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쭐라웨달라숫따 9강 관련] 취착과 취착무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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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착과 취착무더기
비구 일창 담마간다 옮김, 불방일, 『담마짝까 법문(초전법륜경 해설)』, pp.265~271
취착무더기가 있어 괴롭다
새로운 생에 태어나 겪는 괴로움, 즉 늙음, 죽음, 걱정, 비탄 등 두려워할 만한 여러 고통은 바로 이 취착무더기들이 있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취착무더기들이 있는 동안은 태어남, 늙음, 죽음 등 두려워할 만한 괴로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그 취착무더기들도 매우 두려워할 만한 괴로움입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물질이 있어서 물질을 의지하여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는 정신이 있어서 정신을 의지하여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취착무더기라고 하는 물질·정신법들은 매우 두려워할 만한 괴로움일 뿐입니다.
몸과 마음에 생겨나는 참기 힘든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이라는 괴로운 느낌들은 고통 괴로움dukkhadukkha이라는 진짜 괴로움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만한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느낌이라는 취착 무더기는 진짜 괴로움인 괴로움의 진리dukkhasaccā입니다.
몸과 마음에 생겨나는 몸의 행복함과 마음의 행복함이라는 행복한 느낌sukhavedanā은 그것이 생겨나는 동안이나 있는 동안은 몸도 마음도 편안해서 좋지만, 그것들이 없을 때는 편안하지 못해 괴롭게 하는 변화 괴로움vipariṇāmadukkha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느낌이라는 취착무더기도 성자들의 시각으로는 아름다운 형색을 보이면서 미치게 하는 야차녀처럼 매우 두려워할 만한 진짜 괴로움인 괴로움의 진리입니다. 그 행복함은 항상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유지되도록, 계속 있도록 끊임없이 애쓰고 형성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형성시켜 주어야 하기 때문에도 두려워할 만한 진짜 괴로움인 괴로움의 진리입니다.
나머지 평온한 느낌upekkhāvedanā과 인식, 형성, 의식, 물질이라는 취착무더기들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생멸하고 있어 항상하지 않기 때문에도 성자들의 시각으로는 두려워할 만한 것입니다. 마치 쓰러져가는 건물 안에 있으면 매우 두려운 것처럼, 언제든 상관없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그 항상하지 않은 취착무더기들을 어떤 실체가 있는 것처럼 여기며 지내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또한 항상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그대로 머물도록 애쓰고 끊임없이 형성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형성시켜 주어야 하는 형성 괴로움saṅkhāradukkha이기 때문에도 두려워할 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자들의 시각으로는 행복함과 괴로움의 느낌을 제외한227) 나머지 취착무더기들도 두려워할 만한 진짜 괴로움인 괴로움의 진리입니다.
이렇게 다섯 취착무더기 모두가 성자들의 시각으로는 매우 두려워할 만한 진짜 괴로움들일 뿐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괴로움의 진리에 해당되는 법체를 마무리하셨습니다.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228) (S.iii.368)
【대역】
Saṅkhittena간단히 말해서 pañcupādānakkhandhā다섯 취착무더기가; 취착의 대상인 무더기가; ‘나’라거나 ‘나의 것’이라거나 ‘항상하다’라거나 ‘행복하다’라거나 ‘자아’라고 집착할 수 있는 물질·정신 무더기가 dukkhā괴로움이다; 두려워할 만한 괴로움이다.
취착과 취착무더기
이제 취착upādāna과 취착무더기upādānakkhandhā를 구별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취착upādāna이란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 취착에는 ① 감각욕망취착kāmupādāna, ② 사견취착diṭṭhupādāna, ③ 행실의례취착sīlabbatupādāna, ④ 자아교리취착attavādupādāna의 네 가지가 있습니다.
원하고 좋아하고 즐겨서 집착하는 것을 감각욕망취착kāmupādāna이라고 합니다. 갈애로 집착하는 것입니다.
‘자아’라거나 ‘나’라고 집착하는 것이 자아교리취착attavādupādāna입니다. 자아사견attadiṭṭhi이나 존재더미사견sakkāyadiṭṭhi과 동일합니다.
네 가지 진리를 알게 하는 실천도 아니고, 팔정도를 생겨나게 하는 실천도 아닌 어떠한 실천만으로 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항상 행복할 수 있다고 믿고 집착하는 것을 행실의례취착sīlabbatupādāna이라고 합니다. 잘못된 실천을 바른 실천이라고 믿고 집착하는 사견의 한 종류입니다.
‘업과 업의 결과는 없다. 다음 생은 없다.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없다’라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이 사견취착diṭṭhupādāna입니다. 자아사견과 행실·의례취착사견을 제외한 나머지 사견 모두가 이 사견취착에 해당합니다.
그 네 가지 취착 중에서 감각욕망취착은 좋아하고 즐기는 갈애입니다. 나머지 세 가지 취착은 잘못된 견해인 사견입니다. 그래서 이 내용을 게송으로 “사견갈애 집착이 취착두가지”라고229) 표현했습니다. 같이 독송합시다.
사견갈애 집착이 취착두가지
잘못 생각해서 집착하는 사견취착이 하나, 좋아하고 즐기고 애착해서 집착하는 갈애취착이 하나, 이렇게 두 종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 두 종류의 취착으로 집착할 수 있는 물질 무더기, 정신 무더기들을 취착무더기upādānakkhandhā라고 합니다. 그것도 게송으로 “나나의것 집착해 취착무더기”라고 표현했습니다. 같이 독송합시다.
나나의것 집착해 취착무더기
‘나’라고 집착하는 것은 자아사견집착입니다. 자아사견집착이 생겨나면 나머지 사견집착 두 가지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좋아하고 즐기고 애착해서 집착하면 자기의 것이 아닌데도 자기의 것처럼 거머쥐고서 집착합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갈애가 생겨나는 것을 ‘etaṁ mama 이것은 나의 것이다’라고 좋아하여 거머쥐는 모습으로 보여 놓았습니다. 이 게송에서도 그 성전의 방법에 따라 ‘나의 것’으로 즐겨서 거머쥐어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놓은 것입니다.
그렇게 자아라거나 나라고 잘못 생각해서든, 나의 것으로 즐겨서 붙잡아서든, 집착할 수 있는 물질·정신 무더기 법들을 취착무더기upādānakkhandhā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갈애와 사견으로 집착할 수 없는 정신법 무더기는 그냥 무더기khandha라고만 말해야 합니다. 취착무더기upādānakkhandhā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무더기에만 해당되는 것은 네 가지 도와 네 가지 과에 포함된 느낌, 인식, 형성, 의식이라는 법들입니다. 그 출세간의 느낌, 인식, 형성, 의식들은 그냥 느낌 무더기, 인식 무더기, 형성 무더기, 의식 무더기라고만 말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 취착으로 집착할 수 있는 취착무더기란 무엇인가 하면, 앞에서 거듭 말했던 세간의 물질, 느낌, 인식, 형성, 의식이라는 물질·정신 무더기법들입니다. 그것을 게송으로 “다섯취착 무더기 색수상행식”라고 표현했습니다. 같이 독송합시다.
다섯취착 무더기 색수상행식
이 다섯 가지는 앞에서 거듭 설명했기 때문에 분명할 것입니다. 그 세간의 물질·정신, 다섯 취착무더기라는 것은 선정을 얻지 못한 이들의 경우라면 볼 때마다, 들을 때마다, 냄새 맡을 때마다, 먹어서 알 때마다, 닿아서 알 때마다, 생각하여 알 때마다 여섯 문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물질법과 욕계 마음, 마음부수들입니다. 선정을 얻은 이들의 경우라면 마음의 문에 드러나는 선정jhāna이라는 색계·무색계 법들도 포함됩니다.
그 다섯 취착무더기는 위빳사나로 관찰할 수 있는 괴로움의 진리법들입니다. 「담마짝까숫따」의 뒷부분에 부처님께서 ‘pariññeyya’, 즉 위빳사나 지혜와 도의 지혜로 분명하게 구분해서 알아야 할 법들로 설하셨습니다. 제3장의 바른 견해 도 구성요소에 대한 해설에서230) ‘dukkhe ñāṇaṁ 괴로움의 진리에 대해 아는 지혜’를 바른 견해도 구성요소라고 말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이 다섯 취착무더기라고 하는 괴로움의 진리를 관찰하여 아는 지혜를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볼 때마다, 들을 때마다, 냄새 맡을 때마다, 먹어서 알 때마다, 닿아서 알 때마다, 생각하여 알 때마다 여섯 문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그 모든 《눈과 형색, 귀와 소리 등의》 물질 취착무더기, 《보아서 앎, 들어서 앎 등의》 정신 취착무더기들을 관찰하고 새겨 생겨남과 사라짐, 무상·고·무아의 성품들을 사실대로 알아 ‘다섯 취착무더기, 물질·정신법들이야말로 진짜 괴로움, 괴로움의 진리dukkhasaccā구나’라고 스스로의 지혜로 알아야 한다는 점도 확실하게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새김확립 방법에 따라 드러나는 모든 것을 관찰하고 새겨 방금 말한 대로 사실대로 알고 있는 이들은 매우 기뻐할 만합니다. “‘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간단히 말해서 다섯 취착무더기가 괴로움이다)’라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로 나는 알게 됐구나”라고 숙고하고서 매우 기뻐할 만합니다. 그렇게 기뻐하고서 지혜가 더욱 더 구족되고 향상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제 괴로움의 진리 12가지 법체 게송을 같이 한 번 더 독송합시다.
생노사와 슬픔과 비탄고통과
마음근심 극심한 절망괴로움
원증회고 애별리 괴로움진리
구부득고 괴로움 줄여말하면
집착하는 오취온 괴로움진리
간략하게 다시 설명하자면, ① ‘생生’, 새로운 생에 태어나는 것도 괴로움입니다. ② ‘노老’, 늙음도 괴로움입니다. ③ ‘사死’, 죽음도 괴로움입니다. ④ ‘슬픔’도 괴로움입니다. ⑤ ‘비탄’도 괴로움입니다. ⑥ 몸으로 참기 힘든 괴로운 느낌인 ‘고통’도 괴로움입니다. ⑦ ‘마음근심’, 마음의 괴로움인 근심도 괴로움입니다. ⑧ ‘극심한 절망괴로움’, 마음으로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심하게 절망하는 것도 괴로움입니다. 이것이 첫 두 게송의 의미입니다.
이어서 ⑨ ‘원증회고怨憎會苦’, 싫어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형성, 원하지 않는 대상과 만나야 하는 것도 괴로움입니다. ⑩ ‘애별리고愛別離苦’, 좋아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형성, 원하는 대상과 살아서든 죽어서든 헤어져야 하는 것도 괴로움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게송의 의미입니다.
네 번째 게송에서 ⑪ ‘구부득고求不得苦’, 팔정도를 실천하지 않고 닦지 않고서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모든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원하고 있으면 그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얻을 수 없는 것을 원하는 것은 원하는 것이 성취되지 않기 때문에 괴로움일 뿐입니다. 그래서 괴로움입니다. 세간적으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바라는 것도 괴로움입니다.
‘구부득고’까지 열한 가지를 요약해서 나타낸 것을 마지막 게송으로 ⑫ ‘집착하는 오취온 괴로움진리’, 즉 ‘나’라거나 ‘나의 것’으로 집착할 수 있는 다섯 취착무더기가 괴로움의 진리라는 뜻입니다. 괴로움의 진리에 대한 설명이 끝났습니다.
227) 괴로운 느낌은 고통 괴로움이기 때문에 괴로움의 진리이고, 행복한 느낌은 변하고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괴로움의 진리다.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 법들은 계속 형성시켜 주어야 하기 때문에 괴로움의 진리다.
228) 저본에 대역만 있어 빠알리어 원문을 역자가 첨가했다.
229) 잘못 생각하거나 즐겨서 집착하는 것이 두 가지 취착이다.
230) 본서 pp.201~202 참조.
[출처] [쭐라웨달라숫따 9강 관련] 취착과 취착무더기 (한국마하시선원) | 작성자 한국마하시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