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08 '빠띠산디'가 생기는 모습 (법문: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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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담맏타 상가하> 5장 위티묻따 빠릿체도(Vīthimutta-paricchedo. '인식과정에서 벗어난 마음'의 장) - 쭈띠 빠띠산딕까모(Cutipaṭisandhikkamo. 죽음 재생연결 인식과정)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붇닷사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붇닷사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붇닷사 교재: 마라나산나 위티묻따(maraṇāsanna vīthimutta) 91. Paccāsannamaraṇassa tassa vīthicittāvasāne ①죽음에 매우 가까워진 ②그 중생의 ③위티 마음의 끝에나 bhavaṅgakkhaye vā cavanavasena paccuppannabhavapariyosānabhūtaṃ ④바왕가가 끝날 때 ⑤넘어가는 힘으로 ⑥현생의 끝에 cuticittaṃ uppajjitvā nirujjhati, ⑦쭈띠 마음이 ⑧생겼다가 ⑨소멸한다. 빠띠산디 마음이 생기는 모습 tasmiṃ niruddhāvasāne tassānantarameva ①그 쭈띠마음이 ②마지막으로 소멸하면 ③그 쭈띠마음의 바로 다음에 tathāgahitaṃ ārammaṇaṃ ārabbha ④상황에 따른 ⑤대상을 ⑥대상으로 하여 savatthukaṃ avatthukameva vā yathārahaṃ ⑦의지할 물질이 있기도 하고 ⑧의지할 물질이 없기도 한 ⑨적절한 avijjānusaya parikkhittena taṇhānusayamūlakena ⑩잠재된 어리석음을 두르고 ⑪잠재된 집착을 뿌리로 하여 saṅkhārena janiyamānaṃ sampayuttehi pariggayhamānaṃ ⑫선업불선업이 ⑬만든 ⑭연관된 담마들을 ⑮아울러 가지는 sahajātānaṃ adhiṭṭhānabhāvena pubbaṅgamabhūtaṃ ⑯함께 생기는 담마들의 ⑰머무는 자리이기 때문에 ⑱앞에 나서서 우두머리가 되어 bhavantarapaṭisandhānavasena paṭisandhisaṅkhātaṃ ⑲다른 생으로 이어주기 때문에 빠띠산디라고 부르는 mānasaṃ uppajjamānameva patiṭṭhāti bhavantare. ㉓마음이 ㉔일어나자마자 ㉖착지한다. ㉕다음 생에 빠띠산디(paṭisandhi)는 마음이 다음 생에 태어나는 거죠. 죽어서 다음 생에 태어나는 마음 중에서 첫 번째 마음입니다. 한국어로만 읽어보겠습니다. “①그 쭈띠마음이 ②마지막으로 소멸하면 ③그 쭈띠마음의 바로 다음에 ④상황에 따른 ⑤대상을 ⑥대상으로 하여 ⑦의지할 물질이 있기도 하고 ⑧의지할 물질이 없기도 한 ⑨적절한 ⑩잠재된 어리석음을 두르고 ⑪잠재된 집착을 뿌리로 하여 ⑫선업불선업이 ⑬만든 ⑭연관된 담마들을 ⑮아울러 가지는 ⑯함께 생기는 담마들의 ⑰머무는 자리이기 때문에 ⑱앞에 나서 우두머리가 되어 ⑲다른 생으로 이어주기 때문에 빠띠산디라고 부르는 ㉓마음이 ㉔일어나자마자 ㉕다음 생에 ㉖머무른다.” “⑨적절한(yathārahaṃ)”이라고 한 것은 욕계에 태어나면 욕계 중에서 4악처에 태어나면 불선업 11개로 어리석음을 두텁게 깔고 탐욕과 성냄으로 태어나겠죠. 인간이나 천상계 같은 좋은 세상에 태어나면 욕계 선업의 결과로 사악처만큼은 아니지만 어리석음과 집착을 뿌리로. 그리고 범천에 태어나면 색계 선정 선업인데 그 또한 어리석음과 집착을 뿌리로 해서 태어납니다. 각각이 가지고 있는 어리석음. 4악처에 태어나면 탐진치가 아주 강하게 있는 것이고, 인간계나 천상계에 태어나면 욕계 선업이지만 거기에도 잠재된 어리석음을 두르고 태어납니다. 인간인 우리들 어리석지 않습니까?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후회하며 사는 중생들, 공자가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뛰어난 제자가 안회였는데 공자가 안회의 뛰어남을 말하기를 ‘안회는 같은 잘못을 두 번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같은 불선업 두 번 짓지 않으면 지혜롭습니다. 숯불이 뜨거운 줄 알고 두 번 잡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색계 범천들도 무색계 범천들도 거기에 태어날 때 각자 그만큼의, 그들이 가져야 할 만큼의 어리석음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4악처는 말할 것도 없고 그보다 더 높고 높은 데 태어난다 하더라도, 다 그 수준의 집착과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범천계에 태어나도 인간만큼은 아니겠지만 범천들의 어리석음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까? 무색계 범천도 탐과 치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거죠. 마음의 장에서 배운 타나 부미(ṭhāna-bhūmi)와 아왇타 부미(avatthā-bhūmi)에서 집착으로 업을 지어서 욕계·색계·무색계를 만들고 열반을 보는 선업은 집착 없이 보는 대상이라서 타나(ṭhāna. 세상. 공간)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빠릭킫떼나(parikkhittena)”는 ‘두른다’는 뜻입니다. 왕이 대관식 때 망토를 두르죠. 이렇게 왕이 두르는 망토를 두를 때 “빠릭킫떼나”라고 합니다. 이렇게 잠재된 어리석음을 거느리고. “딴하누사야물라께나(taṇhānusayamūlakena)”. “딴하(taṇhā)”는 “집착”이죠. “아누사야(anusaya)” : "잠재된 집착”을. “물라께나(mūlakena)” : “뿌리로 해서”. “잠재된 어리석음을 거느리고 어리석음과 함께 잠재된 집착을 뿌리로 해서” “상카레나 자니야마낭(saṅkhārena janiyamānaṃ)” “상카레나(saṅkhārena)” : “선업·불선업에 의해”. 상카라는 선업·불선업의 의도입니다. “선업·불선업의 의도가”. "자니야마낭(janiyamānaṃ)” : "만들어진". “삼빠윧떼히 빠릭가이하마낭(sampayuttehi pariggayhamānaṃ)” “연관된 담마들을 아울러 가지는”. “사하자따낭 아딛타나바웨나(sahajātānaṃ adhiṭṭhānabhāvena) 즉 “함께 생기는 담마들이 머무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잠재된 어리석음과 잠재된 집착을 뿌리로 해서 선업이든 불선업이든(4악처면 불선업일 것이고), 그 의도들이 만든 각각의 물질인 몸 여러 축생의 몸뚱이, 물고기, 새, 네발 축생, 천인의 날개, 천인의 청력, 인간들의 육체들이 생겨납니다. 만약에 지옥에 태어나면 그 어리석음과 집착과 성냄은 아주 강하겠죠. 강할 뿐 아니라 지옥 중생들에게 몸이 연관된 담마들이라는 것은, 그들이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몸인 거죠. 마음, 마음부수들, 물질들을 가지고 다음 생에 태어납니다. 연관된 담마들(몸). 지옥 중생들의 몸은 죽지 않습니다. 인간이 지옥의 고통을 겪으면 죽을 것인데, 지옥 중생들은 절대 죽지 않는 특별한 불사신의 몸을 가지고 지옥에 태어나죠. 죽어 마땅한 고통을 받아도 안 죽는 몸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 함께 생기는 담마들입니다. '빠띠산디'라는 말의 의미 그게 “삼빠윧떼이(sampayuttehi)” : 즉 “연관된 담마들을”. “빠릭가이하마낭(pariggayhamānaṃ)” : “아울러 가지는”. “사하자따낭(sahajātānam)” : “함께 생기는 담마들의” “아딛타나바웨나(adhiṭṭhānabhāvena)” : “머무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 상카라(선업·불선업의 의도)가 만든 물질들, 마음부수들. 이런 것들과 함께 하는 담마들이 머무는 자리, 그 자리에 가서 섭니다. 창을 휙 던져서 목표물에 가서 딱 꽂히는 것, “아딛타나(adhiṭṭhāna)”는 “꽂히는 자리”입니다. 앞에 나서는 우두머리가 되어서 다른 생으로 이어주기 때문에 '빠띠산디'라고 부릅니다. 이 빠띠산디 마음이 어떤가 하면, 선업·불선업의 의도가 잠재된 어리석음과 잠재된 집착을 가지고 “앞에 나서는 우두머리가 돼서(뿝방가마부땅 pubbaṅgamabhūtaṃ)”, “다음 생에 가서 창이 가서 꽂히듯이 박히기 때문에 빠띠산디라고 부른다(바완따라빠띠산다나와세나 빠띠산디상카땅 bhavantarapaṭisandhānavasena paṭisandhisaṅkhātaṃ)”는 겁니다. 1. 마라나산나 위티(maraṇāsanna vīthi.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일어나는 인식과정)가 있고, 바왕가들이 이어진 다음에 쭈띠 마음(현생의 마지막 마음)이 생기도 하고, 2. 마라나산나 위티 마음 바로 다음에 쭈띠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위의 교재의 문단 번호 91번을 보면 중생의 1. 위티 마음의 끝에 쭈띠가 생길 수도 있고, 2. 위티 마음 다음에 바왕가 마음이 생긴 다음에 쭈띠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거죠. 이렇게 해서 쭈띠 마음 바로 그 다음에 빠띠산디가 있습니다. 이 빠띠산디는 마라나산나 위티에서 봤던 그 대상을 가지고, 새로운 생에 빠띠산디하자마자(재생연결 의식이 생기자마자) 이미 다음 생에 도착해 있습니다. 마음이 생기는 그 찰나에 새로운 생에 태어났습니다. 다음 생에 도착해 있는 겁니다. 우리는 지난 생에서 운 좋게 마지막 순간에 선업의 마라나산나 위티가 떠올랐던 거죠. 우리의 전생에서 마라나산나 지혜 있는 욕계 선업이, 마라나산나 위티가 떠올라서, 인간의 자질을 다 갖추고 6문과 지혜를 갖추고 태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업에 잠재된 어리석음(아윗자누사야 avijjānusaya) 거느리고, 잠재된 집착(딴하누사야 taṇhānusaya)을 뿌리로 해서, 우리의 선업 의도들이 만든 연관된 담마들, 여성으로 태어났으면 여성으로 태어나게 되는 연관된 담마들(여성성)이 있죠. 남성으로 태어났으면 남성과 연관된 담마들(남성성)이 있죠. 또 특별히 건강하게 태어난다거나, 태어날 때부터 특별히 약하게 태어나는 등의 유전적인 병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불선업의 결과들이죠. 그런 것들이 '연관된 담마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다 아울러서 끌어안고. 함께 생기는 담마들 이런 것들 다 통틀어서. 우리 인간으로 보자면 욕계 선업의 결과 마음(위빠까 8개)인데, 그 선업도 잠재된 어리석음과 잠재된 집착을 일단 뿌리로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업의 의도가 만든 선업이긴 선업인데 완벽한 선업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선업을 짓긴 지었는데 뭔가 하자가 있는 선업을 지어서 완벽하지 못한 인간으로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 문제가 있는 몸을 가지고 태어난 거죠. 그런 담마들이 머무는 자리이기 때문에 앞에 나가서 우두머리가 되는, 다른 생으로 이어주기 때문에 '빠띠산디라고 부르는 마음'이 일어남과 동시에 다음 생에 도착합니다. 빠띠산디가 일어나자마자 새로운 생에 도착했습니다. 모든 생은 어리석음과 집착을 토대로 합니다 어떤 생에 태어나도 어떤 생이든, 색계 범천이든 무색계 범천이든, 천상계 천왕은 말할 것도 없고, 태어나도 거기에 잠재된 어리석음, 잠재된 집착과 뿌리라는 오점을 품고 태어납니다. 아무리 좋은 곳에 좋게 태어나도 뭐가 문제냐 하면 끝이 있는 거죠. 범천계에 오래 있다가 내려와야 되고, 천왕도 내려와야 되고. 천왕은 별로 좋은 직업인 것 같지 않은데 천왕도 자기 자리를 좋아합니다. 좋아해서 죽자마자 바로 천왕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수다원인 현재 천왕은 천왕으로 태어나고 싶어 해서 죽자마자 바로 다시 그 자리로 빠띠산디 했습니다. 천왕 자신과 붇다만 죽었다가 태어났다고 알고 다른 천신들은 아무도 몰랐다고 합니다. 천신들은 인간들처럼 늙고 병들어서 시체를 남기고 죽지 않습니다. 그냥 사라집니다. 만화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사라지는 거죠. 마술처럼 안 남기니까 금방 죽었다가 즉시 그 자리에 태어나서 모르는 거죠. 어디에 태어나든 어리석음과 집착이라는 불순한 마음으로 태어난다는 거죠. 보디삳따는 붇다가 되겠다고 서원을 세우고 계속 태어나지 않습니까? 즉시 아라한이 될 수 있었는데 포기하고 셀 수 없는 생을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마다 어리석음과 집착을 가지고 계속해서 태어납니다. 태어날 때마다 아무리 좋은 생에 태어나더라도 훌륭한 일을 해도 어리석음과 집착을 가지고 해서 문제가 있는 생에 태어나므로 빠라미를 채우기는 채우는데 문제점을 가지고 빠라미를 채울 수밖에 없습니다. 태어난다는 것은 불순하기 때문입니다. 오점이 있어서 생이 있습니다. 어리석음과 집착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난 겁니다. 어리석음과 집착이 없으면 태어나지 않습니다. 생이 있다는 것은 불순한 겁니다. 깨끗하지 못한 것, 청정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좋은 걸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새로운 생에 태어날 때 업이라고 하는 그 상카라에 잠재된 어리석음을 두르고 있습니다. 상카라라는 선업과 불선업의 의도들, 여기에 집착이라는 잠재된 욕심, 이게 무조건 있습니다. 이것부터 있습니다. 집착부터 깔고 시작합니다. 화투 칠 때 담요 깔죠? 담요 까는 것처럼 집착을 깔고 시작합니다. 집착을 깔고 그리고 어리석음은 두르고 태어납니다. 아무리 좋은 생에 태어나더라도 아윗자와 딴하(어리석음과 탐욕), 이것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선업과 불선업을 짓습니다. 우리가 짓는 불선업은 물론이고 선업도 어리석음과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뭔가 업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과 집착이 있기 때문에 짓습니다. 아라한이 되면 어리석음과 집착이 없습니다. 아라한의 마음을 ‘끼리야(kiriya) 마음’이라고 하죠. 일만 하는 마음, 업을 짓지 않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아나함까지도 업을 짓죠. 집착이 있어서 업을 짓습니다. 범천계에 태어나려는 의도, 생을 원하는 의도가 있어서 태어납니다. 아나함까지도 어리석음과 집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아라한이 되기 전까지는 우리는 불선업은 물론 선업조차도 그 의도에 항상 빵에 스민 버터처럼 어리석음이 녹아 있습니다. 선업을 지을 때 자신의 마음에 아윗자(어리석음)와 딴하(집착)가 보입니까? 아윗자와 딴하 없이 일을 할 때는 위빳사나 수행할 때뿐입니다. 위빳사나 집중수행 들어가서 사띠할 때, 이때는 아윗자와 딴하를 없애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괴롭죠. 왜냐하면 나의 아윗자와 딴하를 계속 봐야 되기 때문에, 나의 번뇌를 내가 계속 정면으로 봐야 되기 때문에 너무 힘듭니다. 안 보고 싶은 것들을 계속 봐야되는 거죠. 수행한다는 것, 위빳사나 수행한다는 것은 너무 괴롭습니다. 안 보고 싶은 것들을 계속 봐야 되니까. 양심이 계속 찔리는 겁니다. 아윗자와 딴하를 자르는 일을 하는 것이 위빳사나 선업입니다. 아윗자와 딴하를 가지고 우리의 마음이 계속 일어납니다. 우리의 마음은 계속, 우리의 불선업은 말할 것도 없고 선업에 대한 의도에도 어리석음과 집착이 함께 일어납니다. 중생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아윗자와 딴하로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 동안에 이게 없으면 살아지지 않는 겁니다. 사람에 따라서 선업을 더 많이 짓는 사람들이 있고, 아예 그냥 불선업인지도 모르고 불선업을 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선업에조차 아윗자와 딴하가 계속 묻어서 일어나는데, 위빳사나는 아윗자와 딴하가 발현되지 못하게 자릅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선업과 불선업의 의도들, 이것들이 성숙하지 못하게 계속 잘라버립니다. 이게 사띠입니다. 위빳사나의 사띠를 하면, 일어난 불선업은 일어나지 못하게 자르고, 일어나지 않은 불선업은 일어나지 않게 막고, 일어나지 않은 선업은 일으키고, 제일 좋은 선업인 위빳사나 지혜가 생기는 거죠. 그리고 일어난 선업은 풍성해집니다. 사띠를 하면 할수록 위빳사나 지혜가 점점 올라갑니다. 그리고 윤회하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최고의 선업인 수다원의 도를 얻게 됩니다. 네 가지 위리야(노력)를 한 번에 다 완수하는 일이 위빳사나 수행입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고 마치겠습니다. 회향하겠습니다. 이다노- 뿐냥 아-사왁카야-와항 호-뚜 이마노- 뿐냐바-강 삽바삳따-낭 바-제-마 삽베- 삳따- 수키따- 혼-뚜 (Idha no puññaṃ āsavakkhayāvahaṁ hotu. 이러한 우리의 공덕이 우리를 번뇌의 소멸로 이끌기를. Ima no puññabhāgaṃ sabbasattānaṃ bhājema. 이러한 우리의 공덕을 모든 존재들에게 회향합니다. Sabbe sattā sukhitā hontu.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사-두 사-두 사-두 (Sādhu sādhu sādhu.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훌륭합니다) 편집자: 담마삐야 * 2023-03-08 인터넷(https://us05web.zoom.us/j/4694074327?pwd=b2pNRUk4VzExbWFMSitFa1Jkc0wyUT09)으로 하신 법문을 필사하였습니다. 필사 후 위뿔라냐니 식카와띠님께 보여드리고 요약, 수정, 추가한 부분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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