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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불교

[호두마을]열반 5강-열반은 느낌이 없는 것

작성자그림자|작성시간21.06.08|조회수62 목록 댓글 3

열반 5강-열반은 느낌이 없는 것

우 소다나 사야도 법문

일창 스님 통역

이것은 강의 내용 일부의 메모를 편집한 것으로 스님들의 검증을 받지 않은 것이며, 주석과 첨부는 메모자가 다른 책에서 인용한 것도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보내거나 인터넷에 게시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강의 내용 전체는 한국마하시선원 카페 https://cafe.naver.com/koreamahasi/2143 참조.

 

교재 : 『열반에 관한 법문』 (마하시 사야도 원법문, 한국마하시 사야도 우 소다나 재법문, 비구 일창 담마간다 편역, 도서출판 불방일, 2021년 4월 5일 출간)

 

세 가지 윤전이 사라지도록 실천하는 모습

 

https://cafe.naver.com/koreamahasi/2147

 

번뇌 윤전, 업 윤전, 과보 윤전 이 세 가지 윤전이 계속 끊임없이 돌고 도는 모습을 잘 심사숙고해 본다면 매우 두려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윤전 세 가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새김확립 위빳사나 방법을 얻은 지금 이때, 위빳사나 수행을 서둘러,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새김확립 위빳사나 방법이라는 것은 이 수행센터에서 수행자들이 들어서 이해하고 노력하는 대로 과보 윤전에서 다시 번뇌 윤전이 생겨나지 않도록 관찰하는 방법입니다. 지금 볼 때마다 들을 때마다 닿고 알 때마다 여섯 문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들은 의식, 물질‧정신, 여섯 감각장소, 접촉, 느낌이라는 현재 과보 윤전의 결과법들입니다.

 

조금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보아 앎, 들어 앎 등은 눈 의식, 귀 의식 등이라는 여섯 가지 의식입니다. 보아 앎, 들어 앎 등에 포함되어 있는 마음부수 법들이 정신입니다. 보아 앎 등의 의지처, 생겨나는 곳인 눈 감성물질 등과 온 몸은 물질입니다. 눈 감성물질 등은 감각장소입니다. 보아 닿음 등은 접촉입니다. 보아서 좋고 나쁜 것 등은 느낌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지금 보통으로 생겨나고 있는 과보 윤전, 결과법들입니다.

 

그 다섯 가지 결과법들을 관찰하지 못해 사실대로 바르게 알지 못하면 좋고 나쁘게 느껴지는 것을 조건으로 좋아하고 바라는 갈애가 생겨납니다. 좋아하고 원해서 집착하는 취착도 생겨납니다. 여기서 관찰하지 못해 알지 못하는 것은 무명입니다. 이 무명과 갈애, 취착은 번뇌 윤전입니다. 그 번뇌 윤전 때문에 업 윤전이 생겨날 것입니다. 업 윤전이 생겨나면 새로운 생의 과보 윤전도 생겨날 것입니다.

 

이렇게 번뇌 윤전 등이 생겨나지 않도록 봄, 들림 등의 과보 윤전법들이 생겨날 때마다 계속해서 관찰해야 합니다. 관찰해서 물질과 정신, 생겨남과 사라짐, 무상과 괴로움과 무아를 사실대로 알게 되면 알지 못함이라는 무명이 없어집니다. ‘좋은 것이다, 행복한 것이다’라는 등으로 잘못 아는 무명이 없어 좋아하고 바라는 갈애도 더 이상 생겨나지 않습니다. 갈애가 생겨나지 않아 집착하는 취착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취착이 없어 행하고 애쓰는 업이라는 업 윤전도 생겨나지 않습니다. 업이 없어 그 업 때문에 생겨날 새로운 생 과보 윤전도 더 이상 없습니다. 이것은 생겨나고 있는 현재 과보법들을 관찰했기 때문에 그 현재 과보법인 느낌에서 현재 원인법인 갈애 등이 생겨나지 않아 세 가지 윤전이 소멸하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세상이 생겨나는 모습과 사라지는 모습을 설하신 경전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Katamo ca, bhikkhave, lokassa samudayo?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viññāṇaṃ. Tiṇṇaṃ saṅgati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ṇhā; taṇhāpaccayā upādānaṃ;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anti. Ayaṃ kho, bhikkhave, lokassa samudayo. (S.i.301)

 

【대역】

 

Bhikkhave비구들이여, lokassa samudayo세상의 생겨남이란; 세상이 생겨나는 모습은 katamo어떠한가?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눈과 형색들을 조건으로 해서; 눈과 형색들을 의지해서 cakkhuviññāṇaṃ눈 의식이; 보아서 앎이 uppajjati생겨난다. tiṇṇaṃ세 가지의; 눈과 형색과 눈 의식이라는 세 가지의 saṅgati결합이 phasso접촉이다; 대상과 접촉하는 접촉이다; 결합하기 때문에 접촉이 생겨난다. phassapaccayā접촉을 조건으로 vedanā느낌이 생겨난다; 접촉 때문에 느낌이 생겨난다. vedanāpaccayā느낌을 조건으로; 느낌 때문에 taṇhā갈애가; 애착하고 갈망하는 갈애가 생겨난다. taṇhāpaccayā갈애를 조건으로; 애착하고 갈망하는 갈애 때문에 upādānaṃ취착이 생겨난다. upādānapaccayā취착을 조건으로; 취착 때문에 bhavo존재가; 새로운 생에 태어나게 하는 업이 생겨난다. bhavapaccayā존재를 조건으로; 새로운 생에 태어나게 하는 업 때문에 jāti태어남이; 새로운 생에 태어남이 생겨난다. jātipaccayā태어남을 조건으로; 새로운 생에 태어남 때문에 jarāmaraṇaṃ늙음과 죽음,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슬픔과 비탄과 고통과 근심과 절망이 sambhavanti생겨난다. bhikkhave비구들이여, ayaṃ이것이; 이렇게 말한 생겨나는 모습이 lokassa세상의; 세상이라 불리는 괴로움의 samudayo생겨남이다.

 

이것은 보는 것에서 비롯해 세상이 생겨나는 모습, 윤전 괴로움이 생겨나는 모습입니다. 눈 감성물질에 형색이 드러나면 보아 압니다. 형색 대상을 분명하게 접합니다. 접하기 때문에 보아서 좋다거나 좋지 않다는 느낌이 생겨납니다. 이것을 관찰하지 못해 사실대로 바르게 알지 못하면 그 느낌 때문에 애착하고 갈망하는 갈애가 생겨납니다. 갈망하면 집착합니다. 집착하면 원하는 대로 이루도록 준비하고 행위합니다. 업존재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업존재 때문에 새로운 생에 물질과 정신, 과보윤전이 생겨나 늙음, 죽음 등의 괴로움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보는 것에서 비롯해 윤회가 회전하는 모습입니다. 듣는 것, 맡는 것 등에서 윤회가 회전하는 모습도 동일한 방법입니다.

 

​이어서 윤회가 끊어지는 모습, 세상이 소멸하는 모습을 설하겠습니다. 앞부분은 앞의 경의 앞부분과 동일합니다.

 

Katamo ca, bhikkhave, lokassa atthaṅgamo?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viññāṇaṃ. Tiṇṇaṃ saṅgati phasso. Phassapaccayā vedanā; vedanāpaccayā taṇhā.​(S.i.301)

 

【대역】

Bhikkhave비구들이여, lokassa atthaṅgamo세상의 사라짐이란 katamo어떠한가? cakkhuñca paṭicca rūpe ca눈과 형색들을 조건으로 해서; 눈과 형색들을 의지해서 cakkhuviññāṇaṃ눈 의식이; 보아서 앎이 uppajjati생겨난다. tiṇṇaṃ세 가지의; 눈과 형색과 눈 의식이라는 세 가지의 saṅgati결합이 phasso접촉이다; 대상과 접촉하는 접촉이다; 결합하기 때문에 접촉이 생겨난다. phassapaccayā접촉을 조건으로 vedanā느낌이 생겨난다; 접촉 때문에 느낌이 생겨난다. vedanāpaccayā느낌을 조건으로; 느낌 때문에 taṇhā갈애가; 애착하고 갈망하는 갈애가 생겨난다.

 

번뇌가 아직 다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좋고 나쁜 것을 느낄 때 관찰하지 못해 사실대로 바르게 알지 못하고, 그래서 갈애가 생겨나는 모습을 설명한 구절입니다.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라면 보고 나면 느낌까지만 생겨납니다. 그 느낌 때문에 갈애는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볼 때 즉시 관찰할 수 있어 생겨남과 사라짐, 무상과 괴로움과 무아의 바른 성품을 아는 수행자에게도 느낌 때문에 갈애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느낌 정도에서 멈춥니다. 그렇게 멈추는 모습을 이어서 다음과 같이 설하셨습니다.

 

Tassāyeva taṇhāya asesavirāganirodhā upādānanirodho; upādānanirodhā bhavanirodho; bhavanirodhā jātinirodho; jātinirodh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nirujjhanti.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nirodho hoti. Ayaṃ kho, bhikkhave, lokassa atthaṅgamo.​(S.i.301)

 

【대역】

Tassāyeva taṇhāya바로 그 생겨날 수 있는 갈애가 asesavirāganirodhā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면; ‘빛바램’이라고도 불리는 아라한도를 통해 남김없이 소멸하기 때문에 <<이것은 아라한에게 해당된다. 위빳사나 수행자의 경우라면 관찰한 대상과 관련한 갈애가 완전히 생겨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upādānanirodho취착이 소멸한다; 취착의 소멸이 성취된다. upādānanirodhā취착이 소멸하면;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bhavanirodho존재가 소멸한다; 존재의 소멸이 성취된다. bhavanirodhā존재가 소멸하면; 존재의 소멸 때문에 jātinirodho태어남이 소멸한다; 새로운 생에 태어남의 소멸이 성취된다. jātinirodhā태어남이 소멸하면; 태어남의 소멸 때문에 jarāmaraṇaṃ늙음과 죽음,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슬픔과 비탄과 고통과 근심과 절망도 nirujjhanti소멸한다. evaṃ이와 같이 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이러한 모든 괴로움의 무더기의; 이러한 괴로움의 무더기일 뿐인 것의 nirodho hoti소멸이 있다. bhikkhave비구들이여, ayaṃ이것이; 지금 설명한 소멸하는 모습이 lokassa세상의; 세상이라 불리는 괴로움의 atthaṅgamo사라짐이다; 소멸이다.

 

이것은 보는 것에서 비롯해서 느낌까지, 생겨나는 성품법들을 관찰하여 아는 이에게 갈애가 생겨나지 않아 번뇌 윤전과 업 윤전과 과보 윤전이라는 세 가지 윤전 모두가 소멸해 버리는 모습입니다. 관찰하여 아는 모습은 앞서 이미 설명했습니다. 들리는 것 등에 대해서도 세 가지 윤전이 소멸하는 모습은 같은 방법입니다.

 

열반은 느낌이 없는 것

 

사리뿟따 존자가 “도반들이여, 이 열반은 행복입니다.”라고 말하자 랄루다이 비구가 “도반 사리뿟따여, 이 열반에는 느낌이 없는데 어떻게 행복이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리뿟따 존자가 말했습니다. “열반에는 느낌이 없습니다. 바로 느낌이 없는 것이야말로 행복입니다.”

 

행복(수카)에는 느끼는(웨다이따) 행복과 느껴지지 않는(아웨다이따) 행복, 두 가지 행복이 있습니다. 느끼는 행복은 여섯 가지 대상과 만나서 느끼는 행복입니다. 욕계 중생들은 여섯 감각욕망대상들을 느껴서 행복한 것이 제일 좋은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열반에는 느낌이 없으니 대부분의 욕계 중생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랄루다이 비구가 느낌이 없는데 어떻게 행복이 있겠냐고 물은 데 대해서 사리뿟따 존자는 느낌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고 바로 대답한 것입니다. 그렇게 여섯 가지 감각욕망대상들이 느껴지지 않는 행복, 적정의 행복이라고 합니다.

 

느끼는 행복 :

여섯 가지 좋은 대상 경험 느껴 행복한 것

웨다이따 수카라는 느끼는~ 행복이네.

 

느껴지지 않는 행복 :

여섯 가지 느끼잖고 적정하게 행복한 것

느껴지지 않는 행복 다아웨다이 따수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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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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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금강 | 작성시간 21.06.09 사두사두사두
  • 작성자Red-Lotus | 작성시간 21.06.09 사-두 사-두 사-두 _()_
  • 작성자혜 수 | 작성시간 21.06.11 고맙습니다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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