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타삿투왕
2018. 7. 1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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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자마자 빔비사라왕이 집어던져 죽을 뻔했던 왕자는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새끼손가락만 부러지고 살아남습니다.
빔비사라왕은 이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는 왕자를 없애려 했던 마음을 바꿉니다.
빔비사라왕은 왕자에게 ‘아자타삿투’라는 이름이 지어줍니다.
이름의 의미는 '태어나기 전 이미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자타삿투 왕자가 15살이 되자 빔비사라 왕은 그에게 앙가국을 다스리는 일을 맡깁니다.
어느날 아자타삿투가 앙가국의 수도 참파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였다는 것을 듣고, 빔비사라 왕은 아자타삿투 태자를 크게 나무랍니다.
빔비사라가 태자로 있을 때 마가다는 앙가의 속국이었습니다.
빔비사라는 앙가의 과도한 세금 부과에 분노하여 결국 앙가와 전쟁을 벌여 승리하고 병합한 역사가 있습니다.
때문에 앙가 백성들에게 그런 고통을 주고자 하지 않았는데 아자타삿투가 이를 어긴 것입니다.
이때 아버지에게 질책받고 상심한 아자타삿투에게 데바닷타가 찾아옵니다.
데바닷타는 자신의 신통력으로 아자타삿투의 환심을 산 후 손가락의 상처를 상기시켜 동요하게 합니다.
아자타삿투가 동요하자 데바닷타는 자신이 부처님을 죽이고, 왕자는 왕을 죽여 국가와 종교를 나란히 찬탈할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빔비사라왕은 오히려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하지만 아자타삿투왕은 아버지를 깊은 감옥에 가두어버립니다.
하지만 베데히 왕비의 행적을 알게된 아자타삿투는 어머니마저 죽이려 합니다.
보다 못한 신하 ‘월광’이 '지바카'와 함께 왕을 말립니다.
"왕이시여, 베다 성전에 따르면 아득한 옛날부터 왕위에 빨리 오르기 위해 그 부왕을 죽인 자가 무려 일만 팔 천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를 죽였단 말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부모를 살해하는 일은 찬다라같은 천민이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도 하시겠다면 저희는 떠나겠습니다.”
그말에 어머니를 죽이지는 못했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아자타삿투의 패륜 행위에 다른 나라들이 참지못합니다.
결국 부처님의 중재로 목숨만은 건진 아자타삿투는 생각이 바뀝니다.
또한 아자타삿투는 자신의 아이에게 종기가 생기자 그 고름을 자신의 입으로 빨 만큼 좋아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아버지도 자신에게 똑같이 해줬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는 뼈저리게 후회를 하고 빔비사라왕을 풀어주려 했으나 이미 감옥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자타삿투는 참회하고 부처님에게 귀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종교와 정치는 다른가봅니다.
아자타삿투는 대외 정복사업을 활발히 펼칩니다.
장거리 투석포와 창칼을 갖춘 전차 등 신무기를 사용해 30개 소국으로 이루어진 밧지 동맹과 10년에 걸쳐 전쟁을 한 다음 승리하여 갠지스 강 유역을 차지합니다.
게다가 코살라와 16년동안 긴 전쟁을 벌여 승리하며 접수하여 명실공히 중인도 유일한 최강국이 됩니다.
하지만 자기가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 처럼 자신의 아들 우다야 밧다카에게 살해당합니다.
아자타삿투왕이 죽고 나서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일이 빈번해지며 하리얀카 왕조는 쇠퇴합니다.
결국 기원전 413년 당시 관리였던 시슈나가가 반란을 일으키고 하리얀카 왕조의 마지막왕 나가다사카를 몰아내며 시슈나가 왕조를 세웁니다.
시슈나가 왕조는 기원전 345년 마하난딘 왕과 수드라 출신의 여인 사이에 태어난 마하파드마가 세운 난다 왕조로 넘어갑니다.
기원전 326년 난다 왕조의 2대왕 다나 난다 때 알렉산더 대왕이 침공해왔지만 기병 2만 명, 전차 2,000대, 코끼리 3,000마리 이상을 가진 난다왕조와 맞서기를 포기하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기원전 321년 찬드라굽타의 계속된 침공으로 수도인 파탈리푸트라가 점령당하면서 난다 왕조는 멸망합니다.
그리고 찬드라굽타는 최초로 인도를 통일한 대제국인 마우리아 왕조를 세웁니다.
찬드라굽타의 손자이자 마우리아 왕조 3대 왕이 바로 아소카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