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으로 가는 길 안내자
https://cafe.naver.com/koreamahasi/1939
거룩 인도
(비구 일창 담마간다 편역, 불방일, 『보배경 강설』 pp.190~192 참조)
‘Varāharo’는 “varaṁ āharatīti varāharo”라고 분석되며 “varaṁ거룩함을; 팔정도라는 훌륭한 실천 차례인 옛길을 āharati가져 오신다. iti그래서 varāharo거룩함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한다”라는 뜻입니다. 팔정도라는 훌륭한 실천인 옛길을 가져와서 그곳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부처님은 ‘거룩함으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비구들이여, 이전의 여러 정등각자께서 따라가셨던 옛길, 옛 도로란 무엇인가? 바로 여덟 구성요소가 있는 성스러운 도이니라”라는(S12:65) 가르침에 따라 과거 모든 부처님들께서 따라가셨던 하나의 옛길purānamagga, 그 성스러운 팔정도가 바로 ‘varāharo’에서 ‘거룩vara, 거룩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전의 여러 부처님들께서 가져다주신 옛길을 그대로 실천해서 모든 고통을 종식시킨 사람과 천신, 범천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가끔씩은 그 옛길이 부처님께서 출현하지 않아 잊히기도 하지만 지금은 교법이 아직 남아 있어 그 옛길이 분명합니다. 그 길을 따라 가는 이, 따라서 실천하는 이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것이고 따라 가지 않는 이는 윤회의 괴로움에 그대로 전전할 것입니다.
열반으로 가는 길 안내자
이 내용은 『맛지마 니까야』 「가나까목갈라나숫따Gaṇakamoggallānasutta(가나까목갈라나 경)」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M107)
한때 가나까목갈라나 바라문이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질문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대의 제자들은 그대의 훈계를 듣고 모두 열반을 성취합니까? 일부는 성취하지 못합니까?”
“바라문이여, 성취하는 이도 있고, 성취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고따마 존자여, 열반도 있고, 열반으로 가는 길도 있고, 그 길로 인도하는 그대 고따마 존자도 있는데, 왜 일부는 열반을 성취하지 못합니까?”
“바라문이여, 라자가하로 가는 길을 그대는 잘 아는가?”
“잘 압니다. 고따마 존자여.”
“바라문이여, 라자가하로 가려는 두 사람이 그대에게 와서 가는 길을 물었다고 하자. 그때 그대는 ‘이 길이 라자가하로 가는 길이오. 이 길대로 가다 어느 정도 거리에서 어느 마을을 만날 것이오. 거기서 다시 가면 어느 성읍에 이를 것이오. 그 성읍을 지나면 매우 아름다운 라자가하에 도착할 것이오’라고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고 하자. 길을 물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가르쳐 준 길대로 가지 않고 되돌아갔고, 한 사람은 가르쳐 준 길대로 가서 라자가하에 도착했다고 하자. 라자가하 성도 있고, 가는 길도 있고, 가르쳐 주는 그대 바라문도 있는데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가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고따마 존자여, 도착하지 않은 사람은 가르쳐 준 대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저는 길을 안내하는 자일 뿐입니다.”
“바라문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열반도 있고, 열반으로 가는 길도 있고, 그 길로 인도하는 나 여래도 있지만, 가르치는 길대로 따라가지 않아 열반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나 여래도 어찌 할 수 없다. 사실 나 여래는 열반으로 가는 ‘길 안내자maggakkhāyī’일 뿐이다.”
여기서 열반에 도달하게 하는 큰길은 팔정도입니다. 팔정도라는 큰길은 가르침이 머무는 한 깨끗하게 똑바로 펼쳐져 있습니다. 하지만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대로 가지 않으면 열반에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열반에 이르지 못하는 한, 여러 괴로움이 없어질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고통이 사라진 열반의 황금성도에109) 부처님께서 인도하신 팔정도라는 큰길을 따라 도달하시길 기원합니다.
109) 열반은 어떠한 장소가 아니지만 열반을 대상으로 해서 직접 경험하는 것을 ‘열반이라는 황금성도에 도달하는 것, 열반이라는 황금궁전에 도달하는 것’으로 비유해서 표현했다.
[출처] 열반으로 가는 길 안내자 (한국마하시선원) | 작성자 한국마하시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