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청정과 위빳사나 지혜
1. 계청정(戒淸淨)
불교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면 괴롭기 마련인데(고성제), 그 원인은 욕심(집성제)이며, 이러한 고통과 욕심에서 벗어난 상태가 열반(멸성제)이다. 여기에 도달하려면 팔정도(도성제)를 실천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팔정도는 다시 계(정어, 정업, 정명)와 정(정정진, 정념, 정정), 혜(정견, 정사유)로 나뉘는데, 수행자는 우선 계를 잘 지켜야 하는데 이를 계청정이라고 한다.
재가자는 오계나 생계 제8계를 준수하면 된다.
2. 마음청정[心淸淨]
사마타 수행이나 위빳사나 수행을 해서 근접삼매(찰나삼매) 혹은 본삼매가 생기면 마음청정이 된 것이다.
3. 견해청정[見淸淨]
마음이 청정하게 된 수행자가 계속 수행해서 몸과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 “⑴ 정신·물질 구별의 지혜”가 생긴 것이다. 이 지혜가 성숙되면 거기에는 ‘중생, 사람, 영혼, 자아, 남자, 여자’라는 것이 없다고 알게 되는데 이것을 “견해청정”이라고 한다.
4. 의심극복청정[度疑淸淨]
견해청정이 성숙되면, 수행자는 예를 들어 팔을 구부리려는 의도가 있을 때 그 다음에 팔을 구부리는 행위가 생기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대상이 있어야만 마음이 생기고 대상이 없다면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라고도 안다. 이렇게 관찰하면서 추론에 의해서, ‘몸과 마음이 지속되는 것은 무명, 갈애, 업 등의 조건(원인)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알게 된다. 이렇게 경험과 추론을 통해 아는 것을 “⑵ 조건파악의 지혜”라고 한다. 계속 관찰하여 이 지혜가 성숙되면 “있는 것은 몸과 마음의 조건이 되는 것과 조건 따라 생기는 몸과 마음이 연속적으로 생길 뿐이다. 이것들 외에 행동을 하거나 느낌을 경험하는 사람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것을 의심극복청정이라고 한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작은 수다원이다.
5. 도·비도 지견청정(道非道智見淸淨)
의심극복청정이 성숙해지면 자신이 관찰한 모든 대상이 파괴되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무상하다고 안다. 그리고 모든 생긴 것들이 파괴되므로 그것을 괴로움이라고 안다. 나아가서 대상이 스스로 생기거나 혼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조건들에 의해서 생기고, 생긴 다음에는 파괴됨을 조건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대상은 주체가 없는 단지 무아(無我)인 현상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안다. 이렇게 아는 것을 “⑶ 명상의 지혜”라고 한다.
이 단계에서 수행자가 대상을 놓치지 않고 몸이나 마음을 계속 보고 있으면, 열 가지 위빳사나 부수번뇌인 찬란한 빛(광명), 희열, 경안(편안함), 결의(확신), 분발(정진), 행복, 지혜, 사띠 확립, 평온, 갈망(위빳사나를 좋아하는 것. 진정한 부수번뇌)이 생긴다. 이것들이 위빳사나 지혜이기는 하지만 번뇌 때문에 현상들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⑷-1 생멸의 지혜(약한 단계)”라고 한다.
계속 관찰하면서 수행자가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의 가르침에 의해 “내가 경험한 광명 등은 길이 아니다. 그것들은 단순한 위빳사나 수행의 번뇌일 뿐이다.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위빳사나 지혜의 길이니 계속 관찰해야만 한다.”라고 아는 것이 “도비도지견청정”이다.
6. 실천 지견청정[行道智見淸淨]
이러한 찬란한 빛이 나타는 것 등을 관찰한 다음 그런 것들에 집착하지 않고, 수행자는 여섯 가지 감각의 문에 나타나는 것들을 전과 같이 계속 관찰한다. 그러면 빛 등의 번뇌를 극복하고 그의 앎은 오직 관찰되고 있는 대상의 발생과 소멸에만 머물러 있게 된다. 왜냐하면 그러는 동안 하나의 앎마다, 그는 ‘관찰된 대상은 생기자마자 즉시 사라진다.’고 보고 알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대상은 생긴 바로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이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에게 명백해진다. 이렇게 정신과 물질이 생멸하는 것을 위빳사나 부수 번뇌 없이 분명히 아는 것을 “⑷-2 생멸의 지혜(성숙된 단계)”라고 한다. 이것이 “실천지견청정(바른 길을 알고 보는 청정)”인데, 이 청정은 생멸의 지혜에서 시작하여 수순의 지혜까지 계속된다.
⑸ 소멸(무너짐)의 지혜 : 생멸의 지혜가 성숙되어 예리하고 강력해지면 수행자에게 각각의 몸과 마음의 생김도 분명하지 않으며, 지속되고 있는 중간 단계도 분명하지 않고, 끊임없는 흐름인 몸과 마음의 흐름도 분명하지 않게 된다. 손발이나 몸 등도 분명하지 않다. 그에게 분명한 것은 몸과 마음의 소멸뿐이다.
관찰을 계속하면, 수행자는 하나의 관찰하는 행위마다 대상과 그것을 아는 정신이 언제나 함께 존재함을 아는데, 이 두 개의 요소들은 계속적으로 한 쌍이 소멸된 다음에, 다음 쌍이 소멸된다. 그것은 봄날에 아지랑이가 매순간 계속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수행자는, 어떤 대상이든지 소멸하고, 즉시 그것을 아는 정신도 연이어서 쌍으로 소멸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 것이다. (이것은 위빳사나 관찰에 의한 직접적인 경험으로 안 것이지 추론으로 안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이렇게 육문에 나타나는 대상과 그것을 아는 정신이 쌍으로 소멸하는 것을 완전히 분명하게 아는 것을 “⑸소멸의 지혜”라고 한다.
⑹ 두려움의 지혜
소멸의 지혜가 성숙되면 수행자는 단지 모든 대상과 그것을 아는 정신의 소멸을 봄에 의해, 언제 죽을지 모르고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주 두려워하는 ‘두려움의 지혜’가 생긴다. 그는 추론에 의해서 과거에도 모든 조건 지어진 현상들이 같은 식으로 해체되었으며, 미래에도 해체될 것이고, 현재에도 해체된다고 안다. 그리하여 관찰하는 순간 명백히 나타나는 어떤 현상이든지 그에게 ‘이 현상들은 참으로 두렵다.’라고 알게 된다.
⑺ 허물(위험)의 지혜
수행자가 현상들에 대한 두려움을 안 다음에 지속적으로 관찰하면, 관찰의 대상이나 그것을 아는 정신들 모두가 아무 의미가 없는 괴로움일 뿐이라고 그것들의 허물(위험)만 본다. 이것을 “허물의 지혜”라고 한다.
⑻ 염오의 지혜
그렇게 조건 지어진 현상들에서 허물을 보면서 수행자는 그것들에서 즐거움이란 찾을 수 없고, 그런 것들을 전적으로 싫어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는 위빳사나 수행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수행하면서 살아간다. 이것이 수행을 불만족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 지어진 현상들을 싫어하는 “염오의 지혜”이다. 그가 가장 즐겁고 원하는 대상에 마음을 기울여도 만족하지 못하고, 그의 마음은 단지 열반을 얻기만을 기대할 것이다. 그러므로 관찰하는 순간들 사이에 “매순간 해체되는 모든 조건 지어진 현상들의 멈춤만이 행복이다.”라는 생각이 그의 내부에서 생길 것이다.
⑼ 벗어나려는 지혜
지금 생긴 염오의 지혜로 관찰한 모든 조건 지어진 것들을 싫어할 때, 수행자의 내부에서 이것들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가 생긴다. 그런 욕구와 관련된 지혜를 “벗어나려는 지혜”라고 한다.
⑽ 재성찰의 지혜
조건 지어진 것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면서, 수행자는 그것들로부터 벗어나려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지금까지 관찰했던 것보다 더 열심히 관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때 생기는 지혜를 “재성찰의 지혜”라고 한다. 그렇게 계속 관찰하면 그것들의 무상하고 고통이며 무아라는 특성은 그에게 명명백백할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중에서 고통이라는 것이 특히 뚜렷할 것이다. 그가 수행을 계속하면 그의 관찰은 점점 더 분명해 질 것이다. 그러면 그는 고통스러운 느낌과 한 가지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들뜸, 그리고 자신의 위빳사나 지혜가 아직 충분히 명료하지 않다는 생각을 극복할 것이다. 그러면 그의 관찰이 재빨리 작용하여 관찰하는 매순간마다 그는 무상과 고통과 무아라는 삼법인 중의 하나를 아주 분명하게 알 것이다. 끊어지지 않고 계속하여 재빨리 작용하는 관찰을 통하여, 삼법인 중의 하나를 이렇게 아는 것을 “재성찰의 지혜”라고 한다,
⑾ 형성평온의 지혜
이 재성찰의 지혜가 성숙해지면 아주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정신과 물질의 과정들을 분명하게 아는 지혜가, 마치 스스로 나타나는 것처럼 생기는데 이것을 “형성평온의 지혜”라고 한다.
이제는 관찰함에 있어서, 마음은 조건 지어진 현상들에 기울이려는 노력이나 그것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하나의 관찰이 끝난 다음에 관찰되어야 할 대상이 스스로 나타나고, 위빳사나 지혜도 스스로 나타나서 그것을 관찰해서 안다. 마치 수행자가 더 이상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전에는 현상들의 소멸을 보면 지금까지 성취한 지혜에 대해 두렵고 싫어하는 등의 불만족이 생겼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불만족이 생기지 않지만, 현재 상태에서도 보다 빨리 해체되고 있는 현상들의 소멸이 면밀하게 지각된다. 간혹 몸속에 고통스런 느낌이 생기더라도 정신적인 동요는 생기지 않으며, 그것을 참아낼 용기가 모자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대개는 이 단계에서 통증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수행자가 두려움이나 슬픔에 대해서 생각할지라도 그것들을 그대로 내버려둘 뿐, 그에 대한 정신적인 동요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형성평온의 지혜 단계에서의 “두려움을 버림”이다.
생멸의 지혜 단계에서는 희열이 생겼지만 형성평온의 지혜 단계에서 기뻐할 만하고 호감이 가는 대상을 보기는 하지만 강력하게 기쁜 느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형성평온의 지혜 단계에서의 “즐거움을 버림”이다.
수행자는 자신의 감각기관의 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직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대상에 대해서 좋아하거나 증오하지 않고 똑같이 알고 이해한다. 이것이 형성평온의 지혜 단계에서의 “평온하게 봄”이다.
수행자가 “이제 다시 힘차게 수행하겠다.”고 마음먹고 관찰하는 수행을 계속하면, 오래지 않아서 관찰은 스스로 진행되는 것처럼 효율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가 수행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려고 하지 않아도 심지어는 두세 시간 동안 방해받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이것이 형성평온의 지혜 단계에서 “수행이 오래 지속되는 상태”이다.
이제 관찰이 스스로 진행되는 듯이 자발적으로 작용하게 되면, 다른 대상으로 마음을 보내려고 해도 대개는 가지 않는다. 설사 가더라도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수행주제로 되돌아와서 관찰을 계속한다. 그래서 “수행자는 움츠리고, 되돌아오고, 물러난다. 다른 대상으로 가지 않는다.”고 한다.
⑿ 수순의 지혜
형성평온의 지혜가 성숙되어 예리하고 강력하고 명료해져서 정상에 도달하면, 단지 현상들의 소멸을 봄으로써 지혜는 모든 현상들이 무상하거나 고통스럽거나 무아라고 알 것이다. 이제 이 삼법인 중의 하나를 관찰하는 그 행위는, 완전히 앎에 의해 더욱 명료한 채, 세 번(혹은 두 번) 연달아서 자신을 드러낸다. 이를 “출현[道]으로 인도하는 위빳사나”라고 하고, 그 중에서 마지막에 일어나는 지혜를 “수순의 지혜”라고 한다.
이것이 “실천지견 청정”의 끝이다.
6과 7 사이 (청정에는 포함 안 되는 지혜)
⒀ 종성의 지혜
수순의 지혜 바로 다음에 계속 관찰해서 알던 현상들이 소멸되었기 때문에, 형성들이 없는 열반을 처음 경험하는 지혜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종성의 지혜”이다. 이는 범부에서 혈통이 바뀌어서 성자가 되기 때문에 종성의 지혜라고 한다. 이 지혜는 실천지견 청정이나 지견청정에 속하지 않는다.
7. 지견청정(智見淸淨)
⒁ 도의 지혜
종성의 지혜 다음에 즉시 현상들이 소멸되고 없는 열반에 머무는 “도의 지혜”가 생긴다. 이것을 “지견청정”이라고 한다. 도의 지혜에는 수다원도의 지혜, 사다함의 지혜, 아나함의 지혜, 아라한의 지혜 모두 네 가지가 있다.
청정에 포함 안 되는 지혜
⒂ 과의 지혜
도의 지혜 다음에 즉시 현상들이 소멸되고 없는 열반에 머무는 “과의 지혜”가 생긴다. 이 과의 지혜부터는 “지견청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⒃ 반조의 지혜
도의 지혜와 과의 지혜로 직접 열반을 경험한 수행자는 자신이 도달한 도와 과, 열반을 우선 돌이켜 숙고해 본다. 경전을 본 수행자는 제거한 번뇌, 아직 제거하지 못한 번뇌들까지 숙고해 보기도 한다.
이상에 설명한 것을 목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칠청정과 위빳사나 지혜 목록
1. 계청정(sīla visuddhi, 戒淸淨)
재가자는 오계나 생계 제8계를 준수하면 된다.
2. 마음청정(citta visuddhi, 心淸淨)
근접삼매(찰나삼매)와 본삼매
3. 견해청정(diṭṭhi visuddhi, 見淸淨)
⑴ 정신·물질 구별의 지혜(nāmarūpa pariccheda ñāṇa,
名色區別智)
4. 의심극복청정(kaṅkhāvitaraṇa visuddhi, 度疑淸淨)
⑵ 조건파악의 지혜(paccaya pariggaha ñāṇa, 緣把握智)
이 단계에 도달하면 작은 수다원이다.
5. 도·비도 지견청정(maggāmagga ñāṇadassana visuddhi,
道非道智見淸淨)
⑶ 명상의 지혜(sammasana ñāṇa, 思惟智)
⑷-1 생멸(거듭관찰)의 지혜(udayabbayānupassanā ñāṇa,
生滅隨觀智, 약한 단계)
6. 실천 지견청정(paṭipadā ñāṇadassana visuddhi, 行道智見淸淨)
⑷-2 생멸(거듭관찰)의 지혜(udayabbayānupassanā ñāṇa,
生滅隨觀智, 성숙된 단계)
⑸ 소멸(무너짐 거듭관찰)의 지혜(bhaṅgānupassanā ñāṇa,
壞隨觀智)
⑹ 두려움(드러남)의 지혜(bhayatupaṭṭhāna ñāṇa, 怖畏現起智)
⑺ 허물(위험 거듭관찰)의 지혜(ādīnavānupassanā ñāṇa,
過患隨觀智)
⑻ 염오(거듭관찰)의 지혜(nibbidānupassanā ñāṇa, 厭離隨觀智)
⑼ 벗어나려는 지혜(muñcitukamyatā ñāṇa, 脫欲智)
⑽ 재성찰(거듭관찰)의 지혜(paṭisaṅkhānupassanā ñāṇa,
省察隨觀智)
⑾ 형성평온의 지혜(saṅkhārupekkhā ñāṇa, 行捨智)
⑿ 수순의 지혜(anuloma ñāṇa, 隨順智)
6과 7 사이 (청정에는 포함 안 되는 지혜)
⒀ 종성의 지혜(gotrabhū ñāṇa, 種姓智)
7. 지견청정(ñāṇadassana visuddhi, 智見淸淨)
⒁ 도의 지혜(magga ñāṇa, 道智)
청정에 포함 안 되는 지혜
⒂ 과의 지혜(phala ñāṇa, 果智)
⒃ 반조의 지혜(paccavekkhaṇa ñāṇa, 觀察智)
참고자료:
① 비구 일창 담마간다, 『부처님을 만나다』, 불방일, 2018, 100쪽.
② 냐나포니카 테라 영역, 오원탁 번역, 『마하시 스님의 칠청정을 통한 지혜의 향상』, 경서원(010-3245-7121), 2007.
③ 대림스님/각묵스님 옮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2권』, 초기불전연구원, 2017, 323–372쪽
④ 비구 일창 담마간다 옮김,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2』, 이솔, 2013, 60-684쪽, 692-693쪽.
⑤ 비구 일창 담마간다 편역, 『보배경 강설』, 불방일, 2020, 229-230쪽.
⑥ 비구 일창 담마간다 번역, 마하시 사야도 법문, 우 소다나 사야도 감수,
『아낫따락카나숫따 법문(무아특성경 해설)』, 불방일, 2021, 387-4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