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머묾-17-210404-자애경5-일부 메모-일요정기법회
우 또다나 사야도 법문/일창 스님 통역
2021년 4월 4일/한국마하시선원
이것은 강의 내용의 일부만을 메모한 것이며, 스님들의 검증을 받지 않은 것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보내거나 인터넷에 게시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https://cafe.naver.com/koreamahasi/1959
https://cafe.naver.com/koreamahasi/1955
멧따 숫따(자애경)
(2) 만족할 줄 알고 공양하기 쉬우며, 분주하지 않고 생활이 간소하며,
감관은 고요하고 슬기로우며, 불손해도 안 되고 탐착해도 안 된다네.
Santussako ca assa만족해야 한다. subharo ca assa시봉하기 쉬워야 한다. appakicco ca assa분주하지 않아야 한다; 일이 적어야 한다. sallahukavutti ca assa생활이 간소해야 한다. santindriyo ca assa감관이 고요해야 한다. nipako ca assa슬기로워야 한다; 숙고하는 지혜가 성숙하고 무르익어야 한다. appagabbho ca assa불손하지 말아야 한다; 거칠거나 거세지 말아야 한다. kulesu가문들에; 신도 가정들에게 ananugiddho ca assa탐착하지 말아야 한다.
(13) 불손하지 말아야 한다.
거칠지 말아야 하고 거세지 말아야 합니다. 즉 공손해야 하고 예의범절을 지켜야 합니다. 공손하지 않은 것에는 ➀몸으로 공손하지 않은 것 ➁말로 ➂마음으로 공손하지 않은 것 모두 세 가지가 있습니다.
➀몸으로 불손함 : 공경할만한 분 앞에 쪼그려 앉는 것, 무릎을 세우고 손으로 감싸 앉는 것, 장로와 부딪치면서 앉거나 높은 곳에 앉거나 장로 앞을 가로질러 가는 것, 어린 비구와 몸을 부딪치면서 노는 것 등.
➁말로 불손함 : (주로 비구를 대상으로 하는 법문) 장로 스님이 계시는데 자신이 먼저 말하는 것(설법이나 말할 때 동석 중인 자신보다 법랍이 높은 스님에게 알린 뒤에 말해야 함), 적당하지 않은 말을 함, 신도 집에 갔을 때 오늘 무엇을 보시하실 것이냐고 묻는 것 등.
➂마음으로 불손함 : 당연히 공경해야 할 만한 이에게 마음속으로 공손하지 않거나, 계와 삼매와 통찰지가 높고 거룩한 분을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거나, 경전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이 경전에 해박한 분을 자신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수행을 한 적이 없는 사람이 수행을 실제로 한 적이 있는 사람을 ‘그도 나와 다를 게 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마음의 거침, 마음으로 공손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몸과 말과 마음으로 불손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4) 탐착하지 말아야 한다
비구는 신도들에게 탐착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하셨는데, 이것은 신도들에게 애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비구가 탁발할 때 자신을 ‘공양 받을 만한(dakkhiṇeyya) 이’의 자격으로만 다가가야 합니다. 신도들도 비구들을 자신들이 하는 보시의 이익을 크게 할 수 있는(dakkhiṇeyya) 분으로서만 존중하면서 보시해야 합니다. 승가 예경에 나오는 것처럼 ‘닥키네요-내생을 위해 베푸는 공양물을 보시 받기에 합당한 승가이며’라는 공덕을 생각하면서 보시해야 합니다. 비구들과 가족이나 친지처럼 가깝게 교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비구에게도 거머쥠(gāha) 즉 집착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동락동고(sahanandī sahasokī)이 됩니다. 신도들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비구들도 같이 섞여서 즐거워하고, 신도들이 곤경에 처해서 괴로워하고 슬퍼할 때 비구도 같이 섞여서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신도들이 내가 선업이라는 씨앗을 심는 곳 – 복 밭이라고 생각하고 비구들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씨를 심을 때에는 좋은 땅에 심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보시 받는 비구들은 계 삼매 통찰지라는 덕목을 갖추어 좋은 복 밭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신도들도 계 삼매 통찰지를 갖춘 좋은 복 밭을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구가 신도 자신과 같이 기뻐해 주고 같이 슬퍼해 준다면 백배 천배의 이익은 얻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도들과 섞이지 않고 신도들에 애착하지 않고 청정한 공양 받을 만한 덕목을 갖춘 비구들에게 보시한다면, 그분들이 갖춘 계 삼매 통찰지라는 공양 받을 만한 덕목을 대상으로 하는 보시는, 몇 십만 몇 백만 몇 천만 혹은 그 이상으로 많은 가치가 있고 결과를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라자가하의 인다까라는 사람이 아누룻다 존자에게 밥 한 숟갈을 보시한 공덕을 도리천 천상에 위력이 매우 큰 천신으로 태어났습니다.(첨부 참조) 이것을 근거로 살펴본다면 계 삼매 통찰지라는 덕목을 대상으로 해서 보시하는 것이 아주 거룩하다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 친구 친지처럼 세간과 관련해서 도움을 주는 사람 정도로 기대하고 보시하고 가까이 한다면, 이것은 신도들의 측면에서도 탐착이 생기는 것입니다. 출가자와 신도가 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교제하면 양쪽 모두 탐착하는 ‘탐착-탐착’이 생깁니다. 예를 들면 신도들이 재산과 지위가 유지되기를 바라면서 보시하고, 스님들도 “재산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지위가 그대로 유지되기를!”이라고 축원해 주는 경우가 ‘탐착-탐착’입니다.
다른 경우는, 비구의 측면에서는 공양 받을 만한 이로서 신도들을 대하지만, 신도들의 측면에서 올바르지 않으면 ‘무착(mutta) - 탐착’ 관계가 생깁니다. 또 신도들은 공양 받을 만한 이로 대하지만 비구의 측면에서 바르지 않으면 ‘탐착-무착’, 양쪽 모두 올바르면 ‘무착-무착’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쪽 모두 집착에서 벗어난 관계가 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첨부
인다까 천신과 앙꾸라 천신 일화
https://cafe.naver.com/koreamahasi/1960
일창스님, 불방일, 『부처님을 만나다』, pp.309~310
부처님께서는 많은 대중들 앞에서 신통을 보이신 후 오른쪽 발로 유간다라Yugandhara 산을 딛고 왼쪽 발로 수미산 정상을 딛고 도리천으로 올라가셨습니다.527) 그것은 과거 모든 부처님들과 마찬가지로 아비담마Abhidhamma528)를 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부처님의 모습이 갑자기 보이지 않자 모여 있던 대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대중들은 부처님께서 안거 기간 동안 도리천에서 아비담마를 설한 후 해제 날 돌아오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자리에서 부처님을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도리천에 올라가시 전에 미리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는 법을 설하게 하고 재가신자인 쭐라 아나타삔디까에게는 음식을 제공하라고 일러두셨기 때문에 대중들은 그 자리에서 마하목갈라나 존자의 법문을 들으며 부처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도리천에 오르신 부처님께서 제석천왕의 홍옥보좌에 앉자 일만 세계의 천신과 범천들이 몰려왔습니다. 어머니였던 마야데와뿟따 천신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제일 먼저 부처님 오른편에 앉았고, 그 다음에 앙꾸라Aṅkura 천신과 인다까Indaka 천신이 부처님 왼쪽으로 가까이 와서 앉았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범천들까지 오자 앙꾸라 천신은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점점 뒤로 밀려나다가 결국 12요자나 밖까지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공덕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물러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밀려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인다까 천신은 뒤로 밀리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연유가 있었습니다. 앙꾸라 천신은 전생에 아주 큰 부자였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초청해서 보시한 공덕으로 천신으로 태어났습니다. 반면 인다까 천신은 천안제일인 아누룻다 존자에게 음식 한 주걱을 보시한 공덕으로 천신으로 태어났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보시를 계속한 앙꾸라 천신은 뒤로 물러나야 했는데 비해 딱 한번 아주 작은 양의 음식을 보시한 인다까 천신이 부처님 가까이에서 법문을 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보시를 받는 사람에 따라 보시의 공덕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황무지에 많은 벼를 심는 것보다 적은 벼라도 옥토에 심는 것이 더 수확량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529)
.................
527) 지상에서 도리천까지의 거리는 680만 요자나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보폭을 늘여 천상에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먼 거리를 가깝게 하는 신통을 사용한 것이다. 《법구경 이야기》 제2권, p.583; 《청정도론》 제2권, p.336 참조.
528) 삼장三藏에는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이 있는데 그 중 논장을 아비담마라고 한다. ‘아비abhi’는 ‘아주 뛰어난’ 혹은 ‘아주 수승한’의 뜻이고, ‘담마dhamma’는 ‘법法’이라는 뜻으로 아비담마는 아주 뛰어나고 수승하고 심오한 가르침을 말한다. 경장에서는 듣는 사람의 근기에 맞게 비유나 방편도 쓰고 보시와 지계와 천상 세계에 대해서도 다루지만, 아비담마에서는 아무 방편도 쓰지 않고 궁극적인 법에 대해서만 다룬다.
529) 보시의 대상에 따라 과보가 다른 것은 이 책의 p.283을 참조하라.
[출처] [2021년 4월 정기법회 관련] 인다까Indaka 천신과 앙꾸라Aṅkura 천신 일화 (한국마하시선원) | 작성자 한국마하시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