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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하시선원]설법 - 공덕행 토대

작성자그림자|작성시간21.06.29|조회수44 목록 댓글 1

[공덕행 토대] 설법

 

https://cafe.naver.com/koreamahasi/2209

 

설법dhammadesanā

 

비구 일창 담마간다, 불방일, 『가르침을 배우다』 pp.425~427

 

수행 선업과 관련된 또 다른 덕목으로 설법이 있습니다. 설법은 공덕행토대 중 아홉 번째에 해당합니다. 수행을 하려면 법문을 들어야 하고, 법문을 들으려면 법문을 해 주는 이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설법을 통해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전하는 것도 수행이라고 하는 선업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법dhammadesanā이란 빠알리 삼장이나 주석서 등 바른 교학의 법들dhamma을 설하고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desanā을 말합니다.

 

설법과 관련하여 먼저 법을 설하는 법사가 갖추어야 할 요건 다섯 가지를 〈우다이 경〉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차제방편 연민으로 필수품에 미련없이

해치잖고 설법하는 법사요건 다섯가지

 

먼저 ‘차제’라는 표현은 차례대로 법을 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때 ‘차례대로’라는 말은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듯이 보시에 관한 설법 다음에 계에 관한 설법, 다음에 천상에 관한 설법, 그리고 나서야 도에 관한 설법으로 감각욕망의 위험에 관한 설법, 감각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의 공덕에 관한 설법, 마지막에는 네 가지 진리에 관련된 설법이라는 차제설법에 따라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옷감을 염색하기 위해서는 먼저 더러움이나 얼룩 등을 제거한 뒤 깨끗한 상태에서 물들여야 하는 것처럼, 보시나 지계, 천상, 감각욕망의 허물, 출리의 공덕에 관련된 법문을 통해 마음이 장애에서 벗어나고 고무되고 깨끗한 믿음이 생겨났을 때 네 가지 진리에 관한 법문을 설하면 네 가지 진리에 관한 눈이 쉽게 생겨납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근기가 좋은지 나쁜지, 인연이 무르익었는지 아닌지를 잘 아십니다. 그래서 오비구 등을 제도할 때는 앞부분을 생략하고 바로 네 가지 진리를 설하셨고, 야사Yasa 존자 등을 제도할 때는 차제설법을 통해 깨달음으로 이끄셨습니다.

 

〈다난자니 경〉에 의하면(M97) 임종에 즈음해서 자신을 찾은 다난자니Dhānañjāni 바라문에게 사리뿟따 존자는 선정에 관련된 법문까지만 설한 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마지막 네 가지 진리에 대해서는 법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난자니 바라문은 거룩한 마음가짐의 선정을 닦아 죽어서 색계 천상에 태어났습니다.

 

그 사실을 아신 부처님께서는 사리뿟따 존자를 불러 “만약 그대가 네 가지 진리까지 설했다면 열반까지 증득했을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천상에 올라가 끝까지 법문을 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그대로 지시에 따랐으며, 다난자니 바라문은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증득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그 이후로 언제나 네 가지 진리에 대한 법문을 마지막으로 설했다고 합니다. 법을 설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유의해야 할 점입니다.

 

두 번째, ‘방편’이라는 표현은 어떠한 의미가 있으면 그것의 원인을 보이면서 법을 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 ‘연민으로’라는 표현은 여러 가지 고통과 근심, 혹은 윤전의 괴로움에 빠진 중생들로 하여금 그러한 근심과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바라는 연민심을 가지고 법을 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네 번째로 ‘필수품에 미련없이’라는 표현은 자신의 설법을 통해 얻게 될 필수품에 미련을 갖지 말라는 뜻입니다. 혹은 필수품을 얻고자 기대하면서 법을 설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해치잖고’라는 표현은 “나는 법을 설하는 법사다. 그대는 법을 듣는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자신을 높이고 남을 멸시하는 등으로 자신과 남의 덕목을 해치지 않고 법을 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A5:159).

 

설법은 ‘선법들이 청중들에게 도달하기를’이라고 법을 베푸는 행위이기 때문에 보시에도 해당되며, 그것을 법 보시dhammadāna라고 합니다. 앞서 보시에 대한 설명에서도 잠시 살펴보았듯이 모든 보시 중에 법 보시가 으뜸입니다.

 

하지만 ‘적당한’ 이에게 설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자에게 믿음에 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입니다. 계행이 나쁜 자에게 계행에 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입니다. 배움이 적은 자에게 배움에 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입니다. 인색한 자에게 베풂에 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입니다. 통찰지가 없는 자에게 통찰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덕목들을 자신에게서는 보지 못하고, 그것을 통해 기쁨과 희열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A5:157).

 

[출처] [공덕행 토대] 설법dhammadesanā (한국마하시선원) | 작성자 한국마하시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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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금강 | 작성시간 21.06.30 사두사두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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