쭐라웨달라숫따 19강-상속/대상 잠재번뇌-일부 메모
우 또다나 사야도 법문
일창 스님 통역
이것은 강의 내용 일부의 메모를 편집한 것으로 스님들의 검증을 받지 않은 것이며, 주석과 첨부는 메모자가 다른 책에서 인용한 것도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보내거나 인터넷에 게시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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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쭐라웨달라숫따(교리문답의 짧은 경)” 법문(2021-4-12)참조.
교재 : 『쭐라웨달라숫따(M44) 법문』 (마하시 사야도 원법문, 한국마하시 사야도 우 소다나 재법문, 비구 일창 담마간다 편역, 도서출판 불방일, 2020년 10월 23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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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잠재번뇌와 상속 잠재번뇌
잠재번뇌에는 대상 잠재번뇌와 상속 잠재번뇌가 있습니다.
대상 잠재번뇌란 여섯 문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물질정신 대상을 관찰하지 못하고 사띠하지 못해서, 새김과 사라짐,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라고 사실대로 바르게 알지 못하면, 예를 들면 감각욕망애착 잠재번뇌나 존재 애착 잠재번뇌가, 나중에 조건이 형성되면 대상을 돌이켜서 숙고할 때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조건이 형성되면 언제든지 생길 가능성을 가진 것을 애착 잠재번뇌가 그 대상에 대해서 잠재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렇게 사실대로 알지 못한 대상을 항상한 것으로, 행복한 것으로, 자아인 것이라고 잘못 아는 무명 잠재번뇌도 나중에 생길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잘못 알아둔 대상에 대해서는 적의 잠재번뇌, 자만 잠재번뇌, 사견 잠재번뇌, 의심 잠재번뇌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길 수 있게 된 것을 번뇌가 그 대상에 잠재한다고 표현합니다. 요약하면 사실대로 바르게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서 생길 수 있는 번뇌를 대상 잠재번뇌라고 합니다.
이 대상 잠재번뇌는 위빳사나 관찰을 해서 생기는 위빳사나 지혜를 통해 제거할 수 있습니다. 대상 잠재번뇌를 제거하기 위해서 위빳사나 관찰을 한다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생기는 것은 현전 번뇌라고 하고, 볼 때 관찰하지 않으면 번뇌가 대상에 잠재해 있다가 나중에 돌이켜서 숙고할 때 번뇌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 볼 때 번뇌가 잠재되지 않도록 위빳사나 관찰을 하는 것입니다.
상속 잠재번뇌란 성스러운 도를 통해서 아직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생길 기회가 있는 애착, 성냄(적의), 사견, 자만, 의심, 무명 모두 여섯 가지 번뇌를 말합니다. 그런데 애착에는 감각욕망애착과 존재 애착 두 가지가 있기 때문에 일곱 가지 잠재번뇌라고 합니다.
범부는 일곱 가지 잠재번뇌 모두가, 대상을 관찰하든 안 하든, 조건이 형성되면 모두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범부의 상속에는 일곱 가지 잠재번뇌가 모두 잠재하고 있습니다.
수다원이 되면 수다원도의 지혜가 사견과 의심을 완전히 제거했기 때문에 다섯 가지 잠재번뇌만 남아 있습니다. 수다원이 되어도 남이 보기에는 그다지 범부와 차이가 나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범부는 하나도 제거하지 못한 사견과 의심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아주 가벼워진 상태, 그래서 땅과 하늘처럼 많은 차이가 납니다.
두 번째 사다함도의 지혜는 거친 형태의 애착과 성냄만 제거하기 때문에, 사다함의 상속에는 미세한 감각욕망애착과 성냄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개수는 다섯 가지 잠재번뇌가 잠재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아나함의 상속에서는 미세하게 남아있던 감각욕망애착과 성냄(적의)를 아나함도로 제거했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을 존재애착, 자만, 무명 세 가지 잠재번뇌만 존재합니다. 아라한의 상속에서는 모든 잠재번뇌가 다 제거됩니다. 아라한도의 지혜로 남아 있는 세 가지만이 아니라 다른 일반적인 번뇌들도 다 제거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대로 범부나 유학(수련자)에게 조건만 형성되면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감각욕망애착 등의 잠재번뇌를 상속 잠재번뇌라고 합니다. 이를 게송으로 만들었습니다.
성스러운 도를 통해 아직 제거 못했기에
범부유학 상속에서 생겨날 수 있는 것인
애착 등을 상속 잠재번뇌라고 말한다네.
유학(수련자)은 아라한과 성자를 제외한 일곱 분의 성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도의 위치에 있는 성자는 그 한 찰나에 번뇌가 생길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수다원도 사다함도 아나함도의 위치에 있는 성자를 제외한 과의 위치에 있는 성자의 상속에만 각각 관련된 상속 잠재번뇌가 생길 기회가 있습니다. 게송에서 “범부유학 상속에서 생겨날 수 있는” 중에서 유학은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인 세 가지 성자의 상속과만 관련이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대상 잠재번뇌란, 상속 잠재번뇌 중에서 관찰하지 않은 대상에 대해서 일어날 수 있는 일곱 가지 혹은 세 가지 번뇌들을 말합니다. 볼 때 들을 때 등에서는 번뇌가 생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때 관찰하지 않아서 무상 괴로움 무아라고 사실대로 바르게 알지 못한다면, 그런 대상에 대해서는 나중에 조건이 형성되면 생길 수 있는 번뇌를 대상 잠재번뇌라고 합니다. 게송은 다음과 같습니다.
볼 때 등에 관찰 못해 사실대로 알지 못해
그 대상들 관련해서 생겨날 수 있는 것인
애착 등을 대상 잠재번뇌라고 말한다네.
대상 잠재번뇌 일화
옛날 스리랑카에 한 젊은 비구가 큰스님께 깔라디가와삐 정사(대문정사)로 가서 경전을 배우고 싶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큰스님은 신통력이 있어서 이 젊은 비구가 위험에 처할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을로 탁발을 가지 않겠다면 허락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젊은 비구가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정사로 가서 경전을 다 배우고 난 다음에 왜 큰스님께서 마을로 탁발 가는 것을 막으셨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제 경전을 다 배웠으니 약속은 지킨 것이니 마을로 탁발을 나갔습니다. 마을에 가니 젊은 여인이 노란 색의 아름다운 옷을 입고 집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녀는 젊은 비구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서 우유 밥을 그에게 부어드렸습니다. 그를 너무나 좋아한 그녀는 집에 들어가서 밥도 안 먹고 누워서 끙끙 알았습니다. 부모가 딸에게 왜 그러냐고 묻자, 그녀는 “그 스님을 너무 좋아해요. 그와 함께 지내지 못한다면 저는 죽어버릴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부모는 외동딸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절에 가서 젊은 비구에게 가서 딸의 소식을 전하고 자기 집으로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비구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저희한테는 재산도 많고 딸도 외동딸입니다. 스님을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매우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자기 집으로 가자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젊은 비구가 그때는 애착과 집착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부모는 “그 스님은 떠나 버렸으니 다른 사람을 원하면 구해주겠다. 그러니 일어나서 밥 좀 먹어라.” 그러나 그 젊은 여인은 그 스님만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고 있다가 칠 일정도 지난 다음에 가엽게도 죽어버렸다고 합니다. 위빳사나의 입장에서 보면 그 젊은 비구를 처음 봤을 때 “본다, 본다.”라고 관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딸을 화장하고 난 다음에 딸이 입고 있었던 노란 색 고급 천을 근처 절에 보시했습니다. 스님들은 그 천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 중의 한 중참 스님이 그 천을 가지고 젊은 비구에게 가서 “이걸로 물거르개를 만들어 주게.”라고 부탁했습니다. 젊은 비구가 “어디서 이 좋은 천을 얻었습니까?”라고 묻자 중참 스님은 자초지종을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젊은 비구가 처음에 젊은 여인을 만났을 때는 애착이 안 생겨났지만, 지금 중참 스님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에는 “아,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그 여인과 함께 어울리지 못했다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애착의 불이 심하게 타올라 바로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 이 젊은 스님이 처음 젊은 여인을 볼 때 “본다, 본다.”라고 관찰하지 않았고, 좋은 대상이기 때문에 애착이 잠재해 있었고, 나중에 조건이 갖춰졌을 때 애착의 불이 심하게 타올랐던 것입니다.
마하시 사야도께서 정리해서 다시 설명하십니다. 그 젊은 비구가 처음 그 젊은 여인을 보았을 때는 좋아하는 애착, 사랑하는 애착이 아직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부모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을 때에도 아직 흥미가 없었습니다. 그녀를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때 “본다, 본다, 들린다, 들린다.”라고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상 괴로움 무아라고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녀의 모습이나 노란 색 옷에 대해 집착했을 겁니다. 즉 대상 잠재번뇌가 잠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집착한 것을 대상으로 해서, 마지막에 조건이 형성되었을 때 애착 근심이 심하게 생겨서 죽게 될 정도로 고통을 겪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상을 분명하게 거머쥐어서 생기는, 그 때 당시에는 안 생겼지만, 나중에 조건이 형성되면 언제든지 생길 수 있는 번뇌, 대상 잠재번뇌입니다.
대상 잠재번뇌가 쌓이면 나중에 현전 번뇌가 되어 죽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열심히 관찰할만합니다.
이 젊은 비구는 큰스님 말씀을 경청하여 잘 지키다가 마지막에 딱 한 번 마을에 간 것 때문에 한 여인에 집착하게 되어 두 사람 모두 죽는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