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길을 알고 보는 청정[行道智見淸淨]
제8일 11/19(토) - 04:30 법문
노란색, 푸른 색 등의 빛이 나타난다. 방 안에 전깃불을 켠 듯 환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것도 빛을 본 것이다. 이때 사띠하지 못하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고, 사띠하면 바른 길로 가는 것이다.
솜털이 닿는 듯, 감전된 듯도 하고, 파도를 타는 듯도 하며, 공중에 붕 뜬 것 같기도 하고, 아주 고요하고 평화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때 사띠하지 못하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고, 사띠하면 바른 길로 가는 것이다.
편안하고 통증이 없고 망상도 하지 않는다. 이때 사띠하지 못하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고, 사띠하면 바른 길로 가는 것이다.
보시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 남을 도와주려고 하기도 하고, 신행을 많이 하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때 사띠하지 못하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고, 사띠하면 바른 길로 가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지에게 법문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때 ‘지금은 내가 수행할 때이다. 일단 그런 생각을 접어두고 수행을 우선 잘 한 다음에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자’라고 한다면 바른 길로 가는 것이다.
정진도 잘 되고 사띠도 잘 되어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 수행자는 어린 시절 자신을 몹시 괴롭힌 사람 생각이 나면 그를 죽이고 싶었는데, 이 단계의 지혜가 생겨서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지자, 그때의 분노를 회상해도 그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고 한다. 행복감을 느낄 때 사띠하지 못하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고, 사띠하면 바른 길로 가는 것이다.
사띠가 아주 좋아져서 좋고 나쁜 것을 모두 있는 그대로 사띠하는 평정한 마음이 생겨, 내 법이 최고라는 생각(니깐띠, 미세한 집착)이 생긴다. 이때 단지 사띠하기만 해야 한다.
생멸의 지혜의 단계에서 사띠하여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숙달되면 “바른 길을 알고 보는 청정[行道智見淸淨]”이다.
질의응답
질문: 이번 집중수행에 들어오기 전에는 좌선 시작할 때 ‘이번 좌선 중에 반드시 삼매에 들겠다.’라고 굳게 결심하고 시작하기도 했는데, 이제부터는 ‘이번 좌선 중에 반드시 앎을 놓치지 않겠다.’라고 굳게 결심하고 시작해야 하는지 여쭈워 보고 싶습니다.
대답: 앎이 아니라 사띠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찰나 삼매가 생긴다.
질문: 사띠해서 알아야 한다고 할 때, 앎이란 삼빠잔냐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여기서의 앎이란, 우리가 예를 들어서 볼펜을 볼 때 볼펜이라고 아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위빠사나 지혜, 도과의 지혜, 아삼모하 삼빠잔냐(무지가 없는 앎)까지 광범위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대답: 그렇다. (삼빠잔냐의 ‘삼’은 ‘훌륭한’, ‘빠’는 ‘분석적’, ‘잔냐’는 ‘지혜로운 앎’이라는 뜻)
질문: 사야도께서 멀리까지 오셔서 법문은 물론 장시간 인터뷰 해 주심에 감사드리고, 여러 가지 쓸데없는 질문을 많이 해도 사야도께 일일이 통역해 주신 강종미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대답: 잘못된 질문 없었다. 묻고 싶은 것 있으면 물어라.
질문: 불성은 바로 참마음입니까?
대답: 마음은 항상 생멸할 뿐 굳건하게 변하지 않고 머무는 마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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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만을 주는 법
16:30 법문
짧은 기간이지만 법의 종자를 얻었기에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바히야 이야기
『부처님의 제자들』 (오원탁 옮김, 경서원, 2008) 143-161쪽 혹은
http://cafe.daum.net/satisamadhi/AVAh/46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