쭐라웨달라숫따 12강-존재더미사견-일부 메모
우 또다나 사야도 법문
일창 스님 통역
이것은 강의 내용 일부의 메모를 편집한 것으로 스님들의 검증을 받지 않은 것이며, 주석과 첨부는 메모자가 다른 책에서 인용한 것도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보내거나 인터넷에 게시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강의 내용 전체는 한국마하시선원 카페 https://cafe.naver.com/koreamahasi/1927 참조.
교재 : 『쭐라웨달라숫따 법문』 (마하시 사야도 원법문, 한국마하시 사야도 우 소다나 재법문, 비구 일창 담마간다 편역, 도서출판 불방일, 2020년 10월 23일 출간
존재더미사견의 생김 – 형성 취착무더기, 의식 취착무더기의 생김 … 생략
존재더미사견의 사라짐
교재 10-11쪽.
질문: 담마딘나 스님, 어떻게 존재더미사견이 다시 생기지 않고 사라집니까?
대답: 위사카 장자여, 이 부처님 교법에서 앎과 봄을 갖춘 성제자(聖弟子)는 성자들을 보고, 성자법에 능숙하고 성자법에 의해 잘 다스려져서, 참사람들을 보고 참사람법에 능숙하고 참사람법에 의해 잘 다스려져서, 물질을 자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아가 물질을 소유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아 안에 물질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느낌을 … 인식을 … 형성을 … 의식을 자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아가 의식을 소유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아 안에 의식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사카 장자여, 이와 같이 존재더미사견이 생기지 않습니다.
설명1:
앎과 봄을 갖춘 성제자: 수다원도의 지혜에 의해서 열반을 직접 경험해서 알고[知] 본[見] 수다원 이상의 성자를 말합니다. 수다원은 물질 정신을 자아라고 생각해서 집착하는 사견이 사라집니다. 잘못된 앎인 마음의 전도도 없습니다. 무아인 것을 자아라고 잘못 인식하는 인식의 전도도 없다고 주석서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첨부 “12가지 전도의 제거” 참조)
이렇게 자아라는 집착이 사라지는 것은 위빳사나 수행자와도 관련됩니다. 위빳사나 수행을 하고 있는 수행자가 지혜가 향상되어서, 명상의 지혜, 생멸의 지혜, 특히 소멸(무너짐)의 지혜에 도달하면, 관찰할 때마다 관찰할 때마다 계속해서 무상하고 괴로움이라고 알 뿐만 아니라, 무아라고도 스스로의 지혜로 알게 됩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알게 되는 대상마다 자아라고 생각해서 집착함이 없어지고 또 없어집니다. 이것도 스스로의 지혜를 통해서 무아라고 알기 때문에 자아라는 집착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차이점은 관찰하지 않은 대상에 대해서는 아직 자아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상은 직접 본 경우에 대한 것이고, 더 나아가서 “물질 정신법들은 한 순간도 끊임없이 생멸하고 있어서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무아라는 성품법일 뿐”이라는 가르침을 듣고 잘 이해한 사람은 배움을 잘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상 괴로움 무아라고 잘 이해하시고 계시죠? 그렇다면 배움을 잘 갖춘 성제자에 넓은 의미로 포함됩니다. 법문을 안 들은 분들은 배움을 갖춘 성제자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직접 법을 경험하진 못했다고 하더라도 청법을 통해서 들음을 갖춘 사람도 훌륭한 범부(깔리야아나 뿌툿자나, 선한 범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눈 먼 범부에서는 벗어난 것입니다. 법문을 들어서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라는 것을 잘 이해한 훌륭한 범부들에게는 아주 강한 자아 집착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위빳사나 수행에 의해서 사라진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요약합니다.
① 성자는 더 이상 물질과 정신을 자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② 아직 성자가 되지 않았어도 관찰하고 있는 위빳사나 수행자는 사띠하고 관찰해서 무상하고 괴로움이라고 알게 된 물질 정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아라고 집착하지 않습니다.
③ 이렇게 알고 기억한 다음에 자아 집착이 사라지도록 볼 때마다, 들을 때마다, 알 때마다 드러나는 모든 정신 물질 무더기를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라고 스스로의 지혜로 알 수 있도록, 끊임없이 관찰해야 하겠다고 명심해야 합니다.
설명2:
‘성자들을 보고 자아라고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은 자기 스스로 열반을 알고 본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을 듣고 ‘나도 법을 증득하면 좋겠구나. 나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기를 바랍니다. ‘성자들을 보고’라는 말은 스스로 도와 과를 얻어서 스스로 증득한 지혜라는 봄[見]을 통해서 배움을 구족했다는 말입니다.
‘성자법에 능숙하고’는 성자가 되게 하는 법인 깨달음 동반법(37조도품)에 능숙해서 즉 깨달음 동반법을 잘 알고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미 성자가 되어서 깨달음 동반법에 완전히 능숙해졌기 때문에, 혹은 위빳사나 지혜를 통해서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라고 알고 있다는 뜻이므로, ‘성자들을 보고’라는 말과 성품으로는 똑같습니다.
‘성자법에 의해 잘 다스려져서’라는 것은 성스러운 법을 통해서 잘 다스려졌기 때문에 자아라고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 다는 뜻입니다. 성자법을 증득해야 잘 다스려진 사람이고, 증득하지 못하면 잘 다스려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것도 ‘성자들을 보고’라는 말과 성품으로는 똑같습니다.
주석서에 설명된 ‘잘 다스려진’과 관련된 ‘단속율(상와라 위나야), 제거율(빠하아나 상와라)’에 대해서는 제목만 말하고 다음에 계속 설명하겠습니다.
단속율: 계 단속, 사띠 단속, 지혜 단속, 인욕 단속, 정진 단속.
제거율: 부분 제거, 억압 제거, 근절 제거, 안식(paṭipassaddhi) 제거, 떠나감 제거.
첨부
12가지 전도의 제거 | |||||||||
도표 10.4 | 2021-03-26 | ||||||||
12가지 전도 | 수다원도의 지혜 | 아나함도의 지혜 | 아라한도의 지혜 | ||||||
마음 | 인식 | 견해 | 마음 | 인식 | 견해 | 마음 | 인식 | 견해 | |
무상을 영원으로 아는 마음의 전도 | 1 | ||||||||
무상을 영원으로 아는 인식의 전도 | 1 | ||||||||
무상을 영원으로 아는 견해의 전도 | 1 | ||||||||
무아를 자아로 아는 마음의 전도 | 1 | ||||||||
무아를 자아로 아는 인식의 전도 | 1 | ||||||||
무아를 자아로 아는 견해의 전도 | 1 | ||||||||
고를 행복으로 아는 마음의 전도 | 1 | ||||||||
고를 행복으로 아는 인식의 전도 | 1 | ||||||||
고를 행복으로 아는 견해의 전도 | 1 | ||||||||
부정한 것을 깨끗한 것으로 아는 마음의 전도 | 1 | ||||||||
부정한 것을 깨끗한 것으로 아는 인식의 전도 | 1 | ||||||||
부정한 것을 깨끗한 것으로 아는 견해의 전도 | 1 | ||||||||
계 | 2 | 2 | 4 | 1 | 1 | 0 | 1 | 1 | 0 |
8 | 2 | 2 | |||||||
출처 : "청정도론" XXII 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