쭐라웨달라숫따 24강-열반과 대응하는 법
우 소다나 사야도 법문
일창 스님 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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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쭐라웨달라숫따(교리문답의 짧은 경)” 마지막 날 법문(2021-4-28)참조.
교재 : 『쭐라웨달라숫따(M44) 법문』 (마하시 사야도 원법문, 한국마하시 사야도 우 소다나 재법문, 비구 일창 담마간다 편역, 도서출판 불방일, 2020년 10월 23일 출간
열반과 대응하는 법
경전: 대응법 담마딘나 스님, 행복한 느낌과 대응하는 법은 무엇입니까? 위사카 장자여, 행복한 느낌과 대응하는 법은 괴로운 느낌입니다. 담마딘나 스님, 괴로운 느낌과 대응하는 법은 무엇입니까? 위사카 장자여, 괴로운 느낌과 대응하는 법은 괴롭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은 느낌입니다. 담마딘나 스님, 괴롭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은 느낌과 대응하는 법은 무엇입니까? 위사카 장자여, 괴롭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은 느낌과 대응하는 법은 무명입니다. 담마딘나 스님, 무명과 대응하는 법은 무엇입니까? 위사카 장자여, 무명과 대응하는 법은 명지(明旨)입니다. 담마딘나 스님, 명지와 대응하는 법은 무엇입니까? 위사카 장자여, 명지와 대응하는 법은 해탈입니다. 담마딘나 스님, 해탈(성스러운 果)과 대응하는 법은 무엇입니까? 위사카 장자여, 해탈과 대응하는 법은 열반입니다. 담마딘나 스님, 열반과 대응하는 법은 또한 무엇입니까? 위사카 장자여, 그대는 적당한 것을 넘어선 질문을 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질문해도 끝이 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위사카 장자여, 부처님의 가르침인 청정범행(팔정도)은 열반으로 끝납니다. 열반이 종결지이고 열반이 궁극입니다. 그러므로 열반에 대응하는 법을 물어서는 안 됩니다. 이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세존께 가서 이 질문을 다시 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세존께서 대답하시면 그 것을 기억하십시오. 부처님께 가서 여쭙다 그때 위사카 장자는 담마딘나 스님의 대답에 ‘사두’라고 기뻐하며 축원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담마딘나 스님에게 예경 올리고 존경을 표하고 나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예경 올리고 적당한 곳에 앉은 다음에, 위사카 장자는 담마딘나 스님과의 모든 문답을 세존께 말씀 드렸다. 부처님의 칭송 구절 위사카여, 담마딘나 비구니는 현자이고, 큰 통찰지를 가진 이구나. 위사카여, 그대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면 나도 담마딘나 비구니가 대답한 대로 대답할 것이다. 담마딘나 비구니가 한 그대로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대답한 그대로 기억하라. 이렇게 대답하셨다. (M44 끝) 담마딘나 존자가 제일 칭호를 얻는 모습(A.i.26) 이 담마딘나는 나 여래의 여자제자인 법을 설하는 비구니 중에서 최상이다. |
설명:
대응법(paṭibhāga)에 대해서 위사카 장자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담마딘나 스님, 행복한 느낌과 대응하는 법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담마딘나 스님은 “위사카 장자여, 행복한 느낌과 대응하는 법은 괴로운 느낌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원래 “paṭibhāga(대응법)”는 “같은 부분, 닮은 꼴”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형색이 같은 것뿐만 아니라, 같은 종류, 같은 범주, 같은 명칭을 붙일 수 있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대조되는 것, 대응하는 것”으로 번역할 수도 있겠기에 “대응법”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행복한 느낌이 좋아할 만한 것에 비해서, 괴로운 느낌은 좋아하지 않을 만한 것이기 때문에, 이 경우는 대조된다는 의미에서 대응법이라고 한 것입니다. 산이 위로 높이 솟아오른 봉우리와 아래로 움푹 파인 골짜기가 서로 대조되는 것으로 대응된다고 할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고 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괴로운 느낌과 대응하는 법은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서 “괴로운 느낌과 대응하는 법은 괴롭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은 느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어서 “괴롭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은(평온한) 느낌과 대응하는 법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무명(아윗자. 어리석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행복함과 괴로움은 분명해서 알기 쉽습니다. 반대로 평온한 느낌은 분명하지 않아서 알기 어렵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탐욕과 성냄은 분명하고 알기 쉬운 반면에 무명(아윗자. 모하. 어리석음)은 분명하지 않아서 알기 어렵습니다. 모하를 “미혹, 어리둥절함”이라고도 번역하는데, 미혹이나 어리둥절하다고 하면 어떤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아윗자도 무명이라고 번역하는데 이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윗자를 “알지 못함”이라고도 번역하는데 이는 물질 정신법들의 무상함, 괴로움, 무아이고 더러움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나아가서 항상하고 행복하고 자아인 것으로 깨끗한 것으로 잘못 아는 성품입니다. 어리석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빳사나 관찰을 하지 않아서, 볼 때마다 들을 때마다 냄새 맡을 때마다 먹을 때마다 닿을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항상하다, 행복하다”라는 등으로 잘못 아는 사람들에게, 이 무명은 함께 생기고 있습니다. 무명(어리석음)은 알기 어려운 측면과 분명하지 않은 측면에서 평온과 비슷하기 때문에 무명을 평온의 대응법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무명과 대응하는 법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자 “무명과 대응하는 법은 명지(明旨)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볼 때마다 들을 때마다 감각할 때마다 알 때마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물질정신법들을 사실대로 바르게 알지 못하고 반대로 “항상하다, 행복하다, 자아라고 깨끗하다고 잘못 아는 성품이 무명입니다. 그 무명과 대응하는 법이 바로 윗자(명지. 지혜. 통찰지)입니다. 무명과 명지가 대응한다는 것은 어둠과 밝음이 반대되는 것으로 대응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볼 때마다 들을 때마다 관찰하지 못하는 일반사람들은 “항상하다, 행복하다” 등으로 잘못 아는 것과 반대로, 삼매와 지혜의 힘이 좋아진 수행자들은 한 순간도 끊임없이 생멸하고 있는 것을 직접 경험하기 때문에, “아, 항상하지 않은 것이고 괴로움일 뿐이구나. 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무아이며 깨끗하지 않은 것일 뿐이구나.”라고 사실대로 바르게 계속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명지(지혜, 통찰지)입니다.
지금 여기 수행센터에 와서 수행하고 있는 여러분들도 명지가 생겨나도록 계속 관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실대로 바르게 아는 명지가 생길 때마다 계속해서 잘못 아는 무명이 계속해서 사라집니다. 비유하자면 밝음이 나타날 때마다 어둠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면 위빳사나 명지를 통해서 대상 잠재번뇌인 무명이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빳사나 지혜, 명지가 완전히 구족되었을 때 성스러운 도의 지혜라는 명지가 생깁니다. 이 도의 지혜라고 불리는 명지로 열반을 직접 알고 보아서 무명을 뿌리까지 제거합니다. 성스러운 도라는 명지, 이 지혜를 얻기 위해서도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명지는 무명과 반대되는 것, 대비되는 것이기 때문에 담마딘나 스님이 무명과 대응하는 것은 명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위사카 장자는 “명지와 대응하는 법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담마딘나 스님은 “명지와 대응하는 법은 해탈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해탈은 번뇌로부터 벗어남, 성스러운 과입니다. 제일 거룩한 명지는 성스러운 도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해탈은 그 성스러운 도의 결과인 성스러운 결과인 과(果)입니다. 그래서 성스러운 도(道)도 열반을 대상으로 하고, 성스러운 과도 열반을 대상으로 하는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에, 명지와 대응하는 법은 해탈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다시 “해탈과 대응하는 법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해탈과 대응하는 법은 열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해탈(성스러운 과)과 열반은 거룩한 성품으로 같고, 열반이 성스러운 과의 대상이 되는 점은 다르기 때문에, 해탈과 대응하는 법은 열반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성스러운 과와 열반이 같은 것은, 번뇌누출의 대상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성스러운 과도 번뇌를 대상으로 할 수 없고, 열반도 번뇌누출을 대상으로 할 수 없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아라한과를 증득한 아라한의 상속에도 번뇌누출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래서 아라한을 번뇌누출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도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열반도 번뇌누출이 완전히 소멸된 성품입니다. 이렇게 번뇌누출이 없는 것으로도 해탈과 열반은 동일합니다. 또 다른 표현은 성스러운 과도 출세간법이고 열반도 출세간법입니다. 또한 성스러운 과도 선도 아니고 불선도 아닌 무기법(비확정법)이고 열반도 무기법입니다. 무기법으로도 동일합니다. 이것은 주석서의 설명입니다. 마하시 사야도께서 무기법으로 동일하다는 것은 이 두 가지 법을 높이는 설명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무기법 중에는 고귀하다고 할 수 없는 물질법도 포함되어 있고, 저열한 불선법의 결과법도 포함되고,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의 상속에서 생기는 물질과 과보마음도 모두 무기법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성스러운 과와 열반은 서로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성스러운 과는 형성된 법(조건 지어진 법, 유위법)이고 열반은 형성되지 않은 법(조건 지어지지 않은 법, 무위법)입니다. 성스러운 과가 형성된 법이라는 것은 수다원 이상의 성자들이 과 마음을 생기게 하려면 삼매의 힘이 좋아졌을 때, 과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애를 써야 입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점은 성스러운 과는 열반을 대상으로 해서 생기는 것이니 스스로 대상을 취할 수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대상이 있는 법이고, 열반은 대상을 취하지 않고 스스로 대상이 되니, 대상이 없는 법입니다. 또한 성스러운 과는 생멸이 있는 무상한 법이고, 열반은 항상하고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법입니다. 또한 성스러운 과는 정신무더기 네 가지에 포함되지만 열반은 무더기(오온)에서 벗어난 법입니다.
성스러운 과는 성자들의 상속에 생기기 때문에 내부법이고, 열반은 개인의 상속으로부터 벗어난 법이기 때문에 외부법입니다. 성스러운 과는 성자들에게는 내부법이지만 범부에게는 내부법이 아닙니다.
그러자 위사카 장자는 “열반과 대응하는 법은 또한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담마딘나 스님의 대답을 요약하면 “그 질문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질문의 범위를 넘어섰습니다.”라고 하면서 열반과 대응하는 법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가 하면, 계 삼매 통찰지 팔정도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열반에서 끝납니다. 그래서 열반과는 같은 법도 없고 열반이 제일 거룩합니다. 그러므로 열반과 성품이 동일한 법, 대응하는 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야 하는데 물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어서 담마딘나 스님은 “이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세존께 가서 이 질문을 다시 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세존께서 대답하시면 그것을 기억하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 경에서 존재더미에 대해서 질문과 대답을 시작으로, 마지막에 해탈과 대응하는 법은 열반이라고, 적당한 질문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단계단계 차례차례 대답했습니다. 이것을 “웨달라”라고 하는데 “차제문답, 교리문답”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쭐라웨달라숫따”는 “교리문답의 짧은 경(M44)”이라는 뜻이고, “마하웨달라숫따”는 “교리문답의 긴 경(M43)”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 가서 여쭙다
경전 “그때 위사카 장자는 담마딘나 스님의 대답에 ‘사두’라고 기뻐하며 축원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담마딘나 스님에게 예경 올리고 존경을 표하고 나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예경 올리고 적당한 곳에 앉은 다음에, 위사카 장자는 담마딘나 스님과의 모든 문답을 세존께 말씀 드렸다.”
부처님의 칭송 구절
경전: “위사카여, 담마딘나 비구니는 현자이고, 큰 통찰지를 가진 이구나. 위사카여, 그대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면 나도 담마딘나 비구니가 대답한 대로 대답할 것이다. 담마딘나 비구니가 한 그대로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대답한 그대로 기억하라. 이렇게 대답하셨다.(M44 끝)”
담마딘나 존자가 제일 칭호를 얻는 모습(A.i.26)
경전 “이 담마딘나는 나 여래의 여자제자인 법을 설하는 비구니 중에서 최상이다.”
담마딘나 존자의 과거 바라밀
- 10만 대겁 전, 빠두뭇따라 부처님 당시, 항사와띠 시의 하녀로 태어났는데,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상수제자인 수자따 장로에게 보시하고 나서 설법제일의 칭호를 서원
- 92대겁 전 풋사 재정관의 아내.
- 현겁 깟사빠 부처님 당시, 까시 국 끼끼 왕의 일곱 딸 중 여섯 번째인 수담마.
첫째 공주, 사미니, 비구니 승단의 첫째 상수제자인 케마. 법구경 게송 347 참조.
둘째 공주, 사마나굿따, 두 번째 상수제자인 우빨라완나. 법구경 게송 69, 401 참조.
셋째 공주, 빅쿠니, 지계 제일인 빠따짜라. 법구경 게송 113, 288, 289 참조.
넷째 공주, 빅쿠다이까, 빠른 지혜 제일인 꾼달라께시. 법구경 게송 102, 103 참조.
다섯째 공주, 담마, 두타 제일인 끼사고따미. 법구경 게송 114, 287, 395 참조.
여섯째 공주, 수담마, 설법제일인 담마딘나. 법구경 게송 421 참조.
일곱째 공주, 상가다이까, 위사카 부인. 법구경 게송 53, 135, 146, 167, 21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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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마딘나 테리(장로 비구니)의 일대기는 https://cafe.daum.net/satisamadhi/4vdS/1886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