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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수행]열반 4강-열반은 고통의 소멸-일부 메모

작성자그림자|작성시간21.05.30|조회수63 목록 댓글 3

열반 4강-열반은 고통의 소멸-일부 메모

우 소다나 사야도 법문

일창 스님 통역

이것은 강의 내용 일부의 메모를 편집한 것으로 스님들의 검증을 받지 않은 것이며, 주석과 첨부는 메모자가 다른 책에서 인용한 것도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보내거나 인터넷에 게시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강의 내용 전체는 한국마하시선원 카페 https://cafe.naver.com/koreamahasi/2111 참조.

 

교재 : 『열반에 관한 법문』 (마하시 사야도 원법문, 한국마하시 사야도 우 소다나 재법문, 비구 일창 담마간다 편역, 도서출판 불방일, 2021년 4월 5일 출간)

 

열반은 고통의 소멸

 

열반의 특성이 적정(산띠)입니다. 적정은 어떤 것이 완전히 없어진 것입니다. 무엇이 완전히 없어졌는가 하면, 윤회 윤전의 고통이 없어진 것, 적정한 것입니다. 특성이 여기서는 고유 성품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열반의 특성이 적정이라고 하는 것은, 열반은 적정함이라는 고유 성품이 있다는 뜻입니다. 혹은 적정한 성품이 바로 열반이라는 뜻입니다.

 

열반을 연기 즉 번뇌 윤전 업 윤전 과보 윤전과 연관 지어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번뇌 윤전: 무명 갈애 취착이 번뇌윤전 셋

 

번뇌 윤전은 무명 갈애 취착을 말합니다. 무명은 사실대로 모르는 성품 혹은 잘못 아는 성품입니다. 육문에서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는 물질정신법들은 갈애를 제외하면 모두 괴로움의 진리에 해당되는 법들입니다. 하지만 볼 때마다 들을 때마다 감각할 때마다 알 때마다, 이렇게 괴로움의 진리일 뿐인 것들을 중생들은 괴로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라거나 ‘그’라거나 항상 유지된다거나 좋다거나 아름답다는 등으로 좋게만 생각합니다. 이것이 무명입니다.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고 즐깁니다. 이것이 갈애입니다. 좋아하고 갈망하기 때문에 더욱 더 집착합니다. 이것을 취착이라고 합니다. 취착하면 자기가 바라는 대로 성취하도록 행위하고 애쓰고 노력하는데, 이것을 형성과 업존재라고 합니다.

 

이것을 마하시 사야도께서 게송으로 만드셨습니다.

바로 몰라 잘못 아는 무명 조건 행복하다

여기면서 세 가지 업 형성하여 의식 연결

 

번뇌는 무명 갈애 취착 세 가지뿐인가? 기본인 무명 갈애 취착 세 가지만 취하면 이 세 가지와 분리되지 않는 성냄, 자만, 사견 등의 다른 번뇌들도 자동적으로 포함됩니다. 갈애라는 탐욕으로 원하고 집착해서 그것을 얻도록 노력합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서 다른 이를 무너뜨리게 하는 행위도 합니다. 어리석음(무명)은 불선업이 생길 때마다 항상 결합해서 함께 생깁니다. 어리석음은 탐욕과도 함께 생기고, 성냄에도 저절로 포함됩니다. 가끔은 자만으로 스스로를 높게 생각해서 다른 이보다 나아지도록 어떤 행위를 하거나, 사견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성취되도록 어떤 행위를 합니다. 이렇게 행위하는 것이 업 윤전입니다. 이를 게송으로 만들었습니다. 십이연기에서는 형성과 업존재를 업 윤전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번뇌 윤전 의지해서 행위하는 선불선업

십이연기 형성 함께 업존재란 업 윤전 둘

 

성자이지만 아라한이 아닌 유학이나 범부에게는 무명이나 갈애 등의 번뇌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행위를 하면 어떤 것은 불선업, 어떤 것은 선업이 됩니다. 그래서 탐욕 성냄 등과 결합해서 깨끗하지 않은 의도로 행위하면 나쁜 곳으로 가게 하는 불선업이 생깁니다. 반대로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포함되지 않은 깨끗한 의도로 행위하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선업이 생깁니다.

 

그러면 불선업은 사악도에도 떨어지게 하고, 선처에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수명이 짧거나 병이 많거나 가난하게 되는 결과도 생깁니다. 반대로 선업은 인간 세상이나 천상이나 범천에 태어나게 하고 수명이 길거나 건강하거나 재산이 많게 되는 결과를 생기게 합니다. 원한다면 도과와 열반을 얻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싶으면, 짧은 수명이나 병고를 두려워한다면, 살생 도둑질 등의 악행을 삼가야 합니다. 사람의 생 천상의 생에 태어나서 행복을 누리고자 한다면, 나아가서 도과와 열반에 이르고자 한다면, 보시 지계 수행의 선업을 행해야 합니다. 특히 바로 이번 생에서 열반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위빳사나 수행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견해를 가진 스승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보시 지계 수행이라는 선업도 무명 갈애 취착이라는 번뇌 윤전을 의지해서 생기는 업 윤전이다. 이 업 윤전도 의식, 정신물질, 여섯 감각장소, 접촉, 느낌이라는 과보 윤전과 새로운 생을 생기게 한다. 따라서 새로운 생, 괴로움을 생기지 않게 하려면 보시 지계 수행이라는 선업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사견을 가진 스승의 말을 믿고 선업을 행하지 않는다면, 범부에게는 선업이 아니면 불선업이 생기기 때문에 탐욕 성냄 등의 불선업이 생깁니다. 비유하자면 걸어갈 때 왼발이 가지 않으면 오른발이 가고, 오른발이 가지 않으면 왼발이 가는 것처럼, 선업 아니면 불선업이 번갈아 생깁니다. 선업은 일부러 해야만 생깁니다. 반대로 불선업인 탐욕 성냄 망상 등은 저절로 생깁니다. 그래서 선업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선업만 계속 생기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사악도에 떨어질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게 된 근본원인을 살펴보면 잘못된 견해를 설하는 스승 때문입니다.

 

길상(길상은 번영과 행복의 원인임)에 대한 길상경에서 첫 번째로 “어리석은 이를 의지하지 않는 것이 거룩한 길상이다.[遠離惡友 吉祥]”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어리석은 이는 선과 불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를 말합니다.

 

과보 윤전

업 윤전(선업과 불선업) 때문에 과보 윤전이 생깁니다. 그냥 선업을 행하면 새로운 생의 물질정신 무더기가 생기는데, 거기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도과와 열반을 목적으로 보시 지계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보시 지계를 바탕으로 위빳사나 수행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노력해서 아라한이 된 다음에 반열반의 순간에 도달했을 때, 업 윤전이 완전히 사라져서 과보 윤전이라는 새로운 생의 물질정신도 전혀 생기지 않고 없어집니다. 이것이 바른 길입니다. 이렇게 바른 길에 따라서 노력하지 않는다면, 또한 노력했다고 해도 아직 아라한이 되지 못했다면, 그 사이에 선업과 불선업이라는 업 윤전 때문에 과보 윤전이라는 새로운 생의 물질 정신 무더기도 생길 것입니다. 과보 윤전을 게송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불선업 업 윤전에 의지해서 생겨나는

새로운 생 물질정신 무더기가 과보 윤전

 

윤전(굴레)은 한 바퀴 또 한 바퀴 계속 회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회전하는지 살펴봅시다. 범부들에게는 무명 갈애 집착이라는 번뇌들이 있기 때문에 번뇌 윤전이 돌아가면, 그 번뇌들 때문에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행위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업 윤전이 생겨서 회전하는 것입니다. 업 윤전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선업은 (억지로 해야지 생기는 것이므로) 행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불선업은 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업을 행하지 않으면 불선업을 하기 마련입니다. 선업이 있으면 사람의 생, 천상의 생이라는 좋은 과보가 생깁니다. 선업이 없으면 혹은 선업의 힘이 약하면, 불선업이 사악처의 생인 저열한 과보만 가져다줍니다. 다시 또 그 생에서 봄, 들림, 맡음, 먹음, 닿음, 느낌 등의 과보 윤전을 의지해서 또 다시 무명 갈애 집착이라는 번뇌 윤전이 생겨서 회전합니다. 또 이 번뇌 때문에 여러 가지 업, 업 윤전이 생깁니다.

 

선한 친구를 만났을 때에는 선업을 행하고, 저열한 이를 만나서 저열한 법문을 들었을 때는 불선업을 행합니다. 대부분 불선업을 행합니다. 한 생 중에 행한 업을 세어보면 몇 만, 몇 백만. 몇 천만보다 많습니다. 한 생만 해도 업들이 매우 많은데, 죽을 때 다음 생에 과보를 생기게 하는 업은 하나입니다. 그러니 과보를 생기게 하지 않고 나중에 과보를 생기게 하려고 기다리는 불선업들이 아주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지옥에 한 번 태어나면 몇 십 만년 몇 백 만년 아주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또한 아귀나 축생으로 태어나도 겪어야 할 고통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불선 과보를 겪어야 할 사람의 고통의 적은 일부일 뿐입니다.

 

선업에 의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늙어야 하고, 병들어야 하고, 죽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고,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슬픔 비탄 절망들을 다시 겪어야 합니다. 입고 먹고 살기 위해서 재산을 계속 구해야 하는 것 때문에도 괴로움을 겪어야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도 나쁜 스승을 만나서 악행을 하게 되면 다시 또 사악도에 떨어져서 괴로움을 겪어야 합니다. 천상에 태어났어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마음의 괴로움이 심하게 생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번뇌 윤전 때문에 업 윤전이 생기고, 업 윤전 때문에 과보 윤전이 생기고, 과보 윤전 때문에 번뇌 윤전이 생깁니다. 이런 식으로 윤전이 계속 회전하면서 여러 가지 괴로움을 겪습니다. 그 세 가지 윤전에서 벗어나려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중도의 실천, 팔정도의 실천 하나뿐입니다. 팔정도를 요약하면 계 삼매 통찰지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위빳사나 수행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 위빳사나 수행을 하고 있는 대단한 분들입니다.

 

이 위빳사나를 실천하지 못한다면, 혹은 실천하더라도 아직 근기가 완전히 무르익지 않아서 아라한의 도와 과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이전의 업 윤전 그리고 새롭게 행하는 업 윤전 때문에 다시 또 새로운 생의 과보 윤전이 거듭 생겨서 늙음과 죽음 등의 여러 가지 괴로움을 겪어야만 합니다. 아무리 위력이 큰 제석천왕이나 범천일지라도, 이 윤전 괴로움이 생기지 않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윤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세 가지 윤전이 돌고 도는 것을 잘 심사숙고해 본다면, “이 세 가지 윤전은 매우 두려운 것이로구나.”라고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 가지 윤전에서 벗어나야겠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위빳사나 수행을 해야 하는데, 나는 지금 이 위빳사나 방법을 배워서 실천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이런 좋은 시절에 위빳사나 수행을 서둘러서 열심히 해야 합니다.

 

위빳사나는 지금 이 수행센터에 와서 여러분이 실천하고 있는 그대로, 과보 윤전 즉 보고 듣고 부풀고 꺼질 때, 다시 번뇌 윤전이 생기지 않도록 즉시 관찰하는 것입니다. 계속 돌고 있는 세 가지 윤전에서 벗어나기 위한 위빳사나 관찰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세 가지 윤전 게송을 읽고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번뇌 윤전: 무명 갈애 취착이 번뇌윤전 셋

업 윤전 : 번뇌 윤전 의지해서 행위하는 선불선업 / 십이연기 형성 함께 업존재란 업 윤전 둘

과보 윤전: 선불선업 업 윤전에 의지해서 생겨나는 / 새로운 생 물질정신 무더기가 과보 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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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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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혜문 | 작성시간 21.05.30 팔정도 위빠사나 수행를 열심히 해야지요 ....
  • 작성자Red-Lotus | 작성시간 21.05.30 사-두 사-두 사-두! _()_
  • 작성자금강 | 작성시간 21.05.31 사두사두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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