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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불교

[한국마하시선원]위빳사나라는 집과 의지처

작성자그림자|작성시간21.02.16|조회수84 목록 댓글 2

위빳사나라는 집과 의지처

2018년 12월 5일 헤마와따 경 19강 中

 

-법문: Ven. 한국마하시 사야도(우 소다나 사야도)

-통역: 우 담마간다 스님

-녹취, 그림: 담마시리 님

 

부처님의 눈buddhacakkhu 중 두 번째는 습성잠재지혜āsayānusayañāṇa입니다. 습성잠재지혜란 중생들이 원래 어떠한 것을 좋아하는지 등의 습성과 이 사람은 어떠한 번뇌가 잠재되어 있는지 잠재번뇌를 잘 알고 보는 지혜입니다.

 

먼저 습성āsaya이란 마음의 기질, 성향이라고 할 수 있고, 사견과 지혜 두 종류가 있습니다.

 

윤전하는 것을 즐기는 이들의 마음은 사견 편에 자꾸 서려고 합니다. ‘사견 편에 선다’는 말은 상견sasata에도 머무는 경우가 많고, 아니면 단견ucceda에도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견은 ‘어떤 죽지 않는 영혼이 있어서 몸을 빠져나가 다른 곳에 들어간다’라는 견해이고, 단견은 ‘죽으면 끝이야’라는 견해입니다.

 

기본적으로 상견에 마음이 머무는, 상견 성향인 사람은 상견만 좋아하지 단견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생들은 죽은 다음에도 영혼이 있어서 그대로 존재해서 절대로 무너지거나 사라지는 일이 없어’라는 견해만 좋아합니다.

 

반면에 단견에 마음이 머무는, 단견 성향인 사람은 단견만 좋아하지 상견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중생들이 죽고 나면 끝이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완전히 사라져 버려’라는 단견만 좋아합니다.

 

그래서 상견 성향인 사람이 어떤 이유로 단견을 잠시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상견으로만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단견 성향인 사람도 어떤 이유로 상견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나중에는 다시 단견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유하자면 개들이 낮에는 이곳저곳 함부로 다니더라도 저녁이 되면 자기가 머물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이 사람은 상견 성향을 가진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단견 성향을 가진 사람이구나’라고 습성잠재지혜로 잘 보시고 각각에 적당한 법을 설하십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직접 법문을 듣는 사람들은 자기의 그러한 점을 지적해서 설법해 주시기 때문에 도와 과라는 특별한 법을 빠르게 얻게 됩니다.

 

레디 사야도께서 어느 한 디빠니에서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상견을 가진 사람들은 죽어도 영혼이 있어서 계속 좋은 곳에 태어나고, 이렇게 다시 태어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도와 과, 열반을 증득하려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법문을 들어도 수행을 잘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서 윤회가 긴 것 같다. 반면에 단견을 가진 사람들은 그래도 어쨌든 ‘고통이 있기 때문에 이 고통을 빨리 끝나고 싶다. 죽으면 끝이다’라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단지 원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수행을 해야 다음에 태어남이 없다’라고 알면 바른 방법으로 수행에서 윤회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다.”

 

상견 성향인 사람들은 계속 태어나서 행복을 누리고 싶어하기 때문에 보시도 많이 하고, 계도 잘 지켰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다음 생에 천상이나 인간 세상 등 좋은 세상에 태어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거듭 거듭 태어나길 바라는 성향이면 윤회가 좀 깁니다.

 

단견 성향인 사람들은 어쨌든 빨리 이 삶이란 것이 끝나길 바랍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냥 죽는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보시를 하고 계를 지켜서 이런 것으로 좋은 곳에 태어나 행복을 누리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저 빨리 끝내고만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그냥 바라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열심히 위빳사나 수행을 해서 아라한이 되면 다음 생에 안 태어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렇습니까?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열심히 수행하겠습니다”라고 빨리 빨리 수행해서 빨리 빨리 향상되어서 빨리 빨리 윤회에서 벗어납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스님, 너무 괴롭습니다. 저도 다음 생에 다시는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하지만 말로만 그런 것인지 실제로 수행하는지는 따져 봐야 합니다. 수행은 안 하면서 말로만 “스님, 전 아라한이 되어야 됩니다”라고 하지 않도록 말과 그 행위가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윤전이 사라진 열반을 원하는 이의 마음에도 위빳사나 지혜에 머무는 마음도 있고 성스러운 도의 지혜에 머무는 마음도 있습니다.

 

위빳사나를 닦아 본 적 있는 이들 중 아직 성스러운 도에 도달하지 않은 이들은 보고 듣고 닿고 알게 된 대상들에 대해서 ‘항상하다, 행복하다, 자아다’라고 집착하는 것이 좀 있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을 때 등에는 무상한 것으로, 괴로움인 것으로, 무아인 것으로 알고 보면서 다시 무상·고·무아 쪽으로 머뭅니다.

 

앞서 습성에는 사견과 지혜, 두 종류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혜와 관련되어 위빳사나 수행을 잘 해서 위빳사나 지혜가 많이 생겨나 습성이 되어 있는 경우에는 평상시에는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게 그냥 보통으로 지내는 것 같지만 관찰하고 새기기 위해서 다시 주의를 기울이면 물질과 정신, 그것들의 생멸, 무상·고·무아를 다시 잘 알고 보게 됩니다. 이것은 위빳사나라는 집에 다시 돌아가서 머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위빳사나 수행을 자주 많이 하면 그것이 성향이 되어서 위빳사나라고 하는 포근한 집, 의지처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좋은 집, 좋은 건물에 마련된 좋은 침대, 편안한 잠자리에서 지낸다 하더라도 위빳사나 수행을 하지 않았다면 집도 없이 그냥 맨발로 다니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일주일 정도 수행해서 습성까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수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위빳사나라고 하는 습성이 자리잡는다면 ‘나는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위빳사나라는 집이 있는 사람이야. 값을 헤아릴 수 없는 위빳사나라는 집, 위빳사나라는 의지처가 있는 부자야’라고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https://cafe.naver.com/koreamahasi/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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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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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금강 | 작성시간 21.02.16 사두사두사두
  • 작성자와라까미 | 작성시간 21.02.16 수행만이 답이네요 생유의
    종식. 늙고 병들고 태어남의
    소멸 니르바나.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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