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비구(六群比丘)
사왓티에는 비구로서 살아가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편안하게 살기를 원하는 여섯 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l&2) 빤두까(Paṇḍuka)와 로히따까(Lohitaka), (3&4) 멧띠야(Mettiya)와 부마자까(Bhūmajaka), (5&6) 앗사지(Assaji)와 뿐납바수까(Punabbasuka)였다. 그들은 큰 권력을 가진 비구 장로들, 즉 두 명의 수석 제자를 그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돌봐줄 수 있도록 그들의 스승으로 삼았다.(They sought bhikkhu-elders of great authority, namely, the two Chief Disciples, as their preceptors whom they could look to in case of trouble.)
5년 동안 비구로서의 기본 계율(the Mātikā)을 익힌 후, 그들은 번영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곳에 머물기 위해 세 개의 하위 그룹으로 분산되기로 합의했다. 이것은 그들의 지속적인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l&2) 빤두까와 로히따까를 지도자로 하는 첫 번째 하위 그룹은 여섯 그룹의 합의에 따라 다음을 고려해서 사와티에게 배정되었다. 사왓티는 훌륭한 570만 가구들이 거주하는 도시였다. 까시(Kāsi)와 꼬살라(Kosala) 속주에는 8만 개의 마을이 있었고, 빤두까(Paṇḍuka)와 로히따까(Lohitaka)는 사왓티의 적합한 부지에 정사를 건설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곳에 재가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여러 가지 과일 나무를 재배하고, 정원을 만들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렇게 재배된 과일과 꽃들은 정기적으로 재가자들에게 선물로 보내졌고, 친해진 재가자들은 그들의 아들을 정사로 보내어 사미가 된 다음에 정식 비구가 되곤 했다. 이렇게 하여 두 지도자에 의해 많은 비구 제자들이 길러졌다.
(3&4) 멧띠야와 부마자까를 지도자로 하는 두 번째 하위 그룹은 다음을 고려하여 라자가하에게 할당되었다. 라자가하는 1억 3천만 명의 사람들이 살았던 도시였다. 앙가 주와 마가다 주에 대한 종주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지역은 폭이 300 요자나였고, 8만 개의 마을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멧띠야와 부마자까는 라자가하의 적합한 장소에 정사를 건설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재가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과수 재배와 정원을 마련하였다. 그들은 과일과 꽃을 선물함으로써 사람들과 친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재가자들의 아들을 정사로 보내어 사미로 받은 다음에 정식 비구가 되게 했다. 이렇게 하여 두 지도자에 의해 많은 비구 제자들이 길러졌다.
끼따기리(Kīṭāgiri)는 주변에 넓은 지역이 있는 시장 도시였다. 추운 계절은 물론 장마철에도 비가 내렸기 때문에 1년에 벼를 3번 추수했다. 거기에 (5&6) 앗사지와 뿐납바수까가 이끄는 세 번째 하위 그룹이 정착했다. 그들에게 앞에 설명한 지도자들과 같은 임무와 목표가 주어졌다.
6명의 지도자들은 위의 계획을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세 개의 하위 그룹은 각각 500명(또는 그 이상)의 비구 제자를 기를 수 있어서, 총 1,500명 이상의 비구 제자가 되었는데, 이들은 ‘육군비구’의 종파로 알려졌다.
이 종파의 6명의 지도자 중 빤두까와 로히따까는 500명의 제자들과 함께 계를 잘 지켰다. 그들은 부처님의 여행길에도 동행하곤 했다. 비록 그들이 새로 생긴 비구 계율을 위반할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그 특정한 행동에 대해서 별도 금지령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계율에 어떤 것을 분명히 금지하라고 되어 있으면, 그들은 그것을 어기지 않았다. 나머지 4명의 지도자들과 그 제자들은 계율에 개의치 않았다.
출처: 니까야 제2권에 대한 주석서
영어 원문:
https://www.wisdomlib.org/buddhism/book/the-great-chronicle-of-buddhas/d/doc364793.html
A Note on the Band of Six, Chabbaggī
There were in Sāvatthi six friends who considered earning a living burdensome and preferred a life of ease as bhikkhus. They were (l&2) Paṇḍuka and Lohitaka, the twain; (3&4) Mettiya and Bhūmajaka, the twain; and (5&6) Assaji and Punabbasuka, the twain. They sought bhikkhu-elders of great authority, namely, the two Chief Disciples, as their preceptors whom they could look to in case of trouble.
(After five years' standing in bhikkhuhood and having mastered the Fundamental Precepts for bhikkhus (the Mātikā), they agreed among themselves to split up into three sub-groups to be stationed at prosperous places. This was to ensure a regular livelihood for themselves.
(The first sub-group with (1) Paṇḍuka and (2) Lohitaka as leaders was, by agreement among the group of Six, assigned to Sāvatthi with these considerations: Sāvatthi was a city of 5.7 million houses resided by worthy families. It had suzerainty over the Provinces of Kāsi and Kosala with eighty thousand villages, Paṇḍuka and Lohitaka were to set up monastic compounds at advantageous sites at Sāvatthi, where fruit trees of sorts were to be cultivated and gardens to attract lay supporters. These fruits and flowers should be presented regularly to lay supporters who, thus befriended, would send their boys to the monastery to be novitiated and then admitted into the Order. In this way, a big following of bhikkhu pupils was to be raised by the two leaders.
(Likewise, (3) Mettiya and (4) Bhūmajaka, the second subgroup was assigned to Rājagaha with these considerations: Rājagaha was a city where 130 million people lived. It had suzerainty over the Provinces of Aṅga and Magadha, which were three hundred yojanas wide, and had eighty thousand villages. Similarly, Mettiya and Bhūmajaka were to set up monastic compounds at advantageous sites at Rājagaha, where fruit tree of sorts were to be cultivated and gardens to attract lay supporters. By making gifts of fruits and flowers, the people should be befriended. And they would send their boys to the monastery to be novitiated and then admitted into the Order. In this way, a big following of bhikkhu pupils was to be raised by the two leaders.
(Kīṭāgiri was a market town with a big area around it. Since it received rains during the rainy season as well as during the cold season, it produced three crops of paddy a year. There the third sub-group, headed by (5) Assail and (6) Punabbasuka should settle down. They were given the same assignments and objectives as the previous leaders.
(The six leaders carried out the above plan with some success. Each of the three sub-groups were able to raise five hundred (or more) bhikkhu pupils, making a total of over fifteen hundred bhikkhu pupils in their fold, who were known as the sect of ‘the group of six bhikkhus’.
(Of the six leaders of the sect, Paṇḍuka and Lohitaka with their five hundred pupils were of good morality. They used to accompany the Buddha on his tours. Although they might commit fresh infringement of the bhikkhu precepts, they would do so because there was no specific ban on that particular action. If the precept clearly prohibited something, they did not infringe it. The other four leaders of the sect and their people did not care about the precepts.)
——Commentary on the Nikāya Book Tw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