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를 지키는 경
11/18(금) - 16:30 법문
큰 스승의 가르침』, pp. 176-190 참조.
http://cafe.daum.net/satisamadhi/8fFZ/15
위빠사나 지혜 중의 3단계 지혜인 현상을 바르게 아는 지혜(무상·고·무아를 아는 지혜)는 천천히 파괴되는 것을 아는 것이며, 4단계 지혜인 생멸의 지혜(발생과 소멸을 거듭 관찰하는 지혜)는 빠른 속도로 파괴되는 것을 아는 것이다.
4단계 지혜의 초기에는 빛이나, 고요함이나 시원함 등이 느껴지는데, 이에 집착하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 스승이 필요하다. 온몸이 편안하니까 수행자가 좋아한다. 하늘을 나는 것 같기도 한 경우도 있는데, 이때 사띠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위빠사나 수행의 10가지 번뇌이다. 모든 수행자가 이 10가지 모두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고 1~2가지가 일어나면 4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알아야 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오직 사띠하기만 해야 한다. 4단계의 지혜가 성숙된 단계로 접어들면, 그 다음에는 수행자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게 되므로, 스승 없이 혼자 수행해도 된다.
그러나 다섯 번째 단계인 소멸의 지혜(방가 냐나)에 들어서면, 나쁜 소리도 들리고, 과거의 나쁜 경험도 생각이 나서 기분이 저조해지고 우울해질 수가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육근에서 나쁜 맛이나 나쁜 소리를 느끼더라도 오직 사띠하기만 한다면 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4단계인 생멸의 지혜에서는 통증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9단계인 해탈을 원하는 지혜나 10단계인 다시 살펴보는 지혜에서는 다시 고통이 생길 수 있다. 개미가 기어 다닌다든지, 개미가 무는 것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가는 듯한 느낌 등이 생기는 수가 있다. 해탈을 원하는 지혜에서는 통증이 제법 오래 지속되지만, 다시 살펴보는 지혜에서는 빨리 사라진다.
통증에는 일반 통증과 법으로 인한 통증 두 가지가 있다. 일반 통증은 수행과 무관하니 사띠만이 아니라 약도 먹어야 하지만, 해탈을 원하는 지혜에서의 통증은 수행 관련 통증이니 약을 필요 없고 사띠하기만 하면 된다. 이 해탈을 원하는 지혜의 단계에서는 집으로 도망쳐 버리려고도 하는데, 이때 사띠로 극복해야 한다.
이런 단계 등을 지나서 관찰 대상과 마음이 모두 평정한 상태에 도달한다. 대상이 많이 생기고 마음도 빠르게 많이 생기지만 모두 소멸된다. 자꾸 관찰하다 보면 대상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사라져서 앎만 관찰하게 되는데, 나중에는 앎마저 사라진다. 어떤 사람은 몸이 점점 작아지면서 사라지고, 마음도 점점 약해져서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게 모두 사라지면, 육체와 정신이 적정한 곳에 이른 것이다.
계가 청정해 진 사람이 오취온을 계속 사띠하면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잠자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물질과 정신이 사라진 것인가 확고한 결정을 가지고 확인해 봐야 한다. 이것이 과거 스승들의 방법이다.
경전에 나오지는 않지만, “도(道)를 알고 싶으면 과(果)에게 물어 보라.”는 말이 있다. 도는 한 순간이며, 과는 바로 그 다음 순간이다. 도는 한 찰나이므로 알 수 없다. 30분 혹은 45분 과 선정에 들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시도해 봐야 한다. 처음에는 안 된다. 숙달되면 원하는 대로 된다.
1시간 전에, 45분간 육체와 정신이 적정한 곳에 들겠다고 결심하고 그렇게 해 봐야 한다.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는, 잠 잘 때, 기억 상실증에 걸렸을 때, 죽었을 때이지만, 이럴 때에는 자세를 굳건하게 유지하지 못한다. 깊은 삼매에 들었을 경우와 과 선정에 들었을 경우에는 돌과 같이 꼼짝 않고 앉아 있게 된다.
열반에 들었을 때에 수행자의 섬세한 지각의 상태는 있다고 경전에 쓰여 있다.
열반에 들어가는 것은 5가지로 테스트해 봐야 한다.
1. 앉자마자 들어가는지
2. 자주자주 들어가는지
3. 열반에 들어간 지 몇 분 만에 일어나겠다.
4. 이번 좌선시간에 들어가겠다.
5. 이번 좌선시간에는 안 들어가겠다.
이런 것들이 확실하다면 확실한 것이다.
이상이 짧게 설법한 것이다.
이것이 잘 되면 수다원의 상태와 같은 것인지, 즉 유신견이 없고, 의심이 없고, 계금취견이 없는지 비교해 봐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수다원이 확실한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오계를 굳건히 지키는 사람이다.
사다함은 탐진치가 희박하다. 수다원이나 사다함은 부인과 동침도 하고 오욕락을 즐겨도 무방하다.
아나함은 오욕락에 대한 탐욕이 전혀 없고, 성냄도 전혀 없다. 성냄에는 거친 성냄(때리고 고함지르는 등)과 미세한 성냄(우울하고 기분 나빠하고 슬퍼함 등)이 있다. 결혼 생활을 못하고, 팔계를 지키며, 오후 불식을 한다. 아나함은 아픈 것을 잘 견디는 자, 욕계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자이며, 죽으면 정거천(범천계)에 태어난다.
아라한도 위와 같이 5가지로 체크해 봐서 그 다음 아라한의 상태, 즉 모든 번뇌가 남김없이 제거되었는지 체크한다. 아라한은 선·불선이 없다. 아라한은 응공(應供: 공경을 받아 마땅한 분)이라는 소문만 듣고도 여러분은 보시하러 간다. 논이나 밭에 좋은 종자를 뿌리면 반드시 결실을 맺는 것과 같이 아라한에게 보시하면 결실이 있다. 최상의 행복을 얻게 해 주기 때문이다.
아라한은 오온을 사띠하여 과(果) 선정에 들어가서 행복감을 느끼며 산다. 그러면 세속의 나쁜 일에 부딪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