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이들 중에 자고 있는 이, 자고 있는 이들 중에 깨어있는 이 (2009년 12월 22일 아비담마 67강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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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이들 중에 자고 있는 이, 자고 있는 이들 중에 깨어있는 이
2009년 12월 22일 아비담마 67강 中
-법문: Ven. 한국마하시 사야도(우 소다나 사야도)
-통역: 우 담마간다 스님
-녹취: 담마시리 님
오늘은 부처님 『본생담』 중에 「자가라 자따까Jāgara Jātaka」(J414)를 통해 자고 있는 것과 깨어있는 것에 관해서 특별히 법문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여기서 질문과 대답은 비유로 말하는 것입니다. 질문과 대답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 과거생에 바라밀을 실천하실 때, 어느 생에 브라흐마닷따 왕이 통치하는 시절에 바라문 가문에 태어나셨습니다. 성년이 되어 딱까실라라는 학문의 도시로 가서 모든 학문을 다 배우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러나 경각심saṁvega이 생겨나 출가하여 여덟 가지 선정과 다섯 가지 신통을 모두 다 구족하고 히말라야 산에서 수행자로 머무실 때의 일입니다.
『본생담』 대부분에서 그렇지만 방금 “부처님께서 어느 시절 어디에서 어느 가문에 태어나셨다”라는 설명을 통해 십이연기 혹은 인연에 따라서 과거의 생, 윤회, 죽고 다시 태어남이 있음을 알 수 있도록 부처님께서 자세하게 설해주신 것입니다.
또 “여덞 가지 선정과 다섯 가지 신통을 모두 구족하고 히말라야 산에서 머무셨다”라는 설명을 통해 지계와 선정을 실천하고 구족하신 분들이 분명히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윤회는 없어. 선정과 신통은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야”라는 등의 사견을 무너뜨리기 위해 부처님께서 일부러 보이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살께서 수행하면서 밤이든 낮이든 절대로 눕지 않고 행주좌와 네 가지 자세 중 세 가지 자세로만 머무셨다고 합니다. 이때 밤에도 계속 경행을 하셨나 봅니다. 그 경행대 끝에 큰 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를 의지해서 사는 목신이 있었습니다. 보살께서 한밤 내내 졸지 않고 경행하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흡족하고 존경심이 생겨나 목신이 보살에게 다음처럼 질문을 했습니다.
135. ‘‘Kodha jāgarataṁ sutto, kodha suttesu jāgaro;
Ko mametaṁ vijānāti, ko taṁ paṭibhaṇāti me’’ti.
이 세상에서 깨어있는 이들 중에 자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자고 있는 이들 중에 깨어있는 있는 이는 누구인가?
어느 누가 나의 이 질문을 알 것인가?
어느 누가 그 질문을 대답할 수 있겠는가?
보살께서 목신을 기쁘게 하려거나 잘 보이려고 일부러 실천하신 것이 아닙니다. 법을 실천해서 열반의 법을 얻기 위해서 자기 실천을 하는 모습에 목신이 아주 즐겁고 기쁘게 생각한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을 실천해서 열반의 법을 얻기 위해서 수행하셔야 합니다.
빠알리어 게송으로 “이 세상에서 깨어있는 이들 중에 자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자고 있는 이들 중에 깨어있는 이는 누구인가? 어느 누가 나의 이 질문을 알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겠는가?”라고 목신이 소리가 들리게 읊었습니다. 그러자 그 질문을 들은 보살께서 다음과 같이 대답 게송을 설하셨습니다.
136. "Ahaṁ jāgarataṁ sutto, ahaṁ suttesu jāgaro;
Ahametaṁ vijānāmi, ahaṁ paṭibhaṇāmi te"ti. –
이 세상에서 깨어있는 이들 중에 자고 있는 이는 바로 나요.
자고 있는 이들 중에 깨어있는 있는 이도 바로 나요.
내가 그대의 이 질문을 압니다.
내가 그 질문을 대답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대답하셨는가 하면 “이 세상에서 깨어있는 이들 중에 자고 있는 이는 바로 납니다. 이 세상에서 자고 있는 이들 중에 깨어있는 이도 바로 납니다. 내가 그대의 질문을 잘 압니다. 내가 그대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할 수가 있습니다”라는 게송으로 답을 했습니다. 이 정도로는 자세한 대답을 알 수 없어서 목신이 무슨 뜻인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의미로 다음처럼 다시 물었습니다.
137. "Kathaṁ jāgarataṁ sutto, kathaṁ suttesu jāgaro;
Kathaṁ etaṁ vijānāsi, kathaṁ paṭibhaṇāsi me"ti. –
이 세상에서 깨어있는 이들 중에 어떻게 그대는 자고 있습니까?
자고 있는 이들 중에 어떻게 그대는 깨어있습니까?
나의 이 질문을 그대는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어떻게 그 질문을 대답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보살께서 다음의 두 게송을 통해 자세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138. "Ye dhammaṁ nappajānanti, saṁyamoti damoti ca;
Tesu suppamānesu, ahaṁ jaggāmi devate.
도에 의한 계라든가, 감각기관 단속에 의한 계라고 하는
그 아홉 가지 출세간 법들을 알지 못하는 이들,
그렇게 번뇌라는 잠에 빠져 방일한 이들 가운데,
나는 깨어있습니다, 천신이여.
139. "Yesaṁ rāgo ca doso ca, avijjā ca virājitā;
Tesu jāgaramānesu, ahaṁ suttosmi devate.
탐욕이나 성냄,
어리석음이 완전히 사라진,
그렇게 깨어있는 아라한들 가운데,
나는 자고 있습니다, 천신이여.
빠알리어 그대로 하는 것보다 주석서의 설명을 보충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석서에 따르면 138번 게송의 dhamma는 도를 성취하면서 생긴 계, 감각기관의 단속에 의한 생긴 계를 포함시켜서 아홉 가지 출세간법들입니다. 그러한 법들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 그렇게 번뇌라고 하는 잠에 빠져서 방일한, 게으른 이들 가운데 보살은 깨어있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깨어있는 사람들 중에 자고 있다는 말은 다음과 같은 뜻입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의 모든 번뇌가 사라진 아라한들에 비해서 보살의 공덕은 한참 모자라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깨어있는 아라한들과 비교하면 보살은 자고 있는 것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게송에서 아직 보살의 상태였기 때문에 수다원 도도 성취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아홉 가지 출세간법도 아직 얻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나 보거나 듣거나 할 때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생겨나지 않도록 눈, 귀 등을 잘 간수하고 다스리는 감각기관단속계는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출가하여 숲에서 사마타 수행을 해서 선정과 신통도 구족하고 장좌불와하며 수행하는 것이 출세간 법 아홉 가지를 얻기 위한 충분한 바탕이 되기 위해서 불방일로 열심히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일함이라고 하는, 번뇌라는 잠에 빠져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보살은 깨어있다고 대답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모든 번뇌가 사라진 아라한들과 비교하면 아직 한참 공덕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과 비교하면 깨어있는 사람들 중에 자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테라와다 불교에서 탐욕, 성냄 등의 번뇌를 다 합치면 천오백 번뇌라고 합니다. 천오백 번뇌가 위빳사나 수행을 해서 도와 과를 증득하기 전까지는 그냥 남아있습니다. 잠재되어서 언제든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에 그대로 있는 상태를 드러내서 말하면 자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행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탐욕, 성냄 등의 모든 번뇌들이 마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말과 행위로 바깥으로까지 드러납니다. 그러나 보살께서는 장좌불와하며 사마타 수행 등을 실천해서 그 번뇌들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게 억압해서 잘 제어하셨습니다. 그래서 감각적 욕망이나 성냄, 해태·혼침, 들뜸·후회, 의심 등의 여러 장애와 번뇌가 마음속에 있긴 있지만 사마타 수행의 힘으로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뇌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활개치는 범부에 비하면 그렇게 사마타 수행을 잘하는 분들은 깨어있다고도 말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보살은 모든 번뇌가 다 완전히 제거된 아라한들과 비교하면 역시나 자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각자 생각해 보십시오. 잘 때가 많습니까, 깨어있을 때가 많습니까? (대중: 잘 때가 많습니다, 스님) 깨어있어도 깨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집에서 그냥 번뇌 일으키고 자는 것에 비하면 여기 선원에 와서 아비담마 등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깨어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140. "Evaṁ jāgarataṁ sutto, evaṁ suttesu jāgaro;
Evametaṁ vijānāmi, evaṁ paṭibhaṇāmi te"ti. – imā gāthā āha;
이렇게 깨어있는 아라한들 가운데 나는 자고 있고,
자고 있는 이들 가운에 나는 깨어있습니다.
그 질문을 나는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 질문을 대답할 수 있습니다.
141. "Sādhu jāgarataṁ sutto, sādhu suttesu jāgaro;
Sādhu metaṁ vijānāsi, sādhu paṭibhaṇāsi me"ti.
맞습니다, 깨어있는 아라한들 가운데 자고 있다는 것,
맞습니다, 자고 있는 이들 가운데 깨어있다는 것,
맞습니다, 이 질문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나에게 잘 대답하셨습니다.
보살의 대답을 듣고 “모든 번뇌가 다한 아라한들과 비교하면 그대는 자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탐욕을 일으키는 번뇌가 많은 범부들과 비교하면 그대는 또 깨어있다는 소리도 맞습니다. 아주 내 질문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훌륭합니다. 나에게 잘 대답하셨습니다”라고 마지막 141번 게송으로 목신이 설명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본생담』 마지막에는 항상 등장인물이 현재의 누구인지를 밝히십니다. 이 『본생담』에서 목신은 웁빨라완나 비구니이고, 수행자는 다른 이가 아니라 부처님이셨음을 연결지어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잠에 대해서 설명하신 법문을 모으면 아주 많습니다. 그중에 『앙굿따라 니까야』 다섯 가지 모음(A5:137)에 특별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마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밤에 잠을 잘 못 이루는 이, 혹은 깨어있을 때가 많고 잠이 적은 사람에 다음과 같은 다섯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 남자를 갈망하는 여인, 두 번째 여자를 갈망하는 남자, 세 번째 훔치는 것을 궁리하고 실행하는 도둑, 네 번째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노력해야 하는 왕은 밤에 잠을 못 자고 깨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오늘 어떤 일이 있더라도 열반을 얻으리라’라고 번뇌의 속박을 끊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수행자들이 밤에 잠이 적고 많이 깨어있습니다. 이런 수행자처럼 ‘지금 열심히 수행해서 얻으리라’라는 강한 서원, 강한 욕구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법이 다가옵니다. 법을 얻을 수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부처님 당시 때 아라한 큰 제자들께서 장좌불와를 몇 년 동안 얼마나 오래 하셨는지 미얀마본 『디가 니까야 대품 주석서』 제2권, 328 페이지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30년 장좌불와를 실천했다고 나옵니다. 마하깟사빠 존자는 120년 실천했다고 나옵니다. 마하깟사빠 존자가 120살까지 살았기 때문에 120년을 실천하시려면 태어날 때부터 눕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아누룻다 존자 50년, 밧디야 존자 30년, 소나 장로 18년, 랏타빨라 장로 12년, 아난다 존자 15년, 라훌라 존자 12년이라고 주석서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바꿀라 존자는 80세에 출가를 해서 160세까지 살았습니다. 출가한 이후로 80년 출가 생활 동안 장좌불와를 했습니다. “건강제일”로 알려진 바꿀라 존자는 기침 한 번 안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 이유를 짧게 말씀드리면 이전 생에 부처님을 위시한 승가에 건강하게 하는 약을 보시해서 이번 생에 기침 한 번 안 하실 정도로 건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날라까 존자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숫타니빠타』 읽어보시면 날라까 존자에 관해서 「성자의 실천 경」이 있고, 아시따 선인의 조카로 알려진 분입니다. 모든 부처님 출현하실 때마다 한 분씩 “성자의 실천행”을 실천한 분이 있습니다. 고따마 부처님 제자 중에서는 이 날라까 존자가 성자의 실천행을 실천해서 도와 과를 증득하신 분인데, 구체적인 수치는 안 나오고 반열반에 드실 때까지 계속해서 장좌불와를 실천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분들은 눕지 않고 앉거나 서거나 경행하면서 이러한 자세로 오랜 기간 동안 실천했습니다. 여러분들이나 저희는 일 년 할 수 있겠습니까? 한 달은 어떻습니까? 그러면 하루는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시대에는 조금 주의를 하셔야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많은 대중이 계를 잘 지켰고, 또 부처님께서도 출현하신 상태였기 때문에 기후가 좋았습니다. 좋은 기후에서 나는 쌀 등의 음식물의 영양분도 아주 풍부했습니다. 기후도 좋고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물을 섭취했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지내신 분들의 건강 상태는 지금 사람들의 건강 상태와는 달리 아주 좋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은 전생에 바라밀도 좋은 분들입니다. 그래서 몸을 상해가면서 힘들게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몇십 년도 전혀 문제없이 실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이 사마타 수행하면 선정과 신통도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시대는 소란하고 영양분도 부족하기 때문에 사마타 수행을 하는 데 장애가 많습니다. 그러나 위빳사나 수행은 소리가 그리 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위빳사나 수행을 해야 도와 과를 증득할 수 있습니다. 그 점이 조금 다릅니다. 부처님 당시와 지금 상황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기후가 좋다는 것에 대해서 이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우기 때에도 하루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일주일에 두 번 정도로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양만큼만 비가 내립니다. 그리고 비가 내릴 때도 밤에 사람들이 다니지 않을 때 내리고 낮에 사람들이 일하러 가야 할 때에는 그칩니다. 이런 식으로 밤에 비가 내리고 낮에 비가 멈추는 비를 여법한 비라고 합니다.
오늘은 아비담마 진도 나가는 중에 여러분들 특별하게 많이 아시게 하기 위해서 「자가라 자따까Jāgara Jātaka」(J414)를 통해 “깨어있음”에 대해서 설명해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