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1 믿음이란 (1) (법문: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
붇다왕사 169강 - '믿음'이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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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 모든 번뇌 소멸하신 분, 스스로 완전히 깨달으신 부처님께 예경 올립니다.)
믿음 (saddhā) 1) saddhā, saddhādhamma, 믿음(*원문은 미얀마어): (1) 존경 정도만 있는 담마(믿음). (2) 진짜 saddhā(믿음), (3) saddhā cetasika(‘믿음’ 마음부수). 1-1. 업과 업의 결과, 삼보를 믿음, 1-2. 거듭해서 반복적으로 생겨나는 믿음. 1-3. 출세간 법(로꾿따라 담마 lokuttara-dhamma)를 원하는 바른 서원(삼마 찬다sammā-chanda)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업과 업의 결과’와 ‘삼보’를 믿는 믿음. 1-4. 삼보에 대한 믿음과 존경. 1-5. 붇다가 설하신 담마와 붇다를 믿는 상태. 1-6. 붇다와 담마에 확립된 흔들림 없는 믿음. 1-7. 법을 설하는 제자(담마까티까 dhamma-kathika)와 법문에 대한 믿음. 1-8. 업과 업의 결과와 내생에 대한 믿음. 1-9. 세간과 출세간에 대한 믿음. 1-10. 믿음을 일으키는 대상(삳데이야 왇투 saddheyya-vatthu)을 접하고 깊이 들어가서 생기는 믿음(= 오깝빠나 삳다 okappana-saddhā). 마음을 맑게 하는 대상(빠사다니야 왇투 pasādanīya-vatthu)을 접하고 매우 존경하는 믿음(= 빠사다 삳다 pasāda-saddhā). 1-11. 흔들림 없이 ‘들어가서(okappana) 생기는 믿음’ (= 성자들의 믿음) 1-12. 도의 순간에 따라오는 믿음. 1-13. 보시의 원인이 되는 믿음. 1-14. 반조의 자와나(빳짜웩카나 자와나 paccavekkhana-javana)와 함께하는 믿음. 1-15. 함께하는 담마(마음부수)들을 매우 맑게 하는 담마, 함께하는 담마(마음부수)들을 매우 맑게 하는 원인이 되는 담마. 2) 믿음 경(saddhā sutta): [6차 결집본] 상윧따니까야 3권 197쪽. ‘압빠나 숟따’(Āpaṇa-sutta, S48:50). 앙굳따라니까야 3권 264쪽. ‘자나 숟따’(Jhāna-sutta = Saddhā-sutta, A10:8). 3) 외도에 대한 믿음 (유사 믿음: 믿음의 퇴보(saddhahanākāra) — 결정 짓는 마음부수(adhimokkha-dhamma)) 4) 청신녀의 이름(saddhā) 5) 천상계 왕의 딸 이름(saddhā) - 미얀마 <삼장(tipiṭaka) 사전> 中, 'saddhā' |
오늘 라따나 숟따(ratana sutta, 보배경) 할 차례인데 보배경 하지 않고 믿음(삳다 saddhā)에 대해서 법문하겠습니다.
믿음은 무엇을 믿음이라고 하는가. 붇다께서 믿음이라는 단어를 쓰실 때 다른 상황에서 조금씩 다른 뜻으로 쓰입니다. 믿음이란 단어들이 나올 때, 문장에 따라서, 그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뜻으로 쓰입니다. 그때마다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믿음이. 미얀마 <삼장(tipiṭaka) 사전>에서는 ‘삳다(saddhā)’라는 단어에 크게 5가지 뜻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 말하는 ‘믿음’의 뜻은 15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아는 신심(信心). 믿을 신(信), 마음 심(心)이죠. 믿는 마음입니다. 또는 확신하는 마음. 단어 그대로 보자면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는 마음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믿음은 마음이 아니라 마음부수에 들어갑니다. 선업을 지을 때마다 항상 들어가는 마음부수(아름다운 마음부수, 소바나 사다라나 쩨따시까 sobhana-sādhāraṇa-cetasika)에 속합니다. 믿는 마음부수입니다.
이러한 ‘믿음’이라는 뜻이 15가지로 세분됩니다.
1-1) 첫 번째 믿음의 뜻은 ‘업과 업의 결과’를 믿는 것. ‘삼보’를 믿는 것. 믿음은 믿는 것인데 무엇을 믿는 것인가 하면 업과 업의 결과를 믿는 것, 삼보를 믿는 것을 말합니다. 업과 업의 결과를 믿음은 의도와 의도의 결과를 믿는 거죠. 그리고 삼보를 믿는 거죠. 삼보가 무엇입니까? 불법승 삼보입니다. 붇다, 담마, 상가, 이 세 가지를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는데, 뭐든 믿는 게 아니라 의도와 의도의 결과를 믿고 삼보를 믿는 것.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다른 걸 믿는 건 믿음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내 의도가 결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게 ‘업과 업의 결과’를 믿는 거죠. 인과응보를 믿는 것이고. 삼보를 믿는 것도 믿음이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다른 것을 믿는 게 아니라 ‘업과 업의 결과’를 믿고 ‘삼보’를 믿고 의지하는 것, 믿음은 이런 뜻입니다.
또 어떤 뜻이 있느냐 하면, 1-2) 계속해서 여러 번, 거듭거듭 생겨나는 믿음이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한 번 생기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계속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 이런 뜻도 있습니다. 오계를 지키는 것이 이롭다고 생각해서 매일 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마음도 거듭거듭 생겨나는 믿음입니다.
1-3) 로꿋따라 담마(lokuttara-dhamma, 출세간 법)를 원하는 삼마 찬다(sammā-chanda, 바른 서원)로 인해서 생기는 믿음. '업 그리고 업의 결과'를 믿고, '삼보'를 믿는 것. 이것을 또 믿음이라고 합니다. 출세간의 담마를 원해서, 출세간의 담마라는 건 열반을 원하는 거죠. 열반이 아닌 다른 서원은 12연기에서 보면 모두 어리석은 서원입니다. 로꾿따라 담마를 원하는 것. 즉, 닙바나를 원하는 것은 바른 서원입니다. 닙바나를 원한다는 것은 아로바, 완전한 아로바. 완전한 탐욕 없음을 원하는 겁니다. 모든 선업, 욕계 선업은 말할 것도 없고, 색계, 무색계 선업에 다 집착이 들어갑니다. 집착의 미세함의 차이가 있을 뿐. 다 집착과 탐욕으로 세우는 선업입니다. 근데 로꾿따라 담마, 닙바나를 원하는 것은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난 유일한 선업입니다.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선업입니다. 가장 순수한. 가장 완벽한 선업입니다. 그래서 로꾿따라 담마를 원하는 것, 이것만이 삼마 찬다, 가장 바른 서원입니다. 가장 바른, 정말 지혜가 있는 이라면 마땅히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은 어리석음과 집착이 함께해서 결국엔 고통으로 마무리되는 서원입니다. 그래서 로꾿따라 담마(닙바나)를 원해서 생기는 삼마 찬다, 이 서원을 이루는 과정에서의 의도와 의도의 결과를 믿는 겁니다. 열반을 원한다는 뜻은 무상함의 두려움을 아는 겁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흔들리는 땅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정성을 쏟는 것들이, 노력을 바치는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중학교 때 그 ‘국민윤리’ 수업 시간에 불교의 삼법인이 무상, 고, 무아라는 것을 듣고. 무상, 이건 진짜인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다른 종교 교리들은 마음에 와닿지 않는데, 무상을 말하는 불교는 참을 말하는 것 같고, 그리고 이건 종교가 아니라 진리를 말하는 과학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상하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존재들은, 반드시 무상하지 않은 것을 찾게 되어있습니다. 모든 게 무상하면, 어딘가 무상하지 않은 게 있어야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신기루를 향해 내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무상하지 않은 것을 찾습니다. 무상을 아는 존재들은. 무상을 의심하지 않는 이들은 무상하지 않은 것을 찾습니다. 그게 삼마 찬다입니다. 로꾿따라 담마를 원하는 마음. 이 서원을 이루기 위한 계단이 되는 업과 업의 결과를 믿는 겁니다.
삼보는 무엇인가? 삼보를 믿으려면 삼보를 알아야 합니다. 붇다는 매우 아름다우셨습니다. 마지막 생에 모든 선업들이 다 축적돼서, 모든 능력과 외모와 하여튼 모든 좋은 것은 다 갖추고 마지막 생에 태어났는데, 그리고 외모도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왁깔리라는 빅쿠가 붇다의 외모에 반해서 항상 따라다닙니다. 계속 쳐다보고 있는 거죠. 아이돌 쳐다보는 애들처럼. 그저 쳐다보고 있는 거죠. 붇다만 계속 따라다니면서 우러러보는 겁니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아이들처럼. 그러니까 부처님이 이 똥오줌으로 가득 찬 이 가죽을 뭐 좋다고 보냐고. 나를 보고 싶으면 담마를 봐야 한다. 라고 하십니다. 담마를 본 자, 나를 본 자이다. 담마를 보면 붇다를 본 거죠. 불법승 삼보에서, 붇다를 안다는 것은 담마를 먼저 알아야 하고, 담마를 알면 붇다를 아는 거죠. 담마를 보면 붇다를 알고. 그 담마를 그대로 수행하고 담마를 전승하는 상가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거죠. 세 가지, 삼보라는 것이 불법승 삼보인데, 일단 담마를 알아야 붇다에 대한 믿음도 생길 것이고,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일단 담마를 듣고, 들은 것이 내 것이 되려면 위빳사나 수행을 해야 됩니다. 들은 것은 얼마나 가겠습니까? 이번 생, 운 좋게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나면, 또 들을 수도 있겠네요. 다음 생에 태어나서 들으려면, 이번 생에 담마를 남기려는 노력도 더불어 해야 됩니다. 이번 생에 수다원 안 될 것 같으면, 다음 생을 기약하려면 이번 생에 이 담마가 다음 생까지 남아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니면 뭐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나도 별 쓸모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태어나고 죽음은 그저 흔하디 흔한 것인데 걔 중에 제대로 인과를 알고 정말 무상한 것과 무상하지 않은 것을 알고, 뭔가 의미 있는, 아는 생이 몇 생이나 있겠습니까?
삳다. 믿음에 대한 또 다른 뜻이 있습니다. 1-4) 삼보에 대한 믿음, 삼보를 믿고 그것을 존경하는 것. 이것을 또 삳다라고 합니다. 네 번째 삳다에 대한 뜻입니다. 삼보에 대한 믿음이 있고 그것을 존경하는 것. 삼보에 대한 믿음이란? 삼보를 확실히 알 때 생기는데, 삼보를 알기 위해 먼저 담마를 알아야 합니다. 담마를 9가지 담마 또는 10가지라고도 합니다. 9가지 담마는 도 4개, 과 4개, 닙바나. 이게 9가지 담마 입니다. 거기에다가 삼장을 더하면 10가지입니다. 붇다의 말씀 삼장입니다. 10 번째 담마는 9가지 담마를 얻기 위해 필요합니다. 삼보에 대한 존경이 생기려면, 삼보를 알아야지 삼보에 대한 믿음이 생기니까, 우선 법문을 듣고, 수행해서 지혜가 생겨나야 삼보에 대한 존경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상가는 2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둘 중의 하나를 하고 있어야 됩니다. 하나는 아라한과를 얻을 때 까지 수행을 하는 것. 위빳사나 수행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 니까야, 붇다의 말씀을 암기해야 됩니다. 암기하고 전승해야 됩니다. 둘 중의 하나를 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또 어떤 게 믿음이냐면, 1-5) 붇다가 설하신 담마와 붇다에 대한 믿음이 있는 상태, 이것이 믿음입니다. 붇다가 설하신 담마(말씀)에 대한 믿음, 그 말씀을 설한 붇다를 믿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남은 것은 내일 하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고 마치겠습니다. 회향하겠습니다.
이다노- 뿐냥 아-사왁카야-와항 호-뚜
이마노- 뿐냐바-강 삽바삳따-낭 바-제-마
삽베- 삳따- 수키따- 혼-뚜
(Idha no puññaṃ āsavakkhayāvahaṁ hotu.
이러한 우리의 공덕이 우리를 번뇌의 소멸로 이끌기를.
Ima no puññabhāgaṃ sabbasattānaṃ bhājema.
이러한 우리의 공덕을 모든 존재들에게 회향합니다.
Sabbe sattā sukhitā hontu.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사-두 사-두 사-두
(Sādhu sādhu sādhu.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필사자: 담마삐야
* 필사 후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께 보여드리고 요약, 수정, 추가한 부분이 있습니다.
일부용어 수정: 신심 -> 믿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