, 이때 흰색이 뜨거움을 반사하듯이 이 마음에 히리 옷땁빠라는 하얀색 법이 불선업이라는 뜨거움을 반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몸과 입과 마음의 행동에 허물이 없고 깨끗해지게 되고 허물이 없고 깨끗해짐에 따라서 몸의 행동, 입의 행동, 마음의 상태들이 부드러워지고 섬세해지고 뜨겁게 타는 것이 없이 고요하고 평화스러워지고 또한 그래서 만족스러울만한 것이 됩니다.

 

실제 수행 시에 이와 마찬가지의 것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히리옷땁빠라는 법이 생겨나게 되면 더욱더 주의를 기울여서 마음에 불선한 것들이 들어올 기회가 없도록 주시하게 될 것이며, 이때 마음의 흐름에 불순물은 더 이상 침투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됐을 때 마음의 흐름이 깨끗하고 좋은 상태가 되며 이때 지혜가지 생기게 되면 특별히 말할 것도 없이 더욱 더 훌륭한 상태가 되게 됩니다.

 

 

그래서 산따라는 말이 게송에 나왔습니다. 산따라는 말은 고요하고 평화롭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조금 전 말한 것처럼 마음의 상태가 다듬어지고 좋아졌을 때 마음에는 불선업이나 오염물이 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울 수 있을 것이며 불선업을 행하거나 말하거나 이것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실제로 수행을 하여서 이러한 종류의 고요와 평화를 만나게 되면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이러한 진정한 은인들에게 정말로 감사하게 되고 이것을 마음뿐만 아니라 표현으로써도 입으로도 칭송할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이의 은혜를 알기도 하고 이것을 칭송할 수도 있음으로써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싸뿌리싸라는 사람들 대열들 안에 저절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가 되었을 때 ( 녹음이 잠시 끊어 졌습니다. 확인되는 대로 보충하겠습니다. )...이 됩니다.

그래서 이때 데와담마라는 빛나는 법이 이때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히리 옷땁빠라는 이러한 성질로 인해서 빠빠라고 불리는 불선업. 즉 저급한 것들을 두려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빠빠라고 불리는 저급한 불선업적인 것을 혐오하기 때문에도 금하거나 넘고 저지르지 않게 되며 또한 두려워하기 때문에도 넘게 되어서 금하고 저지르는 일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잘못된 것들 즉 저급한 것들을 넘게 되어서 금하거나 저지르는 것이 없어지게 되어짐으로써 몸과 입이 깨끗해지게 됩니다. 금하고 넘고 저지르지 않는다고 하면 불선업적인 법들에 대해서 주춤하게 되는 특성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주춤하고 움칫거리게 되는 상황으로써 반복해서 계속 나타나게 되는데 이렇게 주춤하게 되는 상황이 언제나 생기게 되었을 때 집착할만한 대상을 만나게 되어도 마음이 달려가서 집착할만한 것이 생기지 않게 되고 화가날만한 상황과 만나게 되어도 화내는 것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이것만 해도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고 훨씬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바’, ‘도사’, ‘모하라는 탐진치라는 것은 혐오하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는 법들이 없어질 때 언제나처럼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혐오하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할 줄과 아는 법이 없어지게 될 때 마음에는 로바’, 즉 탐욕으로 인해서 즐겁고자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될 것이며 불만족스러운 대상을 만나게 되면 도사성냄과 관계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현재의 대상을 분명하게 바로 알지 못하게 될 때에는 불분명하고 멍청하고 뚜렷하지 못한 것. 이러한 모하라는 것이 어리석음이 언제나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로바 도사 모하라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이러한 불선업적인 요소들만이 언제나 마음을 지배적으로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거친 종류의 번뇌, 중간 정도의 번뇌, 잠재적인 종류의 번뇌가 생기지 않도록 지금처럼 매 순간 적절히 겨냥하고 적절한 힘을 실어서 주시할 수 있게 되어서 대상의 바른 특성을 알게 되면, 알지 못하기에. 모르게 때문에 생겨나는 로바, 도사, 모하 즉 탐진치가 생길 기회를 잃게 됩니다.

 

 

이렇게 탐진치가 생길 기회가 없게 되었을 때, 이 탐진치의 반대의 요소. 즉 로바의 반대탐욕의 요소인 아로바탐냄이 없는 것. 도사 성냄의 반대 요소인 아도사성냄이 없는 것 또한 모하어리석음의 반대의 요소인 아모하즉 흐릿하지 않고 멍청하지 않고 또렷한 이러한 아모하라는 마음의 요소들. 이러한 반대의 요소들이 분명하게 생겨나게 됩니다.

 

 

이러한 아로바, 아도사, 아모하즉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다라는 이 세 가지의 법은 깨끗한 선업의 법들의 기본 바탕이 되는 뿌리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중에서 어떤 한 가지가 포함되지 않고는 깨끗한 선업의 법이 생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문라’. 즉 깨끗한 선업의 법들의 기본 바탕이라고 부릅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아로바, 아도사라는 처음 두 가지는 선업의 마음이 생길 때마다 같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이 '아로바'아도사라는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는 상태의 마음의 요소를 소바나싸 다라나라고 부릅니다. 이것의 의미는 아름다운 마음이 생길 때마다 함께 생겨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모하어리석음이 없는 것. 선업의 마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지혜가 있는 선업의 마음이 있고 지혜가 없는 선업의 마음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지혜가 있는 선업의 마음에는 이 아모하라는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의 요소가 포함되어 지고 지혜가 없는 선업의 마음에는 이 아모하라는 어리석음이 없음이라는 마음의 요소가 포함되어지지 않습니다.

 

 

수행자 여러분들이 처음에 수행을 시작하였을 때, 수행을 하고 있는 선업의 마음에 처음에는 이 아모하라는 지혜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복적인 주시를 통해서 대상을 알아차리는 마음과 대상이 맞아떨어지게 되어서 대상의 바른 특성을 알게 되었을 때 이 순간에 아모하라고 불리는 어리석음이 없다라는 지혜라는 마음의 요소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상의 바른 특성을 알게 되었을 때 생겨나는 수행의 선업의 마음에 이러한 아모하라는 지혜의 마음이 바탕이 됩니다.

 

 

이러한 아모하라고 불리우는 지혜 앎이라는 것은 나타나는 대상들을 주의 깊게 반복해서 주시함으로써 대상과 주시하는 마음이 완전히 맞아 떨어져서 대상위에 주시하는 마음이 모여 떨어지듯이 되어서 대상의 바른 특성을 분명하게 구분해서 알게 되었을 때 생겨납니다. 이때 마음은 아름답게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로바탐욕으로 시작되는 불선업들도 이 순간에 생겨날 수 없게 됩니다.

 

 

처음에 이야기한 '아로바'아도사라는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는 상태의 마음의 요소를 소바나싸 다라나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선업이라는 아름다운 마음이 생길 때마다 함께 생겨나는 마음의 요소들입니다. 마지막 아모하라고 불리 빤냐’,지혜라는 것은 지혜와 앎이 있는 마음에만 생겨납니다. 그래서 대상의 바른 특성을 분명히 구분해 알게 되었을 때에만 생겨납니다. 그래서 첫 번째 아로바’, ‘아도사라는 것이 생겨났을 때 마음은 아름답게 빛나게 되고, 마지막 빤냐라고 불리우는 아모하가 생겼을 때 마음은 더욱더 아름다워 지고 빛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빤냐라고 불리우는 아모하어리석음이 없는 것. 즉 지혜는 모든 선업의 마음, 아름다운 마음에 생기지는 않지만 오직 선업의 마음, 아름다운 마음에만 생기기 때문에 소바나 쩻다 시까즉 아름다운 마음의 요소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좀 더 분명해 지도록 보기를 들자면 히리 옷땁빠를 가지고 있는 수행자가 번뇌가 마음의 흐름에 생기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함으로써 굽히고 펴고 구부리고 등등 나타나는 모든 행위들을 작은 것조차도 놓치지 않도록 주의 깊고 공손하고 빈틈없이 주시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의 깊고 공손하고 빈틈없이 주시하게 된 순간. 즉 알아차림이 된 순간에 아로바아도사라는 탐욕이 없는 것 성냄이 없는 것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알아차림이 된 순간 바른 특성까지 알게 되었다면 아모하라는 지혜. 즉 어리석음이 없는 것도 생기게 됩니다.

 

 

예를 들어 수행자가 손이나 발을 구부리게 되었다면 구부리는 그 순간에 분명한 것은 구부리고자 하는 정신 현상이 단계단계 나타나는 것과 구부리는 물질 현상이 단계단계 나타나는 것입니다. 구부리고자 하는 단계단계의 마음이 정신이고 구부리는 물질 현상이 단계단계의 행위가 물질입니다. 이 두 가지 정신과 물질이 분명합니다. 그것들이 나타나는 순간에 그것을 알기 위해 조준하고 힘을 실어서 확고히 주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행초기의 수행자에게는 구부리고자 함과 구부림이라는 두 가지 대상 중에서 구부림을 더 우선시해야 합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구부림은 물질 현상이고 구부리고자 함은 정신 현상인데 이 두 가지 중에서 구부림이라는 물질현상이 훨씬 더 분명하고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부림을 우선해서 주시해야 하고 그것을 주시하다가 구부리고자 하는 마음이 보이면 알면 됩니다.

 

 

구부리고자 하는 단계 단계의 정신 현상들로 인해서 구부리는 단계 단계의 물질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을 그 뒤에서 마음으로 붙어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적절한 겨냥과 적절한 힘으로써 마음이 대상에 붙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마음에 불순물은 들어올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청정해지고 고요하고 평화로워 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부림이나 구부리고자 함이 생겨날 때 이것을 주시하게 되어서 이 두 가지 중에서 무언가 위에 마음이 떨어지게 되면 집착할만한 대상과 만나게 되었을 때에도 탐욕이라는 로바가 생기지 않고 그것의 반대의 요소인 아로바가 생기게 되며, 화가 날만한 대상. 불만족스러운 만한 대상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도 도사라는 성냄이 생기지 않아서 그것의 반대의 요소인 아도사가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모하라는 어리석음이 없음. 즉 지혜는 아직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수행의 마음. 깨끗한 선업의 마음이 생기게 될 때마다 아로바’, ‘아도사는 언제나 생기게 됩니다. 이것이 소바나 찟따라고 불리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생겨날 때마다 포함도어서 생겨나기 때문에 소바나싸 다라나 쩻따 시까즉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생길 때마다 함께 생기는 마음의 요소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오염물이 없이 깨끗해질 수 있도록 제일 먼저 구부리는 순간을 예를 들어 봅시다.

구부리는 순간에 일단 구부리고자 하는 의도라든가 구부림 중 분명한 것 한 가지를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구부림이고자 함이 분명할 때에는 구부리고자 함을 주시해야 할 것이며 구부림이 분명할 때에는 구부림을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구부림이라는 물질 현상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분명하고 알기에 쉬운 구부림이라는 물질 현상 쪽으로 마음을 모아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집중이 좋아지게 되면 구부리고자 하는 정신 현상들도 저절로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부림 위에 마음을 모아주고 마음을 향해주어야 합니다.

구부리는 팔을 예를 들어 봅시다. 이러한 구부리는 팔에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마음을 이 구부리는 팔에 향하고 겨냥해야 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구부리는 팔이라는 대상에 향해지고 겨냥되면 감각적 쾌락과 같은 대상, 혹은 불만족하는 성냄과 같은 대상에 마음이 향해지거나 겨냥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각적 쾌락이나 성낼만한 대상에 마음이 향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마음을 바른 대상위에 확고히 향해질 수 있도록 겨냥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즉시 나타나는 물질과 정신 현상이라는 대상 위에 마음을 향하고 조준하라고 계속해서 깊이 있게 권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금 나타나는 대상위에 마음이 향해지고 조준되어 졌을 때 탐욕이나 성냄이 생길만한 대상위에 마음이 향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마음을 바른 대상으로 향해주는 것과 같은 특성 즉 선정의 특성인 선정의 요소 한 가지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위딱까라는 선정의 요소의 하나인 마음을 바른 대상 쪽으로 향해주는 것이 생기게 되었을 때 마음은 바르지 않은 즉 감각적 쾌락이나 성낼만한 대상으로 쪽으로 향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바른 대상으로 마음을 향해주고 대상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바르게 힘을 실어주는 위리야도 생겨나게 된다면 대상에 마음이 가서 붙게 됩니다. 이것을 사띠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대상에 마음이 가서 붙어서 확고하게 주시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마음은 아무 곳에도 가지 않게 됩니다. 이것을 사마디집중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위리야노력이 생기게 되면 불선업의 법의 길을 막은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상 위에 마음을 보내주는 힘을 실음으로써 불선업의 길을 막은 것과 같게 되고 불선업의 법들은 들어올 수 없게 됩니다. 반대로 선업의 길을 열어주는 것과 같아서 선업의 법의 흐름. 사띠가 이끄는 선업의 법의 흐름들이 물의 흐름처럼 들어오게 됩니다. 이렇게 사띠가 생겨나게 되고 그 뒤를 집중됨이라는 사마디가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대상에 집중되어서 마음이 어디로도 가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아로바’, ‘아도사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음으로 시작되는 선업의 법들, 선업의 요소들이 줄지어서 물의 흐름처럼 콸콸 쏟아져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흐름이 청정해지고 깨끗해지고 아름다워 지는 것입니다.

 

 

제대로 확고하게 주시된 대상위에 즉 구부리고자 하는 단계 단계의 마음이든 구부림이라는 단계 단계의 물질이든 어떠한 대상이든 간에 제대로 확고하게 주시된 대상위에 마음이 딱 맞아서 떨어지게 되면 조금 전 이야기한 아로바라는 탐욕이 없는 마음의 요소가 생기게 됩니다. 이 탐욕이 없는 마음의 요소라는 것은 대상에 달라붙지 않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로바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 주시된 대상위에 달라붙고 집착함이 없게 됩니다. 또한 달라붙고 집착함이 없는 법으로써 수행자의 지혜에 떠오르게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집착하고 달라붙음이 없는 법. 집착하고 달라붙지 않음이 아로바의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확고하게 제대로 주시된 대상위에 집착되고 달라붙는 것이 없다 했습니다. 그러나 주시된 대상 말고 아직 주시하지 못한 대상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사실 주시되어서 알게 되는 대상은 일부분일 뿐이고 남아있는 아직 주시되어지지 않은 대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대상 위에도 집착함이 없는, ‘로바가 없는, ‘아로바라는 집착하고 달라붙음이 없는 특성이 생기는 것이 분명합니다. 즉 아직 주시되지 않는 남아있는 대상들. 자기 자신이라는 물질과 정신 현상들 중에 아직 주시되지 않은 남은 대상들 위에도 집착하지 않고 달라붙지 않는 것이 저절로 생겨나게 됩니다.

 

 

이러한 때에 아도사라는 성냄이 없는 마음의 요소도 생겨납니다. 이것은 확고하게 제대로 주시된 대상 위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도사라는 법의 특성은 거칠지 않은 특성. 반대되지 않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반대하게 될 때 거칠음은 따라오게 됩니다. 이러한 반대가 없음으로써 거칠음은 사라지게 되고 성냄이라는 거칠음이 사라짐으로써 반대의 요소인 아도사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제 입니까?

구부리고자 하는 정신 혹은 구부림이라는 물질 중 어느 한 가지 위에 확고하게 마음이 모여 떨어졌을 때입니다. 이렇게 됐을 때 대상 위에 반대되어서 거칠게 되어 성내는 것들이 없어짐으로써 마음이 거침의 반대로 부드럽고 섬세해지고 또한 뜨거움이 없이 서서히 평화롭고 서늘하게 고요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로바’, ‘도사라는 불선업적인 요소가 생겨나지 않고 깨끗한 마음이 생겨나는 일이 많아지게 되면 수행 초기 혹은 원래와는 달라진 모습이 생겨납니다. 균형지어 지고 치우침이 없는 특성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마음의 요소를 따뜨라 마짜따따'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마음과 마음의 요소가 균형지어 질 수 있도록 조절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절해주는 요소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넘치거나 부족함이 없이 대상을 적절히 주시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전에는 때로 바램이 너무 넘쳐서 대상을 넘어가면서 대상에서 미끄러지는 일이 생기거나 노력이 부족해서 대상에 닿지 못하고 대상을 주시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균형지어 져서 치우침이 없이 대상을 적절하게 주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대상위에 주시하는 마음이 모여서 떨어지게 되는 것이 반복해서 생겨나게 되었을 때 이렇게 주시하는 마음이 균형 잡히고 치우침이 없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가 되었을 때 은혜를 알게 되고 이러한 은혜에 대해서 칭송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 위에 부처님의 은혜를 알게 되고 부처님의 공덕을 칭송하게 됩니다. 또한 법을 설하고 법을 가르쳐주는 법의 길을 이끌어주는 이의 은혜를 알게 되고 이것에 대해서 칭송하게 되며 특히 이렇게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사람들과 도움을 주는 사람들 위에도 그 은혜를 알게 되고 그것을 칭송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사람들이나 자기와 가까운 이들에게도 이러한 법을 얻게 하고자 하고 법의 맛을 누리게 하고자 하는 진정한 자애가 생겨나게 됩니다. 자기가 경험한 법. 자기가 누린 법의 맛을 똑같이 다른 사람에게 누리게 하고자 하는 진정한 자애가 생겨나게 됩니다. 또한 어긋난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긋난 길을 감으로써 고통 받을 것을 연민 여겨 이러한 고통이 생기지 않게 하고자 하는 까루나연민심도 생겨나게 생기게 됩니다. 이때가 되었을 때야 멧따 까루나라는 자애와 연민의 마음을 타인들 위에 아주 자연히 둘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멧따까루나자애와 연민심으로 어떤 사람을 격려하고 어떤 사람에게 권장해서 이렇게 격려와 권장을 받은 사람이 실제로 수행할 수 있고 또한 이 사람이 수행할 때 주의를 기울여서 공손하게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 또한 이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였을 때 만족하게 되고 기뻐하게 되고 믿음과 지혜가 생겨나게 되었을 때, 이 사람을 격려하고 이 사람에게 권유했던 사람도 무디따라는 자비희사중 세 번째 의 법이 생겨나게 됩니다. 즉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 다른 사람의 기쁨을 함께 기뻐해주는 마음의 요소입니다.

 

 

마찬가지로 명상 스승의 경우에도 명상스승의 가르침대로 명상 스승의 지시대로 수행자가 바르게 열심히 주의 깊게 열심히 수행하여 바른 법들을 보게 되어서 바르게 보고하고, 이것들의 이익을 얻어서 수행자가 기쁘고 만족스러워지며 믿음이나 지혜를 얻게 될 수 있을 때 매우 기뻐하게 됩니다. 그래서 명상 스승은 이러한 때에 정말 미소를 감출 수 없을 만큼 매우 기뻐하고 함께 그 사람을 축하해 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주변에서 돕는 이들이라든가 격려하고 권유했던 사람들도 아 우리의 권유나 격려로 이러한 상황에 도달했구나.’하고 미소 지으며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 다른 사람의 행복에 기뻐할 수 있는 무디따라는 법이 생겨나고 발전되게 되며 이것이 생겨나고 발전됨으로 해서 질투나 인색함이라는 반대의 법들은 생길 수 없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는 내일 연결해 설명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한 시간도 조금 넘었으니 여기서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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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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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금강 | 작성시간 18.12.22 고맙습니다 ㅡ()ㅡ
  • 작성자혜 수 | 작성시간 18.12.23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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