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일 - 육문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관찰해야 한다.
11/14(월) 16:30 법문
육문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관찰해야 한다.
육문(六門)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말합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눈, 귀, 코, 혀, 몸과 마음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행동과 느낌을 관찰하는 것이며, 이로써 위빠사나 지혜가 생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좌선할 때 사띠(관찰, 주시, 알아차림)의 주된 대상은 배의 ‘부풂과 꺼짐’, 그리고 몸이 닿아 있는 부위(touching points)입니다. 몸이 닿아 있는 부위를 관찰하려(알아차리려) 할 때 망상에 빠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닿는 부위를 늘려서 관찰해도 됩니다. 즉 닿아 있는 부위를 셋에서 다섯, 열 군데로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풂과 꺼짐’의 주된 대상을 관찰하는 것에 추가하여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에 나타나는 다른 모든 현상도 관찰하지(주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배가 부풀고 꺼지는 것을 주시하는 것은 주된 대상을 주시하는 것입니다. 이 ‘부풂과 꺼짐’을 주시하는 것은 자신의 집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집에 있을 때에는 마음이 편하고 한가합니다. 공부하려고 학교에 가야 하지만 방과 후에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식료품을 사러 시장에 가지만 필요한 것을 산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일하러 사무실에 가지만 일과가 끝난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풂, 꺼짐’은 마치 자기 집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습니다. ‘부풂과 꺼짐’을 주시하다가 어떤 소리가 들리면 ‘부풂, 꺼짐’을 주시하는 것을 멈추고, ‘들음, 들음’ 하면서 그 소리를 주시해야 합니다. 소리가 사라지면 다시 ‘부풂, 꺼짐’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는 상태에서 어떤 영상이 보이면 ‘봄, 봄’ 하면서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영상이 사라지면 다시 돌아와서 ‘부풂, 꺼짐’을 주시해야 합니다.
만약 상당한 시간 동안 영상이 사라지지 않으면 ‘봄, 봄’을 계속하지 말고 무시하고 ‘부풂, 꺼짐’으로 돌아오십시오. 어떤 냄새가 느껴지면 좋은 냄새거나 나쁜 냄새거나 간에 냄새를 주시하고 나서 부풂과 꺼짐으로 돌아오십시오. 혀에서 맛이 느껴지면 달거나 짜거나 간에 주시한 다음 부풂과 꺼짐으로 돌아오십시오. 망상이 떠오르면 ‘망상, 망상’ 혹은 ‘생각, 생각’으로 주시한 다음 부풂과 꺼짐으로 돌아오십시오. 몸의 쑤심, 통증, 열기와 한기가 느껴진다면 쑤심, 통증, 열기와 한기를 부시하고 나서 부풂과 꺼짐으로 돌아오십시오.
통증이 계속되면 자세를 바꾸어도 좋지만, 그럴 때에는 단계적으로 천천히 자세를 바꾸면서 그 과정도 주시해야 합니다. 먼저 바꾸려는 의도를 주시하고 나서 ‘바꿈, 바꿈’, ‘눈을 뜸’, ‘손을 움직임’, ‘자세를 바꿈’, ‘허리를 바로 폄’, ‘손을 다시 제자리에 놓음’, ‘눈을 감음’ 등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주시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배의 부풂과 꺼짐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렇듯 배의 ‘부풂과 꺼짐’이 수행의 주된 대상이라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된 대상의 관찰 외에 보이는 형상, 들리는 소리, 냄새, 맛, 피부에 느껴지는 감촉, 마음이라는 대상에 나타나는 의식도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 육문으로 들어오는 이 모든 현상들을 주시해야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관찰하는 목표와 목적은 이들 육문으로 들어오는 탐욕과 성냄 등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탐욕, 성냄과 어리석음(lobha, dosa, moha, 貪瞋癡)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염처경에 “탐욕과 성냄은 오취온(五取蘊)을 쉽게 침범하므로 매순간 현상을 관찰함으로써만이 탐욕과 성냄은 약화되고 제거된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들 현상을 관찰하는 것만이 탐욕과 성냄을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탐욕과 성냄은 육문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빨리어로 감각기관을 ‘드와라(dvāra)’ 즉 ‘문(門)’이라고 합니다. 집에 들어갈 때 들어가는 지점이 문이듯이, 탐진치는 눈, 귀, 코, 혀, 몸과 마음이라는 여섯 가지 감각의 문을 통해 우리 인간 속으로 들어옵니다.
만약 문이 닫혀 있지 않다면, 특히 밤에 도둑, 강도, 곤충, 개, 뱀 등이 집으로 들어옵니다. 그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문은 확실하게 닫혀 있어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탐욕과 성냄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육문을 닫아야만 합니다. 즉, 육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주시해야 합니다.
소리가 들리면 수행자는 ‘들음, 들음’을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주시하면 탐욕과 성냄이 귀를 통해서 들어오지 못합니다. 수행자가 즐거운 소리를 주시하지 못한다면 그 소리에 대한 갈애(渴愛)가 생길 것이며, 소리에 대한 갈애는 탐욕을 일으킬 것입니다. 또한 싫은 소리라면 성냄을 일으킬 것입니다.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든지 ‘봄, 봄’을 주시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모습은 탐욕을 생기게 하고, 아름답지 못한 모습은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코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냄새를 주시하지 못한다면, 좋은 향기는 탐욕을 생기게 하고, 코를 찌르는 악취는 성냄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먹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맛을 주시하지 못하면 좋은 맛은 탐욕을 생기게 하고, 나쁜 맛은 성냄을 일으키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탐욕과 성냄은 불선업(不善業)의 원인이 되며, 불선업은 말과 몸으로 하는 불건전한 행동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는 격언처럼 탐욕과 성냄이 생기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모든 현상을 주시해야 합니다. 사물을 보면서 ‘봄, 봄’을 주시하십시오. 만약 시각 대상을 그렇게 주시한다면, 여러분들은 단지 시각 대상을 주시할 뿐이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감상할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주시하지 못한다면 좋은 대상에 대해서는 갈애가 생겨서 집착하게 될 것이며, 싫은 대상으로 인하여 성냄이 생길 것입니다.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보는 대상을 보는 순간에 주시하면, 아무런 느낌이나 갈애가 생기지 않고 단지 보는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듣는 순간 소리를 주시하면, 소리는 단지 소리라는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이렇게 주시하면 탐욕이나 성냄을 일으킬 시간이 없습니다. 따라서 느낌도 갈애도 분노도 없습니다.
냄새도 마찬가지입니다. 냄새가 날 때 ‘냄새, 냄새’를 주시하십시오. 좋은 냄새인지 나쁜 냄새인지 구별할 시간이 없어야 합니다. 먹을 때도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먹는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주시해야 합니다. 그러면 탐욕에도 성냄에도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몸의 감촉인 촉감으로 알 수 있는 대상도 경험하는 순간 주시해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좋고 싫은 느낌이 없을 것입니다.
“냄새, 맛과 감촉 대상은 그것들이 발생하는 순간 즉시 주시하면 탐심과 성냄을 발생시키지 않고 그대로 존재할 것이다.”
이 말처럼 마음의 대상인 의식도 발생하는 순간 ‘앎, 앎’으로 주시하면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발생시키는 차별하는 과정을 방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육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주시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여러분은 배가 부풀고 꺼지는 것을 주시할 수 있는 것에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육문을 통해 생기는 모든 현상을 관찰하는 것을 ‘뽀틸라 선례’라고도 합니다.
부처님 시절에, 뽀틸라 대장로(大長老)라는 아주 박식한 선원장이 있었는데, 경전을 가르치는 저명한 스승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18종파의 500여 명의 비구들에게 삼장을 가르쳤으며, 제자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뽀틸라 대장로가 부처님이 계신 승원으로 가서 일체지자(一切智者)인 부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에게 말씀하였습니다.
“오너라, 아무 쓸모없는 뽀틸라여. 절하거라, 아무 쓸모없는 뽀틸라여. 앉아라, 아무 쓸모없는 뽀틸라여. 가거라, 아무 쓸모없는 뽀틸라여.”
부처님 말씀에 뽀틸라 대장로는 반성했습니다. 18개 종파의 사원에서 성공적으로 경전을 가르치고 있는데, 왜 ‘아무 쓸모없는 뽀틸라’라고 했을까? 그리고는 자신이 경전을 가르치기만 했지, 수행을 전적으로 등한시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잘못을 고치려고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고, 당시 승려의 관습에 따라 가사 세 벌과 발우를 가지고 선원을 향해 떠났습니다. 약 30명의 아라한이 수행하고 있는 선원에서 그는 아라한 성취를 위해 분투하겠다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결정이었습니다. 경전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스승이 있고 책이 있고 가르치는 시설이 있는 사원으로 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나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수행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고, 지도해 줄 훌륭한 수행 스승이 있고, 집중 수행에 도움이 되는 숙박시설과 도반이 있는 선원으로 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뽀틸라 대장로는 선원장, 선원의 다른 모든 승려들만이 아니라 사미들까지 가장 고귀한 아라한을 성취한 유명한 선원으로 갔습니다. 뽀틸라 대장로는 우선 가장 나이 많은 스님에게 가서 수행을 지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가장 연장자인 큰스님께서 유명하고 박식한 뽀틸라 대장로를 보자마자 말하였습니다.
“뽀틸라 스님이시여, 그대는 대단히 유명하고 여러 곳에 제자도 많은 박식한 분이십니다. 내가 감히 어떻게 그대를 제자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한 것은 다소간 수행에 장애가 될 수도 있는 뽀틸라 스님의 자만심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유명하고 박식한 선원장이란 생각을 제거해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거절당한 뽀틸라 대장로는 차례로 두 번째, 세 번째 나이 많은 스님들에게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계속해서 뽀틸라 스님이 유명하고 박식하기 때문에 제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원의 모든 나이 많은 스님들에게 거절당하고, 마지막으로 나이가 일곱 살이지만 이미 아라한인 어린 사미에게 갔습니다.
뽀틸라 대장로는 어린 사미에게 존경의 예를 표한 다음 수행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고 자신을 사미의 수행 제자로 받아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어린 사미도 처음에는 같은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뽀틸라 대장로는 계속 간청하면서, 무엇이든지 사미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어린 사미는 뽀틸라 대장로를 시험해 보려고 그에게 연못으로 들어가라고 말했습니다. 뽀틸라 대장로는 즉시 명령대로 가사를 입은 채로 연못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뽀틸라 대장로가 연못으로 들어가면서 그의 가사가 물에 젖기 시작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어린 사미는 유명한 선원장이 개선될 여지가 있는 것을 보고, 선원장을 연못으로부터 불러내어 제자로 삼기로 했습니다. 사미 스님은 제일 먼저 뽀틸라 대장로에게 인간의 육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신시키기 위하여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섯 개의 구멍이 있는 개미언덕이 있습니다. 그 속으로 도마뱀이 들어갔을 때, 도마뱀을 잡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뽀틸라 대장로는 다섯 개 구멍은 막고 단 하나의 구멍만 남겨 놓고, 그 열린 하나의 구멍으로 도마뱀이 나올 때 잡으면 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사미 스님은 눈, 코, 귀, 혀와 몸이라는 다섯 가지 육체적인 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마음으로 주시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방법으로 수행자는 점진적으로 마음을 청정하게 계발함으로써 수행자의 최종 목표인 도과(道果)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지시를 이해한 뽀틸라 대장로는, 육문 중에서 마음이라는 단 하나의 문만 열어놓고, 눈, 귀, 코, 혀와 몸이라는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이 올바른 수행으로, 얼마 되지 않아 아라한이라는 소중한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그리하여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모든 현상을 관찰하는 것을 ‘뽀틸라 선례’라고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뽀틸라 대장로를 본보기로 해서, 바른 방법으로 시각 대상, 청각 대상, 후각 대상, 미각 대상, 감촉 대상과 마음의 대상을 주시하고, 도과(道果)를 성취하기 위하여 분투하기를 바랍니다.
출처 : “큰 스승의 가르침”, 행복한 숲, 5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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